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영주로 환생하면 꿀빨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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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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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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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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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주님이 변했어요

DUMMY

타인의 삶이 어떤지, 그들이 지금의 인생을 얼마나 만족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질문을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묻는다면 우울하게도 '아니오'라고 정확하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렇게 허무하게 술취한 채로 발을 잘못 디뎌 한강 속에서 생을 마감하길 바랐던 적은 없지만 말이다.




눈이 떠 진다. 나 살아있는건가? 구조된건가? 주변을 보니 병원은 아닌 거 같고, 무슨 호텔같은 느낌인데 나 꿈꾸고 있나? 끄응 일단 물 한잔 마시고 싶은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네. 겨우 일어나니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건다.


"영주님, 깨셨어요? 어디 아프신데는 없어요? 일단 의사를 불러올게요."


영주님? 나를 지칭하는 거 같은데,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메이드복을 입은 소녀는 돌아서서 의사를 부르러 나갔다. 꿈꾸는 것 같기엔 너무 현실감이 강한데, 이게 뭔 상황이지?



의사가 진찰하러 들어왔다. 의사와 메이드, 다들 나를 걱정스러운 눈동자로 바라본다. 나는 그동안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 자각하고 일단 내가 영주라는 인물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혈압은 조금 낮은 편이시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다행입니다. 영주님 당분간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누구죠? 여긴 어디구요? 아무래도 기억을 잃은 것 같은데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일단 내가 살던 세상도 아니고, 영주라는 인물에 빙의된 것도 알겠다. 은근슬쩍 넘어가고 상황을 파악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게 더 오래걸릴 것 같았다.



기억상실은 무적의 합리화 치트키니까 써봤다. 그리고 통했다.


"구조할 당시 뒷머리에 타박상도 있으셨던 걸 봐서, 충격으로 일시적인 혼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역시 안정을 취하면서 휴식만을 하셔야 합니다."


"영주님, 저 실비아에요. 한달 전에 제 봉급날에 15실버 빌려가신 건 기억나시죠?"


몰라, 내가 빌린 것도 아니고, 그냥 빚이란 소리가 지겹다. 이럴 땐 환자가 최고다.


"헉, 머...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쉬어야 할 거 같아요. 기억이 돌아오면 말하죠."


일단 모두 내보내고 누워서 지금 상황을 판단해보자. 눈뜨기 전까지의 내 삶, 대한민국에서 살던 박지호 34세는 끝난 것 같다.


그리고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지만 말이 통하는 세계의 누군가, 그 것도 영주 신분의 몸에 빙의한 것. 오히려 좋아.


원청으로부터 지급은 밀리고, 결국 직원들 다 내보내고 혼자 장비를 돌려가며 부품 만들어서 납품해봤자 공장 월세와 장비대출금 내면 남는 것도 없던 악순환.


그 와중에 납품액 지급까지 밀리니, 사는 거 정말 재미없었다.


괜히 젊은 나이에 창업한다고 까불어서 인생 호되게 말아먹었지. 청년창업붐 처음 일으킨 놈 잡히면 죽인다.


그에 비해 지금 상황은 모르지만 어린 몸뚱아리, 한 중학생 정도되려나? 아직 다 크지도 않았지만 윤곽이 뚜렷한 미남형 얼굴에 금발머리, 녹색 눈동자.


게다가 규모는 몰라도 일단 호칭이 영주이지 않은가. 하녀로 보이는 소녀의 봉급을 빌리는 걸 봐선 큰 기대는 안되지만 일단 시작이 좋다. 제발 꿈이 아니길.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일단 잠에 들어야겠다. 이 몸이 실제로 휴식이 필요한건지, 내가 정신적으로 지친건지는 몰라도 너무 잠이 오네.



'똑똑'


노크 소리에 잠이 깬다. 몸이 자동적으로 창문의 커텐을 연다. 아침이구나. 몸은 생각보다 개운하다.


"영주님, 실비아에요. 일어나셨어요? 의사선생님 오전 진찰 오셨어요."


잠옷차림새지만 큰 문제 없을 듯 했다.


"들어오세요. 일어나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둘이 들어온다. 의사는 내 몸 몇 군데에 청진기를 대보거나, 동공을 확인하는 등 평범한 진찰을 했다.


기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따로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는 의사에게 몸은 개운한 상태이고, 기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비아라는 메이드 소녀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의심의 눈초리로 묻는다.


"영주님 혹시 빌려간 15실버 안갚으시려고 기억 잃은 척 하시는 건 아니죠?"


아니야 진짜 기억안나. 그러니 당연히 돈은 안 갚을거야.


나는 오히려 지금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곳은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 처해서 부상을 당했던건지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야 기억의 실마리라도 생기지 않겠냐고 되물으면서.


그렇게 알게 된 정보에서 희열을 느낀다. 여기 내가 알고 있는 세계다. 그래, 나는 게임 속 세계의 인물로 빙의한 것이다.


웹툰에서나 보던 일이 내게 벌어진 것. 이제는 추억의 명작 패키지 RPG 게임인 <파천의 영웅들>의 세계였다.


이 게임은 30명의 인물 중 하나를 선택해서 스타트를 할 수 있는데, 어떤 인물로 시작하든 최종장은 제국의 수도에서 타락한 악신을 물리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게임을 30명의 인물 모두 선택해서 엔딩을 본 매니아다. 학창시절부터 십오년 넘게 시간 날 때마다 플레이했고 지식도 많다.


어느 정도냐면 공략집 올린 블로그에 각종 다양한 외국어로 고맙다는 댓글이 수백개 달린 정도?


