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천재의 힐링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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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유
작품등록일 :
2024.09.1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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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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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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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스킬

DUMMY

턴테이블 앞에선 침묵을 지킨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주인공은 내가 아닌 음악이어야 된다.


그날의 날씨, 관객의 분위기, 남녀 성비, 사회 이슈. 이런 것을 모두 고려해 곡을 고른다.


늘 비슷비슷한 비트의 EDM만 트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으면 모두 다르다.


하늘 아래 같은 곡은 없다. 모든 곡은 작곡가의 의도가 숨어있다. 그걸 찾아내 대중에게 선보이고, 나름의 비법으로 리믹스를 하는 게 내가 턴테이블에 서는 이유다.


DJ가 말을 얹는 순간 시선이 모인다.


청각은 순수하다.

내 의도에 따라 관객을 움직일 수 있다.


춤을 추게 할 수도, 우울함에 취해 흐느적거리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끔 흥에 취해 추임새가 튀어나오긴 해도. 사담은 일절 하지 않는 게 내 원칙.


그러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인 거다.


- 맞죠? 맞으니까 말 못한다.


한유진.

이 사람은 어떻게 추임새만 듣고 날 알아맞힌 거지?


궁금했다. 소머즈야, 뭐야.


“맞아요.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 오, 시원해서 좋네요. 제가 묻는 거 알려주심 저도 대답해 드릴게요.

“들어보고요?”

- 마스크는 왜 써요?

“쓰면 안 돼요?”

- ······?

“······?”


왜긴 왜야.


······부끄러우니까 그렇지.


모르는 사람이 잔뜩 있다.

그런 곳에서 얼굴을 훤히 드러낸다?

내성적인 사람에겐 고역이나 다름 없다.


더군다나.

DJ블랙홀과 서태윤은 다른 인물이어야 한다. 오롯이 그 곳의 감성을 느끼기 위해선 그래야 한다.


- 누가 알아보고, 환호하고, 유명해지면 좋은 거 아닌가?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하기야.

한유진은 뭐 그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연예인은 눈물의 몸부림을 해서라도 눈에 띄어야 하니까.


이를테면··· 나랑 정반대의 상황?


- 아이덴티티론 나쁘진 않은데··· 아깝네요. 얼굴 못 보여주는 거.

“왜요?”

- 거울 안 봐요?

“보죠?”


뭐지.

옅은 한숨 소리가 들리는 건 착각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


“대답 들으셨죠? 목소리로 어떻게 알아들었어요?”


그러자 한유진이 목소리를 잠시 가다듬고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 Hold The Beat!

“아아아아아악! 그만!”


이번엔 수화기 너머로 “풉······.”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거 아니야, 그러지 마.


- 저 홀더빗! 하면서 스크래치 하는 거 들으러 시에라 가는데요? 통화 목소리에 그 톤이 싸악 돌아요.

“······.”

- 여보세요? 선생님.


이건 그러니까······.


Hold the beat.

가끔 흥해 취했을 때.

특별한 공연이 있는 날 시작 전에.


내가 주로 외치는 추임새다.


일명 시그니쳐 사운드?


왜 있지 않나.

유명 작곡가가 곡 앞에 제왑삐~ 하면서 특유의 음성을 넣는 거.


언젠간, 꼭, 반드시.

진짜 내 음악을 만들면 꼭 나도 그런 시그니쳐 사운드를 넣고 싶었다.


루나틱 비트 초반에도 물론 넣었다.


홀더빗~이 나오면 자동으로 몸이 들썩일. 홀더빗~ 하면, 아~ 하고 나를 바로 떠올릴.


그런 사운드를 만들고 싶었는데.


- 홀더빗 홀더빗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아,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니까.


막상 들으니 좀 멋쩍다.


한유진은 참······,

의외의 인물이었다.

클럽 앞에서 봤을 땐 음울한 그림자가 언뜻 보였는데. 막상 통화를 해보니 재밌는 구석이 있네.


- 라이브로 들려줘요.

“뭘요.”

- 홀더빗이요.

“음?”

- 리듬도 목소리도 다 좋아요. 그것뿐이겠어요. 믹싱도, 선곡도, 음악에 집중하는 것도요. 다시 공연 하신다니 다행이에요. 제가 1호 팬인가? 그리고··· 연락해 줘서 고마워요. 정말.


아······.


얼굴이 뜨거워졌다.


날 알아봐 준 것도.

이리 직접 내 공연이 좋았다며 팬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이런 기분이었구나.


얼굴을 감추고 아무도 날 모르게 하는 것만이 능사라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 이리 인정을 받고, 음악 얘기를 한다는 게 이렇게 설레는 일일 줄이야.


나도 은근히 관심을 즐겼구나. 그랬구나.


