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의 초월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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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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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며칠이 지난 후, 작업은 재개되었다.

그러나 누리는 작업장을 향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처럼 건장한, 아주 튼튼해 보이는 노예들과 특이한 복장의 남자 앞에 섰다.

무장한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사내는 건장한 노예 중에서도 몇을 선발했다.

물론 누리도 뽑혔다.


“지금 부른 노예들은 모두 이리로 와라.”


관리관이 선정된 노예들에게 이야기했고, 그들은 모두 모였다.

누리 역시.

뽑히지 않은 자들은 그대로 떠나갔다.


‘무슨 일일까. 진짜로 따로 모아 다 죽이나? 지하 작업장은 도대체 뭔데.’


누리는 관리관이 시키는 대로 특이한 복장, 자신을 사제라 칭하는 자의 뒤를 따랐다.

건축물이 지어지는 곳이 아닌, 채석장 근처에서 그 사제는 모두를 세워놓고 다시 점검했다.


“샅샅이 뒤져라. 아무것도 들여선 안 된다.”


그 사제는 자기 휘하의 사람들에게 말했고, 그들은 모두 희한한, 빛나는 봉을 들고 몸 곳곳을 수색했다.

발가벗겨진 채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몸이 만져지는 건 좀 불쾌했지만, 누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모든 점검이 끝나자, 영주가 온 날 보았던 좋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사제와 노예들을 호위했다.

감독관, 상인, 작업 노예 같은, 바깥 작업장에 있던 이는 이곳에 아무도 있지 않았다.

누리는 눈이 가려진 채, 손에 줄이 묶여 끌려갔다.

눈을 가린 여러 노예가 함께 묶여 끌려가는 탓에, 서로 부딪치거나 넘어지기도 하는 일이 발생했지만, 분위기 탓인지 아무도 소리 내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어느 지하 공동의 안이었다.

처음 이 세계에 끌려왔던 날을 연상케 하는 여러 그림이 새겨진 이 동굴은 그때의 그곳과 달리 곳곳에 횃불이 달려있고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곳곳엔 사제복을 입은 자들이 많이 돌아다녔고, 그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리와 노예들은 거기서 곡괭이 같은 것을 받고선 사제가 시키는 곳을 캐낼 것을 명 받았다.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캄캄한 동굴 안에서 캐라고 하는 곳의 돌을 부수고, 일정 작업시간이 지나면 식사와 휴식 시간을 보내고.

바깥보다도 오히려 하루는 수월했다.

햇빛을 볼 수 없는 것만 빼면.


‘도대체 무얼 하는 걸까. 그때 동굴처럼 사이비 새끼들 모인 것 같은데. 설마 인신 공양하고 그러진 않겠지.’


누리는 작업이 어렵진 않았지만, 마음의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지구에서 고대에 있었던 종교 대부분이 인신 공양 풍습을 가지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이 세계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누리가 보기에 이 세계의 도덕관념이나 문화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았으니까.

그냥 조금만 지내봐도 무식한 새끼들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세계였으니.


‘설마 취직 좀 못했다고 지구에서 끌려와서 채찍 맞으며 개같이 일하다가 인신 공양 사망 엔딩은 아니겠지?’


사제들은 노예들의 침묵을 강요했고, 작업 중엔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

사실 해가 안 보여서 밤인진 모르지만.

어쨌든 잘 시간이 되면 사제들은 지하 감옥 같은 곳에 노예들을 넣었는데, 방이 2인실에서 6인실까지 다양했다.


누리가 배정받은 곳은 3인실이었고 조금 순한 인상의 덩치 큰 남자, 그리고 아주 흰 피부와 몸에 칼로 길게 그어진 듯한 상처를 가진 사내와 같은 방이었다.

순한 인상의 남자는 혀가 없었고, 누리는 주로 대답만 했다.

그래서 대화는 한 험악한 인상의 흰 피부 남자가 이어갔다.


“여기 뭔가 귀중한 게 있는 건 확실해. 이렇게까지 비밀스럽게 많은 돈을 들여 하는 걸 보면.”

“3번 갱도 쪽에 큰 구멍이 있는데, 바닥이 안 보일 정도라고 하더군. 거기로 예전에 탈출을 시도한 노예가 있었던 모양이야. 뒤졌겠지만.”

“지상에 있을 때 우리에게 주던 고기가 뒤진 노예들 시체란 말이 있던데.”


이 남자는 꽤 수다스러웠다.

