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가 여신에게 잘못 걸려서 소원을 들어줘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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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몬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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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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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아기와 은행나무 4

DUMMY

채운이 살벌한 기운을 내뿜던 그때 갑자기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우리가 요 며칠 방문했던 산에서부터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서서히 마을까지 이동한 먹구름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 아니 갑자기 웬 비가!”


비는 삽시간에 장대비로 변해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그러자 집을 부수던 일행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하나둘씩 퇴장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 얘들아 돌아 가자!”


나는 헬멧 쉴드를 내리기 전 두 아이에게 빨리 오토바이에 오르라는 손짓을 했다. 채운이 꿈쩍하지 않고 떠나는 남자들 뒷모습을 노려봤다.


“채운, 뭐해? 이러다가 감기···! 아니, 아무튼 얼른 가자!”


나무령이 감기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계속 비를 맞게 할 순 없었다. 억지로 채운의 손을 잡아끌어서 오토바이에 태우고 당산나무까지 빠르게 오토바이를 몰았다.



***



당산나무에 도착한 뒤 나는 아이들을 나무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한 뒤 산아이를 불렀다.


“산아이.”


[네.]


“지금 비에 젖었으니까, 세 명이 갈아입을 옷, 하나는 여자 아이꺼. 그리고 수건하고 파전, 여러 가지 전하고 밥, 등유 난로 만들어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산아이가 대답 후 몇 분 안 되어 내가 요구한 것들이 전부 내 앞에 튀어나왔다.


“앗! 비 맞겠네!”


나는 나무문을 열어 놓고, 물건들을 빠르게 옮겼다.


침울한 얼굴로 앉아있는 뱀아기와 심통이 난 얼굴로 한쪽 턱을 괴고 앉아있는 채운을 불렀다.


“얘들아! 이리 와 봐.”


아이들이 앉은 곳 근처에 난로를 내려놓고 먹을 것과 옷가지는 식탁에 내려놓았다.


“아차! 채운아, 여기서 난로 켜도 돼?”


채운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내 힘이 깃들어 있다. 바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채운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다가, 두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놀랍게도 채운은 전혀 비에 젖지 않은 모습이었다. 반대로 뱀아기는 옷이 축축하게 젖어서 덜덜 떨고 있었다.


‘역시 나무령이라서 물리적인 영향을 받지 않나보네.’


나는 말 없이 등유 난로의 기름통 뚜껑을 열고 등유를 부었다. 스위치를 켜자, 불이 들어왔다. 잠시 뒤 넓은 나무 안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새 옷을 건넸다.


“채운아, 잠깐 뒤돌아서 있을래? 뱀아기랑 오빠가 옷 좀 갈아입어야겠어.”


“왜?”


“어? 그야···넌 여자애니까?”


내가 당황해서 설명하자, 채운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왜 여자애인데? 나는 성별이 없는데?”


“엉? 아니 난 네 모습이 여자애 같아서···.”


그도 그럴 것이 채운은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고, 하나로 길게 땋은 머리 위에 배씨댕기를 하고 있었다.


나와 뱀아기를 빤히 쳐다보는 채운을 감당할 수 없던 나는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하긴 뭐 어차피 나무령이면 나무랑 다르지 않겠지.’


나는 젖은 배달조끼와 배달복을 전부 벗고 티셔츠와 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뱀아기가 젖은 옷을 벗는 것을 도왔다. 속곳만 입은 뱀아기의 몸 전체가 자잘한 딱지로 가득 차 있었다.


할 말을 잃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모습이었다고 하니, 더더욱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계속 쳐다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마른 수건으로 뱀아기의 몸 구석구석 닦아준 뒤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뱀아기 옷도 내 옷과 비슷한 티셔츠와 면바지였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도 덜덜 떠는 뱀아기를 난로 앞에 데려와서 앉혔다. 그리고 음식을 가져왔다.


“좀 먹어 봐. 배고팠지? 채운아, 너도 얼른 먹어.”


“응.”


채운은 부루퉁한 목소리로 답했다. 뱀아기는 덜덜 떠는 손으로 겨우 파전 하나를 쥐더니 조금씩 베어 물었다.


