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의 초월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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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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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DUMMY

자그마한 틈새를 파내는 데 성공한 밀과 누리, 그리고 잭은 번갈아 가며 작업했다.

하나는 밑에서 발을 받쳐주고 다른 한 사람은 파내기, 그리고 한 명은 휴식.

그렇게 열심히 파낸 보답을 받은 걸까, 어느 순간 흙가루를 감옥 안으로 꺼내는 게 아닌,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흐르는 알갱이를 느낄 수 있었다.


“밀! 틈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 정확히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파내면 나가는 길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손은 피투성이고, 허기진 배와 목마름이 가득한 상태였지만, 셋은 모두 기뻐했다.

살 길이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몇 차례 더 근무 교대를 한 뒤에야, 틈 사이로 들어갈 공간이 충분히 되었다고 판단했다.

틈은 앞으로 쭉 뻗어져 있는 듯했고, 한 사람이 지나가기엔 충분해 보였다.


“너무 어두워서,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아마 연결된 길이 있을 거야. 혹여나 갇혀 죽을 수도 있지만 지금보다 나쁘기야 하겠어?”


죽을 날만 기다리느니 뭐라도 해보자는 결정을 내린 셋은 틈 사이로 들어가기로 결론 내렸다.

순서 역시 빠르게 결정되었다.


“제일 작은 내가 먼저 더듬으며 나아가볼게. 만약 꽉 막혀 있으면 너희가 내 발을 다시 당겨달라고.”


밀이 말했고, 둘은 동의했다.

밀, 잭, 누리 순서로 들어가는 걸로 결정되었다.

아무래도 힘이 가장 강한 누리가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을 당겨 꺼내기 제일 좋다는 판단이었다.


“후. 좋아. 살아서 나가자고!”


짧은 인사를 나눈 후, 밀은 곧장 기어갔다.

뒤이어 잭이 올라갔고.

일단 길은 계속 열려 있는 모양이었다.


“자, 그럼 내 차례네.”


누리가 말을 마치는 순간, 지하 감옥 출입구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강제로 끌어내는 병사와 납치당하는 노예의 비명이었다.


“아악! 간다고! 죽이지 마!”


소동은 더 커졌다.

병사들은 우르르 몰려와 감옥에 있는 이들을 모조리 꺼냈고, 불응하거나 도망치려는 자는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아니면 팔, 다리를 잘라 끌고 가거나.


“시발! 잭! 빨리!”


누리는 급한 마음에 잭을 좀 밀며 자기 몸을 구겨 넣었다.

마지막 방이라 그래도 조금 기회가 있었다.


“허. 이런. 여기 이런 구멍이 있는 줄은 몰랐는걸.”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파낸 틈 사이에 얼굴과 몸을 반 정도 넣은 누리에게 들려왔다.

누리는 급하게 발버둥을 치며 올라가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작은 틈을 빠르게 올라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누리를 끌어내릴 병사는 많았다.


“흐흐흐. 재미난 놈이네. 널 첫 번째 제물로 삼아주마.”


누런 콧수염이 양옆으로 벌어진, 느끼한 목소리의 사내가 말했다.

바닥으로 떨어진 누리는 심한 구타와 함께 끌려갔다.


‘너희라도 살아라. 하...제발. 인신 공양 아니어라. 제발.’


누리는 공포에 젖어 몸을 떨며 끌려갔다.

가면서 곁눈질로 본 여러 감옥의 방 안엔 주인 없는 팔다리가 여럿 있었다.

아마 아까 났던 비명의 주인들이었을 것이다.


중무장한 병사들은 발길질과 검집으로 노예들을 두들겨 패며 재촉했고, 덕택에 그들은 빠르게 나아갔다.

도착한 곳은 소문의 그 14번 작업장인 모양이었다.

길은 둘 정도만 다닐 정도로 좁은 데다, 부서진 모양이나 떨어진 파편들을 청소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에 뚫린 곳이 틀림없었다.


누리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여긴...처음에 내가 온 곳이랑 비슷한데...!’


천장에 난 구멍.

바닥을 비롯해 벽 곳곳에 그려진 기묘한 그림들.

처음 이 세계에 도착한 곳과 굉장히 비슷했다.

천장 구멍과 공동의 크기가 자기가 오게 된 곳보단 좀 작았지만.


‘해안 위에 짓던 건축물 접근 금지 구역이 이 천장이었구나!’

