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가 여신에게 잘못 걸려서 소원을 들어줘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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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몬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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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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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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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불범 1

DUMMY

내가 꿈속에서 소원 들어주기를 되풀이하는 것. 내가 느낄 때는 실제 현실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실감이 나고, 오감이 생생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정신과 여신의 영력 덕분에 흡수한 소원물의 힘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여신이 알려줬다.


그랬기에 매일 꿈속에서 소원 들어주기 여행을 해도 나는 피곤하지 않았다. 꿈속에서 수일이 흘러도, 현실에서는 내가 평균적으로 잠자는 시간 중 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실제로 오전 한 시에 잠들었는데 꿈속 여행을 마치고 꿈에서 깼을 때 오전 두 시를 넘은 시각이었다. 잠을 잘 잔 것처럼 정신이 맑고 온몸에 힘이 넘쳤다.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배달해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불규칙한 수면 습관과 영양이 불균형해서 피부 트러블이 잦았다. 배달할 때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마스크를 자주 써서 수염이 나는 곳과 턱 주변에 뾰루지, 여드름이 자주 났다.


수염을 안 깎을 순 없고, 피부를 진정시킨다는 화장품을 발랐지만 소용없었다.


생활 습관을 개선하지 않았기에 나아지지 않았다.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면도하려 하는데 울긋불긋한 자국이 있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엥?”


아직 세수하지 않은 상태인데 피부가 맑았다. 소소하게 나 있던 여드름 자국이며 붉은 기가 사라졌다. 깐 달걀같은 하얗고 윤기 있는 피부로 바뀌었다.


손으로 피부를 만졌는데 맨들맨들했다.


‘이게 여신의 힘일까?’


꿈속, 현실에서 산아이를 통해 언령을 실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웠기에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피부가 개선된 얼굴을 보자 확실히 여신의 영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오전에 두 곳을 배달하고, 오후에 회사에 들러 샌드위치로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있을 때였다. 친하게 지내는 형 한 명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왜?”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이서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사무실 형광등 빛이 반사돼 형의 안경에 빛이 번쩍였다.


“흠?”


“아, 뭐 왜?”


“너, 뭐 발랐냐?”


“아니.”


형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요리조리 내 얼굴을 훑어봤다.


“아! 너무 가깝잖아, 형!”


내가 뒷걸음질 쳤다.


“이상하네. 갑자기 왜 네가 잘생겨 보이지?”


반쯤 먹은 샌드위치를 그만 먹고 싶어졌다.


“징그럽게 왜 이래?”


내가 웩하고 토하는 시늉을 했다. 한 손으로는 더 관찰하려는 형을 밀어냈다.



“뭐냐. 뭐냐 뭔데 시끄럽냐?”


사장이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화장실에서 막 나오더니 우리가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고 끼어들었다.


“형님, 이놈 얼굴 좀 보세요. 내 눈이 이상한가? 얼굴이 달라졌다니까요!”


형이 호들갑을 떨자, 호기심 많은 사장이 단추 구멍같은 눈을 번쩍 뜨고 내 앞으로 달려왔다.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엉?”


키가 작은 사장이 서 있는 상태와 내 앉은키가 거의 비슷했다. 사장이 내 앞에 딱 멈춰서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진짜네? 동준이 얼굴에 뭐 했냐? 이 자식, 우리 몰래 피부과라도 갔어?”


“그치? 얼굴에 우둘투둘한 여드름 자국 있었잖아. 가만 보니까 콧대도 더 높아진 것 같고···.”


“아, 뭔 소리예요? 미쳤어요? 내가 돈이 어딨어서 얼굴에 써요!”


내가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형과 사장은 더욱 재미를 붙여서 나를 놀렸다. 사장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내 얼굴을 마구 찍었다.


“야, 동준이가 미남됐다고 스토리에 올리자!”


“당장 지우세요! 진짜! 아니라고요!”


나는 도망치듯이 배달 업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밖에 주차된 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삐쳤어? 장난이야, 임마. 너가 진짜 잘생겨 보여서 그래!”


“놀리지 말라고, 형.”


나를 뒤따라 나와서 계속 놀리는 형에게 툴툴거렸다.