워낙 다양한 엔딩과 꼼꼼한 설정으로 버그도 얼마 없던 명작게임. 중딩이 아재가 될 때까지 수백 번 플레이 할 정도로 낭만 그 자체.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 몸의 원래 주인,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미안하고 고마워. 절대 안돌려줄거야. 나 잘 살아볼게.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이 세계의 지식이 풍부한 나도, 빙의한 인물을 모른다는 점.


착한 바보 블레이즈 오스벨린, 대륙 동남부 끄트머리의 오스벨린 자작령. 게임에서 스타팅 포인트도 아니고, 어떤 이벤트도 일어나지 않는 영토. 그 곳의 어린 영주였다.


게임에서는 오스벨린이 쓸모없는 영지이긴 하다. 북부에는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대수림으로 막혀있고, 남부는 바다가 막고 있고, 서쪽은 사이 나쁜 남작가가 막고 있다.


오랜 플레이시간답게 오스벨린을 여러번 가봤다. 그나마 대수림에서 나오는 재료들이 몇 가지 레어퀘스트의 재료라는 것 빼곤 정말 별 거 없었다.


세이브와 잡템 판매를 위해 영지도 들렀지만 인구도 적고 모든 면에서 침체된 성이었단 것만 기억난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퀘스트가 아니고 실생활이라면, 대수림은 마르지 않는 자원을 보장하는 보물창고이다.


다만 귀족인 자작 신분임에도 대외적인 별명이 착한바보라고 붙여진 것이 좀 불안하다. 그래도 마을사람1 보다는 낫지 않을까?


고인물을 위한 핸디캡이라고 생각하자. 어차피 당장 내일 폭동이 일어나서 교수형에 처할 분위기도 아닌 것 같고,


언젠가의 미래에 있을 악신과의 전투도 30명의 주인공들이 해결해줄 것이다.


이 정도면 신이든, 악마든 새로운 삶에 빙의시켜준 것을 감사해야 한다.


대충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에 대한 상황 파악은 끝났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를 점검해봐야겠지.


하녀인 실비아를 통해서 확인을 해본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 곳은 대륙 동남부 오스벨린 자작령. 소속 국가는 노빌리안 제국. 영지의 동쪽과 남쪽은 모두 해안을 끼고 있어서 해양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북쪽에 위치한 대수림에서 늘 몬스터의 위협을 받는다.


전대 자작부인은 블레이즈를 낳고 얼마 안되어 돌아가셨고, 자작께서는 대수림의 몬스터를 막다가 전사하셨다.


유일한 혈족으로 작위를 세습받았으나, 뛰어난 재능은 보이지 않는 어린 소년. 하지만 심성은 착해서 무슨 일이든 거절을 잘 못했다. 그런 어린 영주를 이용해먹고 가신들의 절반이 달아났다.


당연히 영지 경영은 남은 가신들이 도맡아서 하고 있지만, 전대 백작에 대한 의리로 남은 이들 몇 빼고는 중앙에서 파견한 가신들은 영지를 말아먹고 있는 어린 블레이즈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쩐지 영주가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는데도 찾는 사람이 의사랑 메이드 한명이더라. 이대로 가다간 남은 가신들조차 모두 잃겠지.


참고로 착한 블레이즈는 고작 2층 난간에서 어미를 놓친 길고양이를 구해주려다가 창문에서 떨어졌단다.


다행히 바로 밑 연못으로 떨어져서 외상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데, 워낙 쫄보몸뚱이라 그대로 의식이 날아간 것 같다.


나는 절대로 신경 안 쓸 것이다. 이제 내가 블레이즈로 살아갈 거니까. 착한바보 블레이즈라는 오명은 오늘부터 지워나가자.


실비아를 통해서 가신들을 모두 회의실로 소집했다. 평판 나쁜 블레이즈니까 이건 좀 긴장된다.


회의실에 모인 인원은 나와 실비아를 뺀 총 다섯 명이다.


행정관 벤자민, 치안경비대장 마크, 해양관 니무르, 재정관 오스윈, 토목관 안톤.


행정관 벤자민이 총관을 겸하고 있었고, 마크는 철수한 기사단을 대신해서 마을을 지키고 있는 무인이다. 그도 전대 자작의 수하이다.


이 두명을 제외한 니무르, 오스윈, 안톤은 제국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로 임기가 2년도 남지 않았다.


한 번도 가신 소집을 한 적 없는 블레이즈였기 때문에 파견된 인원은 귀찮음이 얼굴에서 보였고,


전대 자작 때부터 가신이었던 두 명은 아주 약간이지만 기대가 담긴 눈빛이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들으셨겠지만, 제가 기억을 잃었습니다. 바보 녀석이 또 무슨 꿍꿍이인가 의심이 들겠지만, 사실입니다. 착한 바보 블레이즈란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실비아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과거의 제가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를 계기로 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고, 여러분들은 천천히 저를 지켜보시고 긍정적인 변화가 보인다면 그 때 저를 믿고 따라주시면 됩니다.


저는 당분간 영지상황을 확실히 파악하고 개선해나갈 생각입니다. 번거롭게 여기실 수 있겠지만 요구자료들이 많이 생겨도 이해해주십시오."


바보 취급을 받아온 걸 봐서는 어떤 능력도 보여준 적 없을테고, 당연히 평판은 바닥이다. 처음부터 믿어달라고 할 수는 없지.


두고봐라, 내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이 영지를 띄우리라. 그리고 그 이룩한 풍요 속에서 떵떵거리며 살아야지. 누구라도 영주로 다시 살게되면 꿀빨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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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주님이 변했어요 NEW 8시간 전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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