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가 여신에게 잘못 걸려서 소원을 들어줘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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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몬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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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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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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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아기와 은행나무 5

DUMMY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갑을 벗고 손으로 얼굴을 꼬집었다.


“아얏! 진짜인데?”


여신이 그런 나를 위아래로 내려다보고 한심하단 듯이 혀를 찼다.


“여기 있다.”


서안 위에 무언가를 탁 내려놓는 여신이었다. 노란 은행잎이었다.


“이건···?”


“봉래산 신령에게 받아왔다. 네놈이 기절하는 바람에 내가 쫓아가서 받아왔느니라.”


“뭐야, 그럼 나만 개고생한거야?”


억울했다. 홍수 속에 빠져 곧 죽을 뻔했는데도 여신은 구하러 오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진 않다. 네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소원 이뤄주기를 해결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과거에는 내가 봉래산 신령을 협박했었다.”


“뭐?”


“신령으로 부임한 신입이었지, 채운 그 아이는. 신령은 첫 소원을 잘 이뤄줘야 고을 산에 정착할 수 있다. 채운은 부임한 지 오십 년이 되도록 소원 이뤄주기를 해내지 못했어. 그래서 나의 소원기록부에 해묵은 미해결 소원만 하나 더 늘었지.”


“그게 가능해?”


내가 놀라서 되묻자, 여신은 서안 너머 연못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소원을 비는 자들이 많았기에 시도는 했을테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원이 허탕이 되면 이뤄주지 못한 것과 같다. 채운은 미숙했지. 본체가 학이다. 학으로 오랫동안 지내다가 수행한 덕분에 봉래산 신령이 됐지. 모습은 아름답지만, 업무 경험이 적고 아이 같기만 하니, 원. 쯧쯧.”


여신이 혀를 찼다.


“그래서 내가 억지로 들이밀었다. ‘봉래 채운(蓬萊彩雲)’으로 불리면 무엇하겠느냐? 실적 하나 없는 신령 때문에 내가 천계신이 되는 기간이 길어졌다. 그대로 두고 볼 순 없었지.”


나는 묵묵히 여신의 얘기를 경청했다. 여자아이 모습의 채운이 봉래산 신령이었단 사실을 알게 됐다.


“그대로 미해결 소원으로써 소원기록부에 기록해두었다만, 내 입신을 위해 해결해야만 했으니. 자, 이제 나에게 해결한 소원을 영력으로 되돌려다오.”


“어떻게?”


여신이 서안 위의 은행잎을 내밀며 말했다.


“우선, 봉래산 신령의 소원을 이룬 결과물, 이 은행잎을 철(凸)목걸이에 흡수시키거라. 그리고 영력을 나에게 주면 된다.”


“아···.”


나는 여신의 말에 따라 은행잎을 철 목걸이 가까이에 댔다. 그러자 철 목걸이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와서 은행잎을 감싸더니 흡수했다. 잎이 흡수된 뒤 철 목걸이의 푸른 빛이 직선으로 내뻗어 여신의 목에 걸린 요(凹)목걸이에 닿았다.


푸른 빛의 영력을 받은 요 목걸이가 붉은빛으로 한동안 빛나더니 영력을 다 받고 빛이 사라졌다.


요 목걸이 장식물을 손으로 매만지던 여신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다 된 거야?”


“그렇다.”


할 일을 마친 내가 두 다리를 뻗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느냐?”


“···그렇긴 하지. 뱀아기가 어떻게 됐는지 제일 궁금해.”


“그럼 이제 철 목걸이를 만져 보거라. 그리고 네가 궁금한 것을 속으로 말해보아라.”


“아!”


나는 철 목걸이를 어루만지고 속으로 빌었다.


‘그들의 미래를 보여줘. 어떻게 살았는지 보고 싶어.’


마음속으로 딱지가 많은 뱀아기의 환한 얼굴을 떠올렸다. 손으로 몇 번 철 목걸이를 어루만지자 머릿속에 장면들이 무작위로 빠르게 떠오르다가, 영상을 켠 것처럼 펼쳐졌다.



***



노란 은행잎이 무성한 거목 앞에서 각기 다른 한복 차림을 한 사람 여럿이 모여서 제를 지내고 있었다.


