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HA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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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쟝
작품등록일 :
2024.08.09 02:28
최근연재일 :
2024.08.09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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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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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스폰서

DUMMY

작년은 동모에게 최고의 해였다.


10년의 무명 생활 끝에 발표한 <하프>로 100만 부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고, 모든 작가들이 꿈꾸던 대한문학상까지 수상했다. 동모는 겨우 37살에 작가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미혼인데다 도무지 30대 후반으로는 보이지 않는 문학소년 같은 외모는 동모에게 문학계의 아이돌과도 같은 인기를 안겨줬다.


물론 동모의 급격한 성공에는 2년 전부터 알게 된 대학 선배이자 출판사 대표인 은하의 도움이 컸다. 군부정권 때 득세한 군 장성 집안의 외동딸인 은하는 부모 덕분에 어렵지 않게 문학 출판계의 거물이 되었다. 그런 은하의 눈에 든 것이 동모의 인생에서 전환점이자 큰 행운이 되었다.


은하는 2년 전 이메일로 날아온 동문 출신인 무명작가의 투고작 <하프>를 인상 깊게 읽고 어느 가을날 안국동 카페에서 첫 미팅 했던 날을 잊을 수 없었다. <하프>같이 센 작품을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은 남자의 입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김동모입니다.”


은하가 동모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간단했다.


‘왜 하필 내가 졸업하자마자 입학했니···’


4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동모는 35살로 전혀 보이지 않는 귀여운 외모와 여리여리한 몸매, 어른스러운 말투와 주변을 빨려 들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은하는 자신이 작가가 아니라 아이돌을 만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고, 이 남자는 문학계의 아이돌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젊었던 대학 시절에 만났으면 좋았을 남자를 39살이나 먹어서야 뒤늦게 대학 선후배 인연으로 만나게 만든 운명의 장난이 원망스러워졌다.


은하는 출판사 수십 곳에서 퇴짜를 맞은 탓에 잔뜩 기가 죽어있는 이 가련한 남자를 문학계의 별로 만들고 싶어졌다. 내가 이 사람을 별로 만든 다음, 내 손으로 만든 별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은하는 결심했다.


부산 출신인 동모가 서울에서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고 있자, 은하는 자신이 사는 평창동 저택에 남아도는 빈 방을 동모에게 내어주었다.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동네라 작품을 쓰기에는 최적의 동네였지만, 은하가 외부에 방해받지 않고 동모와 가까워지기에도 최고의 동네였다.


동모는 생활과 집필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은하가 준 신용카드로 주문하며 해결했고, 가끔 시내로 나갈 때는 은하의 포르쉐 키를 가져가면 됐다. 어차피 저택에는 은하와 동모만 살고 가끔씩 가정부와 청소부만 왔다 갔기 때문에 밤이 되면 같이 잠도 자는 사이가 되는 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은하는 바라던 대로 동모와 연인이 되었음에도 불만이 있었는데 항상 동모가 피임을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안 끼고 해도 돼.”라며 은근히 임신을 유도했지만 오히려 동모의 소중이는 금방 힘을 잃고 죽어버려서 좀처럼 임신할 일을 생기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이런 사람이 <하프>는 어떻게 쓴 거야? 난 자기가 날 <하프>의 ‘남훈’처럼 해줄 줄 알았어.”

“···<하프> 속의 관계는 제가 경험한 게 아니니까요.”

“그럼 누가 경험한 건데? 남훈 모델이 누구야?”


당황한 동모는 눈알을 굴리다가 담배를 깊게 빨고 내쉬었다.


“···그냥, 친구한테 들은 거예요.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칫··· 여자 맘 잘 아는지 알았는데, 아니네?”


동모는 헛웃음 지으며 은하를 빤히 바라봤다.


“여자들은 그렇게 짐승같이 당하고 싶어요?”

“잘생긴 남자라면 기분 나쁘지 않아. 좋아하는 남자면 더더욱. 서로 사랑하면 끝까지 가도 괜찮잖아.”


은하의 말은 동모가 겨우 봉합한 기억의 상처를 벌렸다. 대화를 할수록 겨우 아문 상처에 소금이 뿌려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자요. 피곤해요.”

“벌써? 오늘도 못 쌌잖아. 한 번만 더 하자.”

“내일 아침에 청담동 샵 가야 되잖아요.”


동모는 착즙 당하는 기분이었지만 거부하고 싶어도 은하의 말을 거역하기가 힘들었다.


“괜찮아. 자기는 누워있어. 내가 위에서 할게.”


결국 은하는 동모 위에 올라타서 자궁 깊숙이 사정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그럼에도 39살이라는 나이 탓인지 임신은 잘 되지 않았다. 젊어서부터 귀티가 흘렀던 은하는 관리를 해온 덕분에 30대 초반으로 보였지만 나이는 이미 39살이었다. 요즘따라 화장을 지우면 40대의 그늘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은하를 만나기 전에 지독하게 불안정한 삶을 살아왔던 동모는 은하 덕분에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았기 때문에 은하의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20대 여성들보다 더 활기 왕성했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실 앞에 은하는 자신도 모르게 초신성처럼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고 있었다.