‘이 새끼들은 천장이 비좁으니, 위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밑에서 파고 들어갈 계획을 세운 거고.’


주변엔 알 수 없는 기괴한 장치들과 마법사로 추정되는 이들이 여럿 서 있었다.

그리고 노예들을 가운데로 밀어 넣기 시작했고.

처음은 누리였다.


“억.”


짧은 비명이었다.

누리의 등에서 배로 칼날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그건 몸을 가르며 뽑혔다.

그리고 발길질과 함께 가운데 살짝 파인, 오망성 모양이 그려진 구덩이 밑으로 떨어졌다.

엄청난 양의 피를 뿜으며.


“이...개...새...끼...들...”


누리는 죽어가며 말했다.

너무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이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자기 위로 피와 함께 떨어지는 다른 노예들을 보는 것뿐이었다.


툭 – 툭 -


수십, 수백구의 시체가 쌓였다.

누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울 뿐.

앞은 핏물과 시체들로 가득 차, 눈도 뜰 수 없었고 후각도 마비되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핏물이 코와 입으로 계속 들어왔으니까.

누리는 쌓이는 시체들을 밀어내며 올라가려 노력했지만, 잘되진 않았다.


그도 죽어가고 있었고 올라가는 속도보다 떨어지는 것들이 더 많았으니까.

정신도 못 차리고 허우적거릴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주문? 아니 노래?

뭐라 정의할 수 없었다.

저건 지구의 언어도 이곳의 언어도 아니었으니까.

거기에 목소리도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섬뜩했다.


호랑이가 울부짖으면 저주파가 섞여 있어 몸이 굳는다던데, 그런 것과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누리는 몸이 굳었고 잔뜩 흘린 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이상한 노래도.

누리는 구토와 함께 마구 시체를 휘저었다.

죽은 노예들은 압사시킬 것처럼 누리를 누르고 있었기에.


“커...억. 컥. 우 – 웨 – 에 - 엑.”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누리는 끝내 시체의 산을 뚫고 나왔다.

그리고 모든 일이 벌어졌던 곳,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 곳을 볼 수 있었다.


“뭐...뭔데 이거.”


이 세계니까, 그니까 사이비 신도 같은 놈들이 이상한 짓을 벌였던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인 광경이 조금 특이했다.


“이건...분명히 영주인데...”


사열할 때의 그 위풍당당했던 이곳의 지배자.

영주라고 들었던 놈이 세 갈래로 갈라진 채 벽에 박혀있었다.

하도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있어 분명히 기억했다.


“이놈도 그 사제...”


사제들 대장으로 보였던 놈은 일자로 잘린 채, 시체가 터져있었다.

바로 눈앞에.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중무장한 기사와 병사들을 비롯해 이 의식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놈들 모두가 죄다 처참하게 부서진 채로 죽어있었다.

갑옷째로 찌그러지거나 갈라져서.


“칼 같은 거에 베였다기보다 거대한 몽둥이 같은 걸로 후린 건가? 아니면...진짜로 찢어버린 거라고?”


시체들은 터진 것처럼 부서져 있었다.

반동강이 났건, 몇 갈래로 갈렸건 간에 말이다.

잘려진 게 예리하게 베였다기보다 힘으로 우그러뜨리면서 찢은 모양이었으니까.

이곳은 전부 시체였다.


누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두려움에 떨며.

좁았던 동굴이 넓게 파인 것으로 보아 어마어마한 놈이 틀림없었다.

의식을 잃은 지 얼마나 지났는진 몰라도, 이 단단한 동굴을 이렇게 박살 내려면 최소한 몇 달, 아니 연 단위로 걸릴 수도 있단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넓어진 동굴 밖으로 나가자, 시체가 널린 해안이 나왔다.

바깥에서도 학살극이 벌어졌던 모양이었다.


작업하던 노예, 석공으로 보이는 무리와 병사들.

그리고 협력 상인과 호위 용병들.

여기에 있던 요리사를 비롯한 여러 보조 직군으로 근무하던 사람들까지.

시체는 해안가에서 절벽 위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절벽 자체도 깎여있었고.

그 컸던 건축물은 아예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것 같았다.


본래 곧게 솟아있던 절벽이 아예 반으로 갈라져 있었으니까.

한때 전망 좋던 곳은 이제 뾰족한 돌산이 되었다.

