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 어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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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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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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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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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 제로(3)

DUMMY

던전 관리원 배진수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초보 각성자가 어리숙해 보이길래 도움을 주려고 다가갔는데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내가 뭐 기분 나쁘게 했나?’


그는 오지랖이 넓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서 안달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기도 한다.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타고난 오지라퍼.


이번에도 오지랖을 부렸다. 싸구려 운동복 차림의 각성자가 나이프 하나만 들고 던전으로 향하는 광경을 목격해버렸다.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 본능이 이성을 눌렀다.

훈수 본능.


안타깝게도 그는 오지랖의 넓이에 비해 성공률이 떨어진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했는데. 거절당하니 속상하네.’


배진수는 50살이다. 남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감성적이 된다. 남성호르몬이 젊은 시절보다 덜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남한테 신경쓰지 말아야겠다. 나랑 상관없잖아. 지들이 던전에서 죽든 살든 알아서 하겠지.’


문득 던전 입구에서 각성자들이 몰려나온다.


- 우르르


다들 표정이 어둡다. 허탕을 친 모양새다. 그들 중 하나가 투덜거린다.


“던전 코어를 대체 누가 먹은 거야? 너 혹시 그 사람 얼굴 봤어?”

“아니.”

“너는?”

“못 봤어.”


던전 코어는 한 번 고갈되면 한참 뒤에 다시 생긴다. 에너지가 서서히 충전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지하 1층의 에너지를 모조리 뽑았으므로 나머지 각성자는 빈손으로 떠나거나 더 위험한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승자독식.

패자굶음.

그러니 다들 불만을 토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의문을 표한다.


“대체 누굴까? 다들 악어 때문에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었는데.”

“투명화?”

“에이, 투명화 써도 인기척은 못 숨기지. 악어는 먹이를 진동으로 감지하는데.”


투명화 마법은 모습만 감춘다. 소리는 못 숨긴다. 누군가 투명화를 걸고 늪에 들어갔으면 물소리가 첨벙첨벙 났을 것이다. 당연히 악어밥이다.

미스터리.

인비저블.


목소리가 걸걸한 중년 남자가 사방을 향해 외쳤다.


“어이, 1층 공략한 분. 나와요. 얼굴 좀 봅시다.”


옆사람이 동조했다.


“그래요. 악어떼 어떻게 피했는지 썰 좀 풀어봐요.”

“술 한 잔 합시다. 내가 살게.”

“그쪽이 노하우를 풀어야 우리도 따라하지.”

“회 좋아해요? 송어회 잘하는 집 아는데.”


사회성 충만한 각성자들이 1층 공략의 주인공을 불러댔다. 공짜 술로 유혹하고 맛집으로 유인하고 감언이설을 날렸다.

그러나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꽁꽁 숨었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장사꾼 출신 각성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왜 아무도 안 나서지?”


등산 동아리 회장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요. 나 같으면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릴 텐데.”


그들은 인싸다. 인싸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본인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돈을 얼마나 잘 버는지, 자동차는 무엇을 타고 부동산은 어디에 투자하는지 줄줄 자랑한다. 인싸들은 무리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인싸는 남들도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오늘 던전 1층을 공략한 주인공 또한 정체를 밝히고 성취감을 모두와 함께 나누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 아니던가?


대기업 출신의 각성자가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오늘 주인공은 개인주의가 심하네. 노하우 공유 안하고 자기 혼자서 다 해먹으려는 모양이야. 아무래도 나이 어린 친구 같아. 우리 세대면 안 저러지. 협동심이 강하니까.”


중년 여자가 동조했다.


“그러게요. 다 나누고 함께 성장하면 좀 좋아요? 하여간 요즘 MZ들 문제 많다니까요. 본인 귀한 줄만 알지 남 생각은 안 해. 이러다가 우리나라 망하겠어.”

“이미 망했어. 애 안 낳는 거 봐.”

“대체 그런 사고방식을 어디에서 배웠을까?”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래. MZ들 학교 다닐 때 대통령이 누구였더라?”

“헉, 조심하세요. 검찰에서 압수수색 들어와.”


던전 입구에 몰려있던 각성자들이 하나 둘 떠났다. 코어를 먹은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으니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일부는 스트레스를 푼다며 근처 술집으로 이동했다. 던전 앞 번개 모임이다.


현장이 한산해졌다.

던전 관리원 배진수가 후배에게 물었다.


“지하 1층이 공략됐다고?”


후배 공무원이 에너지 측정 시스템을 들여다보았다.


“던전 에너지가 1퍼센트 줄었어요. 지하 1층 공략이 맞아요.”

“그런데 공략 성공자가 왜 안 나타나지? 원래는 추출기 반납하면서 포상금 받고 사람들한테 기립박수도 받고 헹가래도 타는데.”

