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펑크 속 무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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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준홍
그림/삽화
홍거북
작품등록일 :
2024.09.02 10:11
최근연재일 :
2024.09.0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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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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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화

DUMMY

나는 천하제일인이라는 천마와 생사결을 펼쳤다.


‘내가 미쳤지.’


무림 짬밥을 너무 먹었더니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다.

자살도 이런 자살이 없건만.

그래도 무협 소설에서 무림인들이 목숨을 걸고 강자와 붙다가 객사하는 이유를 알겠다.


‘그냥 대뇌에 전두엽까지 주화입마에 휩싸인 거였군.’


대충 미쳤다는 뜻.

덕분에 나는 십만대산의 이름 모를 야산에서 대자로 뻗어 죽어가고 있었다.

반면에 나랑 생사결을 펼친 천마는 멀쩡했다.

내가 한 거라고는 천마가 쓰고 있던 기괴한 가면을 베어낸 것 뿐.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로 인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천마가 아주 예쁘고 젊은 여자였다는 것이다.

나는 골골대는 목소리로 천마를 향해 말했다.


“···천마가 여자였다니. 중원의 무림인들이 들으면 기절하겠군.”


천마가 그런 나를 차갑게 비웃는다.


“천마가 남자여야 한다는 건 선입견이죠.”


그래.

그건 맞는 말이다.


“졸라 센 무공에 진취적인 마인드까지··· 역시 천마. 괜히 웹소설계의 슈퍼스타가 아니군.”


곧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가?

전생에서나 쓰던 단어와 말투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온다.

역시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이 그리워진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다.


“웹소설? 슈퍼스타? 마인드?”


천마가 정색하며 내가 말한 단어들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녀의 얼굴을 보아하니 저 단어들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흐흐. 백날 생각해 봐라. 네가 알 수 있나.’


저 단어는 현대에서 무림으로 환생한 나만이 알 수 있는 특권.

이곳에서 나고 자란 천마 따위가 알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웹소설 주인공 마냥 전생에 현대인이었다면 모를까.


‘그래도 발음은 유창하네.’


역시 천마랄까.

발음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괜히 천마가 현대로 가면 별걸 다 하는 게 아니었다.

실로 폭력적인 재능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게 천마의 재능에 감탄하고 있을 때, 천마가 내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을 내뱉었다.


“혹시 사도련주, 당신 지구인이었습니까?”


아니, 씨발?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다.

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뭐···냐. 천···마, 너··· 혹시?”


천마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저도 지구인입니다.”


천마의 충격적인 커밍아웃.


‘천마가 지구인이라고?’


나는 순간 몸에 활력이 돌면서 정신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무림인에게 죽기 직전에 나타난다는 회광반조인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천마에게 또박또박 물었다.


“어느 나라?”

“···중국.”

“그때 나이는?”

“···15살.”

“그럼 지금 나이는?”

“···21살.”


나는 패배감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전생과 현생을 합쳐도 끽해야 36살인 애송이에게 지다니.

그것도 중국인이다.

이러면 전생을 제외하고도 무림에서만 50년을 보낸 근본 대한민국인인 내가 불쌍해질 지경.

나는 패배감에 몸부림치며 말을 이어갔다.


“···혹시 태어났을 때 전대 천마의 자식이었냐?”


천마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젠장!’


심지어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다.

섬서에 위치한 깡촌에서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나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출생력.


‘나는 좆같이 힘들게 구르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분하고 억울했다.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나답지 않게 저급한 인종차별적인 문장을 구사한 건.


“착짱죽짱.”


착한 중국인은 죽은 중국인 뿐이라는 세기의 명언.

그런데 천마는 그 세기의 명언을 알아들은 듯했다.

그녀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가공할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마련주. 빵즈였군요. 당신이 사파의 우두머리인 이유가 있었네요”


빵즈?

이런 인종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하다니.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역시 너도 착짱죽짱에 속하는 짱개였군.”

“감, 감히··· 죽고 싶습니까!”


그녀가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죽은 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힘겹게 손가락을 까딱까딱 하면서 내 단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안 보이냐?”


내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배꼽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정도면 무협 소설에서 흔히 쓰이는 사망 플래그 ‘이건 대라신선 혹은 화타가 와도 못 살린다.’가 나와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상태.

지금도 회광반조 빨로 겨우 버티고 있는 거다.

나는 천마에게 물었다.