“하하하. 알았어! 조심히 가라! 또 보자.”


“네. 갑니다.”


먹던 샌드위치는 밖에 비치된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오토바이를 타고 사무실을 떠났다.




***



새벽 배달 하나를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대충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휴대전화를 뒤적이다가, 오늘 정산금을 확인하고 너튜브의 알고리즘에 뜨는 영상을 몇 개 찾아봤다.


어젯밤 여신의 응접실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렸다.


하루빨리 소원 들어주기를 끝내고 싶은 내 마음을 여신이 읽은 것일까. 한 번에 두 배로 해결하게 해준다고 하니 반가웠다. 무작위로 뽑는 것보다 훨씬 나은 방법 같았다. 소원은 오늘 밤 꿈속에 오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슬슬 졸음이 쏟아졌다. 드디어 만나겠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잠들었다.



***



침대에 누웠을 때 입었던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 아니었다. 배달복 차림으로 여신의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낯설지 않았다.


“왔느냐.”


여신이 정원과 연결된 뚫린 응접실 문으로 백산, 비청과 함께 들어섰다. 여신의 아담한 궁과 정원에는 산들바람이 잔잔히 부는 봄기운이 그득했다.


밝은 햇빛이 여신의 정원과 응접실을 환히 비췄다. 간간이 연못에서 물고기 떼가 헤엄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향긋한 꽃냄새도 풍겼다. 정원의 그늘진 나무 사이에서 꾀꼬리 같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렸다.


세 사람 옆에 내가 앉았다. 이색적인 광경이 만들어졌다. 두 사람은 개화기 혹은 조선시대 복장을 하고 있는데, 나머지 둘은 현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검은 헬멧에 검은 배달복을 입었고, 여신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하얀 셔츠에 몸매가 드러난 검은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다.


여신이 바닥에 앉자, 허리를 넘어선 긴 생머리가 접히지 않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휘어졌다. 일어서면 자국 없이 바로 펴질 것처럼 윤기가 났다.


‘나는 꿈속이라 그렇다 치고, 쟤는 왜 저런 옷차림이지? 여신이라면서. 고전 복장이 아니네.’


[불만인 게냐?]


“헉!”


화들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뱉었다. 응접실에 있던 이들이 일시에 나를 쳐다봤다. 여신이 전음을 했다.


‘내 속마음을 다 들었던 거야?’


[······.]


여신이 답을 하지 않았다.


배신감이 들었다. 그동안 다 듣고 있으면서 모른 척 태연자약한 태도를 보였던 것인가.


‘민간인 사찰이야, 뭐야? 이건 반칙이잖아. 왜 남의 속마음을 함부로 읽어?’


나는 여신이 들으라고 일부러 속마음을 내비쳤다.


[대놓고 흉보니, 참지 못했다.]


‘듣지 마. 불편해.’


나는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이마에 주름이 잡히게 힘을 줬다.


하지만 인기 아이돌급 절세미인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강한 태도를 보이려 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여신이 눈을 내리깔자, 긴 속눈썹들이 커다란 두 눈을 반쯤 덮으면서 처연한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마음이 일렁였다. 이를 악물고 억지로라도 시선을 거두지 않자, 여신이 불편했는지 먼저 눈을 돌렸다.


[알겠다. 듣지 않으려 노력하마. 하지만 내 의지는 아니었다. 내 영력과 연결되었으니 자연히 들렸다.]


불쾌해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와 여신의 기 싸움을 느낀 신령들이 헛기침했다.


“먼저 청했던 대로 백산님의 소원을 우선 해결할까 합니다.”


여신이 백산을 보며 말했다. 백산은 굳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한쪽 귀에 달린 긴 귀걸이가 흔들렸다. 자세히 보니 기다란 은빛 막대를 형상화한 드롭 귀걸이였다.


여신이 소원기록부를 펼쳤다. 그리고 외쳤다.


“소백산 신령, 백산의 미해결 소원을 펼쳐라!”


소원기록부가 허공에 뜬 상태로 빠르게 종이 여러 장을 넘기더니 정확한 한 장을 좍 폈다. 순식간에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문 크기로 커진 소원기록부의 장에 저절로 그림이 그려졌다.


