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순정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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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결
작품등록일 :
2016.03.31 08:14
최근연재일 :
2016.04.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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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3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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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1. 만월(滿月)의 밤]

DUMMY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경은 고개를 추켜 올리며 달 밝은 밤하늘을 보며 감상에 젖어들었다. 잠깐이지만 샐 수 없이 무수히 빛나는 별들은 그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금세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윽고 다시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발을 떼려는 그때였다.


온통 검은 털로 뒤덮인 개 한 마리가 걸걸한 숨소리를 내며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다소 흥분상태로 금방이라도 공격을 할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불안이 엄습해 오자 경은 주위를 살폈다.


개미 새끼 하나 볼 수 없었다. 이런 젠장. 그곳엔 오직 자신과 개 둘뿐이었다.


이대로 등을 보이며 달아난다 해도 어차피 독안에 든 쥐 신세를 면치 못 할게 분명했다.


초조하고 불안한 기운이 한대로 섞어서 그를 더 공포에 떨게 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꼼짝없이 서 있는 그때 개가 그의 앞에 돌진했다.

달려오는 개는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고 눈은 벌겋게 충혈이 일었다.

막무가내로 미친 듯이 달려오는 개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자

무의식적으로 팔 한 짝을 들어 올렸다. 개는 순식간에 그의 팔을 잽싸게 물어뜯고는 미친 듯이 달아났다.


“아아아악.”


경은 비명을 지른 동시에 제 팔을 한 쪽 손으로 감싸며 고통을 호소했다.

어찌나 새게 물어뜯었는지 도포 자락이 찢어나갈 정도였다. 그 틈새로 이빨자국이 제법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의 팔에서는 선혈(鮮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아픈 팔을 부여잡고 발길을 재촉했다. 경은 곧바로 그의 벗인 백 헌에게 향했다.


이 시각에 의원엔 갈 수가 없을뿐더러 이 상태로 집으로 가는 것 또한 무리였다. 그의 벗인 백 헌이라면 의술에 일가견이 있었다.


비록, 정식 의원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한 의원에게서 어깨너머로 의술을 익혔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그런 의술에 지나지 않는다. 웬만한 병은 제법 잘 고쳐서 백성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주로 의원에게 갈 수 없는 가난한 백성을 위해 쓰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돈 대신 소소함의 물건만 받아서 입에 풀칠할 정도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몇 시각이 지나자 경은 아픈 팔을 부여잡고 백 헌의 집 앞으로 도착했다.

피는 여기저기 줄지어 땅바닥에 떨어지며 짙은 자국을 남겼다.


“이보게 헌, 잠깐 좀 나와 보게.”


힘없는 경의 목소리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 안에서 약초를 말리려고 작두 작업을 하고 있던 백 헌이 무슨 일인가 싶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어젖혔다.


“자네가 이 시각에 어인 일로 온 건가? 아니, 자네 다친 건가?”


헌은 제 벗인 경의 낯빛이 좋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며 그대로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소맷자락에 붉게 물들인 피를 보니 헌의 얼굴에 걱정 어린 눈빛이 역력했다.


“그럴 일이 있었네.”


또다시 힘없는 경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온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드리웠다.


“얼른 들어오게.”


팔에 난 상처를 잡고 있던 손바닥에도 붉은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출혈이 심한 걸로 봐서 제법 상처가 깊어 보였다. 이내 방안에 들어서자 경은 주저앉듯이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자동적으로 그의 고개는 뒤로 젖혀졌다. 헌은 얼른 미지근한 물과 깨끗한 헝겊을 여러 장 준비해 놓으며 바닥에 앉았다.

그가 입고 있던 도포를 천천히 걷어 올리며 팔에 난 상처를 확인했다. 백 헌의 미간이 일순간 찌그러졌다.


그는 미지근한 물에 깨끗한 헝겊을 적신 후, 젖은 헝겊을 전부 짜며 붉은 피를 닦았다. 이내 다시 물을 적시자 금세 붉은 핏물로 변하였다. 이윽고 다시 미지근한 물을 가져오며 이번엔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그리고는 팔에 난 자국을 유심하게 관찰했다.


“아니, 이건 짐승의 이빨자국이 아닌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경은 소리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한데, 어쩌다가 물린 건가? 보아하니 개한테 물린 상처인 거 같은데?”


“갑자기 미친 듯이 돌진해서 물지 뭔가?”