한유진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훈훈한 칭찬 릴레이, 뭐 나쁘지 않다.


나도 한유진을 알아봐 주기로 했다. 그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곡 잘 듣고 있어요.”

- 아이돌 좋아해요? 한창 아이돌 좋아할 나이다, 그쵸.


나랑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구만.


“아뇨. 아이돌 때 곡 말고요. 한유진씨 싱글 앨범.”

- 에이.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그 앨범 폭망인 거 다 아는데.

“앨범이 잘 안됐다고 만든 사람의 진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 예? 그게 무슨······.

“《Fizz!》 곡 잘 들었다는 뜻이었어요.”

- 설마?

“그거 작곡한 거 본인 맞잖아요.”

- 맞긴 한데.

“오, 맞구나. 어쩐지. 왜 예명으로 크레딧 올렸어요?”

- ······진심이에요? 아니, 그보다. 어떻게 알았어요? 아니. 잠깐만.


뭐지. 왜 횡설수설 하는 거냐.


목소리에서 당황이 묻어나긴 했다.

너무 좋으면 그럴 수 있지.

나도 한유진이 알아봐 줬을 땐 당황도 좀 했으니까.


“딱 들으니까 느낌이 오던데요?”

- 어떤?

“이건 부른 사람이 썼다.”

- 거짓말.

“제가 왜 거짓말을 해요.”

- 그걸 어떻게 알아요.

“들려요.”

- 들린다?

“부르는 사람이 계속 말 하고 있잖아요. 내 말 좀 들어주라. 이거 내가 만들었어. 내가 이렇게 즐겁다니까? 어때? 그러니까 너도 같이 즐거워해야 해, 하면서.”

- 그래서, 좋았어요?

“솔직하게 말 해도 돼요?”

- 그럼요.


뭐라고 말하지.

잠시 말을 골랐다.

나도 예의라는 걸 차릴 줄 아는 사람이라 이거야.


고민 끝에 나온 말이 이거였다.


“하나도 안 즐겁게 들려요.”

- ······.

“억지 텐션이라고 해야 할까······.”

- ······.

“왜 꼭 그래야 해요? 가끔 내가 원하는 걸 해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게 창작자의 특권 아닌가?”

- 내가 원하는 거······.


한참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아아, 마이크 테스트.”


설마 통화하다 잠이라도 든 건가?

아님 그렇게 감격스러웠나?


조금만 더 통화 했으면 발랄이 아니라 방정이라고 말할 뻔했는데.


다행이라 생각하며 통화 종료를 눌렀다.


어쨌든 나는 약속 지켰다고!


***


‘하나도 안 즐겁게 들려요.’


태윤의 말에 한유진이 고장 났다.


기분이 나빠서? 아니다.

비밀을 들켜서? 아니다.

말을 직설적으로 해서? 아니다. 다 틀렸다.


“진짜······ 그렇게 들렸다고?”


처음이었다. 이런 직설적인 지적은.


《Fizz!》


한유진의 첫 싱글 타이틀이었다.


망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 보려 해도 그게 사실이었다.


기존 팬덤으로 어찌저찌 굴러가나 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기막힌 비트를 받았고, 최고의 작사가가 붙었다. 거기에 한유진 본인이 곡을 썼다. 잘 될 줄 알았다. 나름 예명으로 가면 놀이도 해봤다.


곡이 잘 되면 짠! 하고 공개할 요량이었다.


여러분! 제가 곡도 썼습니다! 어떻습니까! 놀라셨죠!


하지만 영원히 작곡가를 공개하는 일은 없었다. 반전이 아니라 반격 수준이 될 테니.


[ 한유진 싱글 개실망;; ]

[ 소속사 일 안 하냐?

비트 듣고 오... 했다가 멜로디 듣고 응? 함. 감 다 뒤졌네 ]

ㄴ 노래가 뭔가뭔가임

ㄴ 투미엔터 일 안 하냐

ㄴㄴ 요즘 닉값함 진짜 투미하네

ㄴ 아니 어떻게 한유진을 데리고 저런짓을 할 수가 있냐고 ;;

ㄴ 아니 분명히 되게 곡이 트렌디한데 뭔가 이상하지않음?

ㄴ 작곡이 문제지

ㄴㄴ 왜 신인작곡가 쓰냐 돈 없냐?

ㄴ 한유진이 벌어준 돈이 얼만데 ㄷㄷㄷㄷ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왜 당연히 잘 될 거라 생각했던 걸까.


작곡도, 미디도 오래 배웠다.


어깨에 뽕이 한껏 들어갔다.

진짜 싱어송라이터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작곡 그거 만만한 거 아니더라.

말릴 때 들었어야 했는데.


작곡 한유진을 공개했다면······!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래, 영원히 모르는 게 낫다.


