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안 테일즈 - 수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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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망고반쪽
작품등록일 :
2018.02.16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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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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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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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화

DUMMY

노을이 진 주홍색 하늘 사이로 솟은 언덕이 태양을 가렸다. 그것의 위에 올라서서 에인과 그의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던 비질의 수장은 그의 병사들이 그들과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달려 내려와 그들을 반겼다.

"역시 살아 계셨습니까."

"제가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안색에 피곤이 역력했지만,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은 것인지 겉으로 드러나는 부상은 보이지 않았다.

"사령관님."

"그래, 자네들도 수고 많았네."

한편 샨이 오웬과 티아를 대표하여 그에게 인사하자 그레고르가 그들을 격려했다. 오웬과 샨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를 보고 기겁을 했겠지만 지금은 격식 따위는 신경 쓸 힘도 없었다.

그러던 중 그는 테나의 등에 업혀있는 사람이 펠리시아인 것을 보았다.

"펠리시아 씨는... 부상을 당하신 겁니까?"

"그-그건 조금 있다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스파다 시민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레고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에인을 찾으러 나갔던 병사들은 그의 손짓을 보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어디론가 향했다.

"일단 무사히 나오신 분들은 몇몇 병사들과 함께 연맹의 외곽으로 계속해서 이동 중입니다. 스파다가 이미 국경에서 가까운 곳이라 멀리 가진 못하겠지만 여차하면 이웃 왕국과 제국에서 도움을 받을 수는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생존한 비질들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 본부에는 장교들과 비전투원들 까지 포함 삼천명 정도 있었지만... 살아 나온 병사들은 삼백명도 되지 않습니다."

"..."

모두들 침울한 표정을 짓자 그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북돋아 주려 하였다.

"그렇게 우울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직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그와 함께 언덕의 반대편으로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비질들의 야영지가 있었다. 거기다 그들은 스파다의 파멸을 보고도 크게 흔들리지 않은 것인지 어둡지 않은 모습으로 야영지의 준비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었다.

"테나 씨는 알아 보실지 모르겠지만 실은 살아남은 비질들 중 적지 않은 수가 8년 전 에탐의 기둥에 있었던 비질들입니다.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병사들이라 그런지 다들 장교가 됐는데도 전선에 나서고, 살아 나온 것도 모자라 저렇게들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테나는 그들 중 몇몇 어렴풋이 기억에 남은 얼굴 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에탐의 기둥에 있던 그것 보단 규모가 작았지만, 그레고르와 그의 병사들을 보자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거기다 펠리시아는 이번에도 그녀의 팔에 안겨 있었다. 데자뷰라면 데자뷰일까, 그녀는 조그맣게 혼잣말을 하였다.

"이런, 테나 씨 힘드시지 않습니까? 어서 병사들을 시켜서-"

"아뇨, 괜찮아요. 어차피 병사 서너명 보다야 제가 힘도 더 세서 별로 의미는 없을 거예요."

테나가 거절을 하자 그는 대신 서둘러서 야영지의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신 어서 들어가도록 합시다, 서로 할 얘기가 많을 듯 하니. 자네들은 부상이 조금 심해 보이니 가서 치료를 받게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샨이 인사를 하는 동시에 그레고르의 부름을 받은 병사 한명이 그들을 의무실로 데려가기 위해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나머지 셋은 그레고르를 따라 상황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그의 천막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샨과 오웬은 지친 몸을 이끌고 군말 없이 안내하는 병사를 뒤따랐지만 티아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그레고르 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한 그녀는 다시 눈을 돌리고 그 때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

늦은 시각, 그레고르의 천막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티아는 에인이 그의 동생과 테나와 함께 천막을 나서는 것을 보고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그녀는 그레고르의 천막을 지키고 있던 비질들에게 접근했다.

"잠시 사령관님을 뵙고 싶습니다."

"지금 시각이 너무 늦었습니다. 내일 다시 오십시오."

"오늘 내일 하는 이 상황에 내일 다시 오란 말입니까?"

"그런-"

"들여보내 주게."

그레고르가 그들의 대화를 들은 것인지 그녀를 막아섰던 병사들을 제지했다. 그의 명을 들은 병사들은 그대로 말 없이 옆으로 비켜 서 그녀에게 길을 터주었다.

"사령관님."

"그래, 어서 들어오게나. 실은 나도 자네를 불러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네."

천막은 현 비질 사령관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한 천막이었다. 기껏해야 한 가운데의 작은 장작불에 침대 하나, 탁자와 의자 몇개, 그리고 무구를 걸어놓을 수 있는 걸이 뿐이었다. 다른 병사들의 천막과 의무실의 상태도 이 천막 보다는 훨씬 나은 것을 보아 일부러 이렇게 한 모양이었다.

"나도 자네에 대해 익히 들어서 알고 있네. 자네 같은... 비질은 찾기 쉽지 않지."

"그 날 이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그 이후를?"

그녀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그가 웃으면서 의자에 몸을 내던지듯 앉았다.

"일단은 둘 다 라고 말해 두겠네. 자네가 '그쪽' 사람이 되기 전에도 서류에 루크레티아 라는 이름이 몇번 올라오는 것을 본 기억이 있으니.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일세."

"..."

"자네가 먼저 날 찾아온걸 보니 자네도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군. 먼저 얘기해 보게, 내가 할 말은 그 다음에 하도록 하지."

그의 제안에 티아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가만히 서서 자신의 발끝 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자신이 하고자 하는, 해야 하는 말을 고른 그녀는 그레고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문을 열었다.

"저와 함께 네메시안들을 사냥했던 비질들... 그들도 저 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 이었습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그레고르가 미소를 잃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결론적으로는 네메시스들 때문에 친구를, 동료를, 가족을 잃고 더 이상 잃을게 없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가게 되었으니까. 자네 처럼 말이네."

