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전함이 일제를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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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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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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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 부대 (1)

DUMMY

우리가 태평양에서 치고받는 사이, 유럽에서도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독일에서 그 유명한 신형 전함 비스마르크가 출격했다.


목표는 북대서양의 통상파괴.


대서양을 건너는 영국 상선단을 게릴라전으로 격파해 영국의 보급로를 끊어버리는 것.


이를 위해 그 유명한 유보트 부대와 공조까지 준비하며 야심 차게 출격했다.


“가라, 비스마르크! 게르만의 영웅이여!”

“아시아 황인종이 만든 전함조차 세계 3위의 해군국을 떨게 만들었다. 우리 아리아인의 기술이 담긴 전함이라면 능히 왕립 해군을 압도하리라!”


영국 해군의 자랑, 순양전함 후드를 격침할 때만 해도 그럴 줄 알았다.


“후드 격침! 후드 격침!”

“가지고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해 저 망할 전함을 박살 내시오! 당장!”


대서양의 거의 모든 왕립 해군 함대가 비스마르크를 추격했다.


안타깝게도 북대서양은 황천이 몰아치는 바다지만 그날은 비스마르크를 숨겨줄 폭풍도 없었고 하늘 위를 지켜줄 항공모함도 없었다.


더군다나 1차 세계대전 후 반쯤 해체 상태에서 재건된 독일 해군은 이 상황을 타파할 능력이 없었다.


항공모함 아크 로열에서 발진한 뇌격기가 비스마르크의 조타기를 망가트렸고.


“비스마르크, 조타 불능!”

“배가 표류 중입니다!”


안전한 항구를 눈앞에 두고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게 된 비스마르크는 영국 전함 부대의 추격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백 발의 포탄을 뒤집어쓰고 침몰한다.


유럽에서 이순신의 신화는 재현되지 않았다.


비스마르크는 영국 해군의 자랑, 그러나 건조한 지 20년이 되어가는 낡은 순양전함 ‘후드’ 하나만 격침하고선 허무하게 가라앉았고.


“이제 제리 놈들도 별거 없겠군!”

“각하, 아직 독일 전쟁해군에는 비스마르크급 2번함이 남아있습니다.”

“놈은 이순신이 아니야! 다시 나온다면 이번에는 우리 해군 전체가 달라붙어 끝장을 내버리겠지!”


여전히 왕립 해군 대다수가 유럽에 묶여있는 처지.


하지만 그들은 극동에도 영향력을 투사할 아주 약간의 여유를 얻었다.


“최신예 고속 전함 1척과 항공모함 1척으로 구성된 별동대를 극동에 파견할 준비를 하시오!”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수리를 마치는 대로 미 서해안으로 파견하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금 유럽의 정세를 변화시킨 거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1941년 6월.

나치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규모가 동원된 끔찍한 전쟁, 독소전쟁이 시작했다.


독일과 소련.

두 강대국의 정면 대결.


수백만 독일군이 파죽지세로 소련의 광대한 영토를 침공해 들어갔으나, 이는 스탈린이 감당해야 할 일이지 왕립 해군에서 걱정할 바는 아니었다.


당장 그들에게 중요한 건 도버 해협 너머의 독일군이 영국 본토로 들이닥칠 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것.


어떻게든 한숨 돌린 왕립 해군은 그제야 무너진 극동에 다시 세력을 투사할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 항공모함 허미즈가 진주만에 도착했네.”


일명 Z부대.


전함 1척, 항공모함 1척, 구축함 4척으로 구성된 소수 정예의 고속 기동부대다.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14인치(356mm) 주포를 탑재한 전함이네. 배수량은 우리 이순신함의 절반 수준이지만··· 최고 속도가 28노트에 다다르고 방어력도 준수하다더군.”

“영국 해군의 최신예 전함이 아닙니까?”


지난 5월에는 그 비스마르크와도 포화를 주고받은 전함이다.


당시에는 기계 고장 등으로 제대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비스마르크에 명중탄을 몇 발 먹였다고 한다.


“성능은 어느 정도 검증된 전함이라고 봐야지. 아, 그리고 미 해군 측에서도 신형 전함 노스캐롤라이나가 합류했네.”


이쪽은 신형 16인치(406mm) 주포를 탑재한 고속 전함.


두 전함 모두 성능은 원역사와 그다지 다를 건 없다. 다만 노스캐롤라이나는 본래 이 시점에도 선미 추진기에서 진동이 발생하는 결함을 해결 못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이순신함을 보고 일찍 건조한 덕분에 문제도 조금 더 빨리 해결한 듯하다.


