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블러드 Ep1 3화
사현은 왜 자신이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바퀴에 피 뭍은 자동차와 금요일 저녁 회사. 사실 그 두 개의 매개체가 꼭 그 시체와 연관이 있으라는 보장은 없었다. 어쩌면 그 차는 운 나쁜 고양이를 깔고 지나갔을 수도 있고, 그 직원은 야근을 하러 나왔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 그리고 회사에서 풍겨 나오는 음침한 기운. 그 것은 피 뭍은 시체들을 다룰 때하고는 또 다른 공포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손이 끊어진 기타 줄처럼 흩날린다. 그리고 가까워 질수록 심해지는 심장의 고동소리. 머리는 계속 움직이라고 명령을 내리지만 몸은 계속 그 명령을 거부하며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문. 사현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손잡이에 천천히 손을 가져갔다.
쾅-
사현은 순간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얼어 붙었다. 문이 열린 것이 아니라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쇠로 만들어진 문이 마치 유리조각처럼 부서져 내린다. 산산이 부서져 흘러내리는 그 문을 허무하게 바라보던 사현 앞에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쯤은 커 보이는 남자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서 있었다.
“네 녀석도 로드의 피를 노리는 놈 중에 하나냐?”
“네?”
남의 연구실에 쳐들어 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릇얘기라니. 그는 멍하니 서 있다가 말을 꺼내려 입을 열었으나, 그 순간 남자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사현은 얼떨결에 팔꿈치를 세워 공격을 막아보려 했으나 주먹은 그가 의식한 순간 이미 그에 배에 들어와 있었다.
이게 인간의 주먹이라고?
사람한테 얻어 맞은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이건 마치 야구 방망이로 힘 풀린 배를 얻어 맞는 듯한 충격이었다. 사현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그리고 입안에 가득 차있는 비릿한 느낌의 액체를 뱉어냈다. 피였다.
그렇게 반쯤 정신이 풀린 사현을 남자는 그냥 두지 않았다. 한 손으로 사현의 머리를 들고 가볍게 그를 들어올린 남자는 사현의 귀에 대고 조용히 물었다.
“로드를 지키는 놈 치고는 지나치게 약하군. 너 정체가 뭐냐?”
“……시체 분석관.”
“하, 그런 거였나? 정말 저기 저 여자가 죽어 있다고 생각했단 말이지? 인간의 기술 수준이란 놀라울 정도로 진보가 없군."
남자는 그의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나서 바닥에 흉하게 널브러진 그의 몸을 보며 냉소에 찬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네 녀석에게 풍기는 느낌은 기분 나쁘군. 보통 인간의 그 느낌이 아니야. 혹시 뱀파이어 블러드를 취한적이 있나?"
"......"
이건 영어를 하는지 중국어를 하는지 못 알아들을 지경이다. 뱀파이어 블러드라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그는 순간 자기가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얻어맞아 정신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그런 상황에서 어쩌면 그런 의심이 안 드는게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남자의 붉은 눈동자가 찬찬히 그를 훝고 지나갔다. 그에게서 숨기는 것이 없는지 차분히 훝어 보는 남자의 눈동자에는 적의가 전혀 들어있지 않음에도 눈동자가 지나가는 곳곳에서 소름이 돋았다. 두려웠다. 이 남자라면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 사현은 자신에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M500 자동권총에 생각이 미쳤다. 이 곳에서 이렇게 죽을 바에야 총을 쏘고 도망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아까의 속도로 봐서 어설프게 총을 꺼내다가는 바로 제압 당할 것이 뻔하니 그가 방심하길 기다려야겠지만.
평소에 미국 총기관리를 그렇게 욕하고 다녔지만 이 순간 자신의 주머니에 권총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설마 자신이 NRA (미국총기협회)의 로비력에 감사할 일이 생길 줄이야.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그런 그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남자는 그에게 뒤를 보이며 여자시체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듯 시체에 입을 맞춘 남자는 왼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너는 들리지 않는가? 이 처절한 피의 외침을 말이다!”
“시체가 말을 한다고?”
“시체가 아니다. 새로운 주인을 원하는 뱀파이어블러드이지.”
“……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신 것 같은데,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잘아는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녀석이라면 당신의 문제를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아, 인간한테는 역시 미친 소리로 들리겠군.”
“인간이 아니라 지나가는 강아지도 당신한테 미쳤다고 할겁니다. 물론 정신과 진료가 명예롭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닥쳐라. 더 이상 헛소리를 지껄이면 네 조각으로 산산이 찢어 죽여주마.”
