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가 여신에게 잘못 걸려서 소원을 들어줘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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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몬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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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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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아기와 은행나무 1

DUMMY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몸을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로 비좁은 공간에 꽉 끼인 상황이었다.


‘어디로 온 거지?’


눈을 떴다.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을 찾기 위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누군가에게 납치된 걸까? 열심히 머리를 굴려도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몸을 움직여봤다.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것에 몸을 부딪쳤다. 소용이 없었다.


“끄응.”


답답한 마음에 신음소리를 냈다. 갑자기 익숙한 자연의 냄새가 움직일 때마다 들숨과 함께 콧속에 감돌았다.


‘나무? 흙?’


어린 시절, 숲 체험학습을 갔을 때 사슴벌레를 잡기 위해 썩은 나무껍질을 들썩였다.


그때 맡았던 향과 비슷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코와 귀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파르르르. 삐그덕.


간간이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이 팔랑거리거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 상황이냐, 진짜···.’


분명한 것은 나는 지금 서 있는 상태였다. 내 몸이 들어갈 공간이라면 길쭉한 통로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발을 뻗을 수 있는 만큼 쭉 내뻗었다.


물컹. 무언가 푹신하지 않은 기분 나쁜 감촉이 발끝에 닿았다. 놀라서 발을 오므렸다.


내 발에 닿은 그것이 꿈틀거렸다.


‘움직인다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그대로 멈춰있어야 했다. 그러자 그것이 부스럭거리며 움직였다.


“어? 이건 여신의 기운인데? 넌 누구냐?”


앳된 아이의 목소리가 발밑에서 들렸다.


“핫!”


황급히 발을 떼려고 몸부림쳤다.



“소용없어. 정체를 밝히면 꺼내주지.”



아이는 밑에 깔려있음에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여유를 부렸다.


그 순간이 또 왔다. 내 이름을 말해야 할지, 현재 신분을 밝혀야 할지 찰나의 순간 망설이는 나였다.


“나는···.”


아이가 대꾸하지 않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산···신령이다.”


“네가?”


“그래, 내가.”


“왜?”


“어··· 왜, 왜라니?”


답을 하고 나서도 어이가 없었다.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했다.


“좋아! 산신령이란 말이지? 꺼내줄게!”


아이가 즐거운 듯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진짜?”


“응! 가거라!”


아이가 외치자, 누가 뒤에서 힘껏 밀어버린 것처럼 나는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으아악! 아이쿠!”


하늘에서 떨어질 줄 알고 긴장했던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지면을 보고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휘유, 죽는 줄 알았네!”


크고 작은 돌멩이가 박혀있는 흙바닥에 서 있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흔한 시골 산천 풍경이 보였다. 그리고 등 뒤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뿌리목 부근은 반원 형태로 도타운 손바닥 같았다. 거기에서 나뉜 여러 갈래 두꺼운 나무줄기 예닐곱 개가 손가락처럼 직선으로 뻗어 나가 자라있었다.


족히 2미터는 넘어 보이는 나무였다. 무성한 초록잎 사이마다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 천이 길게 묶여있었다. 나무 둘레에는 수십 개의 흰 문종이를 엮은 금기줄이 쳐져 있었다. 나무 앞에는 작은 돌탑이 쌓여있었다.


‘당산나무인가?’


오방색 천과 금기줄이 둘러져 있기에 부정적인 선입견이 들었다. 무속적인 것은 어쩐지 꺼려졌기에.


나무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나무 꼭대기부터 밑동까지 찬찬히 살펴봤다.


방금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어린아이는 누구였을까.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지?”


막막했다. 모든 사물이 생생해서 믿기지 않지만 나는 지금,


꿈속에 있다.


소원기록부를 펼쳐 무작위로 종이에 손을 댔더니, 책이 커짐과 동시에 그림이 그려졌다.


오늘 뽑은 곳의 장에는 한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얀 무명옷을 입은 아이는 괴기스러운 검은 나무 아래에서 팔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어두운 색채의 그림에 잘못 뽑은 건가 싶어서 여신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신은 표정 변화 없이 무심한 눈빛으로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가거라.”