노스캐롤라이나급 2번함 워싱턴도 취역했지만 아쉽게도 이쪽은 아직 미 동해안에서 훈련 및 시험 운항 중이다.


“이걸로 태평양 함대에서 당장 사용 가능한 고속 전함은 총 3척이군요.”

“이순신함과 노스캐롤라이나, 프린스 오브 웨일즈··· 이 정도면 일본 해군과도 해볼 만하다고들 하더군.”

“벌써 함대결전을 논의하시는 겁니까?”


너무 이르지 않나.

걱정스럽게 묻자 다행히 류시원 제독은 고개를 저었다.


“놈들이 제공권을 잡은 해역에서 동급의 전력으로 싸우기는 어렵지. 조금 더 전력을 보강하고 시도해보는 게 좋다는 중론이야.”


역시 그렇지.


고속 전함 몇 척 추가되었다고 해서 일본 놈들 점감 요격의 근간이 무너진 게 아니니까.


태평양의 항공 세력과 잠수함 경계망을 무너트리지 않는 한, 놈들은 유리한 위치에서 함대결전을 강요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하던 대로 놈들의 전력을 갉아먹는 작전으로 갈 거야.”


그걸 위해서 존재하는 13기동부대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라바울의 항공대가 눈엣가시네.”


호주 북부, 뉴브리튼섬 동부에 있는 기지.


개전 초에 소수의 주둔군을 물리치고 기습 상륙한 일본군은 여기에 막강한 요새와 비행장을 건설했다.


“놈들이 자랑하는 절대국방권인지 뭔지를 박살 내려면 우선 외곽부터 조여 들어갈 필요가 있지 않겠나?”


물론 단순히 그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함대가 주변에 알짱거리기만 해도 우리 잠수함들이 활동하기 편해질 거라는 보고서도 있네.”

“잠수함 사령부의 요청입니까?”

“황 제독님이 특히나 부탁하더군.”


대한제국의 잠수함 부대.


일본과의 전쟁 시 해상 봉쇄가 예정된 대한제국은 당연히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잠수함 전력을 중시했다.


문제는 일본 해군도 우리 잠수함 세력을 경계하며 자연스레 대잠전에 투자했다는 거다.


군축조약 시절 대한제국 해군의 증강과 태평양 거점 요새화를 빌미로 놈들은 건함 톤수의 증가를 요청해왔다.


그 결과로 받아낸 보조함 배수량을 전부 해방함, 소형 호위함 건조에 투자했고 놈들의 호위함 전력은 원역사보다도 튼실하다.


하지만 호위함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제공권.


필요할 때만 잠깐 잠수했다가 나오는 이 시대의 잠수함은 특히나 항공기 정찰에 취약하다. 일본 해군이 제공권을 장악한 해역에서 잠수함의 작전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 13기동부대가 절대국방선 근처에서 깔짝거리며 일본 해군의 신경을 긁어준다면?


“놈들은 그만큼 항공기와 함대를 우리 함대에 집중할 것이고, 반대로 우리 잠수함대의 여유가 늘어나겠지. 남방 지대의 자원 수송함을 격파하는 전략 임무도 더욱 수월해질 걸세.”


그렇게 다음 목표는 정해졌다.


함대 증강으로 전력도 충실한 마당.

하지만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


“대영제국 왕립 해군 Z부대 지휘관, 톰 필립스네.”

“대한제국 해군 13기동부대 사령관, 정운룡입니다.”


진주만 기지의 한 회의실.


연합군 해군의 주요 현장 지휘관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Z부대의 사령관을 만났다.


영국 동양함대 사령관.

톰 필립스 중장.


해군에 37년간 복무하며 1차 세계대전부터 영국 해군의 주요 요직을 거쳐 온 베테랑 제독이다.


“제독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 기대하고 있네.”


악수하며 미소 짓는 필립스 제독.


기수로 따지면 한참 위의 선배가 이렇게 말하니 기분이 참 묘하다.


“차후의 작전은 라바울을 폭격하는 것이오.”


미 제16기동부대 사령관 홀시 제독이 회의의 시작을 알리며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곧장 괌으로 내달리고 싶지만, 우리 항모의 숫자가 적은지라··· 포트모르즈비의 항공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라바울에 우선 전력을 집중하기로 했소.”


자리에 모여 앉은 제독들을 바라보는 홀시 제독.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안 좋아 보이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겠다.


뭐, 요크타운 항공대 일 때문인가?


“헬프리히 제독의 네덜란드 함대는 13기동부대와 함께한다고 들었소이다.”

“그렇소. 도어만 제독의 함대가 이순신 함대와 합류할 것이오.”


