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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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모아
작품등록일 :
2024.07.12 16:13
최근연재일 :
2024.08.07 14:1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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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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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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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진영 이야기 - 염탐하던 이의 정체 (2)

DUMMY

민우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귀신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이런 말 들으면 황당하겠지만, 배신감 들었어. 그래서 나도 홧김에 클럽에 갔고, 그렇게 지옥문이 열렸고...”




민우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근데 그게 이렇게 별 받을 만큼 잘못한 일이야? 다들 실연하면 클럽 가고 소개팅하고 그러지 않나? 왜... 왜 나만...”




민우가 갑자기 헝클어진 내 머리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전혀 예상 못 한 반응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가 요동치는 감정을 그대로 표출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냐. 아냐. 잘못 아니야. 너 잘못 하나도 없어.”




그러더니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뭐가 미안했던 걸까? 다른 사람을 맘에 두고 술김에 나에게 키스했던 거? 아니면 내가 헛된 희망을 품게 했던 거? 그것도 아니면 날 좋아하지 않은 거?




냉철한 민우의 마음에 큰 파동이 생긴 것 같아 두려웠다. 더는 친구로도 그를 못 볼 것 같았다.




“죽게 두지. 그럼 지금쯤 다 끝났을걸.”




민우는 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병원을 떠났고 열흘간 오지 않았다.




열흘 만에 다시 병원으로 온 민우는 퇴원 수속 후 내 짐을 정리했다.




“내내 곁에 있어 줄 거처럼 굴더니 코빼기도 안 비추더라?”




“그러게. 옷이라도 좀 갖다 줄걸. 뭐 싸고 말고 할 것도 없네.”




민우는 텅 빈 옷장에 남아있던 립밤을 주어 입술에 발랐다.




“열흘 동안 뭐 했어? 바빴어?”




“두고 가는 거 없나 잘 생각해 봐.”




“핸드폰이 없어. 혹시 내 핸드폰 못 봤어?”




민우가 가져간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그가 내 폰을 본 걸 서로 인정하는 순간 다시는 예전처럼 지낼 수 없을 테니까.




“아니. 못 봤는데?”




“정...말?”




“응. 난 모르지.”




그는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능청스레 거짓말했다.




민우도 나와 같은 마음인 걸까? 그날 밤 분명히 간호사에게서 폰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 걸 직접 보았는데도 잘못 본 건가 헷갈릴 정도였다.




“집에 있겠지.”




“병원에서 내 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니 가져온 건 확실해.”




“아. 그렇겠네.”




민우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호사 선생님한테 얘기해 둘게. 찾으면 나한테 연락 달라고.”




민우는 짐을 들고 병실 문을 열었다.




“근데 못 찾을 거 같은데? 벌써 열흘이나 지났잖아.”




나는 그가 내 핸드폰을 어떻게 했는지, 혹시 아직도 놈이 보낸 사진과 영상을 보는 건 아닐까, 잃어버린 건 아닐까 신경 쓰였다.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불안해하는 나의 시선을 느낀 민우가 나를 바라보았다.




“새로 사자.”




청유형이지만 분명한 명령조였다. 그는 더 이상 토 달지 말라는 투로 단호하게 내 말을 막아섰다. 저렇게 나온다면 내가 어떤 말로 물어도 민우는 내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운전하는 내내 어디로 가는지 말도 안 하고 전방만 주시했다.




나는 파주에 있는 내 방은 그날 그 모습으로 엉망이겠구나, 그걸 또 혼자 치워야겠구나, 그놈이 다시 들이닥치면 어쩌나, 지금이라도 신고하면 늦으려나 등의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문득 이정표를 보니 차는 파주가 아닌 서울 강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의아해하는 걸 눈치챈 민우가 입을 열었다.




“당분간 우리 집에 있어. 파주에서 짐 뺐어. 네 짐은 우리 집으로 다 옮겼고.”




그동안 이 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지. 미안하고 면목 없었지만, 염치없이 든든했다. 혼자가 아니란 느낌.




“너 데려다주고 난 바로 나가야 해. 오늘은 기다리지 마.”




순간 민우가 애써 감추려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여자친구?”




민우는 입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서운한 동시에 안도가 되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불행했다.




“난 언니 집으로 갈게. 짐은···”




“너 형부 싫잖아.”




“며칠만 신세 지고 바로 방 구해서 나올 거야.”




“원룸이라던데? 네가 괜찮다고 형부도 괜찮을까?”




“형부는 무슨 얼어 죽을.”




“누나도 아기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정신없을 테고.”




“내가 애기 봐주고 살림도 돕고 하면 돼.”




“그 팔로?”




민우가 깁스한 내 팔을 내려다 보았다.




“짐은 좀 맡아줘. 곧 찾아갈게.”




“그냥 우리 집에 있어.”




“여자친구가 좋아할 리 없어.”




“내가 알아서 해.”




“불편해.”




“이 마당에 맘까지 편하길 바라는 거야?”




화를 꾹 누른 낮은 목소리.