“혹, 그 개의 상태는 어떠했는지 소상히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경은 잔뜩 인상을 쓴 채 생각을 되짚었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지만 방금 전 개와 마주했던 형상들을 얘기했다.


“아, 그러고 보니 동공이 확장된 채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되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네. 그리고 매우 흥분된 상태였고 평소와 달리 꼬리가 빳빳했네.”


백 헌은 친구의 말을 들으며 뭔가 짐작 간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경은 벗인 헌의 표정에서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한데, 자네의 얼굴이 꽤나 심각해 보이는군.”


“자네의 팔을 물은 개 말일세. 정상은 아니네.”


“그렇다면?”


“공수병(恐水病)에 걸린 개일세.”


“공... 수... 병?”


“공수병에 걸린 개에 물리면 회생하기는 불가능하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백 헌은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서책 한 권을 가져오며 유심히 살폈다. 한 쪽 손으로 책을 받치며 다른 한 쪽 손으로 한 장씩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눈으로 읽어내려갔다.


그때, 그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려 때 지어진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광견조에 대해 나와 있네.”


“이대로 죽는단 말인가?”


“보통 잠복기간이 초이레에서 그믐달이네. 하나, 그 후부터 발병을 하네. 그리고......”


“결국 죽는 거군."


경은 허심탄회(虛心坦懷) 하며 물어왔다.


“일단, 물린 자리를 뜸뜨고, 술을 마시지 말고 돼지고기나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적혀있네. 번거롭더라도 매일 이곳에 들려 하루도 빠짐없이 물린 부위에 뜸을 뜨러 오게.”


“말이라도 고맙네. 역시 내 눈은 정확하다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말일세."


“하, 이 친구야. 몸이 이지경인데 농담이 나오는 겐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네.”


자신이 뱉은 말에 경은 실없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바닥에 몸을 누었다. 헌은 일단 상처 부위에 침을 놓으며 더러운 피를 빼냈다. 이어서 애엽(艾葉)을 올려 뜸을 뜨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뜸은 쑥으로 만들었다. 한방에서는 쑥을 애엽이라고 한다. 애엽은 그 맛은 맵고 쓰며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약간 독이 있었다.


“뜸은 뜨거운 불을 이용한 온열치료라 인체에 내장된 면역기능을 활성화시키고, 혈관을 확장시켜 순환을 촉진시키는 기능을 하네.”


경은 두 눈을 감은 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쑥은 좋은 품질일수록 잘 뭉쳐지고 오랫동안 타며, 뜸 후에 생기는 화상이 덧나지 않고 잘 아물었다. 쑥을 약으로도 먹을 수 있으며 그 쑥으로 뜸을 뜨면 열은 온화하며 힘이 강했다. 이렇게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쑥으로 불을 붙여서 자극함으로써 뜸을 뜨게 되면 온몸에 양기를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헌은 뜸을 뜬 자리에 약초를 올리며 헝겊으로 말끔하게 감쌌다. 쓰라린 상처가 경의 눈을 저절로 찡그리게 만들었다. 잠시나마 이대로 눈을 붙이고 싶었다. 아직 절망을 하기엔 이르렀다.


그는 희망을 가졌다. 그래야만 이 지긋지긋한 통증과 오늘 겪었던 일을 잊을 수 있었다.

경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꿈이기를 바랬다.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넘기듯했지만 그의 속은 온통 새까맣게 멍들고 있었다. 헌은 얼른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약초들을 서둘러 한 쪽 구석에 치웠다. 곧바로 이불을 깔아 경을 부축하며 천천히 자리에 눕혔다. 경은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이대로 편안히 잠을 청하기가 어려웠지만 지금 이 순간은 모든 것을 잊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그날을 기점으로 어느새 보름이 되었다. 아직 그렇다 할 증상은 느끼지 못 했다. 그는 서책을 읽다 말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의 입에서 바람이 새어 나오자 환하게 비추던 촛불은 힘을 견디지 못 한 채 꺼졌다. 어느새 방안은 어둡게 변했고 희뿌연 연기가 공중에 올라갔다가 그대로 흩어졌다.

평소보다 이른 잠자리라 잠이 오지 않았지만 그대로 두 눈을 감았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잠을 청하자 없던 잠이 왔는지 의식이 사라졌다. 한참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때였다.