고개를 끄덕인 홀시는 이내 필립스 제독에게 눈을 돌렸다.


“Z부대는 어떻게 하시겠소?”

“우리 부대는 호주의 방위를 위해 남하하여 호주 해군과 합류하여 활동할 예정이오.”


뜻밖의 대답에 회의실에 앉은 제독들의 얼굴이 굳었다.


잠시 침묵이 지나간 끝에 홀시 제독이 그를 만류하듯 입을 열었다.


“제독, 연합함대의 전력은 만만히 볼 게 아니오. 우리 태평양 함대와 연합하여 전력을 집중하는 편이···.”

“제안은 고맙소이다. 허나 우리는 영 연방끼리 함대를 구성해야 지휘 체계가 더욱 원활하게 돌아가리라는 판단이 드오.”


홀시 제독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으나 무어라 말을 하지는 못했다.


둘 다 중장인 데다 한쪽은 그 명성 높은 왕립 해군의 제독이다.


아··· 설마 이거 때문인가.


“난감하군.”


옆에 앉은 류시원 제독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에게 눈짓했다.


그런 거였구나.


이윽고 홀시 제독과 필립스 제독,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격해지기 시작했다.


“제독, 태평양의 상황은 대서양과는 다르오. 연합함대의 전력은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라오.”

“충분히 알고 있소, 하지만 왕립해군은 같은 영 연방 함대와 행동해야 더욱 효과적이지 않겠소?”

“우리랑 연합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니까! 애당초 당신들이 호주 함대를 다 빼간다면 13기동부대의 호위 전력은 누가 담당한다는 말이오?!”


책상을 치며 일어서는 홀시 제독.


다혈질스러운 인상은 그냥 정치적인 퍼포먼스인 줄 알았는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난다고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거 같다.


이에 맞서 필립스도 얼굴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리 해군은 독일 해군과 이탈리아 해군이 남아있는 와중에도 귀중한 신형 전함을 차출해서 보내주었소! 그런 마당에 호주의 방위마저 포기하라는 말은 너무한 게 아니오?!”

“그런 게 아니라, 왜 다른 함대의 지원 세력을 마음대로 차출하냐 이 말이오! 막말로 그럼 13기동부대는 어쩌라는 말이오?”


난감한 상황이다.


왕립 해군과 호주 해군은 엄연히 같은 영 연방이라 함께 작전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13기동부대의 호위 전력이 크게 줄어든다.


물론 이건 영국 해군의 알 바는 아니기는 하다.


“13기동부대의 일은 그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않겠소? 당장 네덜란드 함대도 우리 왕립해군과 함께 활동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습니까?”

“뭐요?!”

“필립스 제독, 우리 네덜란드 해군은 이순신 함대와 행동을···.”

“네덜란드 망명 정부도 우리 대영제국과 함께하고 있소. 제독께서도 우리 왕립 해군과 함께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하오.”

“그냥 당신네들이 다 가져가겠다는 소리 아니오?! 아예 지휘부까지 통째로 뜯어갈 셈인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에게 다가가는 두 사람.


이러다 주먹까지 오고 갈 기세인지라 양측의 참모진이 급히 달려와 두 사람을 말린다.


분위기가 망가졌기 때문에 그날의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운룡아··· 이를 어쩌면 좋겠나.”


자리에 주저앉은 류시원 제독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한다.


“점마들··· 저거 안 멈출 거 같은데.”


나는 조용히 그의 앞에서 라이터만 들고 서 있을 뿐이다.


난감하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일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영국이 틀린 짓을 하는 건 아니니까.


저놈들이 진심으로 태평양 지휘권을 자기네들이 가져가겠다고 믿는 건 아니다.


이른바 쇼.

일종의 WWE다.


“다··· 알고 하는 짓거리들이다. 그러니까 중장급을 여기 보냈겠지.”

“필립스 제독은 류 제독님처럼 후방에서 지휘하는 역할이 아니었습니까?”

“지가 직접 기함에서 함대 지휘하겠단다. 지들 연방끼리 따로 놀겠다는 거 아니냐.”


서로 속내를 아니까 할 수 있는 짓거리다.


“작전권 분할을 바라는 겁니까?”

“작전 구역을 나누려 들겠지. 남쪽과 북쪽으로.”


영국의 목표는 대한제국이 했던 것처럼, 작전의 자주권을 가져가는 것.


천하의 대영제국이, 심지어 아직 제대로 패배를 당해보지도 않은 이들이, 극동에서 미 해군 밑에 종속되어 활동한다면 그만큼 굴욕적인 일도 없다.


전후의 식민지 정리에서도 위신에 적잖은 타격이 가리라.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교통정리는 필요하다.


