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는 여러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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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라이프
작품등록일 :
2018.05.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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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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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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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프롤로그




당신의 혀가 입안에서 뭉근하게 으스러지고 있어요. 당신의 목구멍에서는 바람소리가 납니다. 그 소리가 참 서늘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차가워지고 교만해지고 포악해집니다. 밝을 때 들어온 당신의 방은 금 새 어둑어둑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방에서는 장마철 빨래 냄새가 나요. 창밖은 너무나도 한가롭고 너무나도 상쾌하고 너무나도 푸릅니다. 당신은 입을 벌리고는 다물 줄 모릅니다. 입을 벌리고 주무시면 코가 막히지는 않으세요? 지금부터라도 코로 숨 쉬는 습관을 들이세요. 숨만 잘 쉬어도 폐가 따뜻해집니다. 따뜻하게 데워진 말 한마디로 우리에게 천 냥 빚을 갚아보십시오. 입모양을 흉내 내면서 따라해 봐요. 나는 오늘 죽었다. 농담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진지해요. 난감해하지 말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놓아 보세요. 그동안 당신과 우리는 너무 대화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당신만 모르는 끔찍한 행동들을 공유하고 있어요.

우리는 꽉 묶인 검은 비닐봉지를 가위로 자르고 물이 점점 차오르는 변기 안에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손을 집어넣습니다. 혼자 무섭지 않으세요? 무슨 말이든 해보세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식물처럼 체온을 잃어가면서 손가락발가락만 까딱거리지 말고. 당신이 먹는 것을 먹고 살던 내장 속 박테리아가 당신의 혀를 다 갉아먹기 전에 정확한 발음을 꾸준히 연습해봅시다. 나는 오늘 죽었다. 명료한 발음의 기본은 입을 천천히 크게 벌리는 일입니다. 기본은 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꾸준히 하지 않으면 잘되던 발음도 어렵게 될 수 있는 법이거든요. 울지만 말고 살구나무 꽃핀 담장너머 텃밭을 떠올려보십시오.

도처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양파와 두메부추가 파릇파릇합니다. 비늘을 걷은 나무전지에는 흙 똥을 눈 지렁이들이 바글바글해요.

비가 오는 날 땅 위로 기어 나왔던 큰 지렁이들은 느닷없는 봄날 햇살에 온몸이 빨갛게 익어갑니다. 새까만 개미떼가 물어 떼도 꿈틀거리지 않습니다. 까맣게 멍이 들린 손톱 위를 바늘로 찔러도 죽은피가 나오지 않는 당신처럼 말입니다. 당신의 알몸은 당신과는 다른 표기의 언어 같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몸을 씻길 때 폰트를 확대하거나 축소해요. 당신과 우리가 함께 공유한 얼굴로 말이죠. 당신의 표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얼굴뼈에 붙어 있는 수많은 작은 근육들을 움직여 봐요. 우리는 당신의 목소리로 말합니다. 물이 너무 차다. 물이 너무 뜨겁다. 차가운 물이 미지근한 물이 될 때까지 뜨거운 물이 서서히 식을 때까지 우리는 당신의 몸에 물을 뿌립니다. 귀에 물이 꽉 찬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머리를 한쪽으로 숙여요. 고집스러운 입모양은 만들지 마시구요. 좋은 환경에서 오래 자란 사람 마냥 밝고 명랑한 얼굴표정을 흉내내보세요. 그래요, 그렇게, 당신도, 우리도, 모두, 기분이, 좋아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어요. 당신의 머리카락은 더 작고 동그랗게 고부라지고 보들보들 해졌습니다. 체질계측을 실시해볼까요? 당신의 머리길이는 우리의 머리길이이고 당신의 머리너비는 우리의 머리너비이며 당신의 귀-머리너비는 우리의 귀-머리너비입니다. 우리의 머리는 다른 집단하고는 연결되어 있지 않아요. 우리는 당신을 위해 짙은 눈썹을 밀었어요. 우리는 이마가 길고 넓죽합니다. 우리의 갈래는 형질인류학·선사고고학·언어학·민속학·신화학·유전학 등에는 없어요. 우리의 얼굴은 당신이 우리의 얼굴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따라 표현되었고 변모합니다. 일종의 구비문학이죠. 당신은 가늘고 긴 눈에 광대뼈가 강조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눈을 이리저리 굴러보세요. 우리의 눈은 뜨겁게 녹은 설탕 같습니다. 단맛은 강하지만 입안이 텁텁하네요.

우리는 아직은 좀 서툴게 칫솔질을 하고 물로 입안을 헹궈요.

당신의 얼굴은 사선으로 비뚤어집니다. 당신은 당신의 오른쪽 입매로 왼편과 맞서고 있어요. 우리는 당신의 그런 공격방식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거울을 좀 보세요. 정면을 직시하십시오. 당신은 우리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낙관적인 삶이란 그렇고 그런 것입니다. 눈꼬리를 위로 치켜뜨고 조금씩 다르다고 말하고 싶죠? 낙관과 비관의 차이는 너무 미묘합니다. 우리는 위협적인 인상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손을 씻고 확인하고 숫자를 셉니다. 당신은 건강한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당신에게 빌려온 판단과 행동의 틀을 가졌습니다. 우리에게 알맞은 역할만을 하십시오. 당신의 생각, 당신의 신념, 당신의 가치관은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비인간적 몰인정한 당신의 표정을 서둘러 거두십시오. 우리의 체면이 당신 때문에 깎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항상 옳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이중인격자라 부르고 증오하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생명은 우리와 직접 관계되어 있습니다. 백분화장을 한 노는계집마냥 부드럽게 말하십시오.