그는 병원에서 나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갑자기 얼굴 군데군데 남은 멍이 수치스러웠다.




“미안해.”




“······”




“내 맘 편하려고 우리 집에 있으라는 거야.”




“할 만큼 했어. 그러니까 이제 신경 안 써도 돼.”




“너라면 그럴 수 있어?”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주차 후 민우가 문을 열어 주었지만 나는 내릴 수 없었다. 아무래도 민우네 집에 머무는 건 둘 모두에게 위험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나만 생각하며 안도했지만, 막상 도착하니 민우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보조석 문을 열고 내가 내리기를 기다리던 민우가 몸을 숙여 내 안전벨트를 풀었다. 나는 벨트가 벗겨지지 않도록 손으로 꼭 쥐었다.




“곧 찾아와서 난동 부릴 거야.”




“······ 내려.”




“너도 다칠 거야.”




“내리라고.”




민우가 내 팔을 잡았다. 두려움에 바들바들 떠는 걸 알게 된 민우가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그 깡패 새끼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민우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얼마나 악랄한 지 네가 몰라서 그래.”




내 말에 민우는 누구를 향한 비웃음인지 모를 냉소를 머금고는 담배에 불을 댕겼다.




“걱정 마. 이제 못 와.”




민우의 말대로 그놈은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민우가 흘렸던 냉소는 어떤 의미였을까.




비열해 보였던 그 웃음과 내 손을 잡아 주는 따뜻함. 그 사이 어디쯤이 그의 본 모습일까.




그날 느꼈던 섬찟하게 낯선 그의 모습, 나는 지금 그 앞에 다시 서 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비상구 계단을 올라가는 데 물소리가 들렸어. 볼레가 덜 닫힌 틈으로 어릿어릿 네 실루엣이 보였고. 창에 가까이 다가가서 봤어. 얼마나 보이는지 확인해야 했거든. 그때 네가 사라졌고, 나도 그냥 집으로 들어왔어. 마침 네가 욕실에서 나와 호들갑스럽게 어떤 미친놈이 안을 들여다봤다기에 장난기가 돋았어. 그래서 확인해 보자 했을 때도 모르는 척 밖으로 나간 거야. 생각보다 인형이 선명하게 보이긴 했어. 하지만 네가 샤워하는 모습은 못 봤어. 정말 들여다보자마자 네가 사라져 버렸거든.”




“왜 사실대로 말 안 했어?”




“장난이었다니까. 네가 그렇게 신경 쓸 줄은 몰랐어. 나중엔 뒤늦게 말해봐야 널 안심시키기 위해서 둘러댄다고 안 믿을 거 같았고.”




“지금 하는 말들이 더 안 믿기는걸?”




“죄의식과 피해 의식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랑 사는 게 어떤지 알아? 무슨 말을 해도 안 믿고, 의심을 하다 하다 스스로가 만든 망상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이랑 사는 게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아느냐고.”




나랑 사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아느냐는 그의 하소연은 꽤나 충격적이어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럼 오늘은 왜 베란다 안을 지켜본 거야?”




“점점 이상해지는 네가 걱정되니까.”




“도망은? 주차장에 숨어서 거짓말한 거는? 그것도 나를 위해서 한 일이라 할 거야?”




“응. 정확해.”




“뭐?”




“대체 테라스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설마 그걸 다 봤다는 말인가?




“왜 대답을 못 해?”




그의 시선이 나를 외면한 채 노트북 화면에 고정되어 있다.




“너 먼저 대답해. 왜 거짓말했어?”




“못 본 척 해주려고. 어쩌면 테라스에서 하던 그 일,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겠다 싶었거든.”




나는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이 어느 정도 맞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호기심에 해 본 일이긴 하지만 막상 누군가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니 조금 당황스럽긴 하다. 하필 그게 민우였다는 사실도.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얘기해야 덜 이상해 보일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별 의미 없이 한 일이야.”




나의 대답에 남편은 화를 삭이려는 듯 눈을 감았다 뜨더니 원고를 펼쳤다.




“말하다 말고 뭐 하는 거야?”




“말할 의지가 없는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해?”




“알아. 이상해 보였을 거야. 근데 이유가 있어서 한 일이야.”




“그랬겠지.”




“이유는··· 지금 말하기 싫어.”




“그러시던가.”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건성으로 툭.




아까 테라스에서 했던 내 행동이 기이해 보일 수는 있어도 경악할 만한 행동은 아니다. 왜 그랬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얘기로 논점을 흐리고 싶지 않다. 그가 문제의 본질을 흐린 후 빠져나가게 둘 수는 없다.




“나를 정신병으로 몰아서 병원에라도 보내려는 수작이야?”




“병원이라니?”




남편은 내 말의 의도를 모르는 척 했다.




“새로운 소설 시놉시스를 보란 듯 펼쳐 버린 것도 혹시 네 계획의 일부니? 왜? 내가 곱게는 안 헤어져 줄 것 같았어?”




남편은 기가 찬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젠 소설이랑 현실도 구분 못 해?”




