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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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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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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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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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폐허로 변해버린 장현의 집

DUMMY

윤씨의 유일한 피붙이 남동생 윤정석은 윤씨가 장경의 첩실로 들어간 이래 30여년 째 하는 일 없이 무위도식하고 있었다.


열살의 어린 나이에 역모에 연루된 부모님을 여의고 윤씨와 함께 조사석 부인 귄씨 집안의 종이 되는 바람에 잡일만 하여 농사를 지을 줄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천성도 게으른 탓이었다.


이때 윤정석은 장현의 가문이 역모에 연루되어 온 가문 사람이 포도청 포졸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사석 집에 사람을 보내 윤씨의 소식을 알아보고 있던 차였다.


'누님 시댁이 풍비박산이 났으니 이제 어찌 사나? 헌데, 누님께서는 무사하실까?'


윤정석이 이런저런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윤씨가 옥정, 철영과 함께 윤정석의 집에 당도했다.


"누님,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이옵니까?"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은 윤씨는 서러움이 복받쳐 통곡하기 시작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윤씨의 통곡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윤정석에게 옥정이 인사를 올린 후 말했다.


"서인들의 모함으로 백부님께서 역모에 연루되시어, 백부님을 위시한 온 일가 사람들이 모두 포도청의 포졸들에게 추포되었고, 오직 우리 가족만 조대감의 연줄로 무사했을 뿐이옵니다......"


옥정 역시 서러움이 복받쳐 말끝을 흐리며 흐느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라도 무사하였으니, 천만다행이구나!"


윤정석은 가늘게 떨리는 옥정의 어깨를 토닥여준 후 윤씨에게 다가갔다.


"누님, 조대감께서 계시니, 너무 심려치 마소."


윤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눈물을 옷고름으로 닦고 나서 집안을 둘러보니 곳간이 텅빈 것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동생이 사람 하나는 좋으나 천하의 백수로 무능하기 짝이 없는데, 이제 어찌 살지 막막하구나! 장씨 가문의 정부인인 내가 예전처럼 남의 집 종노릇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윤씨의 눈길이 텅빈 곳간에 머물자 윤정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지 않아도, 매형께 곡식을 빌릴 참이었는데......"


윤씨는 망연자실하여 탄식했다.


"이 누이가 하나밖에 없는 내 아우의 곤궁함도 모르고 살았구나!"


그제서야 텅빈 곳간에 눈길이 멈춘 옥정은 외삼촌 윤정석이 자신의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음을 알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외삼촌께서 이리도 곤궁하게 사시다니! 오라버니를 의지할 수도 없는 일이니, 이제 우리 모녀는 어찌살까? 혼처나 제대로 구할 수 있을지......'


이날따라 밤바람이 매서워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윤정석이 윤씨와 옥정 모녀에게 내어준 처소는 온돌방이었으나 장작이 없어 불을 지필 수 없었다.


옥정은 몸이 허약한 윤씨가 감기라도 들까 걱정되었다.


'어머님이 걱정이구나! 따뜻한 솜 이부자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따뜻했던 내 방이 그립구나! 백부님은 옥에서 잘 지내고 계실까? 오라버니께서는 어디서 밤을 보내시고 계실까?'


옥정은 이런저런 걱정으로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옥정은 뒷산의 산등성이에 떨어진 도토리라도 주울 생각으로 새벽부터 일어나 대문을 나섰다.


"아씨!"


철영이 절뚝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철영 역시 밤새 잠이 오지 않아 온통 멍든 몸을 뒤척이고 있던 중에 문틈 사이로 옥정이 대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따라나선 것이다.


"여인이 혼자 새벽길을 다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쇤네도 따라가겠사옵니다. 어디를 가시려 하옵니까?"


"곳간이 비어 있으니, 도토리라도 주울까 한다. 몸도 성치 아니한데, 괜찮겠느냐?"


철영은 괜찮다는 듯이 두 팔을 번쩍 들어보였다.


"쇤네, 강골이라 끄덕없사옵니다."


"허면, 따라오너라."


때마침 보릿고개인 3월이라 산등성이 여기저기를 다녀봐도 도토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옥정은 다리에 맥이 풀렸다.


철영이 말했다.


"도토리는 이미 사람들이 주워간 모양이니, 쇤네가 도끼를 가져와 장작이라도 해 가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순간 옥정은 어제 급히 도망쳐 나온 종백부 장현의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문득 장현의 집에 두고온 자신의 물건들이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이 어찌 되었는지, 가봐야겠다."


옥정은 기대에 찬 발걸음으로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장현의 집으로 향했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폐허로 변해버린 장현의 집은 쓸만한 나무 짝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마당과 정원에 심어져 있던 나무들은 밑둥만 남긴 채 베이고 없었고, 문짝마저 모조리 뜯어가 버리고 없었다.


옥정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넋이 나간 얼굴로 폐허가 된 장현의 집을 두리번거렸다.


철영이 이를 갈며 한마디 내뱉었다.


"지독한 놈들......"


"입조심하거라."


옥정과 철영이 인기척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조태구가 하인 몇과 함께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옥정이 고개를 숙여 조태구에게 인사를 했다.


"도련님, 어찌...... 이곳에......"


"궁금하여 와봤느니라."


옥정은 집안 곳곳을 둘러보다 탄식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태구가 연민어린 눈으로 옥정을 보며 말했다.