베개가 너무 높다. 베개를 하나만 빼다오.

당신은 어항 속에 든 금붕어 같습니다. 당신이 ‘노란나비’라고 부르던 그 금붕어 말입니다. 우리는 그 금붕어를 꺼내 글리세린을 얇게 발랐어요. 상상해보십시오. 액체 질소 속에 든 금붕어가 거짓말같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광경을 말이죠.

똥 기저귀를 찬 당신의 몸에서는 회생 불가능한 비린내가 납니다. 우리는 일부러 인상을 찌푸리지 않으려 애씁니다만 비위가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겨울에도 창문을 활짝 열어놓습니다. 하늘은 무척 맑고 파랗습니다만 당신의 머리카락은 뻣뻣하게 다 얼어버리네요. 우리는 당신이 몸이 차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당신은 자꾸 눈을 깜박여요. 검게 변한 입술이 달싹거립니다. 뜨거운 물에 혀가 데인 듯 괴롭습니다.

우리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 당신은 ‘후후’ 입김을 불어 봐요.

살아 있는 것은 다 그렇게 추위에 반응합니다.

응급상황입니다. 우리는 갑자기 어두운 방에 들어간 당신의 동공을 살핍니다. 빛이 들어오는 게 느껴지시나요? 당신의 반응은 상당히 느립니다. 우리는 비싼 담배를 피우고 비싼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이나 던져 봐요. 미역국이 좀 싱겁습니다. 병원 밥은 왜 이리 맛이 없을까요? 잠을 잘못자서 목이 아픕니다. 우리는 어쩌다가 어른이 됐을까요? 당신은 다음 날 아침에 겨우 죽다 살아납니다. 당신은 우리가 무서워지고 불편해져요. 우리는 비겁하고 개념이 없습니다. 두려움에 몸서리를 한 번 쳐보세요. 우리는 당신의 끔찍한 것들입니다. 당신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것이기도 했어요.

당신은 당신의 심정을 침착하게 밝혀야합니다. 왼쪽 위 눈꺼풀을 가늘게 떨어보면서 죽고 사는 건 우리의 뜻이다, 라고 말해보세요. 한 가닥 실오라기 같은 희망 따위는 바라지도 마십시오. 당신은 끝났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입니다만, 어쩐지 오늘은 듣고 싶지가 않네요. 손을 씻겨 줄까요? 눈을 비벼드릴까요? 재채기를 한 번 해보세요. 우리는 당신이 좋아할 만한 몇 가지 불운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세상에는 행방을 알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아요. 아이들은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매를 맞고 처참하게도 버려집니다. 자살폭탄 조끼를 입은 소년소녀들은 어디를 가는지 말하지도 않고 집을 나와 갑자기 폭탄이 터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죠. 발이 계속 자라 신발을 신을 수도 없는 아이들과 얼굴이 계속자라 몸보다 무거워진 아이들은 대부분 집안형편이 넉넉지 못해요.

왜 그런 거죠?

당신은 또 입을 굳게 다물고 빤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네요.

우리였었던 첫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당신은 산헤드린과 빌라도의 법정에서 첫째를 죽이라 명했습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손에 채찍을 쥐어주었고요. 첫째가 마침내 죽었을 때 둘째는 망치를 내려놓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망치를 들었더니 모든 사물이 못으로 보여. 우연한 결과일겁니다. 둘째가 당신의 손등을 망치로 내려친 것은·······, 셋째는 찬물에 당신의 손등을 집어넣으면서 물었어요. 당신도 아파요? 당신은 손등에 난 피멍만큼이나 시퍼런 얼굴로 말했습니다.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한다.

소금은 둘째의 애칭이었죠.

우리는 둘째를 나무에 목매달았습니다.

우리는 셋째를 밭에 거꾸러뜨리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냈어요. 모든 예물은 셋째의 애칭이었죠.

그러자 당신이 또 우리에게 말했어요.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했습니다. 눈물이 없으면 어찌 짠맛이 나겠어요? 당신은 시체들이 짐짝처럼 쌓여 불에 타는 광경을 좋아해요.

새까맣게.

새까맣게 타다 만 시체.

숯처럼 새까맣게 타버린 시체들.

소매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

피도 눈물도 모두 조용히 마릅니다. 순진한 얼굴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묻는 사람도 없어요. 몰랐다고 하는 부분은 고의성이 없다 또는 단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법입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며 신 앞에서 유죄지만 법 앞에서는 무죄에요, 라고 말하기 위해 구경꾼들은 연일 눈동자를 굴리죠.

비겁한 사람들은 당신 덕분에 큰 위기를 넘겼습니다. 당신은 괜히 불편한 척 살짝 인상을 찌푸려요. 우리는 몸이 불편한 당신을 휠체어에 태우고 ‘자, 우리, 하나님이 달려가신다.’라고 큰소리로 떠들어대며 신나게 발을 굴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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