“뭐? 나 혼자?”


“나는 할 일이 많다. 방법을 알려줬으니 너 혼자서 할 수 있을 게다.”


“미쳤어? 내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랜덤으로 떨어져서 뭘 어떻게 하라고! 가이드라인을 줘야 할 거 아냐, 가이드라인을!”


흥분해서 침을 튀겨가며 말하는 나에게 여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철(凸)목걸이와 산아이가 있지 않느냐. 그것들을 이용해서 충분히 해낼 것이다.”


“아니 그래도 적어도 옆에서 알려줘야 나도 적응하지.”


“걱정할 것 없다. 혼자 해 보거라. 무엇보다, 너는 내 영력을 갖고 있지 않느냐. 수 천 년 동안 쌓은 것이다. 어딜 가도 너를 해칠 이는 없을 것이다.”


여신은 신들 중에서도 뛰어난 여신이라고 했었다. 그 말에 따르면 그럴 법도 하겠지만, 낯선 시대에 혼자 가는 것은 두려웠다.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도망치고 싶지만, 여신과 반강제로 꿈속 여행을 계약한 지금 내심 흥미롭기도 했다.


“어서 가거라, 시간이 없다. 돌아올 때는 산아이에게 소원기록부를 불러 달라고 하거라.”


“정말 혼자 가야 하나?”


아무 말 없이 침묵으로 수긍하는 여신이었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심정으로 여신의 응접실에 주차된 오토바이에 올랐다. 또 배달할 때 복장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왜 나는 배달복 차림으로 꿈속에 나오는 거야? 옷을 바꿀 순 없어?”


“그것은 네가 의식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고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이 반영된 것이다. 배달복과 오토바이. 네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습관과 같은 것이 아니더냐? 너와 일체가 된 것들.”


“그건 그렇지···.”


대꾸를 하면서도 어쩐지 씁쓸했다. 전업이라고 하지만, 배달을 하면서 거의 매일 같은 옷을 입었다. 막 성인이 됐을 때처럼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고 멋을 부려봤던 게 언제였더라? 옷을 쇼핑하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나도 참. 이십 대가 다 끝나 가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냐···.’


통장에 돈이 모이면 기뻤다. 물론 모이기가 무섭게 엄마에게 주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 동창들의 SNS를 염탐하면 나만 불행하게 사는 것 같았다.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돈 모아서 빨리 배달 일을 관두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가도 누군가 배달을 ‘딸배’라고 조롱하면 욱하기도 했다.


‘어느새 이 직업에 깊이 스며들어 버렸나봐. 벗어날 수 없는 건가?’


“쉽지 않았을 게지. 오랫동안 한 가지를 포기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


갑작스러운 여신의 말에 나는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수 천 년 동안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쉼 없이 달려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소원 이뤄주기를 하는 것도 마냥 순탄히 흘러가진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남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여신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지난 일에 대한 회의만 엿보일 뿐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면 좋겠다만, 그렇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신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싶다가도 천계의 신이 됐을 때의 나를 꿈꾸며 버틸 수 있었다.”


여신의 눈이 반짝였다. 지상신이 아닌, 천계신이 되고 싶은 꿈을 오랫동안 잃지 않고 전진해온 여신이 대단해 보였다. 그런 여신의 꿈을 내가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때 느꼈을 좌절감은 나에게 소원기록부 업무를 시키는 것만으로도 풀리지 않을 것이다.


“옷을 바꾸고 싶느냐? 그렇다면 내가 바꿔주도록 하겠다. 다음에는 또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만 말이다. 다만···.”


여신이 품에서 부채를 꺼냈다. 헬멧 쉴드를 올린 내 얼굴부터 발끝까지 살피면서 부채를 부칠 자세를 취했다. 맑고 까만 여신의 커다란 눈망울이 내 모습을 훑어보자 기분이 이상했다.


“그 어떤 시대에서도 이 모습을 한 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네 모습 그대로 특별하고 가치 있다.”


