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도환생기(六道幻生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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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08 16:40
최근연재일 :
2024.09.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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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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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열지옥(焦熱地獄), 타파나(Tapana) (2)

DUMMY

'구분하는 의식의 전제가 되는 것은 이 때까지 해온 것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해온 것들에서 구분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십이연기의 두 번째 구결이었다. 두 번째 구결은 첫 번째 구결보다도 첫 번째 구결보다도 훨씬 높았다. 첫 번째 구결은 그나마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두 번째 구결은 그런 것도 없었다. '구분하는 의식'이라니. 사람의 의식에 나뉘는 부분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혹시 모르지. 정말로 있을지도. 첫 번째 구결처럼 말이지.'


요즈음 나는 업화에 구워지면서도 가끔 전신의 힘을 끌어모아 집중을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집중을 할 때마다 의식의 형태가 도자기가 빚어지듯 뭔가 형체가 생기는 중 이었다.


하다 보니 첫 번째 구결보다 두 번째 구결이 나은 것 같기도 했다. 확실히 첫 번째 구결에서 뭔가 감이 잡히니 뭔가 되는 것이 있었다. 물론, 정확히 따지자면 내가 그저 '쉽다'라고 자기최면을 거는 것에 가깝지만.


고오오오오.


진리는 변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내가 이 구결을 정말로 어렵다고 생각하면, 더욱 어렵게 받아드릴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왕 생각하는 것 조금이나마 긍정적이게 생각해보기로 한 나는 기운을 순환 시키며 업화 속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후우."


체내의 열기가 한번에 빠져나가며 주변을 차갑게 식혔다. 아무래도 저승사자가 준 선물은 내 생각보다도 큰 선물일지도 몰랐다. 하긴, 저승의 관리자쯤 되는 이의 수하가 준 선물인데. 그게 특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화르륵-!


주변의 온도는 식어서 발화점을 낮췄지만, 내 전신에 붙어있는 이 불은 상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듯 좀처럼 꺼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 업화는 언제쯤 꺼질까. 업화만 꺼져도 수행이 조금 빨라질 것인데.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아아아아."


"쿠에에에에!!!"


주변에서 불타며 고통스러워하던 죄인들이 미약한 냉기를 느끼고 몸을 식히기 위해 내게 달라붙었지만, 오히려 내 업화에 구워질 뿐이었다.


"그와아아아아!!!"


'뭐지 내 업화가 좀 특별히 강한건가? 저들도 업화에 구워져봤을 텐데.'


죄인들은 내 업화의 고통에 그대로 눈을 까 뒤집었다. 모두 기절한 죄인들을 구석으로 치워둔 나는, 무언가 커다란 기운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옥에서 '연기(緣起)'의 과정을 밟았다고? 말도 안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악한 목소리. 더없이 사악하고 불길한 목소리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에는 별빛을 그대로 담아둔 눈동자와 밤하늘 같은 새카만 머리칼을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등에 두 자루의 검고 하얀 도(刀)를 매고 있었는데 매우 무거워 보였다. 여자인데도 웬만한 장정보다 힘이 장사인 듯 했다.


"그대는··· 누구··· 십니까······."


나는 다 타버려 거의 걸레짝이 되어버린 성대를 기운으로 힘겹게 이어 말을 했다. 업화에 구워지면서도 힘겹게 말을 잇는 나를 본 여인은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저승사자의 그 흥미로움과는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하하하!! 지옥에서 그 정도의 기운을 가졌으면서 날 모른단 말인가? 그래 좋다. 대답해주지."


스릉-


여인의 등에서 두 자루의 도가 뽑혔다. 두 자루로 이뤄진 도의 손잡이는 호랑이 가죽으로 감겨있었으며, 한 번이라도 적중하면 그대로 몸이 반으로 갈라져 버릴 듯 했다. 나는 여인의 호기심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순수한 악의. 그것이 여인이 보이는 호기심의 원천이었다.


"내 이름은 '무송(武松)'. '삼십육천강성(三十六天罡星)'중 '천상성(天傷星)'의 주인이다."


그와 동시에 무송이 검을 휘두르며 거대한 참격이 날아왔다. 아니, 정확히는 참격이 아니라 검을 휘두를 때 나오는 풍압에 가까운 것이었다.


'뭐 얼마나 힘이 강하면 이런 무식한!'


쩌적!!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 만으로도 지축이 갈라졌다. 뜨거운 용암이 뿜어져 나오며 내가 간신히 식힌 주변의 온도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업화에 구워져 숫덩이가 되어버린 얼굴이 희게 질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맞으면 죽는다. 아니, 으깨진다.'


나는 필사적으로 구르며 검격을 피했다. 주변의 죄인들이 휩쓸리며 납작하게 뭉개졌지만, 나 도망치기에도 바빴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무송은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도망은 잘 치는군.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격이라면 어떨까?"


무송은 기수식을 잡았다. 무송의 기수식에는 알 수 없는 행성의 위압이 그대로 깃들어 있는 듯 했다. 큰 대검 두 자루를 교차 시킨 그녀는 하체에 힘을 집중 시켰다. 그러자, 땅에 구덩이가 파이며 솟아 오르려는 용암마저 억제시켰다.


