기점의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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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환
작품등록일 :
2015.07.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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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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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2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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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퀘스트 (1)

DUMMY


늘 그렇듯 왕좌에 앉아 있던 리니아가 청연이 들어오자 약간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왔군.”


라이스터와 질답이 무산돼서 약간 심통이 난 청연은 ‘제가 그리 보고 싶으셨습니까?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리 애타게 찾으시는지?’ 라는 짓궂은 농담을 살짝 떠올렸다. 하지만 그런 농담을 리니아한테 꺼낼 용기는 아직까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네, 말씀하신 대로 받아 왔습니다.”


청연은 오른손에 쥐고 있던 테치느를 들어 보였다. 리니아가 테치느를 보고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니아님, 리니아님! 나 빨리 리니아님한테 넘겨줘. 어서!-


조용히 있던 테치느가 불쑥 소리쳤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들려온 외침에 청연이 움찔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는 리니아에게 말했다.


“테치느가 리니아님에게 자신을 넘겨달라고 하는데 받으시겠습니까?”

“줘 보거라.”


청연은 리니아가 있는 왕좌까지 걸어가 테치느를 건넸다. 앉은 상태로 테치느를 받은 리니아가 곧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테치느의 검신을 갓난아기 다루듯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잠을 깨워서 미안 하구나… 아니, 괜찮다. 위로해줄 필요 없다. 그래, 그래… 이번엔 네가 힘을 내줬으면 한다. 나는 도와줄 수가 없구나.”


대화로 유추해볼 때 라이스터한테도 칭얼대던 테치느가 리니아에겐 그리 투덜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불평을 토해도 리니아가 그걸 자상하게 받아주던가.


리니아가 테치느를 쓰다듬는 모습이 자애로운 여신 같아서 청연은 잠시 넋을 잃고 지켜봤다. 마왕이란 무시무시한 이명과는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리니아는 청연을 대할 때 외에는 대부분 인자한 편이었다.


‘뭐, 나한테 까칠하게 구는 건 어쩔 수 없지. 나야 원래 저쪽 세계 인간이고 아직 신뢰받기엔 턱없이 부족하니까…’


그리고 그런 청연에게조차 차갑고 무뚝뚝하게 대하기는 했지만, 처사는 공정했고 청연의 의사도 많이 존중해주는 편이었다.


청연이야 처음에 리니아한테 워낙 많이 죽어서 리니아 하면 무섭고 냉혹한, 무자비한 마왕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접하면 접할수록 그런 이미지가 조금씩 회석되어 갔다.


직접 몸으로 겪어본 마왕과 몬스터들은, 헌터 준비를 하며 배웠거나 추측했던 마왕이나 몬스터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청연은 약간 복잡한 심정이 담긴 눈으로 리니아를 쳐다봤다.


“가져가거라.”


한참을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던 리니아가 테치느는 다시 청연에게 건넸다. 청연은 그걸 공손히 받은 후 왕좌에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리니아는 군말 없이 바로 청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 그럼 퀘스트를 주도록 하지.”


청연이 다급히 말했다.


“그 전에 질문 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아까 라이스터에게 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리니아에게 직접 할 생각이었다. 두려워서 여태까지 안 물어봤다 뿐이지, 이렇게 된 이상 못 물어볼 것도 없었다.


“뭐지?”


청연은 테치느를 가리켰다.


“왜 인간이자 헌터들의 배신자인 제게 저런 어마어마한 무기를 주는 겁니까? 그리고…”


청연은 잠시 뜸을 들였다. 리니아는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턱짓했다.


“아까 라이스터님이 저는 빨리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건 또 어째서입니까?”


한 번 질문이 터지자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외에도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그중에 가장 궁금한 건 혹시 제가…”


그때 리니아가 몸을 앞으로 살짝 내밀며 청연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리니아 입장에선 집중해서 들어보겠다는 식의 가벼운 눈 마주침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위압감과 압박감이 청연의 전신을 짓눌렀다. 청연은 침을 꿀꺽 삼키며 버텨냈다. 그리고 하려던 말을 마저 했다.


“…혹시 제가 여기 오게 된 건 버그나 우연이 아니라 뭔가 사정이 있어서 그랬던 것 아닙니까?”


고작 그 한 마디하는 동안 녹초가 돼서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청연은 숨을 얇고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리니아의 눈을 피해 아래쪽으로 시선을 살짝 내렸다.


리니아는 청연의 질문에 곧장 대답했다.


“별 것 아니다. 네가 헌터들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거기에 전적으로 협력해주는 것도 불만인 것이냐?”