“호주를 기반으로 한 남태평양을 자신들의 담당으로 두고, 이 전쟁을 자신들과 미국, 쌍두 체제로 끌고 가려는 거야. 망할 새끼들. 그게 가장 해볼 만한 수라고 여긴 거겠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류시원 제독.


최종적인 목표는 그의 말대로다.

홀시 제독도 당연히 그걸 알고 극대노한 거겠지만.


어쩐지 회의 시작 전부터 표정이 구겨져 있더니.


서로서로 속셈을 알고 있으니 어쨌든 결론이 나기는 하리라.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함대는 전멸입니다.”

“······.”


저 결말은 파멸이다.


그래, 마침 부대명이 Z부대니까 원역사로 비유하자면 말레이 해전이겠지.


전멸을 면치 못하리라는 뜻이다.


“Z부대의 전력으로는 호주 해군과 네덜란드 해군이 합류해도 결코 연합함대에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원하지 않겠나.”


다시금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자, 제독은 눈을 감은 채 연기를 들이마시곤 말한다.


“단함으로 연합함대를 상대할 수 있는 전함··· 13기동부대 전부, 아니면 자네의 이순신함이라도 요구하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도저히 단독 작전 할 깜냥이 안 생기겠지.


“영국의 요구대로 해주면 미 해군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방금 홀시 제독 눈 돌아간 거 안 봤나? 그 양반 진짜로 다혈질일 줄은 나도 상상도 못 했네.”

“제독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겁니까?”

“나라면 재떨이로 대가리 깼지.”


역시 홀시 제독은 지성인이 맞다.


하여간 정말로 난감하다.


네덜란드, 호주는 영국이 어떻게든 데려갈 테니 남은 건 우리뿐.


다른 건 다 제쳐두고서.


13기동부대,

아니 이순신함의 행보에 모든 이목이 집중된다.


세계 양대 열강이 대한제국 최강 전함의 귀추에 전전긍긍 망연자실 발칵 뒤집힌 엄청난 상황?!


라노벨 제목도 이렇게 지으면 욕먹겠네.


물론 우린 이도 저도 못 하고 중간에 끼인 상황이다.


“제독님의 생각은···.”

“우리는 미합중국과 척질 수 없네. 알고 있지 않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정배는 일단 미 해군 밑에 계속 남아있는 거지. 어차피 영국은 제아무리 콧대가 높든 간에 물주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으니.


하지만 그러면 회의 파투 나기 딱 좋다.


당연히 백악관 휠체어 아저씨가 전화 걸고 뭐라 뭐라 하겠지.


하지만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앉은 처칠 양반이 ‘아이고 현장에서 말을 잘 안 듣는데 우리가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어서···.’ 라고 시간 끌 수도 있다.


‘아니, 무조건 끌겠지. 애초에 그 급에서부터 내려온 명령일 테니까.’


그러면 영국 해군이 맘대로 행동해도 당장 미 해군이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다.


이렇게 시간 끌린 사이에 필립스가 영 연방 함대로 일본에 무력시위라도 하다가 잘못 걸려서 싹 다 꼬르륵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는 소리지.


연합군은 귀중한 고속 전함과 호위함대를 잃어버리고 일본 해군의 기세는 더욱 하늘을 찌를 것이다. 당장 전함 하나하나가 중요한 마당에 이런 대패라니.


류시원 제독도 알고 있다.

파멸이 눈에 보인다는 걸.


내가 볼 때 방법은 하나뿐이다.


“제독님.”

“응?”


고심하던 제독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미친 짓인가.

내가 봐도 그렇다.


하지만 방법은 이거뿐이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다음 날,


회의실에 앉은 월리엄 홀시 제독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필립스 제독을 바라보았다.


태평양 함대 사령관 킴멜 제독에게 자중하라고 언질받은 참이라 입을 꾹 다물었지만.


그럼에도 속은 열불이 나 눈이 뒤집히기 직전이다.


‘욕심 그득그득한 라이미 새끼들. 지금 누구 앞에서 대놓고 꽁으로 먹겠다고 협박질이야?’


처음부터 소장이 아니라 중장급 인사를 파견한 거부터가 눈에 보인다.


딱 봐도 우리 애들 밑에서 작전하지 않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잖은가. 그렇다고 미 해군 측에서 영국 해군 지휘권 밑에 들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플레처나 스프루언스를 저 라이미 밑에서 작전하라고 보내준다고? 차라리 태풍 속에 함대를 꼬라박고 말지!’


지휘권 문제가 생길 걸 방지하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소장급 지휘관을 보냈으리라. 요크타운 전투단을 이끄는 플레처 제독이나 네덜란드 함대의 도어만 제독처럼.