나무 앞에 제사상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감투를 쓴 나이 많은 사람이 술을 올리고 있었다. 그 뒤에서 평민 옷차림인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대표로 술을 올리는 사람 얼굴이 낯익었다.


‘엄 어른?’


제가 끝나고 마을 사람들이 상을 치우는 중에도 엄 어른은 나무를 향해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 바라보다가 바닥으로 시선을 내려뜨렸다.


“나리 마님, 이제 가셔야지요. 가을바람이 쌀쌀합니다.”


평민 옷차림의 남자 한 명이 엄 어른을 걱정했다. 그의 얼굴도 낯익었다. 뱀아기의 멱살을 잡았던 사람이었다.


‘저 인간이 왜 나타나? 주먹 마렵다.’


두 눈을 감은 상태로 나는 이를 갈았다.


“알겠다. 하지만, 오늘은 뱀아기가 떠난 지 1주기가 되는 날이 아니더냐? 우리 마을 사람들 목숨을 구한 은인이다.”


“그렇지요. 지난날 그 아이에게 저질렀던 무례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뱀아기는 죽었다. 안타까웠다. 그 작은 몸으로 자신을 홀대한 사람들을 살리고 떠난 아이였다.


‘바보같은 녀석. 하아···. 부디, 좋은 곳으로 갔길 바라.’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다음 장면을 살펴봤다. 다행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뱀아기를 위해서 제를 지내니 마음이 놓였다.


장면이 잉크가 물에 번지듯이 흐물흐물해지더니, 다른 장면으로 바뀌었다.


낯설지 않은 현대식 울타리가 빙 둘러져 있고, 안내문 간판이 울타리 앞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울타리 안에 낯익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간판에 쓰인 글을 살펴봤다.


‘천연기념물 제76호. 소재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은행나무길. 이 나무는···나이는 약 1,000년(최대 1,200년)이상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의하면···신령스러운 나무로 여겨···.’


“와아! 아빠! 이 나무 좀 봐요. 엄청 커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반팔 티셔츠 차림의 남자아이 한 명이 푸른 잎이 무성한 은행나무를 올려다봤다.


“녀석, 매번 자동차 안에서만 보다가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네! 할아버지가 이 나무 얘기해주셨어요. 조선 시대 때였나? 마을 사람들 목숨 구한 뱀아기란 분이 여기에 잠들어서 오랫동안 마을을 지켰대요!”


“그래, 아빠도 어릴 때 들었단다. 그 뒤로 이 나무에는 벌레가 없고, 아이들이 올라갔다 떨어져도 다치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할아버지 집에 들어가기 전에 나무 신령님께 인사드리자.”


“네!”


아버지와 아들은 나무 앞에 멈춰 서서 두 눈을 감고 합장했다.


“뱀아기 신령님,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입으로 소리 내어 기도했다.


그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경운기를 끄는 노부부가 지나가다가 경운기를 멈춰 세우고 알은척했다.


“어이, 엄 선생! 방학이라서 아들이랑 같이 내려왔소? 엄 어른 뵈러 오셨소?”


기도하던 남자가 서둘러 허리를 굽히고, 노부부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셨죠?”


“그럼, 그럼. 아들도 엄 선생 닮아서 똑똑하게 생겼네. 어서 가보소.”


“예.”


노인이 다시 경운기를 운전해서 가던 길을 갔다.


엄 선생으로 불린 남자가 아들과 함께 은행나무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천천히 마을로 걸음을 내디뎠다.


아마도 엄 어르신으로 불렸던 노인의 자손인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은행나무에서 어떤 형체가 불쑥 나타났다.


말끔한 하얀 옷을 입은 작은 아이였다. 몸에 붙은 딱지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뱀아기!’


반가웠다. 뱀아기가 빙긋빙긋 웃고 있었다. 뱀아기는 엄 선생과 그의 아들이 마을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뱀아기가 다시 나무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 장면을 끝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



“그 뒤로 채운도 그 은행나무에 머물지 않았다. 자신의 궁을 마련해 봉래산 꼭대기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럼 뱀아기는 원귀가 된거야? 아님-”


“나무의 령(靈)이 되었다.”


“그렇구나.”


여신이 따뜻한 김이 나는 찻잔에서 차를 음미하다가, 말을 이었다.


“당산나무로 불렸던 은행나무의 령이 되어 오랫동안 마을을 지켰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신성한 존재로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지. 그것이 그 아이의 소원이었다.”


