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에 비친 검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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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異端)
작품등록일 :
2024.09.0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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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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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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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을 베었다.

DUMMY

-지금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무신(武神)이라 추앙받은 자의 짙은 후회의 회고(回顧)이다.



* * *



무왕(武王) 24년.


일찍이 태어나길 고강하며 고결한 무가(武家)에서 태어난 본인은, 번져 퍼지는(流) 사나움(悍)이라는 뜻에서 남궁류한(南宮流悍)이라는 이름을 받아 미처 말을 떼기도 전부터 검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의 호출 아래 호위의 품에 안겨 본 가문의 검은 그래, 가히 한없이 고귀하며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가문의 최고 고수들이 벌이는 대련의 연속.


그것은 무학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어린아이의 눈에도 더없이 고결해 보였고, 그렇기에 그날의 하루는 마치 운명과도 같이 자신의 심장에 새겨졌다.


이후,


드높은 창천(蒼天)을 담은 검.


그것에 반하고 만 자신은 이후 주어진 시간 대부분을 검을 잡는 데 보내기 시작했다.


후계수업이 끝이 난 뒤면 곧장 수련동으로 가, 손에 피가 나고 몸을 경련이 일 지경이 될 때까지 검을 휘둘렀으며.


때론 제 나이보다 5살 이상 많은 가문의 후기지수(後起之秀)들과 대련을 해 나가며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검과 후계수업을 받으며 시간을 보내며 12살이 되었을 즈음.


따스한 봄, 자신은 어느덧 일선에서 물러난 가문의 장로들과 검을 논(論)할 경지에 다다를 정도가 되어 있었다.


비록 몸의 성장이 완전하지 않아 가진바 경지는 미천했으나, 가히 가문 내 천고의 기재(器才)라 불리던 오성(悟性)은 검을 논하는 데 있어 그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후 3년이라는 시간, 수없이 많은 시간을 장로들과 가문의 검에 관해 이야기하고 깨달음을 얻길 반복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본인은 고작해야 열다섯의 나이에 깨달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막연히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던, 가장 고강하다 불리는 가문의 검조차 완벽하지 않으며 이대로는 하늘을 품을 수 없다는 것을.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그에 부정적인 감정이 일렁였다.


어찌하여 가문의 검은 이리도 불완전하며, 겨우 이런 수준의 검에 어찌 제왕(帝王)이라는 광오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을 가르치던 검수에게 묻고, 장로들, 더 나아가 가주인 아버지께 물었다.


‘어찌해야 가문의 검을 더욱 고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한결같았다.


남궁의 검은 그 어느 순간에도 틀리지 않았으며, 지금의 네가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은 작은 심마(心魔) 따위에 불과하니 어서 정신을 차리라고.


그날, 본인은 자신이 보는 것을 남들이 공감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이해자와 동반자가 없는 세상은 참으로 외롭고 고독했다.


그렇기에 더 드높으며 더욱 새롭고 고강한 무학을 탐닉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날이 지날수록 점차 그 크기를 키워가는 부정과 생겨난 끝없이 타오르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가문 내의 사장(死藏)되었던 수많은 서적을 읽고 무사들과 대련을 벌였다.


허나, 그럼에도 채워지는 것은 조족지혈(鳥足之血)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해 겨울.


가문의 무학만으로는 추구하고자 하는 경지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자신은 대종사(大宗師)의 길을 걷고자 결심하였다.


창천(蒼天).


가문이 추구하던 하늘을 자신의 손으로 완성하고 싶다는 그 일념 하나 때문에.


우습게도 자신은 이후 그토록 경멸하던 이들과 같이 수많은 타 가문의 무학을 강탈하고, 은밀한 방법과 가문의 강인한 힘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파들의 기예를 훔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 받을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멈출 수 없었다.


이대로 멈춘다면 검에 대한 발전은 느려질 것이 뻔했기에, 스스로를 속이고 변명을 일삼으며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더 나아가 마공(魔功)에까지 손을 댈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그 기간 모아온 무학들을 토대로 새로운 자신만의 무학을 창안해 내는 데 세월을 보낸 끝에 18살의 나이에 이르렀을 적.


화경(化境)의 경지를 넘은 때에 맞춰, 자신은 긴 시간 끝에 완성된 무공들을 실험하고자 검 한 자루를 제외한 모든 재물과 직위를 내려놓은 채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무사 행을 떠났다.


오로지 더 드높은 검에 다다르겠다는 일념 속, 세상을 주유하며 다니기 시작한 지 2년.