만월(滿月)의 밤. 잠결에 그의 몸은 심한 경련이 일어났다. 얼굴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무의식 속에서 경은 이런저런 생각에 잡혔다. 오늘 밤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그저 한시바삐 이 알 수 없는 떨림이 멈추길 바랄 뿐이었다. 이제 그의 나이 고작 스물다섯이다. 이대로 죽기엔 인생은 너무 짧고 억울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한 생각이 가슴 위로 차올랐다.


“아아아악.”


또다시 비명을 냈다. 이번엔 심한 경련과 함께 파편이 온몸을 들쑤시고 다녔다. 마치 날카로운 유리에 온몸 구석구석 찔리는 통증 같은 게 일었다. 그렇게 몇 시각 동안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치자 어느덧 해는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다. 하지만 온몸엔 기(氣)가 다 빠진 듯 힘이 없었다. 정신은 여전히 몽롱했다. 굳은 몸 상태로 눈을 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잠이 덜 깬 건가?”


목소리라도 나오니 다행이었다. 언제까지 이대로 꼼짝없이 있어야 하는지. 경의 얼굴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어떻게든 굳은 몸을 바로잡기 위해 온 힘을 전부 쏟아부었다. 그것만이 살길이었다. 또다시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턱 아래까지 흘러내렸다.


“조금만......조금만......더... 헉헉.”


양 팔엔 굵은 핏줄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턱까지 차올랐다. 있는 힘껏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의아아아아.”


그렇게 또 얼마의 시각이 지나자 빳빳하던 그의 몸은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서 내쉬었다.


“헉헉...... 헉헉.”


이내 한 쪽팔을 들어 올리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았다. 경은 천천히 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목이 타는지 한 쪽 팔을 뻗어 옆에 둔 사발을 짚으며 한숨에 쭉 들이켰다. 냉수 덕분인지 어지럽던 머리가 맑은 정신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경은 제 팔에 난 상처를 살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젤 먼저 팔에 난 상처를 살피는 일부터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흉 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러나 앞으로 보름 후, 그믐달이 고비였다.


어쩌면 이 번 생은 불운을 타고 태어났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시련을 겪는 단 말인가. 방금 전, 잡스러운 생각들은 떨쳐버리고 그저 평소 그의 모습처럼 살아가면 되는데...... 사람 마음이 그리 쉽게 변하지는 않으니. 그의 심적 고통은 어루 말할 수 없이 혼란에 가득 차이었었다. 그는 이리저리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크게 하며 몸을 일으켰다. 서둘러 옷가지들을 챙겨 입으며 곧장 사랑채로 향했다. 아버지께 문안인사를 드려야 했다. 아들 된 도리로써 제 몸이 좋지 않다 한들 마땅히 해야 하는 몫이었다. 걸음을 떼기가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기계처럼 움직일 뿐 감각은 감각은 않았다. 그는 힘들게 발걸음을 옮기며 사랑채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경은 장돌 위에 가지런히 신을 벗어놓으며 문지방 앞에 다가섰다.


“소자 아침 문안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들어오거라.”


경은 조용히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방안에 들어서자 그의 아버지 박중섭은 난초를 치는 일에 열중했다. 아들이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자 그제야 눈길을 주었다. 여전히 손에는 붓이 들려 있었다.


“간 밤에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아버지.”

그는 아버지 박중섭에게 고개를 숙이며 문안인사를 올렸다. 그의 아버지 박중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간 밤에 별 탈 없이 잘 잤느냐?”


“네. 아버지.”


“한데, 그리 잘 잔 것 같지는 않구나. 눈 밑이 퀭해 보이는 게 밤새 잠을 뒤척였나 보구나.”


박경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그의 눈빛만 봐도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었다. 박중섭은 다시 손을 놀리며 난을 쳐냈다. 하얀 종이 위로 곱게 뻗은 난이 검은 먹물로 그려져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따금 생각이 흐트러지거나 심란한 마음이 생길 때면 일종의 버릇처럼 난초를 그렸다. 자신도 가끔은 취미로 그리곤 하지만 아버지의 실력에 비할 바가 못 됐다.


뾰족하게 날선 난의 모습은 오래된 숙련에서만 나오는 힘 있게 뻗어난 모습이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 난초를 치고 있던 그때, 박중섭은 벼루 위에 붓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이내 작은 붓을 집고는 그 아래 자신의 당호를 적었다. 이로써 난초 그림이 완성이 되었다. 박중섭은 두 손으로 완성된 그림을 들고 펼쳐보았다. 경은 가능하면 아버지의 완성된 그림을 보고 싶었다.