이번 건 농담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래도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저도 속 편하게 행동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청연도 말을 고르지 않고 가볍게 맞받아쳤다. 그러자 리니아는 냉랭하게 미소 지었다.


순간 리니아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이 확 바뀌었다. 테치느를 쓰다듬던 아름다운 자애의 여인에서, 차갑고 냉철한 마왕의 기운으로.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청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잊지 말거라. 지금의 너는 질문을 할 자격도 없을 뿐더러 신뢰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차가운 답변이었다.


분위기가 부드러워져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자신은 역시 아직 이방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청연은 아까 ‘허허’ 거리며 대답해줄 것처럼 굴다가 결국 안 해준 라이스터보다 지금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해주는 이 대답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네가 테치느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면, 그리고 이번 퀘스트를 완수해낸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질문에 대답해주겠다.”


리니아는 몸을 뒤로 살짝 젖히며 근엄하게 말했다.


“라이스터에게도 이미 말해놨으니 다시 찾아가서 물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지금의 넌 질문하기보단 증명해보일 때다. 우선 너의 가치를 증명해라.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답은 자연히 나올 것이니.”


리니아의 말이 끝나자 몸 전체를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기운도 다시 훅 사라졌다.


청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니아가 이렇게 나오면 그도 더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있어도 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청연이 수긍하자 리니아는 더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청연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어김없이 손가락 끝에서 빛이 번뜩였다.


렉스에서 메시지가 왔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그리고 동시에 청연은 말 한마디 꺼낼 틈 없이 리니아의 방에서 퇴거되어 맨 아래층으로 워프됐다.


***


정신을 차린 청연은 누운 상태에서 눈을 천천히 떴다. 하도 자주 강제워프 당하다보니 이젠 놀라는 일 없이 무덤덤했다. 청연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확인했다.


장소도 익숙했다. 넓은 초원에 무릎까지 닿는 무성한 풀들. 저번에 퀘스트 할 때 이동됐던 바로 그 장소, 던전 1층이었다.


옆구리 쪽을 보니 테치느가 나란히 놓여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테치느는 그대로 방치해 놓고 몸부터 일으켰다. 그리고 렉스를 꺼내 퀘스트를 확인했다.


‘이번엔 무슨 퀘스트려나…’


저번과 달리 스킬도 주고 무기까지 쥐어줬다. 거기다 이번 퀘스트를 완료하면 자신의 질문에 전부 답해주겠다고까지 했다. 절대 호락호락한 퀘스트는 아닐 것이다.


‘역시나…’


렉스 액정에 뜬 메시지를 읽으며 청연은 쓴 웃음을 지었다.


『퀘스트 : 당신은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에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리니아님은 아직 당신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질문에 대답해줄 생각이 없습니다. 이 퀘스트를 완료하여 당신이 진실을 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십시오.


1. 한 층의 헌터들을 모두 박멸 [1층에 있는 헌터 : 2021]

2. 헌터 4000마리 처치 [현재 처치한 헌터:0]


※ 아무 층이나 상관없이 그 층의 헌터들을 모조리 궤멸시키는 순간 퀘스트는 종료됩니다.

※ 한번 잡은 헌터들은 카운터가 중복되지 않습니다.

※ 둘 중 하나만 완수해도 퀘스트는 종료됩니다.』


퀘스트를 반복해서 읽어 내용을 머릿속에 완벽히 숙지했다. 그러면서 청연은 다시 한 번 혀를 내둘렀다. 예상했던 대로 엄청난 고난이도였다.


그나마 이번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놓아서 아무 것도 모른 채 퀘스트를 받았던 저번보다 충격이 덜한 편이었다.


‘그래도 너무 심하네.’


첫 번째 퀘스트로 40명의 헌터들을 어렵시리 처리했다. 그리고 이제 고작 두 번째 퀘스트였다. 그런데 처리해야 할 숫자가 정확히 100배로 늘었다.


청연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두 번째 퀘스트니까 두 배인 80명 정도를 처치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것 아니냐고. 내가 무슨 초인이냐고.’


물론 아예 싸울 수단이 없었던 저번과 달리, 이번엔 어느 정도 레벨도 올랐고 채비가 갖춰진 상태긴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증가폭이 너무 컸다.


‘이거 완수하면 다음엔 현존하는 헌터들을 다 잡으라는 거 아냐?’


현재 헌터 협회에 등록된 헌터들은 20만 명 정도였다. 그리고 그 중에 제대로 활동하는 헌터들은 대략 15만 명 정도로 추정됐다. 어림계산으로 헌터들 중 1/40을 혼자서 처리하라는 거였다.