낮에 떠들지 못한걸, 밤에 푸려는 지 혀를 잠시도 쉬지 않았다.

누리는 잠들기가 어려워 짜증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이 남자의 정보력엔 감탄했다.

어떻게 말 한마디 못 나누게 하는데 어디서 그런 정보를 구해오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해가 지는 걸 보지 못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꽤 오랜 기간을 이들과 보내며 자연스럽게 방 동료들과 가까워졌다.

어찌 보면 이 특수한 환경에선 당연했다.

시간이 갈수록 누리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고, 순박한 인상의 녀석은 혀가 없어서 대답은 못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과 발짓을 동원해 열심히 이야기에 참여했다.


“그래서 끌려오게 된 거야. 그 조그만 마을이라 해도 촌장의 힘은 대단하긴 하더라고.”

“좀 억울하겠는걸. 마누라 겁탈하려던 놈 죽인 거면 정당방위 아냐?”

“정당방위가 뭔지 모르겠지만, 난 당당했어. 하지만 촌장은 내 잘못이라더군.”


수다스러운 남자의 이름은 밀이었다.

본래 농부였던 모양이지만, 억울하게 끌려온 것 같았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어떤 놈이 마누라를 때리며 옷을 벗기길래 그대로 낫으로 찍었는데, 촌장이 유죄를 선고하면서 노예로 팔아버렸다고.

조금 안타까운 놈이었다.


“넌 어쩌다 끌려왔어?”


혀가 없는 순한 남자는 열심히 손짓, 발짓으로 설명했지만 알아듣긴 힘들었다.

그는 글도 쓸 줄 몰랐기에, 대화할 방법이 많지 않았다.


‘수화 알았어도...어차피 이 무식한 세계에 그런 건 없겠지.’


정확하게 이해한 건 아니지만, 몸짓으로 볼 때 높은 나리 행차에 조카인지, 아들인지 꼬맹이 하나를 구하려다 혀가 잘린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애새끼가 말에 깔리기 전에 구해냈는데, 귀족 행차를 막고 멈추라고 소리친 죄로 혀를 자르고 노예로 만든 거군.”


밀의 말에 순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끌려온 이유야 어떻게든 알아들었지만, 이름은 알기가 어려웠다.

힌트조차 없었으니.


“그냥 잭이라 부를게. 벙어리라고 부를 순 없잖아.”


누리는 그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었다.

본명하곤 거리가 먼 듯했지만, 꽤 맘에 든 표정이었다.


“그래서 밀, 14번 작업장은 무슨 말이야?”


누리의 물음에 밀은 알아 온 정보를 풀어놓았다.


“그곳에서 이상한 빛이 새어 나왔다던데. 바깥이랑 연결된 건진 모르겠는데, 그 작업장에 일하던 놈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데.”

“그리고 그 발견 이후, 여기 개새끼들이 다 모여서 뭘 의논하더래.”


밀에 의하면 특정한 구역에서 작업 중에 사제들이 무얼 발견하고 놀라워했고, 그날 그곳에 투입된 노예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 발견 이후, 많은 사제가 즉시 소집되었고.


“우리 상황도 변할까?”

“그럴 것 같아. 작업 대기령이 떨어졌데. 나눠서 여기저기 파던 걸 전부 중지시켰데. 우리도 거기 끌려가면 죽을지 몰라.”


밀의 말처럼 현재 작업은 중지되었다.

일을 할 시간이 되었어도 사제들은 6인실의 한 팀만 끌고 나갔을 뿐.

다른 노예들은 그대로 감옥에 두었다.


다만 소동이 발생했다.

원래는 지하 감옥에 있던 시간에도 사제들이 수시로 감시하는 탓에 크게 떠들 수 없었다.

그런데 이날은 감시자들이 몽땅 없어진 탓에 각 방 간의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시발, 뭐 어떻게 되는 거야. 저 새끼들 우릴 어쩔 작정이지.”

“야! 3번 갱도에 탈출로가 있는 거 알고 있나? 거기로 누가 탈출했다고 하던데.”

“병신. 뒤지려면 뛰어보던지.”

“너 뭐하던 새끼냐.”

“이럴 게 아니라 다 같이 부수고 나가야 해!”

“집에 가고 싶어.”


각자 듣는 사람은 없이 자기 말만 외치는 일방적인 소통의 향연이었다.

밀은 대화에 열심히 참여했고 누리는 계속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니까 14번 작업장에서 무언가 발견하자마자 이렇게 되었단 말이지.’