“그러게요. 이런 적은 처음이네. 시스템 오류인가?”

“설마. 인간의 시스템은 오류가 나더라도 던전 시스템은 오류가 없지. 신이 만든 물건인데.”


전세계의 과학자들은 던전 사태를 신이 일으켰다고 추측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현상이 벌어질 리가 없다. 던전은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몬스터는 지구 생물과 생태가 다르다.


던전 관리인 배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급한 일 생겨서 갔나보다. 우리도 퇴근하자. 포상금은 나중에 찾으러 오겠지.”


그 순간, 사무실 파티션 뒤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 스윽


젊은 남자가 말했다.


“저기요.”

“으헉!”


배진수가 손발을 부르르 떨며 쓰러졌다. 그는 중년 남자다. 깜짝깜짝 잘 놀란다.

후배가 기겁했다.


“선배님!”


배진수가 숨을 골랐다.


“괜찮아. 놀라서 그래. 그보다 저···”


그가 어둠 속의 사람을 가리켰다.

나이프 하나 들고 던전에 들어간 상남자 청년이다.


-


나는 공무원을 놀라게 할 의도가 없었다. 사람이 너무 북적거려서 은밀한 곳에 숨어있었을 뿐이다.

사람 많은 것 싫다.


심지어 각성자 여러 명이 나를 찾아다니기까지 했다. 그들은 회식을 개최할 셈이었다. 나를 길다란 테이블에 앉히고 수십 명이 보는 앞에서 건배사를 시킬 작정이었다.


치가 떨린다.

그런 끔찍한 고문을 기획하다니.

인싸들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내가 모습을 끝내 드러내지 않자 인싸들은 자기들끼리 술을 마시러 갔다. 대화를 들어보니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오늘 던전에서 처음 만나 친해진 것이다.


세상에.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다니.

강제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안 불편한가? 안 피곤한가? 그게 즐겁나?

나는 앞으로도 혼자 활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마침내 던전 앞이 한산해졌다. 각성자가 모두 떠나고 공무원 관리자만 남았다.

드디어 마음이 편안하다.

부담감이 사라진다.

나는 파티션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 스윽


그러자 중년 남자 공무원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헉!”


앗.

너무 갑자기 나타났나?

헛기침이라도 할 걸. 어쌔신으로 각성했더니 존재감이 더 줄어들었네.


“안녕하세요.”


던전 관리인이 말을 더듬었다.


“어··· 그··· 상남자?”


그는 내 이름을 모른다. 멘토 프로그램에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끄덕였다.


“네.”

“왜 거기 있어요? 던전 안 들어갔어?”

“들어갔다 왔어요.”

“언제?”

“아까 전에요.”

“아아···”


배진수가 몸을 일으켰다. 얼굴색이 창백했다. 그가 정수기에서 냉수를 뽑아 들이켰다.


“다른 각성자들은 다 집에 갔어요. 지하 1층이 공략됐대.”

“아아, 네.”

“그쪽도 이제 가 봐요. 보름 뒤에 다시 와. 그 정도 지나면 1층 코어 다시 충전되어 있을 거야.”

“에너지 추출기는···”

“가지고 가요. 어차피 비었잖아. 보름 뒤에 써. 아니면 부산 던전 내려가든지. 거기 1층은 아직 공략 안 됐대.”

“그게 아니고···”


나는 품에서 에너지 추출기를 꺼냈다. 추출기 내부가 푸른색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풀충전.

배진수가 눈동자를 흔들었다.


“어라? 그게 왜··· 설마···”

“던전 1층 제가 클리어했어요.”

“저··· 정말?”


공무원의 얼굴에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진짜로? 학생 나이프 하나만 가지고 들어갔잖아요. 방어구도 안 입고. 그런데 1층을 공략했다고? 혼자서?”

“그렇게 됐어요.”

“어떻게?”

“그냥··· 잘 피해다녔어요.”


나는 공무원에게 상처를 두 번이나 주었다. 한 번은 친절을 거절해서, 또 한 번은 놀래켜서.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질문까지 무시하면 나는 인간쓰레기가 될 것 같았다.


배진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 피하다니. 던전 안에 몬스터가 한두 마리도 아니고.”

“정말이에요.”

“다친 곳도 없네요. 몸에 진흙도 안 묻었고. 나이프 뽑아봐요.”

“여기요.”

“나이프에 피도 안 묻었어. 아예 싸우지 않았다는 뜻인데.”

“맞아요.”


공무원이 헛웃음을 뱉었다.


“세상에. 내가 여기 관리자로 온 지 3년 가까이 됐는데 던전 안에서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나온 사람은 그쪽이 처음이에요.”