“그게 소설이야? 네가 한 말이 그대로 다 그 시놉시스에 있고, 몽땅 우리 현실인데?”




“빌어먹을!”




남편은 또 손에 들고 있던 원고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던지고 화내는 게 이미 습관이 되어 버린 듯하다. 이젠 이런 모습이 두렵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다.




“너야말로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출판사랑 약속한 기일이 코앞이야. 뭐든 우선은 넘겨야 한다고! 일기라도 쥐여줘야 할 판인데, 지금 그걸 가지고 이 난리인 거야? 이번에도 아무것도 못 넘기면 계약금 도로 뱉어내야 해! 그렇게 되면 우린 뭐 먹고 사냐? 집세 내고 보험료 내고 나면 차비도 안 나와. 글 써서 받는 돈 끊기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라고! 네가 망상 속에 사는 동안 나는 얼마나 서럽고 속이 타들어 가는지 알아? 이제 제발 말도 안 되는 생각과 계획은 접고 우리 현실적으로 좀 살자!”




“왜 자꾸 망상이라는 거야? 왜 내가 하는 생각과 계획은 다 말도 안 된다는 거야?”




남편은 고개를 돌려 집을 훑다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우리가 부부이긴 해? 같이 여행한 게 언제였는지, 둘이 웃으며 밥 먹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




“당연히 애들 중심이 될 수밖에 없지!”




“그놈의 애들! 애들! 애들! 정말 미칠 것만 같아!”




그는 나와 아이들을 그의 삶에서 솎아내려는 게 분명하다.




“선택해. 내가 한국 다녀온 후에도 이 모습 그대로라면 우리는 끝나는 거야.”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나는 과호흡증에 걸린 사람처럼 한동안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가 없던 내 인생은 너무 오래전이라 생각조차 나지 않는데 앞으로 여생을 민우 없이 살 수 있을까.




나는 친구였던 그를 졸라 연애를 시작했던 과거의 선택을 또다시 후회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감히 결혼이란 건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고, 결혼을 안 했다면 우리가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의 한국 일정이 어떻게 되더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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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에필로그 – 배달 이야기 24.08.07 7 0 14쪽
27 2부: 민우 이야기 - 엉킨 인연의 끝자락 (최종화) 24.08.06 7 0 19쪽
26 2부: 민우 이야기 - 사건의 실마리 24.08.05 6 0 12쪽
25 2부: 민우 이야기 - 돌이킬 수 없는 관계 24.08.04 8 0 10쪽
24 2부: 민우 이야기 - 원치 않은 재회 24.08.03 9 0 11쪽
23 2부: 민우 이야기 - 장인과의 인연 24.08.02 10 0 10쪽
22 2부: 민우 이야기 – 낡은 통장의 주인 24.08.01 11 0 12쪽
21 2부: 민우 이야기 – 버려진 사람들 24.07.30 9 0 13쪽
20 2부: 민우 이야기 - 가족, 그 아이러니 24.07.29 8 0 11쪽
19 2부: 민우 이야기 - 놈의 뒤를 쫓다 24.07.28 11 0 12쪽
18 2부: 민우 이야기 - 깊어지는 갈등 24.07.27 12 0 16쪽
17 2부: 민우 이야기 - 고양이의 의미 24.07.26 11 0 19쪽
16 2부: 민우 이야기 - 미심쩍은 유배달의 행적 24.07.25 10 0 12쪽
15 2부: 민우 이야기 - 불길함은 현실이 되고 24.07.24 16 0 12쪽
14 2부: 민우 이야기 - 지우고 싶은 기억들 24.07.24 15 0 13쪽
13 2부: 민우 이야기 - 주변을 맴도는 누군가 24.07.22 10 0 9쪽
12 2부: 민우 이야기 - 수상한 윗집 남자 24.07.21 15 0 13쪽
11 2부: 민우 이야기 – 지난 여름, 한밤의 손님 24.07.20 14 0 16쪽
10 2부: 민우 이야기 - 사라진 유 선생 24.07.19 12 0 19쪽
9 1부: 진영 이야기 - 기이해 보이는 보통의 하루 24.07.18 13 0 14쪽
» 1부: 진영 이야기 - 염탐하던 이의 정체 (2) 24.07.17 16 0 12쪽
7 1부: 진영 이야기 - 염탐하던 이의 정체 (1) 24.07.16 18 0 14쪽
6 1부: 진영 이야기 - 듀끌로 씨의 죽음 24.07.15 15 0 12쪽
5 1부: 진영 이야기 - 비둘기 고기의 저주 24.07.14 19 0 13쪽
4 1부: 진영 이야기 - 우유가 이어준 인연 24.07.13 22 0 18쪽
3 1부: 진영 이야기 - 윗집 남자의 비밀 24.07.12 28 0 13쪽
2 1부: 진영 이야기 - 한밤중 불청객 24.07.12 25 0 11쪽
1 1부: 진영 이야기 - 수상한 인기척 24.07.12 5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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