은하는 출판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동모의 <하프>를 전폭적으로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은하는 동모를 대형 기획사 아이돌들이 가는 유명 성형외과, 피부과, 샵에 돌린 다음에 언론 앞에 서도록 프로모션을 했다. 변태 같은 소설이라도 잘생긴 변태가 쓴 소설은 반드시 팔릴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대박을 칠 줄은 은하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매일같이 은하의 출판사 대표전화에는 동모의 스타성을 뒤늦게 알아본 출판사들과 미디어, 대학교로부터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한창 혼기인 20대 여기자들과 출판사 여직원들은 동모와의 인터뷰에서 풀세팅을 하고 나왔고, 사인회와 강연에서는 수많은 여성 팬들이 동모 앞에 줄을 섰다.


은하는 동모의 스케쥴을 졸졸 따라다니며 감시해야 직성이 풀렸다. 갑작스러운 성공 앞에서 동모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은하는 공들여 키운 자신의 남자를 어린 여자들에게 빼앗기지는 않을까 항상 불안했다. <하프>가 성공하는 것은 좋았지만 동모가 여성팬들이 끊이지 않는 인기 연예인이 되어가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은하는 동모와 하루빨리 결혼해서 동모의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렇지만 자기 출판사의 연하 작가와 결혼하는 모양새는 세간에 보여지는 이미지가 중요한 은하에게 썩 만족스러운 그림이 아니었다. 동모에게 명함을 건넸던 여기자들이 기사를 쓰면서 스폰서 관계가 아니냐고 난리칠 게 분명했다. 게다가 베스트셀러와 문학상의 타이틀의 생명은 그리 길지 않다. 1~2년만 돼도 금방 잊혀지고 구식이 되어버린다.


은하는 하루빨리 <하프>의 성과를 가지고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했다. 이제 은하에게는 동모가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다.


때마침 은하의 네트워크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 연말에 노 교수가 정년퇴임하면서 공석이 생긴 모교 한국예술대학교의 국문학과 전임교원 채용공고가 뜰 거라는 소식이었다. 한국예술대학교 교수직을 노리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은하는 빠르게 움직였다. 다행히 은하의 지도 교수였던 김 교수가 학과장이 되어있었고, 김 교수와 식사 자리를 갖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고급 한정식집으로 불려온 김 교수는 50대임에도 10살은 어린 은하 앞에서 쩔쩔맸다.


“오랜만이야. 송 대표.”

“교수님. 방학 때 뭐 하세요?”

“방학 때? 쉬면서 작품 준비해야지.”

“8월에 아버지께서 하와이에 골프 휴가 가시는데. 교수님도 같이 가세요. 회장님들도 같이 모인대요.”

“나도 껴도 돼?”

“그럼요. 비행기랑 호텔은 제가 다 준비해 놓을게요.”

“항상 고마워. 송 대표.”


김 교수 입장에서 은하와 잘 지내서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은하의 부모님은 은하가 원하는 것을 도와주면 항상 큰 보답으로 돌려주는 사람들이었고, 은하도 부모님처럼 김 교수를 대했다. 은하가 자신을 부를 때는 항상 선물이라던가 좋은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 전임교원 응모한 후보자들 괜찮은 분들 있어요?”

“뭐, 고만고만하지. 특출난 사람은 없어. 송 대표가 응모해 보게?”

“아뇨. 동모 씨가 응모해 볼까 해요.”

“그래? 동모가 교수 자리에 관심 있었어?”

“저, 동모 씨랑 이번 가을에 결혼하려는데, 남편 직업이 작가보다는 교수가 더 보기 좋을 것 같아서요.”


김 교수는 은하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걱정 마. 최고로 보기 좋은 결혼식이 되도록 해볼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은하는 술병을 들어 김 교수의 빈 잔에 따랐다.


“저번 대한문학상 심사도 그렇고, 항상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뭘 이 정도로. 동모야 우리 학교 출신이니 자격 충분하고, 송 대표 사람이면 당연히 내 사람 해야지.”


7월이 되었다. 사실상 동모로 내정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형식적인 임용 면접이 진행되었다. 14명의 경쟁자들은 지방 쪽 대학교의 교수거나, 동모보다 작품 경력이 오래 된 작가들이었다. 다른 교수들은 동모의 경력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이유로 낮은 점수를 줬지만, “시대에 어울리는 젊고 새로운 피를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학과장 김 교수의 강력한 푸쉬에 다른 교수들도 동조하면서 결국 동모가 2학기부터 강의할 신임 교수로 임용되게 되었다.


“동모 씨, 축하해.”


동모의 임용이 결정된 어느 8월 초의 저녁, 은하는 꽃다발을 동모에게 안겨주며 특급호텔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저녁식사를 가졌다. 메뉴를 펼치니 기본 코스 요리가 30만 원부터 시작하는 곳이었다.

은하는 동모에게 최고의 스폰서였다. 은하를 만나서부터 만사가 풀리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작품만 잘 쓰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동모는 왜 자신이 10년간 무명 신세였는지 깨달았다. 아무리 잘 쓴 작품이라도 힘 있는 사람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빛을 볼 수 없는 것이 이 예술판이었다.


은하는 결국 자신의 힘으로 동모라는 남자를 100만 부 베스트셀러 작가, 대한 문학상, 한국예술대학 국문학과 교수 자리까지 만들어냈다. 이제 남은 목표는 동모와의 결혼과 출산이었다.


그때, 테라스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 꽃다발이 바닥에 나뒹굴었고, 직원이 꽃다발을 주워 가져다주었다.


“오늘부터 태풍이 오는 모양입니다. 조심하세요.”


동모는 모든 것을 이루었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허전함이 가시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이 채워지지 않은 기분이었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 닥칠 태풍의 바람처럼 동모에게 운명적인 사건은 다가오고 있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리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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