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천재의 힐링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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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유
작품등록일 :
2024.09.10 13:46
최근연재일 :
2024.09.1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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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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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조건 된다

DUMMY

“나 이거 지금 안 쓰면 죽을 것 같아······.”


오지수 작사가가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펼쳤다.


기억이란 금세 휘발되기 마련이다.

특히 이렇게 문득 떠오른 가사는 더욱 그렇다.

오래 생각 한다고 좋은 가사가 나오는 건 아니다.

곡을 듣고 떠오른 느낌을 날것 그대로 적어 내려갔다.


사각사각.

만년필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만 작업실을 채우고,


“이건 무조건 된다.”

“허.”


정확히 30분만에 오지수는 가사 하나를 뚝딱 완성했다.


종이를 받아든 박 팀장이 헤드폰을 연결했다.


가사를 눈으로 훑으며 음악에 집중했다.

과연 노련했다.

단 한번 들었을 뿐인데.

리듬에 착 감기는 가사를 기가막히게 쏟아냈다.


“이 부분 좋네요. 체크메이트, 넌 내 손안에. 근데······.”


박 팀장이 침을 꼴딱 삼켰다.


“뭐지, 박 팀장님 지금 약간 고민하는데?”

“고민은 아니고요. 좋네요. 곡이랑도 잘 어울리고.”

“아무렴 누가 쓴 건데요.”


오지수가 잽싸게 소지품을 챙기며 말을 이었다.


“더 볼 것도 없죠. 이게 딱이야. 와······ 나 진짜 오랜만에 맘에 드는 곡 만났네. 이거 분명히 된다.”


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박 팀장은 침착하게 가사만 내려다 볼 뿐이었다.


“저 가요. 연락주세요. 유진이한테도 안부 전해주시고. 서 작가한테도 곡 잘 들었다고 꼭 전해주시고요.”


오지수가 회의실을 떠난 뒤에도.

그는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있었다.


좋다, 좋은데, 진짜 좋은데······.


머리로는 오지수의 가사가 더 좋다는 걸 안다.

그런데 가슴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태윤의 가사를 보면 한유진이 무대에서 선 모습이 자연히 떠오른다.


한유진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웃는다.


오지수의 가사는 그렇지 않았다.

자꾸만 다른 가수가 떠오른다. 한유진보다 훨씬 나이 많은 섹시 콘셉의 가수가.


‘내가 왜 이러지.’


종이를 곱게 접어 다이어리에 찔러 넣은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바로 연결 됐다.


“어, 서 작가. 우리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다른 건 아니고······ 나 확인할 게 하나 있어서요.”


***


약속 시간 30분전.

투미 엔터 1층 카페에서 박 팀장을 기다렸다.


일부러 조금 일찍 나섰다.


여긴······,


‘오, 실물이 더 멋있네.’

‘왜 99%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거냐.’

‘세상에, 남자 아이돌도 붙임머리를 하네?’


별천지였으니까.


태연한 척 해봐도 요리조리 눈을 돌리게 된다.


내가 언제 이런 곳을 와보겠어.

솔직한 심정이었다.


시내 카페든, 학교든, 길거리든.

사람을 들여다 보는 걸 좋아한다.


나름대로 궁리를 하며 관찰한다.

여긴 특별한 사람이 있어서 더 재밌다.


이를테면······,


스냅백에 후드티. 작곡가나 엔지니어네. 힙합 비트가 잘 어울리겠어.

츄리닝에 질끈 묶은 머리는 아이돌 연습생인가? 상큼하다. 트로피컬 팝 괜찮겠네.

옷은 잘 입었는데 표정이 왜 저렇게 어둡냐. 차이기라도 한 것처럼. 한국식 발라드가 또 이별에는 찰떡이지.


이런 느낌?


어제 오지수 작사가가 은연중에 뱉은 말 중 인상깊은 내용이 있었다.


불특정 다수를 보고 스토리를 만들어보는 거. 그게 본인이 곡을 듣고도 캐릭터를 떠올릴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다.


나랑 비슷한데?

스토리라인이니 캐릭터니.

그런 전문 용어는 잘 모른다.

그럼에도 여기 앉아 있으니 오지수 작가가 얘기한 그 ‘캐릭터 구상’이라는 게 뭔지 조금은 느낌이 왔다.


형이랑 비슷한 사람이 많아서일까.

문득 형이 어떤 모습으로 일을 하는지도 궁금해졌고.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람을 구경했다.


“일찍 왔네요.”

“팀장님, 안녕하세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혹시 몰라서 일찍 내려왔는데. 벌써 와있을 줄이야. 시간 하나는 칼이네, 칼. 앉아요. 우리 사이에 이제 벌떡은 필요 없지.”


여러번 만나서 그런걸까.

이제 박 팀장이 더는 낯설지 않았다.

볼 때마다 밝아서 좋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여유롭고 평온해 보였다.


A&R팀이 엔터 회사에서 제일 바쁘다던데.

삶은 시금치같은 우리 형이랑은 많이 달랐다. 형도 팀장이 되면 저렇게 좀 여유로워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박 팀장이 커피 두잔을 가지고 왔다.