“그래서 천연기념물도 됐구나.”


어려워 보였던 소원 들어주기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여신이 따라주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나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진짜 왜 나 혼자 보냈던 거야?”


“말하지 않았느냐, 일이 있었다고.”


“그건 그렇지만.”


“···손님이 와 있다.”


“손님?”


내가 궁금해서 묻자, 여신이 응접실 한쪽을 바라봤다. 가운데가 뚫려있는 벽이었다. 나무와 꽃들이 늘어선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점으로 보였던 형체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낯선 사람 두 명이 나란히 여신의 응접실로 들어 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붉은 커트 머리에 하얀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다. 눈동자도 붉었다. 양쪽 귀에 각각 점 귀걸이와 긴 장식이 달린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흰 저고리에 잿빛 쾌자를 입었으며 푸른빛이 도는 검은 장발을 깔끔하게 반으로 묶은 모습이었다. 살이 없는 날렵한 턱선과 높고 뾰족한 콧날이 날카로운 인상을 풍겼다.


두 사람이 응접실에 도착하자, 여신이 낯선 남자들에게 말했다.


“정원은 잘 둘러보셨습니까? 백산님, 비청님.”


붉은 머리 남자와 검은 머리 남자가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으고 인사했다.


“여신님의 정원은 아담하면서도 운치 있습니다. 아정한 여신님의 성품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붉은 머리 남자가 울림 있는 저음으로 나긋하게 말했다. 외모만 놓고 보면 슬램덩크 강백호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내 꿈속에서 여신과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검은 머리 남자가 나를 주시했다. 그의 눈은 나를 쏘아보는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을 눈치챈 여신이 두 사람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 자가 저와 소원 이뤄주기를 할 것입니다. 이름은 동준입니다.”


두 남자가 나에게 목례했다. 나도 따라서 목례했다. 붉은 머리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동준님, 반갑습니다. 저는 소백산 신령, 백산이라 합니다.”


‘헉!’


범상치 않아 보였는데 역시나였다. 남자가 봐도 멋진 남자 같았다. 나도 그에 지지 않을 만큼 위엄을 내고 싶었다. 나는 가슴을 펴고 꼿꼿한 자세로 묵직한 음성을 내뱉었다.


“반갑습니다, 백산 씨.”


“저는 감악산 신령, 비청이라 합니다.”


옆에 서 있던 비청이 아무 감정 없는 딱딱한 말투로 인사했다. 나도 똑같이 사무적으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비청 씨.”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응접실 바닥에 앉았다. 여신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두 분이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셨다, 우릴 돕기 위해.”


“응?”


내가 의아해서 묻자, 백산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여신님의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무엇이라도 돕고 싶었습니다. 팔도의 신령이 여신님의 천계 입성을 돕고 싶어합니다. 여신님은 저희 신령들이 첫 소원 이뤄주기를 무사히 해내고, 정착하여 터를 마련하도록 도와주신 분이시지요.”


‘그런 면이 있었어? 츤데레인가?’


보기완 다른 면이 있다는 말에 놀라서 여신을 흘끗 봤다. 여신은 개의치 않고 차를 마셨다.


“불의의 사고로 천계 입성이 늦어졌단 소식을 듣고, 도움이 되고자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말을 하는 비청이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꿰뚫을 듯이 쳐다봤다.


‘뭐야, 저 자식 마치 일부러 찔리라는 듯이 보고 말하네.’


백산이 나를 보고 간곡하게 말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들은 바로는 소원기록부를 통해 일을 해결하신다 들었습니다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와 비청님이 해결하지 못한 ‘소원’ 을 우선 해결하실 수 있겠는지요?”


“어떻게 말이죠?”


“임의로 선택하지 않고, 장을 명확히 선택하면 된다. 해당 장의 소원부터 먼저 해결하면 되는 것이지.”


여신이 백산의 말을 거들었다.


“···그 대신, 지금 신령들의 소원물을 하나씩 받아서 영력 모으기를 하고 계시지요? 저흰 각자 두 개씩 드리겠습니다.”


비청의 말에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전 여신이 먼저 내 생각을 말로 내뱉었다.


“신령들의 ‘미해결 소원’을 빨리 해결해서 천계 입성을 앞당기도록.”


그거, 개꿀이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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