눈을 마주친 필립스 제독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 이 식민지 떨거지들아. 귀한 신형 전함까지 보내줬는데 이 정도도 못 해줘? 우리가 극동 식민지 단도리질하는 게 그렇게 아니꼽냐?’


‘옐로우 몽키한테 식민지 털린 것도 쪽팔린데 너네 밑에 맨입으로 들어가라고? 식민지 출신한테 매달린 모양으로 극동 탈환하면 너무 없어 보이잖아. 우리가 유럽 탱킹 다 하고 있는데 이 정도 배려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네덜란드? 니들 우리 집에 월세도 안 내고 세 들어 살잖아. 집 잃어버린 거렁뱅이들 거두어줬더니 함대는 마음대로 굴리겠다고? 양심 없냐?’


‘호주는 말할 것도 없고. 총리가 바라는 건 이순신. 그 한 척뿐이다. 나머지는 다 넘겨도 괜찮다고 했어.’


말만 꺼내지 않을 뿐.

이미 두 제독의 시선에서는 무수한 합이 오고 갔다.


자리에 앉은 다른 이들은 긴장한 채 눈치만 살필 뿐이다.

혹여 저번처럼 몸싸움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고.


“지난 일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태평양 함대에 네덜란드 함대를 지원하겠소. 그리고 호주 함대의 절반도 지원하겠소. 대신 이순신함은 우리 Z부대와 함께 작전하는 편이 옳다고 보오.”

“제독, 그게 지금 진심으로 말이 될 거라고 보고 말씀하시는 거요?”

“지금 여기 연합군 해군에 고속 전함을 제대로 다룰 지휘관이 얼마나 있겠소? 이순신함이 아무리 뛰어나도 단함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마땅히 우리 왕립해군의 신형 전함과 함께 활동하는 편이 맞소.”

“태평양 함대에는 보조함이나 던져주고 주력함은 자기네들이 다 가져가겠다고?”

“미 해군에는 노스캐롤라이나를 빼도 전함이 8척이나 있지 않소?!”

“하! 저속 전함들? 그럼 당신들이 그거 다 가져가고, 대신 우리한테 그 잘난 후드나 보내주든가!”

“어찌 그런 무례한 소리를!”


다시 시작된 WWE.


모두가 이 논쟁의 끝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에 제독들이 인상을 구기고 참모진이 한숨을 내쉬던 도중.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불현듯 들려온 어느 목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대한제국 태평양 기동군 사령관 류시원 제독.


“13기동부대 사령관, 정운룡입니다.”


···의 옆에 앉은 상급 대령, 아니 소장.

제13기동부대 지휘관 정운룡.


그러나 표정을 구기던 홀시와 필립스가 동시에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이목을 집중한다.


분쟁의 한가운데 위치한 이순신함 함장의 발언.

아무리 계급이 낮아도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다.


모두가 피 말리는 긴장감 속에서 다음 말을 기다리던 순간.


“제독님들이 하시는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심호흡을 하고서 그는 말을 이었다.


긴장한 것치곤 무척이나 간단한 소리였다.


“저희는 13기동부대에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는 함대에 합류하겠습니다.”


다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그 직후.

회의실이 뒤집혔다.


작가의말

노땅아님, 소중한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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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거인의 기상 +27 24.09.06 10,817 446 15쪽
42 진주만 (2) +43 24.09.05 10,971 448 20쪽
41 진주만 (1) +29 24.09.04 10,915 483 14쪽
40 태평양 함대 (2) +40 24.09.03 11,169 475 14쪽
39 태평양 함대 (1) +48 24.09.02 11,257 468 13쪽
38 솔로몬 해전 (2) +38 24.09.01 11,437 401 16쪽
37 솔로몬 해전 (1) +46 24.08.31 11,559 441 15쪽
36 남방 전선의 종막 (2) +34 24.08.30 11,703 421 15쪽
35 남방 전선의 종막 (1) +35 24.08.29 11,857 454 14쪽
34 타이만의 새벽 +48 24.08.28 11,960 464 13쪽
33 초중전함 vs 초중전함 +88 24.08.27 12,464 561 27쪽
32 강철의 포효 +28 24.08.26 11,199 413 19쪽
31 남방 공세 +26 24.08.25 11,059 400 11쪽
30 사냥 준비 +23 24.08.24 11,485 385 16쪽
29 대본영 발표 +16 24.08.23 11,885 397 14쪽
28 남방 수호자, 탄생 +28 24.08.22 12,075 414 13쪽
27 말레이 해전 (3) +22 24.08.21 11,956 44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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