그녀가 입을 열었다가 아무 말도 없이 그것을 다시 다물었다. 마음이 바뀐 것인지 그녀는 생각해 두었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건 그게 전부 입니다."

"정말인가? 분명 하고 싶은 다른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해봤자 의미 없는 말들입니다."

"날 원망 하거나 하지는 않는건가? 어떻게 보면... 난 자네들이 그런 혹독한 생활을 하고 사실상 무기로서 다뤄지는 것을 방치한 사람인데."

티아가 고개를 저었다. 타오르는 장작의 빛이 비추는 그녀의 눈에서는 그것을 놓았다기 보다는 포기했다는 감정이 강하게 세어 나왔다.

"원망할 만한 사람들은 이미 모두 죽고 없습니다."

"... 알겠네. 그럼 내가 할 얘기로 넘어가도록 하지."

그가 탁자 위로 손을 모으더니 방금 전 까지 비교적 가벼웠던 분위기를 정리하였다.

"자넨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보나?"

"... 무슨 말씀으로 묻는 겁니까? 분명 에인-"

"그런 뜻이 아니네."

그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뒷짐을 진 채 그녀에게서 몸을 돌렸다.

"자네는 두번이나 놈을 만나고, 살아 나온 비질. 거기다 자네는 네메시안을 상대하는 비질 특수부대의 가장 뛰어난 비질이었지. 단 한명의 비질의 능력만을 보자면... 아니,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의 기준으로 자네는 어쩌면 가장 강한 인간일지도 모르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비질로서, 이 네메시스는 어떻게 사냥해야 하는 것인가. 지금 나는 자네에게 그걸 묻고 있는 걸세."

"..."

물론 그녀도 그런 괴물을 어떻게 사냥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레고르도 분명 그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서든 놈을 쓰러뜨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지금 그들의 현실이었다. 에인 에게서 '현실'을 들었다면, 티아 에게서는 '해결책'을, 최소한 그것의 실마리를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저도... 저도 모르겠습니다."

"... 그래, 자네라고 별 수 있는게 아니겠지. 애초에 그랬다면..."

하지만 정말 아무 수도 없는 것일까? 마룡에게 약점은 없는 것일까?

"다만..."

"음?"

"마룡에게 약점이라고 할 만한 것이 딱 하나 있긴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그레고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손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그게 뭔가?"

"마룡은... 감정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합니다."

"무슨 뜻이지?"

"예컨대... 놈은 언제라도 불이 붙을 수 있는 장작더미 같습니다. 약간의 도발 만으로도 놈은 쉽게 경계를 풀어버립니다."

그녀가 이어서 헤롤드가 마룡에게 처음 했던 도발, 자신의 몸을 되찾았을 때 벌어졌던 일, 그리고 에인이 말해 주었던 스파다에서 그녀의 모습을 설명했다. 그녀의 말을 납득하며 그레고르는 그것을 어떻게 자신들의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라..."

"제가 아는건 거기 까지입니다. 그것 말고는... 솔직히 파고들 만한 구석이 없는 적입니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되려 감사를 표했다.

"아니, 고맙네. 그나마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건 아니니."

"... 저도 감사합니다. 이런 급박한 시기에 한낱 병사의 푸념을 들어주셔서."

"푸념이라니, 전혀 아닐세. 그리고 이럴 때일 수록 나라도 그런 말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나?"

그러더니 그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몇번 끄덕이더니 그들의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하였다.

"그럼 더 할 얘기가 없으면 이만 가봐도 좋네."

"알겠습니다."

허나 그녀가 일어서서 천막을 떠나려는 순간 그레고르가 그녀를 다시 한번 불러 세웠다.

"아, 그리고 루크레티아."

"예?"

"남편분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하네. 내-"

"그만!"

갑자기 티아가 큰 소리로 그의 말을 끊어냈다.

"더 이상 말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가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제서야 그레고르는 아직 그녀가 이 대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을 알아냈다.

"... 그렇군. 미안하네."

그의 마지막 사과를 받은 그녀는 눈물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이며 천막을 나섰다.


그레고르와의 대화를 마치고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온 티아는 오웬이 아직 깨어 있는 것을 보았다.

"루크레티아 비질님? 어디 갔다 오시는 겁니까?"

"아... 잠깐 사령관님이랑 얘기 하다 왔어."

"사-사령관님?!"

오웬이 호들갑을 떨자 그녀가 손을 흔들어 별거 아니라고 손짓하였다.

"별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어. 그냥 내가 있었던 부대 얘기랑... 이런저런, 지금이랑은 별로 상관 없는 얘기들이야."

"아... 예."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는 바로 눕지 않고 아직 무언가가 머릿속에 남아 있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오웬... 애초에 네메시스고 네메시안이고 전부 없었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 예?"

오웬이 티아가 느닷없이 넌지시 던진 말에 고개를 돌렸다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녀의 표정은 다시 일전에 보았던 차가운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단순히 얼어붙은 영혼 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에 담긴 억울함은 마치 자신의 마음 속에 담긴 불꽃은 무언가에 쏟아내지 못한다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울분을 토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오웬은 믿고 있었지만, 아직 그녀에게는 풀어내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끓어 오르는 물 처럼, 티아는 혼잣말과 함께 계속해서 그것에 화를 더해갔다.

"전부 없었으면..."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망고반쪽입니다. 

어느새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새해가 다가오는군요. 요즘 한국이 많이 춥다는데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마 2019년 초반에 (3월 즈음) 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 다시 인사 드리겠지만 이 긴 소설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 드리고, 많이 부족한 모습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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