수없이 많은 대련과 생사결을 통해 자신은 고작 약관(弱冠:20세)의 나이에 어느 사이 조화경(造化境)의 경지를 넘어 현경(玄境)에 도달해, 무림의 단 7명뿐이 없다는 왕(王)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놀라울 정도의 성취는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가문에 있었다면 정체되었을 것이 분명하였기에 작금의 상황이, 어렵게 얻어낸 깨달음들이 달갑게 느껴졌다.


허나.


그럼에도 자신은 쉬이 웃을 수 없었다.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그 위치까지 올라가고 나니 이전보다 더욱 높은 경지에 대한, 검에 대한 갈증이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약관의 나이에 자신은 때마침 극에 달할 대로 치달은 정사대전(正邪大戰)에 뛰어들어 근 3년의 세월 동안 전장에서 살 듯이 하였다.


목숨을 건 전장에서만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다른 이와 검을 마주하며 조금씩 얻어가는 깨달음만이 자신의 존재의의와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사파(邪派)의 두 왕의 수급을 베어 넘겨 전쟁을 끝냄과 동시에 그간의 부족함을 일부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별호는 어느새 경의의 뜻이 담겨, 왕 위의 존재하는 하나뿐인 검사.


검제(劍帝)가 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였고, 누군가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다 약조하였다.


부와 명예라.


쯧.


‘그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애당초 고작해야 그런 것을 원하였던 것이었다면 가문을 나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자신은 많은 사건 끝에 이립(而立:30)의 나이가 채 되기 전, 신화경(神化境)의 경지에 올라 검신(劍神)이란 광오한 별호와 함께 세상을 등지고 잠적을 선택했다.


더는 자신과 검을 맞닿을만한 적수가 없었기에 홀로 더 드높은 검을 닦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맘때쯤, 사건이 벌어졌다.


하얀 얼굴을 한 외신(外神)의 등장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괴이(怪異)들의 아래에서 자행된 무차별적인 학살극.


세간(世間)을 시끄럽게 하는 소식들은 1년이 채 되지 않아 자신이 있는 깊은 산 속까지 닿게 되었고.


결국 그들의 습격에 저항하던 수많은 가문과 문파들이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에 입신(入神)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던 본인은 다시금 검을 든 채 하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하아-


신화경의 경지에 이르고 난 뒤로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는 호흡을 고르던 류한은 그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의 앞에 선, 상대를 바라보았다.


----!


귓가에 놈의 기묘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무위(武威)를 조롱하는 것만 같이 느껴져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그에 한참을 웃으며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던 류한은 곧 자세를 곧추세운 채 놈을 응시했다.


그래.


“...이거, 내 꼴이 참으로 우습게 되었구나.”


대체 자신이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봤던가.


그 기세 좋은 구파일방의 문주들, 그리고 오대세가의 가주들과 사파의 거두도 자신의 앞에서 그리 웃지 못했거늘.


일평생 당대의 그 어떠한 검수들도 본인을 향해 조소(嘲笑)를 짓지 못했건만, 네 놈이 무슨 주제로 그런 오만한 모습은 보이는 것이냐.


후우-


하기야, 그래.


비록 반쪽이기는 하나, 같은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끼리의 싸움이거늘 이리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으니 할 말도 없지.


“그럼 어디 이제부터 제대로 부딪쳐 보도록 하자꾸나.”


그에 그리 속삭인 류한은 말과 달리 나른한 몸짓으로 피에 젖어 흐트러진 머리를 잘라낸 뒤, 검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그리 검을 휘두르고, 몸을 베어냈음에도 아직 놈에게 저 정도의 저력이 남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무인(武人)의 힘을 내보이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니.


그렇다면.


“-어디 이것도 웃으면서 받아내어 보거라.”


붉어진 눈동자와 함께 불완전하게나마 들어선 신(神)의 단계의 힘을 끌어낸 류한은 대번에 검집에 불어넣었다.


쨍그랑.


일순간 응집된 강대한 기운에 의해 검집에 금이 가고, 이내 모든 것을 부술 기세가 외신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


그런 자신을 아득히 뛰어넘는 기운에 반응한 것인지, 머리를 자신의 방향으로 돌려 공격을 준비하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내, 말년에 만든 검을 이리 사용할 줄은 몰랐건만.”


그리 말하며 점차 깨져나가는 검을 뽑아 느릿하게 휘두른 류한은 바짝 날이 서 있는 검 끝에 예기(銳氣)를 확인함과 동시에 내기를 움직이며 초식의 시작부를 읊조렸다.


