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파랑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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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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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계약의 시작(2)

DUMMY

***

로라의 비슷비슷하고 평범한 하루들이 지나고, ‘그 만남’이 생겼던 것은 대략 한두 해가 지난 후였다. 문제의 사건은, 데니스 의원이란 자의 행차에서 일어났다. 세상에 우연하게 일어나는 일은 별로 없다.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따져보면 발데즈가 있었고, 더 나아가면 어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여어- 로라 누나!”

“어머, 발데즈! 오랜만이다! 손에 든 건 뭐니?”

“멋지죠! 길 고양이예요, 이젠 내가 키울 테지만.”

발데즈의 품 속에서 꼼지락거리던 털뭉치에서 갑자기 쫑긋! 두 귀가 솟아올랐다. 말똥말똥한 두 눈으로 빤-히 로라를 쳐다보더니, 녀석은 그녀를 향해 정신없이 버둥거렸다.

“어이쿠, 또 말썽이네. 아야야,”

발데즈는 버둥거리는 고양이를 붙잡느라 낑낑거렸다. 로라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 신비로운 생명체를 구경했다. 마침내 고양이가 발데즈로부터 도망쳐 뛰어내렸다. 폴싹, 뛰어내린 고양이의 모습에 로라는 어? 하고 놀랐다.

“발을 절뚝거리네?”

“네, 동네 얘들이 괴롭히고 있었거든요. 다리가 짧다고, 고양이 다리를 잡고 힘껏 당기고 있지 뭐예요? 나참, 얘는 먼치킨이라 원래 다리가 짧은 고양이인데. 치료도 해줄 겸, 내가 키우려고요.”

“좋은 생각······어머!”

먼치킨은 높게 뛰어올라 로라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더니 만족스러운 듯 갸르릉거리며 몸을 둥글게 틀었다.

“말했죠, 누나? 이상하게 동물들이 다 누나를 좋아한다니깐요? 빵 냄새 때문인가?”

“따뜻해. 폭신폭신하고······.”

“뭐, 잘됐네요 마침. 사실 저 지금 알바 가야하거든요! 먼치킨 맡길 데가 필요했는데, 누나가 잠깐 맡아 주실 수 있어요?”

로라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뭐야?”

“음, 제가 작명센스가 좀 없어서······. 그냥 ‘먼먼’이라고 부르려구요.”

“귀엽다, 먼먼. 알았어. 맡고 있을 테니까 얼른 알바하러 가 봐. 이번엔 무슨 알바니?”

“음, 행차 때 길을 터는 알바? 하루 일하고 보수가 꽤 좋아요. 그럼, 고마워요 누나!”

발데즈는 꾸벅 인사하며 황급히 떠났다. 행차라······며칠 전부터 환경 미화 주간이라고 안내하더니, 오늘 누가 행차라도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깐, 오랫동안 한 곳에 서 있지 말라던 폴의 잔소리가 생각났다. 이크, 로라는 서둘러 빵 가게로 향했다.


***

그날 오전은 확실히 무료했다. 빵 가게에도 손님이라고 해봐야 달랑 두 사람뿐이었다.

띠링-.

“좋은 아침! 단팥빵 둘, 로라.”

“어머, 오랜만이네 한스! 꼬마 에드도 왔구나!”

에드는 얼굴을 붉혔다. ‘꼬마가 아닌데······.’ 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녀석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로라 앞에서는 항상 맥을 못 추리는 에드였다.

“그런데 웬 고양이야?”

한스가 슬쩍 턱 끝으로 구석에서 잠자는 먼먼을 가리켰다.

“아, 발데즈가 잠깐 맡겼어. 아주 귀여운 친구야.”

로라는 따끈따끈한 단팥빵 두 개를 각각 갈색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하며 답했다. 에드는 멍-하니, 그녀의 예쁘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답했다.

“예? 누나?”

“잘 적응하고 있냐구, 여기 생활. 벌써 온지 1년이나 지났잖아.”

“아······어······예.”