사현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도 역시 인간인지라 누구를 돕겠다는 의사로서의 사명보다는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남자의 광기에 찬 남자의 눈동자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자신이 내 뱉은 말을 지킬 수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심어 주었다.
“너 뱀파이어가 될 생각 없나?”
“뱀파이어라고요?”
“그래 인간이여. 보통의 인간은 누릴 수 없는, 영원히 불멸을 누릴 수 있는 신의 축복을 말이다. 그냥 죽여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네가 너무 마음에 들어버려서 말이야.”
“뱀파이어. 어떤 의사에게 물어봐도 그런 건 없다고 대답해 줄 겁니다.”
그는 남자의 말에 코 웃음 치며 대답했다. 굳이 의사가 아니라 미국 어느 생화학 학과에 쳐들어 가도 같은 대답을 해 줄 것이다.
중세시대에 흡혈귀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실제로 유전병을 앓고 있었던 가련한 사람들이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헤모글로빈의 힘팩터가 (heme factor) 유전적 요인에 인해 비정상이 되면서 생기는 증상들이 흡혈귀인 것이다.
물론 결함이긴 해도 당장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심한 결함은 아니기에 흡혈귀의 특성이라고 부르는 증상들이 오긴 하지만 바로 죽진 않는다. 과거 과학 지식이 부족했던, 그리고 자신과 다른 것이면 닥치고 없애버리고자 했던 사람들은 그 환자들을 몰살 시켜버렸다. 치료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로.
물론 지금은 발달한 의학 덕에 그 병은 완치 시킬 수 있다. 그 것도 수술이 아니라 간단한 약만 꾸준히 먹어주면 낫는 병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약 먹으면 낫는다고 하지만 굳이 사서 병을 얻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유전적인 병이라서 전염이라는 것도 불가능한 병이지만. 이런 기초적인 내용을 모를 리가 없는 그는 당연히 코웃음 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기본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누구나 지금 이 남자의 얘기를 듣는다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런 사현의 얼굴을 본 남자는 하품하듯이 말을 내 뱉었다.
“인간이란 보지 않으면 절대로 믿지 않는다더니 정말인가 보군.”
“인간은 신뢰할 만한 것만 골라 믿지요. 보는 것만을 믿는다면 그건 원숭이와 다를 바가 없으니까.”
“하! 그런가? 그럼 이걸 보여줘도 별 소용없겠군.”
순간 남자의 입을 열어 자신의 하얀 이를 드러냈다. 순간 사현은 남자가 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지나치게 돌출된 입과 기형적 치아구조! 교과서에 실려도 될 만큼 완전한 케이스의 환자였다.
“물론입니다. 단지 약물치료가 좀 필요는 해 보이는 군요.”
“너처럼 날 화나게 한 인간은 처음이다.”
“당신처럼 치료를 권하기 힘든 환자도 처음이군요.”
남자는 싸늘하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본 사현의 머리 속에서 강렬한 외침이 울리고 있었다. 지금이다. 지금 기회를 잡지 못하면 앞으로 계속 숨쉬며 살지 못한다고. 사현은 얼굴에 최대한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보이려고 애썼다.
조금씩 조금씩 남자가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에 맞춰 사현 역시 뒷걸음질 치고 있었지만 어느새 자신에 뒤에 놓은 벽을 보고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남자와의 거리가 채 10미터가 되지 않았을 시점에 그의M500 자동권총이 불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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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된 흡혈귀에 관한 얘기는 전적으로 과학적인 이야기 입니다. 흡혈귀나 웨어울프라고 부르는 것들은 실제 모두 헤모글로빈의 결함에서 오는 유전적 질병이죠. 거기서 오는 증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얼굴 모발의 과다한 생성 (웨어울프의 그것을 생각하시면 될듯)
2. 마늘 냄새에 과격하게 반응함. (마늘은 보통사람에게는 혈핵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지만 이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반대라는 군요.)
3. 잇몸과 이빨의 돌출.
4. 자외선에 피부가 매우 민감해짐.
5. 기타 체내의 산소 부족증상이 나타남.
언뜻 보아도 우리가 흡혈귀를 정의하는 증상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뭐, 이런 것들로 사람들이 흡혈귀로 몰려 엄청 살해 당했음을 생각하면 아는게 힘이라는 생각이 들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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