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월드시리즈 7차전 9회 말
뉴욕의 밤하늘, 그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조명 아래 50,000여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숨을 죽인다.
점수는 4:3. LA와 뉴욕의 월드시리즈 7차전, 9회 말 원 아웃, 3볼 1스트라이크 상황. 타자의 카운트다.
'지켜볼까?'
하나만 더 골라내면 역전 주자다. 다음 타자는 오늘 팀의 3점을 모두 책임진 리그 최고의 타자, 이치로 쇼헤이. 그의 앞에 밥상을 차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민재 선수, 과연 어떤 폼을 선택할까요??"
캐스터의 도파민이 극에 달한 목소리.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9회까지 잘 버티고 있습니다. 이치로 쇼헤이와의 맞대결만 빼면요."
해설이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오늘 경기 중반까지는 제구의 마술사, 매덕스의 간결하고 안정된 폼으로 재미를 많이 봤거든요? 뒤에서 승부가 편하려면 차라리 여기서 존 안쪽으로 확실하게 들어갈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해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왼 다리가 시동을 걸었다.
"오늘의 90구 입니다."
손을 떠난 공이 공간을 이격해 들어가듯 날카롭게 존의 하단을 노렸다.
85마일의 투심 패스트볼이 보더라인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아, 이게 볼인가요?"
심판은 요지부동. 볼이 선언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2번 타자가 재빨리 1루를 향해 달려나갔다.
배트를 냈다면 분명 힘 없는 땅볼타구가 유격수의 품에 안겼을 것. 홈팬들의 야유를 들으며 덕아웃에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퍼펙트가 깨지는군요. 이치로 쇼헤이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타자에게 허용한 첫 번째 출루입니다."
오늘 민재의 피칭은 완벽했다. 딱 한 타자만 빼면.
"결국 네 번째 승부가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3타수 3홈런 3타점. 이것이 오늘의 상대전적이다. 천적을 넘어 저승사자라고 불러도 될 만한 기록.
"제가 이민재 선수를 정말 응원하지만 이번 만큼은 고의4구를 선택했으면 좋겠네요."
한국 중계진 답게 친절한 편파해설이다.
"여기서 승부하다가 큰 거 한 방이면 동점, 홈런이면 역전까지 내어주게 되거든요? 어제 연장 20회 까지 갔기 때문에 양팀 모두 더 이상 투수가 없습니다. 이민재 선수가 마무리 해줘야 해요."
1회에는 중력을 거스르듯 떠오르는 클레이튼 커쇼의 패스트볼.
4회에는 1루에서 날아오는 듯한 랜디 존슨의 패스트볼.
7회에는 폭발적인 아롤디스 채프먼의 패스트볼.
완벽하게 구현된 전설들의 투구폼에서 날아오는 패스트볼을 전부 여유롭게 통타해 담장을 넘겨버렸다.
"아, 이게 웬일입니까. 좌타자 이치로 쇼헤이를 상대로 우투수로 상대하려나 봅니다!"
"정규시즌 맞대결을 모두 살펴봐도 오른손으로 상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오늘 결과가 좋은 라이언 특급, 놀란 라이언의 폼으로 상대하려는 걸까요?"
"제가 보기에는 매덕스 일 것 같습니다. 직전의 공도 그렇지만 오늘 투심의 무브먼트가 기가 막혔거든요?"
"리베라의 컷 패스트볼 일수도 있습니다. 오늘 방망이를 네 개 나 부러뜨린 구종이니까요."
패스트볼 마스터와 천재 타자의 타이밍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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