나도 배가 고파서 전을 집어먹었다. 그렇게 우리가 쉬고 있을 때 밖은 강풍이 불고 비가 계속 쏟아졌다.


비는 밤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고, 며칠 동안 세차게 퍼부었다.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장마인가? 웬 비가 이렇게 많이 내려? 이러다가 홍수 날 것 같네.”


살짝 나무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 내가 그렇게 말하고 며칠 뒤 정말로 마을에 홍수가 났다.



***



근처의 강에서 물이 범람해 마을을 뒤덮었다. 논과 밭은 물에 잠기고 마을의 나무들이 뽑히고 가축들이 물에 휩쓸려 떠다녔다.


기와집과 초가집 가리지 않고 물에 잠겼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그조차도 여의치 않아서 지붕 위에 앉아있거나 높은 곳이 보이면 그 위에 올라서 꼼짝 못 하고 있었다.


밖에서 지옥같은 상황이 펼쳐지자, 나무 위에서 마을을 살피던 뱀아기는 안절부절못했다.


“어떡해? 마을 사람들이! 엄 어르신하고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 아이들이 곧 물에 떠내려가겠어.”


발을 동동 구르던 뱀아기가 채운에게 부탁했다.


“나 좀 도와줘. 채운아, 우리 동무지, 그지?”


“그렇지.”


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사람들을 여기에 들어오게 해줘. 다 죽을 것 같아.”


뱀아기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채운에게 매달렸다. 채운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 저들은 너의 집을 부수었다. 내 동무를 괴롭혔던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여기로 들일 순 없어.”


나도 동감이었다. 천재지변으로 목숨을 잃는다면 어쩔 수 없다. 채운의 말처럼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니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뱀아기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울부짖었다.


“그래도 그것이 아니야! 나 같은 업둥이를 여기서 살게 해주셨어! 특히 엄 어르신은···. 나를 안 도와주면 나라도 나가서 살릴 거야!”


뱀아기가 뛰쳐나가려 문을 열자, 물이 새어 들어왔다. 깜짝 놀란 나와 채운이 황급히 따라가서 문을 막았다.


“이러지 말거라! 네 말은 알아들었다! 도와주겠다.”


채운은 내키지 않은 듯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뱀아기는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는 채운의 말에 기뻐했다.


“참말이야?”


“그래. 동무의 말이니까 들어주겠다.”


“고마워, 채운아!”


뱀아기가 채운의 두 손을 붙잡고 안도했다. 채운이 두 눈을 감고 뱀아기가 무사히 나무 밖으로 나가도록 길을 터줬다. 나무문이 열리고 기다란 배가 나타났다. 뱀아기가 배 위에 올랐다. 나도 함께 올랐다.


“어쩔 수 없지. 같이 가자.”


“고맙다, 동무!”


뱀아기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배는 저절로 움직였다. 마을을 한 바퀴 돌며 물에 떠내려가지 않은 사람들이 보이면 배에 태웠다. 나와 뱀아기가 사람 한 명 한 명 배에 태워서 배 안이 금세 가득 찼다.


어느 기와집 지붕 위에서 감투를 쓴 나이 많은 남자와 그 식솔들이 보였다.


“엄 어르신!”


뱀아기가 소리쳤다.


“아니, 뱀아기야. 어인 일인 것이냐?”


“어서 여기 타시어요! 마님과 도련님들도 빨리 타시어요!”


“우리는 괜찮다. 이미 마을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지 않느냐.”


엄 어른은 물에 젖은 처참한 모습으로 배에 탄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마을 사람 누구도 그에게 어서 타라고 양보하지 않았다.


뱀아기는 울부짖었다.


“제가 어찌 어르신을 모른 척하겠소! 그동안 제가 마을에 살도록 도와주셨잖소! 어서, 어서 타소!”


엄 어른의 가족들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엄 어른은 부인과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부인, 아이들과 먼저 타시오.”


“···하지만 어찌.”


“어허! 가장의 말을 따르지 않을테요?”


