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태양 아래 내린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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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젠
작품등록일 :
2015.12.18 15:46
최근연재일 :
2015.12.22 01:43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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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98

작성
15.12.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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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한족 - 1

DUMMY

“술 3통, 돼지 5마리, 닭 20마리 그리고 여자 다섯입니다.”


빨간 막사 안에서는 아침에 약탈한 물건들의 파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얇은 수염이 양쪽으로 뻗어 나온 족제비상의 남자가 허리를 굽힌 채 곰 가죽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역시 대장님의 말대로 녀석들이 뒷산에다가 물건을 숨겨놓고 있었습니다.”


생김새 때문에 서랑(족제비를 칭하는 말)이라 불리는 남자가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에게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족장.”

“네?”


세상만사에 관심이 없다는 듯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던 남자에게서 아무런 높낮이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대장이 아니라 족장이라고 부르라고 하지 않았나? 우리는 더 이상 족보 없는 도적들이 아니라 한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의 민족이다. 그러니 대장이 아니라 족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

“아…예, 족장님. 나이가 들어 잠시 잊었던 모양입니다.”

“아, 아까 숲에서 여자를 하나 데리고 왔다고 하지 않았나? 귀족의 여식 같다고 하던데.”


아까 오후에 오솔길로 약탈을 하러 갔던 호야의 부대가 잡아왔다던 여자에 대해 묻는 듯 했다.


“예, 밤시중으로 들일까요?”

“그래, 그건 그렇고 전에 말했던 건 어떻게 됐지?”


족장이 손을 들어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무조건적인 긍정을 원할 때 보이는 그의 행동 중 하나였다. 보름 전부터 한족의 지역을 침범하기 시작한 다른 도적떼와의 전쟁에 대한 준비에 대해 묻는 질문에 서랑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부족보다 3배는 많은 인원을 가진 그 부족과의 전투는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없어보였다.


“우선 치우를 보내 더 이상의 침입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엄포라는 게 전쟁을 하자는 뜻인가?”

“그게 아니라…”


우물쭈물 대는 서랑을 보며 족장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내가 분명 전쟁을 한다고 했잖아!”


오른손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내리친 족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랑에게 다가섰다. 안 그래도 부족에서 키가 작은 편에 속하는 서랑이 7척(약 210cm)이 넘는 족장 앞에 서자,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너는 내가 왜 너를 뽑았다고 생각해? 싸움도 못하고, 사냥도 못하는 너를 왜 뽑았다고 생각하냐고.”


잔뜩 흥분한 족장 앞에서 서랑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지 않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건 네가 다른 놈들과 다르게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어서였어. 근데 이제는 그 생각이라는 것이 내 명령을 어기게 만들어 버린 모양이네. 너는 내가 생각하라고 명령할 때만 생각하면 되는 거야. 내가 명령하지 않았다면 너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 방금 전 나는, 전쟁에 대한 네 생각을 물은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기 위한 준비가 다 되었는지 물어본 거야.”


막 가망 없는 전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펼치려던 서랑이 족장의 말을 듣고 입을 꾹 다물었다.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혀뿐만 아니라 목이 떨어져나갈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 나가서 전투 병력을 모두 무장시켜라. 달이 기울기 전에 출발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서랑이 고개를 숙인 채 붉은 막사를 빠져나왔다. 차갑게 불어온 밤바람이 너무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숨을 한 번 가다듬은 서랑이 전투 인원들의 막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자신을 납치했던 자객이 먹인 이상한 약 때문에 잠들어있던 설은은 밤이 늦어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녀가 눈을 뜸과 동시에 천막 구석에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온몸을 떨고 있는 소녀들이 보였다.

“여기가 어딥니까?”

“도…도적의 마을이에요.”


설은의 물음에 소녀들 중 하나가 답했다.


“여러분도 그 복면을 쓴 사람들한테 잡혀온 겁니까?”

“복면이요? 언니는 도적들이 데려왔어요. 우리를 데리고 왔던 그 도적들이요.”


도적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설은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 누구로 할까?”


그때 지저분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러운 옷을 걸친 두 남자가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소매가 이상하리만치 짧거나 배를 그대로 들어낸 것이 남의 옷을 훔쳐 입은 게 분명했다.


“아이고! 우리 아씨도 일어났네. 거봐, 나랑 같은 조를 하길 잘했지? 그 덕에 제일 좋은 년을 맛보게 됐잖아.”


소매가 짧은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동료의 드러난 배를 팔꿈치로 살짝 찌르며 말했다. 동료의 말에 동의하는 듯 배를 드러낸 남자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도적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설은은 두 도적이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너도 따라 나와. 아씨 저희랑 같이 가시죠. 저희가 최고의 밤을 선물해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다른 야만적인 놈들과는 아주 격이 다른 놈들입니다.”


짧은 소매의 남자가 한 소녀와 설은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환하게 웃는 그의 입 안에는 몇 개 안 남은 누런 이가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울기라도 하면 이 자리에서 죽이고 다른 년을 데려갈 것이야.”


배를 드러낸 남자가 막 울음을 터뜨리려는 소녀를 보며 허리춤에 꽂혀있던 칼을 반쯤 빼들었다.


“봐라, 이 아씨처럼 우리말만 잘 들으면 다시 여기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니까?”


설은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본 짧은 소매의 남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가 설은의 팔을 낚아챔과 동시에 막사 밖에서 요란한 북소리가 들려왔다. 전투를 알리는 한족의 북소리였다.


“아, 뭐야.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한 거야?”

“뭣들 해? 족장님이 그놈들을 치기로 하셨어.”


막사로 몸을 반쯤 밀어 넣은 남자가 막사 안의 두 사람에게 말했다. 설은의 손을 잡고 있는 짧은 소매의 남자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낸 남자는 다시 밖으로 사라졌다.


“빨리 끝내고 가면 안 될까?”

“늦었다가 목이 날아갈 텐데? 갔다 와서 하자. 어차피 우리 순서니까. 그놈들 마을에서 데리고 온 여자들 중에서도 고를 수 있을 거야.”


드러난 배를 긁적이는 동료를 달랜 짧은 소매의 남자가 설은의 손을 놓고 막사를 벗어났다. 끝까지 아쉬움 가득한 시선으로 여자들을 둘러보던 도적도 동료의 뒤를 따라 막사를 벗어났다. 설은은 다시 침착하게 자리로 돌아와 앉았지만 방금 지목 당했던 소녀는 실금을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밖에서는 북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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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족 - 1 15.12.21 212 0 7쪽
5 악녀 - 5 15.12.21 244 0 8쪽
4 악녀 - 4 15.12.21 215 0 9쪽
3 악녀 - 3 15.12.21 239 0 7쪽
2 악녀 - 2 15.12.21 242 0 8쪽
1 악녀 - 1 15.12.21 265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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