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는 여러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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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라이프
작품등록일 :
2018.05.18 18:48
최근연재일 :
2018.05.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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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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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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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듀라한

DUMMY

“속이 좀 시원하니?”

“모르겠어요.”


벼리는 새까맣게 불타고 있는 제너널셔먼호를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죽여야 할지, 신을 죽여야 할지 모르겠니?”

“아뇨.”

“그런데 왜 아까부터 그런 표정이야?”

“내 표정이 어때서요?”


그녀는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말을 잇습니다.


“사람마다 달라요.”

“응?”

“신은 하나지만 사람은 여럿이니까요.”

“그렇지 않아.”

“뭐가 그렇지 않죠?”

“아니야. 아무것도.”


신의 세계도 인간들 세상만큼이나 과거에는 상당히 복잡 했습니다. 신들의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많은 것들이 변하지는 않았었겠죠. 어쨌든 이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과거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으니까요.


“구경은 그만하고 이제 우리가 뭘 좀 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그래. 우리가 뭘 어떻게 해볼까?”

“일단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요. 생각도 좀 정리해야하고. 계획도 짜야하고. 준비할 게 많아요.”


그녀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던 찰나에 무슨 이유인지 변덕을 부립니다.


“저기요.”

“응?”

“집으로 데리고 오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서 데리고 오는 거죠?”

“음. 글쎄.”


그러고 보니 오늘은 8월30일 ‘세계 실종자의 날’입니다.

전 세계 적으로 실종자 수는 늘어나고 있고 실종자를 찾아야 하는 가족들은 실종신고 포스터를 거리마다 붙여요. 혹시나 이상한 시설에서라도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죠.


“셋째 형을 만나보고 싶어?”

“네.”

“후회할 텐데. 그는 이곳에서 좀 유별나거든.”

“괜찮아요. 설마 저 위에서 벌어지는 일보다 더 하려고요.”


셋째 형은 목사이자, 사업가이며, 정치인이자, 연예인이며, 꽤나 유망한 권투선수이기도 합니다.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를 만나서 좋을 건 없죠. 그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짐승만도 못한 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째 길거리 노숙자 차림으로 지하철 계단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네요.


“뭐야? 일 할 때는 방해하지 말라니까,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어?”

“무슨 일을 하시고 있는데요?”

“폭행하고 강간하고 살육해서 뭐 그러다가.”


셋째 형은 갑자기 말을 하다맙니다.

그는 노숙자와 회사원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공원 분수대 벤치를 바라보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네요. 꽤 오래되어 보이는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 우물우물 씹으면서 말이죠.


“저게, 뒈질라고.”


그는 담배하나 달라고 회사원 양복을 붙잡고 엉기고 있는 노숙자의 얼굴을 발로 차서 멀찍이 날려버립니다.


“왜 그런 거예요?”

“내 물건이야.”

“무슨 말이죠?

“내가 찜해둔 거라고.”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셋째 형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죠.

부지 불순 간에 얼굴을 맞고 기절한 노숙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점퍼 속주머니에 든 나이프를 만지작거립니다.


“병신새끼.”


오늘 노숙자는 운이 좀 많이 없네요. 아마도 그는 셋째 형을 위협만 해서 쫒아낼 생각이었겠지만 상대는 도망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죽어 개새끼야.”

“찌르지도 못할 거면서. 칼은 왜 들고 다니나 몰라. 그 칼로 쓰지도 못하는 네 좆이나 깎아.”

“찌른다. 진짜.”

“찔러, 더러운 깜둥이 새끼야. 찌를 배짱도 없으면 집에 가서 굶어 뒈진 네 엄마 똥꼬나 박든지.”

노숙자는 셋째 형의 목을 수차례 찌릅니다.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내려요. 노숙자는 몸에 묻은 많은 핏자국에 놀랐는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괜찮아. 이 정도로 안 죽어.”