“혹시 살릴 수 있나? 만약 네가 나를 살릴 수 있다면 내가 오늘부터 명예 중국인을 하겠다.”


진심이었다.

막상 죽을 때가 되니 왜 이렇게 살고 싶은 걸까.

내가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대한민국을 버릴 수 있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 커다란 구멍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악담을 내뱉을 뿐이었다.


“···잘 죽었군요.”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역시 천마도 이건 못 살리나 보다.

하긴 천마 할애비가 와도 지금의 나를 살릴 순 없을 거 같다.

그나저나 그녀의 눈빛 속에서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느껴진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거 같다.


“크크. 짜식. 아쉽냐?”


내가 실실 웃으면서 말하니 천마가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뭐라는 거죠.”


뭐긴 뭐야.

그냥 아쉬운 거지.


“아쉽잖아. 곧 내가 죽는다는 게. 그렇지?”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같은 처지였으니.

내가 아니면 누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헛소리!”


굳게 다문 입술이 그녀의 의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내 눈엔 보인다.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나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천마야, 이 오라버니는 다 이해한다. 내가 이래도 나름 환생자로서 네 선배야.”


내가 어찌 모를까.

갑자기 낯선 세상에 떨어져 살아가는 그 외로움과 공허함을.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감정이었다.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완전히 자신과 똑같은 처지인 사람을 만났다?

심지어 그 사람이 곧 죽는다?


‘아쉬운 게 당연하지.’


나는 다 이해한다는 듯이 자애롭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천마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어조는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당신도 나랑 똑같았습니까?”

“뭐, 그랬겠지.”

“···그렇군요.”


생각보다 싱거운 녀석이다.

겨우 묻는 게 저런 거라니.


“더 할 말 없냐? 나 곧 죽는다.”

“···!”


곧 죽는다는 말에 천마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뭐냐? 네가 죽여놓고 그 표정은.”

“···그건 당신이 생사결을 펼치자고 서신을 하나 보내놓고 다짜고짜 저를 찾아와 칼을 휘둘러서 그런 거 아닙니까! 도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대뇌에 전두엽까지 주화입마가 올라와서···?”

“···하. 이상한 사람.”

“진짜다. 그런데 천마가 지구인이고 이렇게 절세의 미녀인 줄 알았으면 절대 이러지는 않았을 거다.”


내 기습 플러팅에 천마가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힌다.


“···무, 무슨!”


보아라.

나는 천마의 얼굴조차 빨갛게 물들일 수 있다.

내가 한때 풍류공자라는 별호로 불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뭣도 모르는 녀석들은 나를 풍류색마라고 비웃었지만.’


결국은 내가 승자다.

세상에 어떤 무림인이 천마의 얼굴을 붉힐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승리의 포효를 했다.


“크하하하하···컥!”


웃다가 죽을 뻔 했네.

그나저나 이제 회광반조가 끝났나 보다.

의식이 빠르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이미 저승사자가 내 앞에서 명부를 확인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도 죽기 전에 꼭 확인해야 할 게 있다.

나는 간신히 숨을 쥐어짜서 입을 열었다.


“···야. 천마.”


천마가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하세요.”

“너··· 전생에 여자였냐, 남자였냐.”


이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정말이다.


“아니! 갑자기 이 상황에 그걸 왜 물어요?”

“···젠장, 남자···였구나. 젠···장!”

“그건 또 무슨! 저 전생에도 여자였거든요?”

“진···짜?”

“진짜 미친 변태인가! 이런 상황에서 그딴 게 궁금해요?”


나는 그녀의 앙칼진 반응에 안심했다.


‘여자 맞았구나. 다행이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난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


‘뭐, 뭐냐.’


내게 무언가 기대하는 눈치.


‘아, 그건가?’


그런 거 있지 않나.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이 죽기 직전에 남기는 명언같은 것들.


‘그래. 죽기 전에 명언 하나 정도는 나쁘지 않지.’


이왕 할 거면 누가 봐도 멋있고 평생 기억에 남을만 한 명언을 남기고 싶었다.

나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열심히 그럴싸 한 말들을 생각해냈다.

그런데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조졌네.’


왜 명언이 명언이라고 불리는 지 알 거 같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문학적 재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내겐 더욱더.


‘젠장.’


결국 나는 ‘아’라는 짧은 한 마디와 함께 숨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내 두 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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