“그게 무슨?”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다는 뜻이다.”


여신의 말에 울컥했다. 칭찬인 걸까?


“어떤 옷으로 바꿔주면 되겠느냐?”


“괜찮아. 그냥 이대로 갈게.”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하긴, 어떤 이는 나보고 무사 같다고 했었다. 어차피 꿈속에서 하는 일, 어떤 복장이든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스로틀을 쥐었다.


“산아이.”


[네.]


“출발해.”


[네. 손잡이를 꽉 잡으십시오.]


스마트폰 거치대에 걸린 휴대전화에서 신의 언령 어플 ‘산아이’를 불러 출발했다. 책속으로 내몸이 전부 흡수되기 전 여신에게 인사했다.


“···다녀올게.”


“그래.”


등 뒤로 여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고 세상이 먹먹해졌다.



***



소원기록부의 그림에는 작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찾아야 이번 소원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문제는 아이가 누구인가였다. 당산나무 근처에서 들었던 어둠 속의 목소리가 주인공일까? 알 수가 없었다.


“산아이.”


여신의 말대로 산아이를 활용해보기로 했다.


[네.]


“지금 여기 어디야, 어느 시대야?”


[강원도 영월, 1580년 조선시대입니다.]


“진짜?”


[네.]



산아이의 말을 듣고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나무는 마을 어귀에 홀로 동떨어져 있었다. 마을 입구를 따라 내려가는 길부터 초가집이 하나둘씩 지어져 있었다.


넓게 펼쳐진 논과 밭 뒤로 높지 않은 짙푸른 산의 뚜렷한 등성이가 멋스럽게 둘러싸여 있었다. 산은 마을과 꽤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도로나 현대 건물이 보이지 않을 뿐 21세기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낯설지 않았다. 군데군데 모여있는 초가집만이 조선 시대 분위기를 풍겼다.


‘산 근처 돌탑에라도 가야 하나?’


산에 가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산까지 가려면 마을을 거쳐야 했다. 날아가는 것은 익숙지 않았기에 지면을 달려야 했다. 오토바이를 소환해서 타고 마을에 들어갔다.



***



민가가 모인 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사내 아이들 몇이 모여서 시끄럽게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예나 지금이나 싸우면서 크는 건가.’


나는 피식 웃었다. 가던 길을 지나가려는 그때였다.



“얼레리 꼴레리!”


“뱀새끼가 왜 나왔어? 눈에 띄지 말어!”


“대차게 혼내야 안 되겠어?”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 서너 명이 자신들보다 왜소한 아이 하나를 둘러싸고 괴롭히고 있었다.


“···미안혀. 엄 씨 어른댁에 일감 받으러 갔다. 진짜다.”


왜소한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작은 몸을 웅크리고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봤다.



‘조선시대 일진이야, 뭐야?’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오지랖을 부릴까, 말까? 상대는 내 키의 절반도 안 되는 초딩들이다. 승산이 있다.


뿅! 뾰옹뿅뿅.


오토바이 크락션을 울렸다. 운전 중일 때 소음 상한을 넘지 않는 선에서 귀엽게 울리는 소리였다. 일부러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뭐야, 니 방구 뀌었나?”


“아니다! 니가 뀐 거 아니냐?”


위협하던 아이들이 킁킁 콧소리를 내며 누가 방귀를 뀌었는지 서로 물어봤다.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싸우지들 말고 저리 비켜.”


“아바이, 누구시요?”


한 아이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뒷걸음질 쳤다.


“나는 산신령이다. 친구를 괴롭히는 너희들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왜 그런 유치한 대사를 읊었는지 모르겠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할 법한 영웅 심리가 발동한 걸까.


내 말에 아이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는지 잠시 놀라하다가, 슬금슬금 도망쳤다. 그리고 한 아이만 그 자리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놀란 아이 곁에 다가가서 안심시키려던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얀 무명옷 사이로 드러난 손등과 얼굴 전체가 거무튀튀한 딱지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오랜 가뭄에 쩍쩍 갈라진 땅과 같았다.


‘뱀 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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