“혹시라도 한스가 구박하면 나한테 말해, 내가 데이지한테 일러 줄게.”

로라는 싱긋 웃었다. 에드는 당황해서 얼굴이 또 붉어졌고, 가만히 서 있다가 봉변을 당한 한스는 억울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웃으면서 두 손님을 보내고, 로라는 쭉 혼자였다. 그윽한 빵냄새와, 이따금 야옹거리는 소리만이 함께할 뿐. 그녀는 언제나처럼 똑같이 안전했다.

뿌-뿌-뿌뿌뿌우-!!

힘찬 나팔 소리에, 졸던 로라가 화들짝 놀라 깼다. ‘혼자 있을 때 아무데서나 졸고 있지 말랬지’ 폴의 잔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듯했다. 이크, 얼른 양볼을 손바닥으로 치며 잠에서 깨는 로라였다.

“행차가 시작되는 모양이지? 잠깐 구경 좀 해볼까?”

로라는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옹, 하고 먼먼이 쪼르르 달려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참 귀엽고 말 잘 듣는 고양이네, 로라는 생각했다.

“자자, 앞으로 나오지 마시고-! 여기 이 금은 넘어오시면 안 됩니다-! 밀지 마세요!”

멀리서 발데즈가 큰소리로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군중들 사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로라를 발견하고 찡긋 윙크했다. 로라도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어준 후, 몸을 굽혀 먼먼을 어깨에 안았다. 먼먼은 얌전히 그녀의 어깨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발데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나랑 있을 땐 저렇게 얌전하지 않았는데?

곧 행차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음악소리, 사람들의 환호성, 둥-둥- 울려퍼지는 북소리와 함께 로라의 마음도 둥-둥- 울리는 것 같았다. 너무나 새롭고 신기한 광경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갑자기 사람들의 환호성이 훨씬 커졌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로라는 까치발을 들었다. 하지만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 볼까······? 그녀는 조금씩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갔다. 빼꼼, 다시 고개를 내밀어 사람들이 환호성하는 대상을 쳐다보려는 바로 그때였다.

“엄마야!”

갑자기 먼먼이 날쌘 점프로 로라의 어깨에서 튀어 올랐다. 로라는 깜짝 놀라, 녀석을 부르며 허겁지겁 뒤따라갔다. 짧은 다리가 무색하게, 먼먼은 잽싸게 로라의 손을 피해 요리조리 사람들 발 사이를 뛰어 도망쳤다. 안 돼 먼먼, 기다려, 잠깐 멈춰! 로라는 허둥지둥 먼먼을 따라 사람들을 비집고 나아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먼먼의 움직임이 어찌나 빠르던지, 로라는 정신을 못 차리고 달려갔다. 어디 갔지?

냐옹!

로라가 휙 고개를 돌렸다. 힘차게 높이 점프하는 먼먼이 보였다······!

“아야!”

“잡았다!”

로라가 무릎을 굽혀 와락, 먼먼을 껴안았다. 바로 그때였다.

철컥.

로라는 귓가에서 난생 처음 듣는 철컥 소리를 들었다. 그제서야 천천히 그녀를 가린 그림자의 주인공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앞에는 까만 구멍만이 있었다. 로라는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시끄럽던 함성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정적만이 남아있었다.

“안 됩니다 대장님!!! 대······대장님!!!!”

급박한 뜀박질 소리와 함께 누군가 쾅 넘어지듯 그녀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로라는 천천히 옆을 바라보았다. 폴이었다.

“대······대장님, 제······ 제 누이가 아직 아무것도 몰라서······ 실수했습니다, 총을 거두어 주십시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대장님······. 제발······.”

로라는 폴이 바들바들 떨며 바짝 엎드려 사죄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멍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로라는 천천히 용기를 내어 총부리를 겨눈 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한치의 동요도 없었다. 폴은 기겁을 하며 로라의 고개를 손으로 푹 눌러 숙였다.

“뭐 해, 얼른 고개 숙여!”