-하늘의 흐름은 강대한 불길에 이끌린다.


천류신화검(天流神火劍).


불과 5년 전, 세상을 멸(滅)하려던 그 천마(天魔)조차 끝끝내 까다로워하던 검의 첫 구결.


한때나마 자신 역시 쫓았던 그 심득(心得)을 떠올리며 날카롭게 선 검 끝에 그 불꽃의 묘리를 담아낸다.


‘이리 직접 검술을 펼치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만.’


그렇다고 하여 그간 쌓아놓은 경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


되레 이전보다 더욱 드높아진 천류신화검의 힘은 천지를 진동케 했고, 류한은 자신이 만들어 낸 불꽃들로 인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류(氣流)를 읽는데 최대한 집중한 채 그 열기(熱氣)를 끝까지 억눌러 검에 담아냈다.


화르륵-!


그렇게 하나둘, 하늘의 자유로움을 강제하는 도깨비불의 열기가 피어나기 시작하여, 이윽고 천류신화검의 대성을 야기하는 12개의 도깨비불이 검신의 위로 온전히 생겨난 순간.


번뜩.


자신을 향해 하얀빛이 담긴 손길을 휘두르는 외신의 몸이 검에 맞닿는 때에, 류한은 가두어두고 있었던 천류신화검의 힘을 쏟아내었다.


“...허공에 떠오른 괴화(怪火)가 창천(蒼天)을 움직이니, 하늘의 기류가 열두 도깨비불의 주인을 향해 이동한다.”


외신을 향해 들으라는 듯 읊조리며 반쯤 부러진 검신의 불꽃에 사념(思念)을 불어넣자,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는 기세의 불길들이 각각의 방위(方位)를 점하며 하늘의 위로 퍼져나간다.


그렇게 창천을 끌어내릴 도깨비불이 화재(火災)가 나기라도 한 것처럼 사방을 향해 번져나가니, 일전까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던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카드드득-


이후 하나의 진과 같이 서로 간의 사슬을 이룬 괴화로 인해.


노을이 지는 때와 같이 붉어진 하늘에서부터 기괴한 소음이 들려오는 것을 기점으로, 누군가에겐 평생을 바라봐야만 했던 목표이자, 또 그 누군가에겐 원망의 대상에 가까웠던 대상이었던 하늘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굉음이 들려오는 머리맡 위로 슬쩍 고개를 올리자 당장에 손만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이 낮아진 하늘의 모습이 보인다.


저 드높은 하늘마저 무너진 지금, 이 순간.


‘감히 신을 자청하는 네 놈은’


과연 이것을 어찌 막아낼 것이냐.


그리 생각하며 놈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으니, 곧 무너지는 하늘에 짓눌리기 시작하는 외신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늘을 끌어내리는 푸른 창염(蒼炎)이 놈의 몸을 녹이는 속도보다 빠르게 피부가 재생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허.


“과연...이유 없는 참칭(僭稱)은 아니었나.”


그 기괴하고 장엄한 광경에 잠시 헛웃음을 터뜨린 류한은 곧 주변에 널린 주검들 사이에 꽂힌 낡은 검 한 자루를 뽑은 뒤, 놈을 향해 휘둘렀다.


비록 가진바 한 수가 먹히지 않았다고는 하나, 아직 자신의 창천(蒼天)은 저물지 않았으니.


한 번으로 상대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두 번, 세 번, 더 하면 될 뿐이다.


그에 복잡한 생각들을 버리고 오로지 놈을 죽이겠다는 일념만을 품은 류한은 서릿빛으로 물든 검을 들고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렇게 밤과 아침이 3번 반복되었을 때.


쿨럭.


끝내, 죽은 피를 토해낸 류한은 바닥에 박아넣은 검에 겨우 몸을 지탱한 채, 외신을 바라보며 중얼였다.


“...참으로 지독한 놈이로구나.”


근 사흘간, 말 그대로 지독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놈은 저가 불리하다 싶을 땐, 그 괴이들을 앞장세워 시간을 벌었고 일순 자신이 빈틈을 보일 적엔 모든 것을 쏟아내듯 힘을 사용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마수를 펼쳤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진 싸움 속에서 결국 놈의 힘은 수십만 명의 무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결과를 초래했다.


‘내 그리 살리고자 노력했음에도 전멸이라니.’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뒤를 맡길만한 강자가 없는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에 새삼 생각이 들었다.


만일 오래전 자신이 목을 베었던 왕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더라면.