거기다 이곳 리니아의 거탑은 헌터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는 편이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암흑 대륙과 레드 라인에 집중되어 있다.


청연이 거탑 외에 다른 던전으로 이동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사실상 탑 안에 있는 헌터들을 다 잡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단기간에 완수하기엔 도저히 무리다.’


저번과는 달리 하루 이틀 사이에 완수할 수 있는 퀘스트가 아니었다. 그 점을 리니아도 알기에 퀘스트를 마치면 원하는 대로 대답해주겠다고 한 것일 터였다.


‘그럼 나도 굳이 급하게 할 필요는 없지.’


청연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저번엔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어서 24시간 꼬박 무리해가며 빠르게 퀘스트를 완료했다. 하지만 지금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던전에 드나들 수 있었고, 헌터 협회에 빚이 있거나 앞날이 불투명한 것도 아니었다.


‘길게 보자. 길게.’


첫 번째 퀘스트를 마쳤을 때도 리니아는 일주일 정도 걸릴 거라 예상했다고 했다. 그럼 이번 퀘스트도 분명 어느 정도 기간 여유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놓고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무리한 퀘스트도 아니었다. 하루에 50명씩만 꾸준히 잡아도 석 달이면 완수할 수 있다. 그 사이 경험치도 오르고 스킬 활용도도 올라 더욱 강해질 테니 퀘스트도 갈수록 쉬워질 것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리니아는 청연을 빨리 강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이번 퀘스트는 정말 딱이었다.


던전 안의 골칫거리인 헌터들도 해치우면서, 청연도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또 청연이 이렇게 많은 헌터들을 처리한다면 리니아도 청연을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헌터 측의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던가, 혹은 청연의 재능에 대한 의혹들을 떨칠 수 있는 것이다.


“좋아, 차분하게 가자.”


생각을 직접 입 밖으로 내뱉으며 청연은 천천히 진행하기로 계획을 굳혔다. 그리고 곧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서 차근차근 떠올렸다.


‘일단 라임이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면서 배운 스킬들을 점검해보자. 그리고…’


청연은 테치느를 힐끔 내려다봤다.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작가의말

선작이 4천을 넘었습니다...^^ (조회수는 그대로 인것 같지만...;;)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재밌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_ _)


재밌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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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두번째 퀘스트 (3) +44 15.09.04 11,740 360 13쪽
32 두번째 퀘스트 (2) +66 15.09.03 12,783 411 12쪽
» 두번째 퀘스트 (1) +56 15.08.29 15,524 438 12쪽
30 블러드 레이디 (2) +58 15.08.28 15,184 427 13쪽
29 블러드 레이디 (1) +71 15.08.27 15,933 454 12쪽
28 마왕 양반,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xx라니! (2) +45 15.08.26 16,472 449 13쪽
27 마왕 양반,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xx라니! (1) +58 15.08.24 17,248 478 10쪽
26 퀘스트 완료 (2) +59 15.08.23 18,492 498 14쪽
25 퀘스트 완료 (1) +49 15.08.22 18,684 467 15쪽
24 last one (7) +49 15.08.21 18,066 465 15쪽
23 last one (6) +68 15.08.20 17,596 441 12쪽
22 last one (5) +41 15.08.18 17,784 418 8쪽
21 last one (4) +31 15.08.17 17,749 419 12쪽
20 last one (3) +36 15.08.16 18,008 393 11쪽
19 last one (2) +43 15.08.15 18,213 394 9쪽
18 last one (1) +43 15.08.14 18,369 404 11쪽
17 헌터를 낚는 어부가 되거라 (4) +69 15.08.13 18,565 448 11쪽
16 헌터를 낚는 어부가 되거라 (3) +41 15.08.12 18,448 451 11쪽
15 헌터를 낚는 어부가 되거라 (2) +43 15.08.11 18,195 416 9쪽
14 헌터를 낚는 어부가 되거라 (1) +45 15.08.09 19,011 389 10쪽
13 헌터 헌터 (5) +34 15.08.08 25,754 394 12쪽
12 헌터 헌터 (4) +30 15.08.07 19,542 384 12쪽
11 헌터 헌터 (3) +25 15.08.06 20,497 396 9쪽
10 헌터 헌터 (2) +35 15.08.05 20,895 429 10쪽
9 헌터 헌터 (1) +23 15.08.04 21,039 423 7쪽
8 마왕에게 살아남는 방법! (2) +36 15.08.03 21,004 385 11쪽
7 마왕에게 살아남는 방법! (1) +28 15.08.01 20,890 409 10쪽
6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2) +28 15.07.31 20,720 397 14쪽
5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1) +22 15.07.30 21,318 38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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