녹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산봉우리가 하나 그려졌다. 그 밑에 민가가 몇 채 그려지고, 산을 둘러싼 나무들이 차례로 그려졌다. 마지막에 언덕 한구석에 작은 동물 하나가 그려졌다.


누런 털 바탕에 검은 점박이 무늬가 여러 군데 나 있었다. 새끼 표범이었다.


그림이 완성되고 장의 맨 위에 글자가 새겨졌다. 지난번에는 ‘영월(寧越)’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번에는 어디일까?


한자가 한 글자 새겨짐에 따라 머릿속에서 곧바로 읽혔다.


‘비로봉(毘盧峯).’


산봉우리 이름 같았다.


“제가 관리하는 소백산 봉우리 이름입니다.”


내가 궁금해하는 찰나 백산이 중얼거렸다.


나는 여신이 가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휴대전화의 산아이를 통해 오토바이를 내 앞에 소환했다.


꿈속 여행을 한 번 해봤다고, 이젠 여유 만만했다.


휴대전화를 스마트폰 거치대에 꽂고, 오토바이 운전석에 올라 여신에게 외쳤다.


“가면 되냐?”


여신과 강제 계약한 꿈속 여행을 곧 끝낼 수 있다는 말에 신난 나는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소원기록부에 막 들어가려는 나의 팔을 여신이 붙잡았다.


“?”


여신이 내 등을 때린 적은 있어도 팔을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검은 일체복이 덮인 굵직한 팔을 여신의 하얀 섬섬옥수에 붙잡혔다. 감각이 생생했다. 갑자기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기다리거라. 오늘은 손님과 함께 갈 것이다. 백산님, 동준의 뒤에 타시지요.”


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여신을 쳐다봤다.


‘이게 무슨? 남자를 뒤에 태우라고?’


백산이 나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내 얼굴을 살폈다.


“아, 아니 잠깐! 보통 신령은 자신만의 이동수단이 있지 않아요? 아니면 뭐 순간이동을 한다든가?”


나는 대놓고 태우기 불편하다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러자 백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무안했는지 그는 거대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고개를 푹 숙이고 나에게 사과했다.


“송, 송구합니다. 제가 아직 수행이 부족하여 사적인 이동수단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럼 여기까진 어떻게?”


“구름을 타고 왔습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여신과 비청이 험악한 얼굴로 나를 쏘아봤다. 비청이 설명을 시작했다.


“신령은 임기와 경력, 영력의 정도에 따라 실력이 나뉩니다. 백산님은 지금 여기 계신 신령 중 가장 늦게 신령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개인 이동수단을 만들려면 아직 멀었지요. 그때까진 선계에서 ‘선녀구름’으로 일컬어지는 쌘구름을 대여해서 사용합니다.”


“일종의 렌터카?”


“맞습니다. 인간계에선 그런 방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수행 기간이 적은 신령들은 그런 수단을 이용합니다.”


“그렇군요. 이쪽 세계도 대단하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서 인간처럼 서비스도 발전하네요. 휴대전화의 언령 어플 ‘산아이’도 만들고. 놀랍다, 놀라워.”


“설명을 충분히 들었으니 어서 백산님을 태우거라.”


여신의 닦달에 나는 백산에게 먼저 타라고 뒷좌석에 안내했다. 처음 만났을 때 여신은 내 오토바이 뒷좌석의 탑박스에 올라탔다.


그 뒤로 뒷좌석을 넉넉히 만들기 위해 탑박스를 좀 더 작은 55리터로 바꿨다. 그런데 엉뚱한 사람을 여신보다 먼저 태워서 아쉬웠다.


내가 운전석에 올라탄 후 여신이 자신의 꽃가마를 불러서 허공에 뜬 가마에 사뿐히 올라탔다.


나도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꽉 잡으세요!”


나는 백산에게 헬멧을 건네면서 소리쳤다. 반클러치를 유지하고 브레이크를 잡았다.


부아아아앙.


귀가 먹먹해짐과 동시에 소원기록부 안으로 스며드는 오토바이의 엔진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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