그렇게 영원한 비밀일 줄 알았다.

정보가 새 나가는 일은 없었다.


다들 위로하기 바빴다.


처음엔 다 그래.

그래도 하고 싶은 거 해봤으니 후회는 없잖아?

다음 앨범은 더 잘될 거야.

처음인데 그 정도면 잘 했다.

너 그 정도면 재능 있어.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겠어.

좋은 곡 받아줄게. 걱정하지 마.


모르는 사람은 작곡가와 회사를 욕하기 급급했다. 그럴 때마다 더 비참해졌다.


누구라도 붙들고 하소연 하고 싶었다.

뭐가 문제냐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아이돌 시절부터.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위해 노력했다. 늘 생기발랄해야 한다. 싱그럽고 화사하고. 그게 한유진이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었다.


싱글도 당연히 그런 분위기였다.


Fizz를 외치며 상큼하게 카메라를 보며 윙크하고, 불편한 힐을 신고 무대에서 뛰어다니고, 아슬아슬한 상의가 혹시 흘러내리진 않을까 걱정하고.


“이제 와서 어쩌겠어.”


한유진이 한숨을 푹 쉬었다.


콘셉트란 건 쉽게 바꿀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래도,


‘왜 위로가 되지?’


오늘만은 마음이 좀 편했다.


태윤 덕분이었다.

분명 위로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일침이었다. 어찌 보면 무례할 수도 있는.


그럼에도 자꾸만 그 말을 곱씹게 되었다.


마음을 들킨 게 아니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마음을 알아봐 주었다.


‘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끊을걸.’


누군가에게 마음을 와르르 쏟아내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 오늘 고마웠어요. 루나틱 비트 기대할게요. 그리고 아까 해주신 얘기 생각 해봤는데······(중략)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게 있긴 하거든요······(중략)가끔은 그럴 때가 있지 않아요? 막 표현하고 싶은 기분? 이런 걸 참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사이라서 그런 걸까.


이제 알게 된 태윤이 꼭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놨다.

위로 받고 싶었다.

태윤의 위로는 얼마나 따뜻할까.


얼마 안 가 답장이 날아왔다.


[ 그 기분, 뭔지 전 아는데요. ]

[ 오, 그게 뭘까요. ]


두근두근.

기대하고 답장을 기다렸는데.


[ 예술병 ]


······!


이거, 맞나?


***


딱히 한유진의 팬은 아니다.


나는 새로 나온 음반은 대부분 들어보는 편이다. 장르도, 가수의 국적도 가리지 않는다.


다만 곡을 좀 특이하게 듣는다.

악기 하나하나 따로.


혼자 전하지 못할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이 부분 왜 이렇게 만드셨어요?’


그렇게 자연히 곡을 나름대로 분석했고, 디제잉까지 하게 됐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이게 시작이었다.

편곡이라는 게 그렇다. 이미 누군가 완성해 놓은 걸 다시 손대는 일이다.


곡을 뜯어 악기를 분석하고 작곡가, 편곡가의 의도를 알아내는 일. 그게 내겐 공부였고 취미였다.


그런 의미에서, 한유진의 Fizz는 내겐 조금 특별한 곡이었다.


듣자마자 느낌이 왔다.

이건 가창자와 작곡가가 같구나.

백발백중이었다. 딱 들으면 안다. 가창자가 곡을 편하게 부른다.


크레딧을 보고 좀 놀랐다.


작곡:Jeden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못 맞출 리가 없는데?


인터넷을 뒤졌다.

일말의 힌트라도 얻지 않을까 싶어서.

아무리 찾아도 없길래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겼다. 예명을 쓰는 일이야 흔하니.


그런데 오늘 드디어! 미스테리가 풀린 것이다! 짜릿했다. 오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1승을 달성한 것 같아서.


그러다 문득, 노래 속의 그녀가 궁금해졌다.


‘한유진은 왜 그런 곡을 만들었을까.’


어울리지 않는 옷.

그 말이 딱 맞았거든.

워낙 모델이 훌륭해 어떤 옷이든 괜찮아 보여도 정작 당사자는 불편해하는 그런 느낌.


오늘도 ‘나라면’ 스킬을 발동하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보고 문득 멜로디가 떠오른 건.


나는 그렇게 한유진 맞춤 옷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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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똥 철학도 철학 +1 24.09.17 140 8 13쪽
5 슈퍼라이드 +2 24.09.16 157 11 12쪽
4 진짜 내 음악 +1 24.09.15 167 13 13쪽
» ‘나라면’ 스킬 +1 24.09.14 177 12 12쪽
2 클럽 시에라 영업 재개 +2 24.09.13 214 13 12쪽
1 매혹적인 비트 +1 24.09.12 265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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