일생(一生)의 하나뿐이 없던 대적자였던 천마, 그자가 마교를 이끌고 자신의 곁에서 싸웠더라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에 대해 생각을 하던 류한은 결국 그 모든 것이 변명이라는 생각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피식.


막상 끝이 다가오니 이리 한없이 추해지는 것을 보면.


“...나도 다른 이들과 다를 바가 없구나.”


대체 이제 와 과거를 후회하고 아까워한다고 하여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그저 내가 모자랐을 따름이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무위가 하늘에 닿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겠구나.


어느덧 이 자리에 살아있는 존재는 너와 나 둘뿐이 없으니.


화륵-


“내 모든 것을 바쳐, 네 놈만큼은 데려가야겠다.”


그 말을 끝으로 저 가슴 깊이 올라오는 감정을 애써 삼킨 류한은 천천히 자신의 생명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인간을 초월한 몸이었으나 결국 그 검은 끝내 신(神)에게 닿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자신이라는 존재마저 걸어서라도 놈의 그 격을 조금이나마 깎아 내야 하지 않겠는가.


불행 중 다행이라면 놈 역시 깊은 상처를 입은 탓에, 이전과 같은 강대한 기운을 내뿜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으니.


그 정도라면 한 번 시도해 볼법했다.


그렇게 저물어가는 하늘 아래, 다시 검을 움켜쥔 류한은 자신과 놈의 주변을 맴도는 사혼령(死魂靈)들을 지나쳐 걸음을 옮기며 중얼였다.


그래, 너희도 신격(神格)의 죽음을 저승에 가져갈 생각에 그리도 들떠있으니.


“...어디 나와 함께 저 나락(奈落)의 끝으로 떨어져 보자꾸나. 감히 신을 참칭한 괴이(怪異)여.”


이로 자신 역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살풋 웃으며 검을 들어 올린 류한은 선천진기(先天眞氣)와 함께 창천을 담은 마지막 일격을 놈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곧 벌어진 놈의 틈 사이로 제 심장을 뜯어 넣었다.


경지에 이른 자신의 육신이라면 죽음에서 조금의 유예(猶豫)시킬 수 있을 터이니.


“어스름한 새벽을 지나 밤이 어둡게 찾아오고 모야무지(暮夜無知) 하니, 삶은 생기사귀(生寄死歸)라 하였다.”


-흑야(黑夜).


곧 하나의 주술을 외운 류한은 두 개의 심장을 매개체 삼아 놈과 자신의 영혼을 합친 뒤, 그것을 정확히 반으로 잘라내었다.


이것으로는 놈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마 기꺼해야 봉인(封人)의 수준이겠지.’


그리고 고작 그것만으로 입신의 경지 초입에 든 자신은 확실히 죽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놈 역시도 꽤나 오랜 기간 회복에 전념해야만 할 터.


“...그것이면 되었다.”


자신의 몫은 이 정도면 되었으니, 나머지는 후손들에게 맡겨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류한은 천천히 감기는 눈을 따라 죽음에 몸을 맡겼다.


허나 그런 이 순간 생각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아쉽구나. 그리 창천을 꿈꿨으나 결국 이리 대지에 서 죽는다는 것이.’


만일 자신에게 단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저 시린 하늘 위에서 검을 휘두를 터인데.


------!


한편에서 괴성을 지르고 있는 외신을 뒤로한 채, 제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을 바라보며 류한은 전장의 한복판에 천천히 쓰러지는 육신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후련한 마음으로 머리를 땅에 뉘니, 떠오르는 태양이 보였다.


큭.


“...그래도 마지막은 아름다운 하늘 아래로구나.”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외신과 자신의 영혼을 앗아가기 시작하는 하얀 사혼령들이, 보여주는 그림은.


그래,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야 속, 류한은 제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것으로 그저 전설과도 같이 여겨질, 역사에도 남지 않을 전투의 종지부가 찍힌 것이다.


그래.


“...분명 그랬을 텐데.”


콩!


“이 빌어먹을 놈아, 빨래 끝나면 널어놓으라고 했잖아. 너는 네 동생들이 퀴퀴한 냄새 나는 옷을 입고 다니면 좋겠냐?”


감히 자신의 머리를 때린 것도 모자라 저를 노려보고 있는 남자와 불안하다는 듯, 연신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수십의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과 태반 다를 것이 없는 자신의 모습까지.


찡긋-


‘도대체 어쩌다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것인지.’


눈앞이 아득해지는 한편의 모습에 결국 그리 속삭인 류한은 결국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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