하나, 단 한 번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다. 보통 완성된 난은 대부분 취미로 모으거나 혹, 선물로 보내지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는덴 이만한 취미가 없지.”


박중섭은 만족스럽다는 듯 하얗게 이른 수염을 쓸어내리며 바닥에 내려놓았다. 또다시 박중섭의 말이 들려왔다.


“혹, 말 못 할 고민거리가 있거든 속에 담아 두지 말고 언제라도 이 아비에게 말하거라. 혼자 앓다 보면 없던 병도 생기기 마련이니.”

아버지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내비쳤지만 겉으로는 도무지 걷잡을 수 없었다.


“네. 아버지.”


“하나, 언제까지 풍류를 즐기며 젊은 날을 헛되게 보낼 참이냐?”


역시나 언제나 그 말은 빠트리지 않고 입버릇처럼 흘러나왔다.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던 몸을 반쯤 다시 원래대로 하며 아버지의 물음에 속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소자 이번엔 아버지께 폐 끼치지 않기 위해 내년쯤 다가오는 과거시험을 치를 생각이었습니다.”


아들의 답을 들은 박중섭은 탁자에 손바닥을 치며 살며시 미소를 내비쳤다.


“이번이야말로 나도 다른 대감들처럼 든든한 아들 둔 아비처럼 행동을 해 볼 수 있겠구나. 하하하.”


“소자, 이번엔 아버지 뜻에 따라 꼭 장원은 아니더라도 급제는 하겠습니다.”


“어허, 네가 장원급제가 아니면 누가 한단 말이냐. 이왕 할 거 높은 곳에서 한 번 놀아 봐야 되지 않겠느냐? 사내로 태어난 이상 큰 그림을 그리며 큰 물에서 놀아야 큰 사람이 될 수 있느니라.”


“아버지 뜻 잊지 않고 명심하겠습니다.”


“경아, 이 아비는 말이다. 언제나 늘 한결같다. 우리 하나뿐인 아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너도 알다시피 내 나이 쉰이 넘지 않았느냐? 어서 장원급제하고 관직에 올라 혼례를 치르고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손에 안겨줬으면 싶구나. 이 아비는 그저 그것밖에 소원이 없다. 알겠느냐?”


“소자, 아버님의 당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중섭은 회심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경은 살짝 고개를 떨군 채 방안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밖으로 나온 뒤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은 건지 스스로를 자책하듯 입술을 깨물었다. 조선 중기. 관직에 오르는 것을 경멸해 과거 시험을 보지 않는 선비들도 두루 있었다. 그 역시 그랬다. 하지만 아버지의 확고한 신념에 해를 끼칠 수 없기에 그 뜻을 받들었다. 삼 년에 한 번 골로 다가오는 시험은 내년 봄에 있을 예정이다. 그는 낮은 숨을 내쉬며 다소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복잡한 심정이 한두 가지가 아닌 탓에 그의 머릿속은 온통 낙서투성이로 가득했다.


작가의말

봄결입니다. 우리의 박선비께서 미친개에 물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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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2화 돌연변이의 탄생(1) +1 16.04.02 77 0 29쪽
13 #11. 수수께끼의 선비(2) +1 16.04.02 46 0 21쪽
12 #10. 수수께끼의 선비. +1 16.04.01 58 0 21쪽
11 #9. 비와 당신...... 그리고 +1 16.04.01 39 1 21쪽
10 #8. 천명(天命) +1 16.03.31 64 0 16쪽
9 #7. 달 밝은 밤. 두 사내의 은밀한 조우. +1 16.03.31 31 0 19쪽
8 #6. 님과 함께...... 달 밤을 거닐며. +1 16.03.31 66 0 21쪽
7 #5. 화려함 속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부용화 꽃 한 송이. +1 16.03.31 103 0 11쪽
6 #4. 흩날리는 벚꽃 잎이 떨어지는 어느 멋진 봄날. +1 16.03.31 28 0 17쪽
5 #3. 앙칼진 새끼 고양이 +1 16.03.31 22 0 10쪽
4 #2. 한 여인과 두 사내 +1 16.03.31 93 0 21쪽
3 #1. 남장여자 & 묘(妙) 한 선비 +1 16.03.31 86 0 13쪽
2 [프롤로그] #1-2 늑대 선비. +3 16.03.31 86 0 12쪽
» [프롤로그#1. 만월(滿月)의 밤] +3 16.03.31 199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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