으으······,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작가라면 역시 아아.”

“어? 전 아닌데. 커피엔 설탕이 개념이죠.”

“응?”


주위를 휙휙 둘러봤다.

어, 저기 있네.


“저 잠시만요.”


커피를 들고 잽싸게 카운터로 다가갔다.

놓인 시럽을 왕창 뿌린 뒤 자리로 돌아왔다.


“아아에 시럽이라······ 텁텁하지 않나?”

“사약같잖아요.”

“사약?”


박 팀장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네. 엄청 써요. 으······. 이 쓴 걸 왜들 그렇게 물처럼 마셔요?”

“아직 이 맛을 모르다니. 진정한 작가가 아니네.”

“예?”

“나도 처음엔 그랬지. 커피 그런 거. 삶에 찌든 사람이나 생명수니 커피수혈이니 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그러고 있네? 이제 이거 없이 못 살아요. 잠이 안 깨.”

“설탕 넣으면 잠이 더 잘 깨요. 한 번 넣어보세요. 뇌에 탄수화물 돌아서 더 좋을 걸요?”

“······과학자세요?”


단 커피 한 잔과 쓴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우린 한참을 신변잡기를 늘어놓았다.


재밌는 사람이었다.

겸손한 듯 하면서 자기일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 내가 닮고 싶은 사람.


농담할 땐 눈이 반달처럼 휘다가도, 음악 얘기만 하면 목소리 톤부터 달라진다.


뭐랄까. 음악 오타쿠?

이 사람, 진짜 음악에 진심이었다.


“아직도 CD를 듣는 사람이 있다? 와, 나 서 작가 점점 더 마음에 드네.”

“아무래도 스트리밍은 음질이 좀 시원찮아서요.”

“스피커로? 무슨 제품?”

“제품명은 잘 모르겠어요. 30년 된 전축이랑 스피커라서요.”

“허리까지 오는 큰 스피커?”

“예.”

“옛날 스피커가 명기지. 그거 조심해요. 아랫집에서 올라온다.”


커피가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와그작, 와그작.

남은 얼음을 씹으며 박 팀장이 말했다.


“참, 가사 말인데요.”


이게 본론이었구나.

봐봐, 목소리 톤부터 달라지잖아.

낮게 쫙 깔린 목소리를 들으니 등줄기가 찌릿했다.


“좋더라고요.”


옅은 한숨이 새나오려는 걸 겨우 막았다.


뭐랄까, 꼭 숙제 검사를 맡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처음 만들어 본 곡에 처음 붙여 본 가사.


나한테는 의미가 크다.

잠깐이지만 정도 들었고.

말로만 듣던 그 번뜩이는 멜로디가 찾아온 순간이기도 했고.


이 사람들에겐 매일 하는 일이지만 나한테는 특별하다고!


그렇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안 그래도 정장 사건으로 1차 허술함을 보여줬는데. 2차 허술함을 보여줄 순 없지.


“그런데 이 곡이라는 게 참 간단하지가 않아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어떻게?”


어떻게 알긴.

형이 맨날 하는 레파토리가 그거였는데.


밤마다 퇴근하고 와서는 작곡가가 어쨌네 작곡가가 어쨌네 녹음이 어쨌네 엔지니어가 어쨌네 유통이 어쨌네······.


음반이 완성 되는 순서대로 열변을 토했으니.


이젠 달달 외울 지경이었다.


“요즘은 인터넷에 정보가 참 많으니까요?”

“그렇지. 그럼 서 작가 곡은 얼마나 진행 됐을까요?”

“뭐 진행 된 게 딱히 아직 없죠? 굳이 따지자면 10%? 곡만 나온 상태니까요.”

“정확해요. 이제 다음 스텝이 가사인데······ 혹시 협업 생각해본 적 없어요?”


아니, 잠깐만.

살짝 어려운 용어를 섞었다.

협업? 누구랑 같이 하자는 소린데?

가사를 다른 사람이 쓴다는 건가?


이럴 땐 넘겨짚을 필요는 없었다.

그랬다간 괜스레 서로 엉뚱한 소리만 하다가 제 멋대로 해석 될 여지가 있으니까.


그래서 물었다.


“가사를 다른 분이 써주신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그으···렇죠?”

“흐음······.”


생각을 정리했다.


솔직히 크게 상관은 없었다.

죽을똥 살똥 머리 싸매고 뽑아낸 건 맞다.

그런데, 그게 뭐?


뭐든 차근히 배워과는 과정이 있는 거다.

괜히 강짜놓으며 ‘감히 나의 예술 세계를 무시해?!’ 한다는 건 고집이 아니라 아집이 될 수 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투미 엔터의 시스템을 익히고 싶었다.


밥만 먹고 이것만 하는 척척박사님이 모여 내린 결론은 허투루 들을 수 없는 거다.


그래서 대답했다.


“상관 없는데요.”

“상관 없어요? 왜요?”


아우, 깜짝이야.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박 팀장이 다 녹아 물이 된 컵을 들이켰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커피 한 잔 더 사올까요?”