"죽어라! 부처가 될지도 모르는 녀석!"


나는 그 말에서 일말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막는 것이 아예 불가능 한 것은 아니었다.


'온다!'


동시에, 두송의 어깨가 움직였다. 두 자루의 대검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곡선을 그리며 거대한 도격이 날아왔다.



무송류(武松類).


극의(極意).


하늘 찢기.



말 그대로 '하늘을 찢기 위해' 만들어 진 듯한 살벌한 두 도의 검격이 지면에 쇄도했다. 지면을 그대로 가르고 끝끝내 용암마저 갈라버린 한 번의 도격은 내 이동을 제한하기에 충분했다.


'아뿔싸.'


나는 이것이 내 시선을 돌린 후에 기습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름 인간 시절에 단련한 싸움 감각의 일부였다.


콰아아아아앙!!!


살벌한 파괴의 굉음이 초열지옥에 울려 퍼지며 두송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두송이 다시 내 시야에 잡혔을 때는, 이미 내 척추가 으깨진 뒤였다.


뽀각.


단정한 탈골음이 들리며, 업화와는 다른 결의 고통이 느껴졌다. 아마도 허리가 절단난 것 같은데. 그래도 육신의 형체는 남아있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할까.


"끈질기구나!"


휘릭!


내가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며 공격을 버텨낸 것을 본 무송은 방금의 공격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듯, 내가 공격의 피해를 추스를 틈도 없이 다음 공격을 연계했다. 보아하니 이번 공격이 방금 한 공격보다도 더 강한 공격 같은데.


나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무송의 참격을 계속 피해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송의 기수식에서 비롯되는 기술은 전부 공격을 할 때 밟고 있을 '지면'에 발이 닿아야 제 위력이 발휘되는 것 같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는 밟을 땅이 없었다. 밟으면 바로 용암이 솟구치기에 이 환경은 나에게도 치명적이지만, 무송에게도 치명적인 것이다.


'생각해! 생각해라! '구분하는 의식'이 뭔지!'


그 순간, 번뜩이는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 깨달음이란 내 전신에서 타오르는 업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업화를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지는 않을까.'


우리가 해온 것에서 '구분하는 의식'은 비롯된다. 그렇다면, 방금 달려든 죄인들로 하여금 내 업화가 특별히 강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떻게든 무송을 붙잡기만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봐야만 했다. 아니면, 죽는다.


지옥도에서의 죽음은 소멸을 의미한다. 물론, 어지간한 피해는 지옥의 자체적인 법칙 같은 것으로 인하여 회복되지만 이런 지나친 피해도 견뎌낼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다시 한번,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나는 한계까지 가동시킨 두뇌탓에 두 번째 구결이 내게 깃들었다는 것조차도 모른 채로 시간이 느려져 보일 만큼 집중했다.


기회는 단 한번 뿐이다. 무송이 땅을 박차며 추진력으로 내게 접근할 때, 그때가 유일한 빈틈이다.


'온다!'


콰아앙!!!


공간을 일그러트릴 정도의 물리력에 무송의 신형이 빠르게 쏘아졌다. 나는 집중력을 한계의 한계까지 끌어모아서 무송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지금!'


나는 도를 휘두르며 내 허리를 완전히 절단내려는 무송의 발목을 붙잡았다. 동시에, 내 업화가 무송의 발목을 타고 두송의 전신에 옮겨 붙었다.


"크아아아아!!"


무송은 날아오던 그대로 뒤집어져 다른 죄인들과 함께 초열지옥의 바닥을 굴렀다. 역시, 통했다!


"대체 네놈은 정체가 뭐냐!? 어떻게 이 정도의 업화에 당하면서도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무송은 고통에 말을 다 잇지도 못한 채로 계속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보아하니 평범한 인간은 아득히 벗어난 것 같은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무송. 무송이라. 처음 들어본 이름은 아닌 것 같았다. 이승 시절에, 아주 아득히 오래 전에 들어본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나는,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호전'의 '삼십육천강'으로 불리는 이들 중에서 무송이라고 불리던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뭐지, 진짜 무송인가?'


두 자루의 거대한 도를 사용하고, 성격이 더럽다는 것까지. 내가 아는 완벽한 무송이었다. 힘으로는 그 '노지심'과 쌍벽을 이루는 호걸이 바로 이 여인이라는 것이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여인이라는 것. 그것 하나 뿐이었다. 일단 나는 무송의 업화가 꺼질 때까지 명상을 하기로 하고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다시 눈을 감았다.


'세 번째 구결까지. 빠르게 간다.'


일단 이 업화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고통은 둘째치고 내 판단이나 결정에 너무 지나치게 방해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100년간 눈을 감은 채로 계속 구결을 반복하여 되뇌이며 내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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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열지옥(焦熱地獄), 타파나(Tapana) (2) 24.09.09 8 0 10쪽
2 초열지옥(焦熱地獄), 타파나(Tapana) (1) 24.09.08 15 0 14쪽
1 지옥도(地獄道) 24.09.08 19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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