내가 지적했다.


“피는 묻었어요. 순간이동 장치가 제 손바닥을 찌르더라고요. 피를 마셔야 텔레포트가 활성화된대요.”


배진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그럼 무슨 뜻인데요?”

“음··· 아니다. 됐어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가 후배 공무원에게 말했다.


“황 주임, 추출기 회수해. 포상금 얼마야?”


여자 공무원이 나에게 에너지 추출기를 건네받아 농축 장치에 꽂았다. 추출기 안에 들어있던 푸른 빛이 농축 장치 안으로 빨려들었다.

액정 화면에 숫자가 떴다.

그녀가 읽었다.


“150만 원이요.”


나이스.

던전에서 뽑아낸 에너지를 정부 기관에 제출하면 포상금을 받는다. 각성자가 수익을 가장 쉽게 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포상금은 제출한 에너지의 양과 질에 비례해 올라간다.


지하 1층을 공략해서 150만 원을 벌었다.

2층은 더 많이 벌겠지? 지하 3층은 그보다 더 많을 테고.

이러다가 재벌 되겠네.


배진수가 나에게 말했다.


“고생 많았어요. 여러분 덕분에 우리 국민이 발 뻗고 잡니다.”

“에이, 뭘요.”

“포상금은 현금으로 드릴까요, 은행 계좌로 넣을까요?”


나는 살짝 고민했다.

현금은 불편하다. 계좌가 편하다. 한국은 신용카드 시스템이 워낙 잘 구축되어 있어서 전국 어디서든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은행 계좌는 추적당하기 쉽다.

나는 어쌔신이다.

어쌔신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통화는 대포폰, 해외여행은 위조여권, 결제는 현금이다. 첩보 영화에서 그렇게 배웠다.


나는 결정했다.


“현금으로 주세요.”

“그래요.”


배진수가 현금인출기에서 지폐를 꺼냈다. 5만 원짜리 29장과 동전 약간.

약 145만 원.

내가 물었다.


“150만 원이 안 되는데요.”


배진수가 해명했다.


“세금 뗐어요.”


나는 경악했다.


“세··· 세금을 뗀다고요?”

“원천징수요. 수익 있는 곳에 세금 있다. 미안해요. 그게 법이라.”


더러운 법!

목숨 걸고 던전을 공략해서 포상금을 받았는데 거기에다가도 세금을 붙이냐!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주는 대로 받아야지. 이 공무원 아저씨가 국세청장도 아니고.

나는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공무원이 운을 떼었다.


“그리고···”

“네?”

“혹시 엘리트 육성 프로그램에 참가할 생각은 없어요?”


내가 기겁했다. 포상금에서 세금 떼였을 때보다 더 놀랐다.


“에··· 엘리트 프로그램이요?”


또 프로그램이냐. 뭔 놈의 프로그램이 이리도 많아?

배진수가 나를 열정적으로 설득했다.


“그쪽한테 가능성이 보여서 그래요.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는 모르지만 던전 1층을 한 대도 안 맞고 공략했잖아. 나 이런 경우 처음 봤어. 진짜 기가 막히다니까? 아마 그쪽이 훈련만 제대로 받으면 S급도 찍을 수 있을 거예요. 확실해. 나 믿어보라니까?”


나는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저 프로그램 싫어요.”

“부담 안 가져도 돼. 수강료 없어요. 공짜야. 정부에서 교육비 100프로 지원해 줘. 얼마나 좋아. 장래 창창한 엘리트 각성자가 한데 모여서 훈련받고 친해지고 인맥도 쌓고. 이런 기회 아무나 얻는 거 아니에요.”

“저는 그런 기회 필요 없어요. 다른 사람 주세요.”

“다른 사람을 왜 줘? 그쪽처럼 재능있는 사람이 기회를 받아야지.”

“저 재능 없어요.”

“여자친구 있어요?”

“아니요.”

“잘됐네. 프로그램에 예쁜 여자 많아요. 세리나 알지? 일본 아이돌인데 한국으로 귀화한 각성자. 세리나가 엘리트 3기 출신이라니까.”

“으으··· 저는···”


배진수가 스스로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내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답답한 모양이었다.


“아이 참 답답하네. 내가 정말 좋은 마음에 이렇게 추천을 해주는데···”


더는 버틸 수가 없다. 공무원 아저씨의 말폭격에 정신적 데미지를 크게 입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은신 모드를 켰다.


- 스윽


내 모습이 사라졌다.

중년 공무원이 당황했다.


“어라? 이 사람 어디 갔지?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이봐요, 상남자! 이런 망할, 이름도 안 물어봤네.”


나는 인싸들의 세상에서 탈출해 집구석으로 피신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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