“아니, 아니. 괜찮아요. 앉아요. 그보다. 왜요? 내가 쓴 곡에 내 가사. 보여주고 싶잖아요. 패기가 있어야지. 안 된대도 좀 매달려보고.”

“꼭 그래야 하나요?”

“작가는 자존심을 먹고 사니까?”

“저는 좀 다른데요. 뭣도 없는 게 자존심만 부려봤자 웃음만 사죠. 어련히 곡에 잘 맞는 가사로 세팅해 주시려고요.”

“허어······.”


이번엔 내가 녹은 얼음물을 들이켰다.

미지근할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직 시원하네.


“저는 다 괜찮습니다. 곡이 잘 팔릴 수 있는 방향이라면요. 다만.”

“다만?”

“가수는 절대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멜로디는 몰라도 비트는 저 절대 수정 못해요.”

“비트를 신경쓰는 편?”

“제일 자신 있는 게 비트거든요. 자존심 지키라고 하셨죠. 저는 제 방식으로 자존심 지킬게요. 어어? 왜 이러세요.”


뭐지?

갑자기 박 팀장이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그 표정 뭔데.


“나 서 작가 진짜 마음에 든다. 딱 기다리고 있어요. 결심했어. 내가 섭섭하지 않게 다 해결해 줄테니까. 까짓거 한 번 들이박아보지, 뭐.”


***


뭘 들이박는다는건진 모르겠지만.


그 표정이 너무나 결연해서 딱히 대꾸를 못 했다.


나야 좋지 뭐.


형이 그랬다.

곡이 픽스 되는 건 하늘의 뜻이라고.


내 곡을 믿고 한유진의 표현력을 믿을 뿐이다.


이럴 땐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된다.


“크으······, 때깔 좋네.”


퇴직금인지 보너스인지 모를 천만원으로 지른 장비들이 속속 도착했다.


중고지만 깨끗하게 관리 된 장비들이었다.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DJ를 배우는 이들이 많다. 그냥 보면 쉬워보이기도 하고.


또 신기하게 그런 사람들이 여유가 있다.


비싼 장비 잔뜩 사놓고 금세 중고 매물로 내놓는다. 뭐 나야 개이득이지.


여하튼.

판만 좀 긁어주고, 노브 돌리는 척만 하면 다 되는 줄 아는데··· 틀렸다.


한끗 차이로 맛이 달라진다.

박자 쪼개는 것도 나름 노하우가 있다고 해야 할까.


의외로 디제잉은 그리 재밌는 놀이가 아니다. 재미삼아 클럽 직원 형들 몇 번 가르쳐준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연습한만큼 실력이 안 늘더라.


이게 왜 안 되지?


“이야··· 비싼 장비가 좋긴 하네.”


첫 번째 트랙을 올렸다.

더불어 내 손도 터닝테이블을 향했다.


비트 매칭을 시도했다. 조금씩 맞추어가는 과정은 꼭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다. 한 조각이라도 어긋나면 모든 게 틀어져 버리니까.


손 끝에 느껴지는 레코드의 질감.

페이더를 조절할 때마다 변하는 소리의 흐름.


모든 게 내 의도대로 움직인다.


이게 내가 디제잉을 좋아하는 이유다.


“Hold the Beat.”


흥에 취해 시그니쳐 사운드도 흥얼거려본다.


방구석 디제잉이지만 꽤 마음에 들었다.


바쁘다.

루나틱 비트 첫 공연까지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


며칠 후.


태윤이 박민석 팀장을 찾았다.


곡이 좋네, 딱이네 하며 당장 작업에 들어갈 것처럼 굴더니만.


내부 회의네, 스케쥴이네 어쩌고 하며 차일피일 미루면 어쩌자는 건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이게 태윤의 방식이었다.


나름의 묘수를 들고 투미 엔터를 방문한 태윤은,


“그러니까, 그 소리는 설마. 두 버전으로 녹음을 받아 보잔 소리예요? 한유진한테는 누구 가사인지 얘기 하지 말고?”


끄덕끄덕.

태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거. 부를 사람이 표현하는 것보다 정확한 게 어딨다고.


“녹음실은 이렇게 막 갑자기 쓸 수 있는데가 아니에요.”

“그런가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A&R에서 하는 일엔 업무 스케줄 관리도 포함 되어 있다는 거.


“근데, 서태윤 작가님.”

“네?”

“나는요. 그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오?”

“내가 누구? 투미 엔터 팀장. 한프로 정도 빼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한프로도 안 걸릴걸요? 한유진 씨면 한 시간 안에 두 버전으로 부를 수 있다에 한표.”


짝-

두 사람의 손바닥이 공중에서 경쾌하게 부딪혔다.


박민석 팀장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작가의말

귀한 걸음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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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슈퍼라이드 +2 24.09.16 168 11 12쪽
4 진짜 내 음악 +1 24.09.15 176 13 13쪽
3 ‘나라면’ 스킬 +1 24.09.14 189 12 12쪽
2 클럽 시에라 영업 재개 +1 24.09.13 226 13 12쪽
1 매혹적인 비트 +1 24.09.12 278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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