"그래, 실망이 크겠구나. 내 반드시 네 원수를 갚아주마. 네 백부를 모함한 자들과 이 집을 쑥대밭으로 만든 자들, 모두 발본색출하여 피눈물이 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내, 약속하마."


"소녀, 다만, 백부님을 구하고, 어머님을 잘 봉양하고 싶을 따름이옵니다."


옥정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포도청의 포졸들이 포도대장의 허락없이 조선 최고의 거부인 장현의 집안을 멋대로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옥정은 조심스럽게 조태구에게 말했다.


"저들이, 우리 가문의 집을 이처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아마도 포도대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 아닐지요."


역적으로 몰린 장현의 가산을 적몰하라는 숙종의 명이 떨어져 있었다.


조사석이 윤씨를 구하러 포도청에 갔을 때 포도대장으로부터 들은 사실로 조태구도 알고 있었지만 옥정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글쎄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조태구가 말꼬리를 흐리자 옥정은 조태구가 뭔가를 숨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련님, 혹여 이번 일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시오면, 말씀해주소서."


조태구는 옥정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이미 아버님께서 대왕대비마마께 네 가문의 무고함을 아뢰시러 떠나셨으니, 너무 심려치 말거라."


이때 멀리서 날카로운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뭣 하는 놈들이냐?"


포도청의 포졸 몇이 몽둥이를 움켜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뭣 하는 놈들이기에 이른 시각에 역적의 집에 있는게냐?"


포졸의 호통이 끝나기도 전에 조태구의 하인 하나가 눈을 부라리며 꾸짖었다.


"무엄하다!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이 아니라면, 어찌 감히 조사석 대감의 장자이신 도령께 이리도 무례한게냐?"


왕실 최고의 어른인 대왕대비 조씨는 한 점의 혈육도 없어 사촌동생 조사석의 아들 조태구를 친아들처럼 총애했다.


조태구의 신분을 알게 된 포졸들은 굽실거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지체 높은 도령을 몰라뵌 소인들의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조태구가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거든 썩 물러나거라."


포졸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그 중 하나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하온데, 이 집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포도대장 나리의 명이 떨어졌사오니......"


"알겠다. 이만 나가보마."


옥정과 조사석이 일행과 함께 장현의 집 대문을 나섰다.


대문 바로 앞에는 비단으로 수놓은 수려한 가마가 놓여져 있었다.


"가마에 타거라. 내 너희 집에 볼 일이 있으니, 함께 가자꾸나."


조태구의 말에 옥정은 고개를 흔들었다.


"미천한 소녀가 어찌 비단 가마에 탈 수 있겠나이까?"


"타거라. 너는 중인의 가문이 아니냐? 중인은 비단 가마에 탈 수 있느니라."


옥정은 단 한번도 비단 가마에 탄 적이 없었다.


옥정의 종백부 장현이 검소한데다 양반이 아닌 중인 가문의 자식이 비단 가마를 타는 것은 금기시 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옥정은 계속되는 조태구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가마에 올라탔다.


난생 처음 비단 가마를 탄 옥정의 가슴이 어쩐지 설래었다.


'이 가마가 나를 신부로 데려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옥정은 명망있는 가문의 집에 정실로 시집가는 것이 꿈이었다.


양반이 아닌 중인이라도 아버지 장경처럼 인격과 학식이 뛰어난 사내라면 얼마든 시집갈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옥정이 기대했던 수준의 혼처는 여지껏 나오지 않았다.


하나같이 옥정을 첩실로 들이겠다는 양반집 가문의 혼처만 나왔을 뿐이었다.


어느새 가마가 어제부터 옥정이 거처하기 시작한 외삼촌 윤정석의 집에 당도했다.


윤정석은 비단 가마에서 나오는 옥정을 보자 어안이 벙벙하다가 조태구를 보자 그제야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도령께서 소인의 누추한 거처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내 자네에게 할 말이 있어 왔네."


옥정의 어머니 윤씨와 외삼촌 윤정석은 천인의 신분이었다.


본래 중인 가문이었으나 역관인 아버지 윤성립이 억울하게 역모의 누명을 쓴 소현세자비 강빈을 옹호하다가 처형당해 가산이 적몰되고 온 가족이 천인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윤씨와 윤정석은 천인 신분을 면할 수가 없었다.


다행하게도 윤씨의 자식 희재와 옥정은 숭록대부의 벼슬을 지낸 중인인 아버지 장경 덕분에 중인으로 태어났는데, 당시 벼슬아치에 한해 자식의 신분이 아버지를 따르는 종부법이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정석의 처소로 들어간 조태구는 잠시 머뭇거리다 품속에서 금덩이 하나를 꺼내었다.


바로 어제 조사석이 윤씨에게 내밀었던 금덩이였다.


"받아두게나. 아버님께서 자네의 누이를 생각해서 주시는 것일세."


윤정석은 잠시 조태구의 눈치를 살피다 금덩이를 냉큼 받았다.


"대감께서 우리 누님께 큰 은혜를 배푸시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차하면 조사석에게 손을 벌릴 참이었는데, 조사석의 아들이 친히 와서 집 한채를 살 수 있는 값의 금덩이를 내어주니 체면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다만, 윤씨의 강직한 성격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온데, 누님이 아시고 야단을 치시면 어찌 하오리까?"


"아버님께서 자네에게 준 것으로 하면, 어찌 하지 못할걸세."


윤정석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함박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옥정을 잘 부탁하네."


조태구는 묘한 여운을 남긴 채 윤정석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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