‘여기 영주까지 내려왔고.’


많은 사람의 소음에서 누리는 필요한 내용만 추렸다.

일단 14번 작업장에서 돌을 깨던 중 빛으로 추정되는 게 새어 나왔다는 것.

그리고 해당 작업팀은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영주와 함께 사제들은 즉시 다 몰려갔고 전체 작업은 중지.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중무장한 기사를 포함한 병사들이 대거 안으로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지금 뽑혀간 6인은 추가 작업을 위해 끌려간 것.


‘알아도 뭘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3번 작업장 큰 구멍은 돌을 던져보면 부딪치는 소리가 아예 안 들릴 정도로 깊다고 하고.’

‘정문 출입로로 예상되는 곳은 병사들이 잔뜩 있고.’

‘거기다 눈 가리고 돌아올 때 빙빙 돈 느낌으로 보아서, 정문 출입로도 아마 길이 복잡할 확률이 높아.’


누리는 인신 공양의 가능성이 높은 곳인 만큼, 탈출도 미리 생각해 보기로 했다.

밀은 든든한 조력자였다.


“우린 제일 끝방이니까 차례가 마지막일 거야.”

“만약 6인실 팀이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않으면 탈출하자고.”


밀과 누리는 착착 계획을 세워나갔다.

비록 장비는 모두 반납했지만, 튼튼한 두 손으로 철창 근처를 손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사제가 있는 평소라면 꿈도 못 꾸겠지만, 끝방인 데다, 지금은 감시도 없어 잘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여기 바닥이 흙이랑 돌이랑 섞여 있어서 잘하면 사람 나갈만한 구멍이 될지도 몰라. 파보자.”


철창 근처를 시작으로 세 사람은 큰 돌이 적고 흙으로 되어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느낌에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누리, 만약에 탈출한다고 하면 정문으로 갈 거야? 거기 병사들이 있지 않을까?”

“다른 방도 우리처럼 이럴 거야. 만약 소동이 일어나면 틈을 보고 정문으로 가고, 그게 아니라면 상황 보고 3번 작업장 큰 구멍으로 가자.”


누리는 산에서 내려온 경험을 떠올렸다.

클라이밍 솜씨를 잘 발휘하면,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기 공동도 처음 서 있던 곳보다 훨씬 낮은 곳이 물과 함께 바깥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해안과 가까운 지하인 만큼 바닷물이랑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도 높아. 그러면 숨만 잘 참으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굉장히 무모한 시도였지만 지금 당장으로선 인신 공양이란 미지의 공포가 그를 덮었기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해보아야 했다.

누리와 밀은 주변 감옥 동료들에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봐! 다들 잘 들어! 이 미치광이 놈들이 우릴 제물로 바칠지도 몰라. 뒤지기 싫으면 밖으로 나갈 방법을 찾으라고!”


둘은 가끔 번갈아 가며 외쳤고, 누리가 예상한 것처럼, 다른 방도 흙을 퍼내는 소리가 들렸다.

비록 맨손에, 아주 거친 흙.

거기에 대부분 큰 바위라 찾기 어려웠지만.


‘만약에 탈출한다고 하면 이후는 어떻게 하지. 이스마엘을 믿어도 될까.’


나갈 확률도 희박하지만, 이후에도 문제였다.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는 착한 사람이 이스마엘이지만, 찾아가기도 어렵고 다시 누리를 영주에게 넘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상인이 돈을 우선하지, 누리의 미래에 얼마나 기대를 걸고 도와줄지.


‘일단 파놓고 생각하자. 여기서 뒤지면 아무 의미 없어.’


생존이란 중대사 앞에 멈춘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제는 한참이나 오지 않았고.

해가 가려진 곳이라 확실치는 않지만, 이틀쯤 되지 않을까 추측했다.

횃불은 마법이 가미된 것인지 변화가 전혀 없었기에 판단을 내리는 유일한 근거는 배고픔과 갈증의 상태였다.

그들은 소변을 마셔가며 마침내 자그마한 구멍을 파냈다.

손은 처참하게 변했고 방 안은 흙먼지로 가득했지만.


“밀! 여기! 여기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방 바로 나가는 건 아닌데, 여기 뭔가 길이 연결되어 있어!”


누리는 정확히 철창 반대편 벽 위, 자기 머리 위를 파내는 것에 성공하고 말했다.

이들은 번갈아 사람을 올려 흙을 퍼냈다.

길이 나올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어두운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천장이고 틈도 좁았지만.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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