그의 가족은 마지못해 차례로 배 위에 올라탔다. 뱀아기가 엄 어른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였다. 거센 물살이 엄 어른을 덮쳤다.


“어르신!!”


뱀아기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흙탕물과 함께 엄 어른의 모습이 사라졌다. 물속에 잠겼다가 잠깐 얼굴이 내밀어졌다. 꼿꼿이 쓰고 있던 그의 감투가 벗겨져서 빠르게 떠내려갔다.


“아아악! 서방님! 서방님!”


“아버님!!”


엄 어른의 가족들이 기절할 듯이 놀라 외쳤다. 엄 어른이 나뭇가지 하나를 겨우 붙잡고 가족들에게 손을 내뻗은 그때 세차게 밀려오는 물살에 엄 어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배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부인이 기절했다. 갑자기 뱀아기가 물속에 뛰어들었다.


“뱀아기! 안 돼!!”


내가 뱀아기를 불렀지만, 물살이 거셌다. 뒤따라서 뛰어내릴 용기도 나지 않았다.


‘어떡한다?’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물속에 뛰어드는 건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뱀아기가 살린 사람들을 계속 배 위에 둘 수도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산아이!”


[네.]


바지 뒷주머니에 꽂힌 휴대전화에서 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내가 탄 배의 사람들을 무사히 당산나무 안으로 이동시켜줘. 그리고··· 뱀아기가 있는 곳까지 날 데려다줘.”


[알겠습니다.]


휴대전화에서 빛이 나더니 순식간에 사람들이 사라졌다. 동시에 나는 배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숨이 막혔다. 흙탕물이 내 코와 입, 목구멍에 가득찼다.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해리포터처럼 아가미풀이라도 먹게 해달라고 할 걸 그랬나.


헬멧 쉴드 바깥 풍경이 흐릿하게 보였다. 짙은 흙탕물속에서 내가 입혀준 멜란지 그레이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를 입은 뱀아기가 가라앉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엄 어른도 있었다.


‘안 돼! 구해야 되는데!’


내 마음속 바람과 달리 혼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위해 손을 뻗었다. 차라리 꿈이라도 깨버리길 바랐다.


[뱀아기야, 뱀아기야.]


그때 낯선 여자 목소리가 귀가 먹먹한 가운데 들려왔다. 담담하면서도 성숙한 어른의 목소리였다.


거친 물살 소리가 사라지고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나와 뱀아기를 제외하고 모든 것들이 한순간 움직임을 멈춘 상태가 됐다.


뱀아기 앞에 하얀 구에 둘러싸인 여자 형체가 보였다.


‘누구지? 어?’


코로 숨을 들이켰다. 불편하지 않았다. 공기를 들이마시듯이 숨쉬기 편했다. 내 상태를 살폈다.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물속에 떠 있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뱀아기야, 착한 뱀아기야. 너의 소원 들어주마. 소원을 말해보렴.]


뱀아기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누구세요?”


[나는 봉래산 신령이다. 착한 뱀아기, 너의 소원 들어주마. 너를 힘들게 한 사람들 다 벌을 내려주랴?]


뱀아기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양반이 되게 해주랴?]


또 고개를 저었다.


[그럼, 무엇이 네 소원이더냐?]


“모두를 구하고 싶소. 그리고···.”


신령이 뱀아기를 지켜봤다. 뱀아기는 잠시 생각하는듯하다가, 답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소. 마을 사람들을 늘 지켜주고 싶소. 언제나 사랑받고 싶소.”


[······.]


말이 없던 신령이 결심한 듯이 답했다.


[어떤 모습이라도 괜찮겠느냐?]


“···네.”


[알겠다. 너의 소원을 이뤄주마.]


여자의 말이 끝나고 환한 빛무리가 물속 전체를 비췄다. 눈부셔서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죽는 걸까?


두려움에 몸을 떨기보다, 흐름에 몸을 맡겼더니 한결 편안해졌다.



***



다시 두 눈을 떴을 때 나는 익숙한 공간이 보여서 의아해 했다.


“깼느냐?”


여신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신의 응접실에서 태연히 책을 읽고 있었다.


“엥?”


“잘 돌아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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