누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누리는 공포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앞으로 나아갔다.

저런 정신적인 것보다 배고픔이 더 앞섰기에.

부서진 건축물들 사이에서 식수가 담겨있는 물통과 고무 고기 같은 걸 발견하자마자 바로 들이켰다.


몇 날 며칠을 굶었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지금 안 먹으면 죽을 것 같다는 것.


허겁지겁 위를 채우고서야, 누리는 상황을 정리했다.

안 그러면 공포에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일단, 여긴 이 세계다. 확실하진 않지만. 정신 나간 마법이나 미친 괴물 같은 존재가 있을 수도 있어.’

‘저놈들이 저기서 뭔가 했고, 괴물이 튀어나온 게 아닐까? 뭐, 소환 같은 거?’

‘근데 뭘 소환하면 이렇게 되지? 자기들끼리 싸웠다기엔, 시체가 너무...’


누리가 떠올릴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시체는 힘으로 박살 낸 걸로 보이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것도 갑옷째로.

다들 도망간 거리가 얼마 안 되는 걸로 보아 순식간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그걸 가능케 하는 건 뭘까.


누리는 한참이나 고민하다 생각을 관뒀다.

현대의 화학전부터 공포, 판타지, 신화 등 자신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도 알 수가 없을 것 같았으니.


“그냥 도망가자. 육지로 갔는지 해안으로 갔는진 모르겠지만. 여기서 멀어지는 게 우선인 것 같아.”


결론을 내린 누리는 당장 멀쩡해 보이는 걸 몇 개 수거해 옷을 갈아입었다.

시체 중엔 엎어지거나 깔려서 죽은 것으로 보이는 놈들도 몇 있었으니까.


적당히 쓸만해 보이는 칼과 벨트를 착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벨트는 수납공간이 다양해서 이것저것 담기 좋았다.

말린, 아니 고무 고기와 물통 그리고 금화와 은화로 보이는 것들을 챙겼다.


“욕심내지 말자. 도시가 어딘지도 모르는 데 무겁게 가면 안 돼.”


행군 경험이 있는 누리인 만큼, 무게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단 걸 알고 있었다.

중세 시대 마을과 도시들이 거리가 꽤 멀었던 것으로 아는 누리는, 이 세계도 비슷할 것이라 짐작했다.


“무거운 돈은 최소한으로, 식수랑 음식을 좀 많이 챙기자. 아예 금화만 챙겨야겠다.”

“붕대 같은 것도 넉넉히 챙기고.”


의약품으로 보이는 것들도 조금 챙기고 나서야 이곳에서 발걸음을 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아무래도 지식이 부족한 현 상태로는 가는 방향을 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거기에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까지 있으니.


그렇게 어렵게 몇 걸음을 떼고 얼마나 나아갔을까.

드문드문 보이는 시체 사이에서 알아듣기 힘든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나 좀...!”


누리는 귀를 의심하며 소리의 근원지로 접근했다.

공포에 질린 맘을 다잡으며 가까이 가자, 시꺼먼 사내 하나가 죽은 말에 깔려있었다.


“보고만 있지 말고 꺼내달라고! 이 새끼야!”


누리는 대뜸 욕을 내뱉는 놈에게 순간 기분이 나빴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보자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모두 죽었다는 뜻은 아니니까.

어쩌면 이스마엘 무리와 잭, 그리고 밀도 살아있을지 몰랐다.


누리는 큰 덩치의 말을 들어 던지고 까만 사내를 꺼내주었다.

그는 나오자마자 누리의 주머니를 뒤졌다.


“먹을 거! 먹을 거!”


누리의 주머니에서 고무 고기를 모조리 꺼낸 그는 흡입하듯 입으로 넣었고, 식수 역시 모조리 마셨다.

그렇게 다 먹고 나서야, 놈은 살았다는 듯 철퍼덕 엎어지며 배를 두드렸다.


“뒤지는 줄 알았네. 하. 시발. 이게 대체 뭔 일이야.”


누리는 저놈이 숨돌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가 어떻게 된 건지 묻기 시작했다.

뭐, 고맙단 인사를 기대한 건 아녔지만 이렇게 도움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 좀 기분 나빴지만.


“아아. 그래.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해?”

“세상에 공짜는 없지. 주는 것에 따라 정보의 질이 달라질걸세.”


이놈은 대화 대신, 흥정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 정보라는 상품을 걸고서.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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