셋째 형은 차분하게 말하지만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어깨를 움츠립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육체만을 생각하고 육체가 죽기 때문에 ‘인간’은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죽음은 실질적인 측면에서 존재하지 않아. 사람이 육체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았을 때 두뇌에 남아있는 20와트의 에너지는 ‘내가 누구지?’라는 느낌을 받게 하거든.”


셋째 형은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그럴싸하게 말하고 앞으로 몇 걸음 더 걷더니 옆으로 픽 쓰러집니다. 빵부스러기를 쪼아대고 있던 비둘기들이 잠시 흩어져 날아올랐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요.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경찰들은 어물쩍거리면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요.


“노숙자들끼리 자리싸움이 난 모양입니다.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셋째 형은 다시 다른 사람 몸을 빌릴 거예요.

그에게 죽음은 그런 것이죠. 빌리고 버리고 비우고 내려놓고.

지금 그는 노숙자와 방금 전까지 실랑이를 벌였던 회사원입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걷고 우리는 그런 그를 뒤쫓습니다. 추격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는 그가 좀 우습긴 합니다만, 뭐 어쩌겠어요?


“너 왜 자꾸 쫒아와?”

“형은 왜 도망가는데?”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류장 의자에 앉습니다.


“귀찮아.”

“뭐가?”

“몰라서 묻니?”

“알지 아는 데, 그녀가 형이 사람들을 하늘로 데리고 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해서.”

“그걸 봐서 뭐하게?”


그는 땀을 닦고 한숨을 푹 내쉽니다.

그때 마침 두 개의 빨간 버스가 오고 그는 두 번째 버스에 올라타요. 버스카드를 찍고 버스 뒷문 앞의 손잡이를 잡고 섭니다. 다음 정류장을 알려주는 방송이 시간차를 두고 계속 반복됩니다.


“나는 오늘 이 남자의 가족들을 죽일 거야. 내 아버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니까. 최대한 잔혹하게, 최대한 고통스럽게.”


그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좀 지겨운 듯 말합니다. 사실 좀 따분한 일이기는 하죠. 수억 년 간 그는 이 일을 도맡아 했으니까요.


“죽고 싶어.”


버스 손잡이가 세게 흔들립니다. 어렵사리 몸을 지탱하고 있던 노인의 어깨가 셋째 형의 옆구리에 꽂힙니다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아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벼리가 바닥에 쓰러진 노인을 일으켜 세우고 내릴 때가 된 셋째 형은 다시 버스 카드를 찍고 내려요.


“여기는 참 따분한 곳이야. 평화롭고 아름답고. 살인이 특별한 것도 아닌데 뭐만 났다 싶으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고 말이야.”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봅니다.

살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몇 시, 몇 분, 몇 초에 죽이느냐, 하는 거니까요.


“네 시간 삼십 분이나 남았어.”

“지루한가요?”

“무섭고 징그럽고 끔찍해.”


그는 가는 길에 제과점에 들러서 케이크와 빵을 고릅니다. 초가 몇 개가 필요하냐는 점원의 질문에 ‘열여섯 개’라고 답하고 난 뒤 다시 또 말을 이어요.


“신을 죽이겠다는 거 진심이야?”

“네.”

“무슨 수로?”

“그거야.”


벼리가 바보같이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니 셋째 형은 그녀를 비웃적거리는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새로운 신을 만드는 편이 신을 죽이는 것보다 빠르지 않을까, 싶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거야······.”


그는 그녀의 대답을 다들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지 걸음을 다시 옮깁니다. 혼자 일하는 게 편하다며 여기서부터는 따라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말이죠. 무너뜨릴 블록이 될 사람 하나만 밀어버리면 쓰러진 블록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거에요.


“우리는 좀 쉬었다가 뒤따라갈까? 아직 시간이 되려면 멀기도 했고.”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합니다.

귀에 대고 속달거릴 이야기도 다 떨어져 가는데, 그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쉬고 싶어요.”

“응?”

“잠시 들어갔다가 올게요.”

“어딜?”


그네에 앉아있던 그녀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그림자를 흔들어 깨우듯 작고 하얀 발을 까딱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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