로라는 폴이 어찌나 세게 힘으로 누르는지 코가 거의 땅에 닿을 정도의 자세를 취해야 했다. 딱딱한 남자의 목소리가 폴에게 질문했다.

“누······이? 그렇게 말하는 근위병 자네의 이름은 무엇이지?”

“포······폴이라고 합니다, 근위대장님.”

“폴, 방금 전 괴이한 물체 하나가 빠른 속도로 데니스 의원님께 날아와 타격을 가했다. 군악단은 음악을 멈추고, 행차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이때 근위병 자네의 위치는 어디인가?”

“죄······죄송합니다. 위치를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제 누이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제 누이만은! 총을 거두어 주십시오 제발! 처벌은 제가 받겠습니다!”

그때 냐옹, 하고 이 사건의 주범인 먼먼이 로라의 품속에서 유유히 나왔다. 녀석은 꼬리를 높게 쳐든 채, 로라 앞에 자신이 물고 있던 것을 툭 내려놓았다. 반짝이는 단추 하나였다.

“그쯤하지, 제임스.”

금발머리의 남자가 자신의 따끔따끔한 목을 매만지며 다가왔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의원님. 아직 사태 파악이······.”

“됐는데 사태 파악, 나는. 호기심 많은 고양이 한 마리가 달려들어 내 목깃 단추를 떼어간 거지 뭐. 난 괜찮아, 살짝 긁혀서 따갑긴 한데, 놀랐을 뿐이지 크게 다치진 않았어. 이쯤에서 상황정리하자고.”

“하지만······.”

금발머리는 제임스의 총을 옆으로 치운 후, 로라가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좀 봐주세요, 내 첫 행차라 어제부터 근위대장이 엄-청 긴장하고 있었거든요. 데니스라고 합니다, 이름이······?”

로라는 잔뜩 움츠러든 모양새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로······로라. 로라라고······해요.”

“로라, 예쁜 이름이네요. 아, 근위병도 그만 일어나지. 근위대장이 두 사람에게 너무 큰 실례를 범한 것 같은데, 어떻게 보상을 해준담?”

“아닙니다 의원님, 저희는······.”

“아! 두 사람에게 내일 만찬에 초대하고 싶어요. 맛있을 거예요, 맛은 내가 장담하니까. 꼭 참석하세요, 공사관으로 오면 경호원들이 안내해줄 겁니다.”

로라는 흘끗 옆의 폴 얼굴을 살폈다. 폴의 안색은 완전히 흙빛이 되어있었다. 로라는 이번에는 흘끗 근위대장의 눈치를 봤다. 그의 낯빛 역시 매우 어두웠다. 로라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답할 필요 없어요, 분위기가 너무 강압적이니까. 그냥, 오고 싶으면 오세요. 꼭 왔으면 좋겠지만, 그냥 전 기다리고 있을게요.”

데니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허리를 숙여 먼먼을 안아 올······리려 했으나 먼먼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손을 할퀴었다. 로라는 깜짝 놀라 얼른 먼먼을 들어 안았다.

“죄······죄송해요, 의원님.”

“아이고, 참 예민한 고양이네. 특별히 내 단추까지 선물해 주려고 했는데 말이지.”

데니스는 멋쩍게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단추까지 주워 먼먼에게 주었다. 먼먼은 반짝이는 단추를 만족스러운 듯 만지작거렸다.

“음······그럼 전 이만. 근위병?”

“예······옙?”

“위치로 가야죠, 행차 계속 하려면.”

“아······예.”

폴은 상황이 해결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근위대장 제임스는 영 찝찝한 표정이었지만 조용히 데니스와 함께 행차 중심으로 돌아갔다. 로라는 풀린 다리로 간신히 뒤로 물러났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통 믿기질 않았다.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었다. 순식간에 무언가 크게 잘못될 뻔한.

그러나 로라는 이번에도, 미처 알지 못했다. ‘이 만남’ 자체로, 이미 그녀의 삶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는 걸.


작가의말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라의 여정,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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