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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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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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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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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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숙명적인 운명

DUMMY

철영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옥정에게 다가오자 아낙네 하나가 냉소했다.


"천출 주제에 아씨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구나!"


철영이 분노에 찬 눈으로 아낙네를 노려보자 옥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속히 집으로 돌아가 장옷을 가져오너라! 내 꼴이 이 모양이라 갈 수가 없구나!"


철영은 옥정이 걱정되어 다급한 마음으로 장옷을 입고 있는 한 아낙네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 아씨께서 옷이 젖으셨으니, 장옷을 좀 빌려주소서."


머리에 비녀를 꽂은 그 아낙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된다. 양인인 내가 어찌 천출에게 옷을 빌려줄 수 있단 말이냐?"


천인은 머리에 비녀를 꽂을 수 없었다.


아낙네는 비녀를 보라는 듯이 뒷머리를 내보이며 시선을 돌렸다.


철영이 아낙네를 노려보다 근심어린 눈빛으로 옥정에게 말했다.


"아씨, 잠시만 기다리소서."


철영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끝에 천인 아낙에게 장옷 하나를 빌려왔다.


철영이 건내준 장옷을 걸쳐 입은 옥정은 덜덜 떨리는 걸음으로 철영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흠뻑 젖어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옥정을, 윤씨는 부둥켜 안으며 통곡했다.


"이 못난 어미가 내 딸을 이리도 고생시켰구나!"


옥정도 통곡하며 울먹였다.


"어머님, 옷감을 모두 도둑 맞았사옵니다......"


"괜찮다! 이 어미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심려치 말거라."


윤씨는 옥정을 자리에 눕힌 후 온돌방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옥정은 긴장이 풀리자, 이내 실신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겨우 의식을 되찾은 옥정은 서러움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천출로 사는 것이 이리도 서러운 줄 알았다면, 차라리 태구 도령을 따라 청으로 갈 것을......'


조태구는 실연으로 입은 상처를 주체할 수 없어 달포 전에 청으로 떠나버리고 말았으니, 이제 옥정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하였다.


옥정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다짐했다.


'이토록 천대받고 사느니 차라리 궁인이 되자! 내 반드시 임금의 총애를 얻어 내 마음의 한을 풀고 가문의 누명을 벗기고야 말리라!"


"어마마마! 어째서 중전을 보지 못하게 막으시는 것이옵니까?"


"모두 주상의 안위를 위해서요! 내의원들이 중전을 간병하고 있으니, 주상은 심려치 마시란 말이오!"


인경왕후가 거처하는 경덕궁 바로 앞에서 대비의 일행과 숙종의 일행이 대치 중이었다.


"어마마마! 중전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데, 지아비로서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주상의 안위에 이 나라의 사직이 걸려 있음을 명심하세요! 부디, 이 어미의 말을 들으세요!"


여드레 전에 두창(천연두)에 걸린 인경왕후의 병세가 지극히 위중해져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숙종이 인경왕후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덕궁에 왔지만, 대비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바로 이때 경덕궁 안에서 궁인들이 매아리치듯 통곡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중전마마! 중전마마! 중전마마......"


내의원들이 목숨을 걸고 인경왕후의 병세를 돌봤으나 밤새 인사불성이 된 인경왕후는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숙종은 털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했다.


"중전, 중전...... 평생을 연리지처럼 함께 살기로 해놓고, 어찌 나를 버리고 가셨소? 어찌......"


숙종은 인경왕후의 승하 소식에 망연자실하여 주저앉아 통곡했다.


현숙하기로 소문난 인경왕후의 승하 소식에 백성들은 어미를 잃은 듯이 땅을 치며 대성통곡했다.


"중전마마...... 어찌 불초한 백성들을 버리고 떠나셨나이까!"


이때 물을 길으러 물동이를 들고 우물가로 가던 옥정은 인경왕후의 승하 소식을 듣고 숙명적인 운명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겨우 약관이신 중전마마께서 세상을 떠나시다니......'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인경왕후에게 연민을 느끼던 옥정은 불현듯 중전의 자리가 빈 것이 하늘이 내린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가 아닌가! 하루라도 빨리 입궁해야 할 터인데, 어머님께서 허락해 주실까......'


옥정은 우물가로 가던 발걸음을 집으로 돌려 종종걸음으로 나는 듯이 걸어갔다.


방안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윤씨에게 옥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중전마마께서 승하하셨다 하나이다."


윤씨는 계속 바느질을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어미도 안다. 백성들의 통곡 소리가 예까지 들리더구나......"


아버지에 이어 시집까지 서인들의 모함으로 역모에 연루되어 가문이 풍비박산난 윤씨로서는 서인 출신인 인경왕후의 승하 소식이 슬프게 와닿지 않았다.


옥정은 윤씨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녀, 어머님께 아뢸 말씀이 있나이다."


"말해보거라."


일감이 밀린 탓에 바늘을 쥔 윤씨의 손이 쉴새 없이 움직였다.


"소녀, 궁인이 될까 하옵니다."


그제서야 바느질감을 내려놓은 윤씨가 노여운 목소리로 옥정에게 되물었다.


"뭐라? 궁인이라 하였느냐?"


"그러하나이다."


윤씨의 입에서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네가 제 정신인 게냐? 궁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옥희를 보고도 모른단 말이냐?"


"소녀, 옥희 언니처럼 가문의 무고함을 풀 수만 있다면, 평생 독수공방한다 하여도 여한이 없을 것이오니, 부디, 허락하여 주소서."


옥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씨가 옥정의 뺨을 후려갈겼다.


"네가 이 어미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작정이냐? 네가 한평생을 독수공방한다면, 이 어미가 어찌 살겠느냐?"


옥정이 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울먹였다.


"평생 천인이라 천대받고 사느니 차라리 궁인이 되어 임금을 가까이서 뫼시고 싶사옵니다."


"이것아, 정신 차리거라. 임금의 총애를 얻기가 그리 쉬운 줄 아느냐? 설령, 임금의 총애를 얻는다 하여도 꽃처럼 아리따운 궁인들이 수백이거늘, 그 총애가 오래갈성 싶으냐?"


"대왕대비마마의 사촌아우이신 조대감께서 소녀의 뒷배를 봐주신다면, 임금의 총애를 못 받을 이유도 없을 것이옵니다. 소녀,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사오니, 부디, 허락하여 주소서."


감정이 격해진 윤씨는 목에 핏대를 올리며 호통쳤다.


"어미가 허락하지 않는 일을 대감께서 허락하실 것 같으냐? 절대 아니된다. 정, 궁인이 되고 싶다면, 어미와 모녀의 인연을 끊고 가거라!"


옥정이 절규하듯 애원했다.


"어머님...... 부디......"


윤씨가 일어서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정녕 어미의 말을 듣지 아니하려거든, 어미와 모녀의 인연을 끊고, 이 집을 나가거라!"


"어머님......"


"어미가 잠시 나갔다올 테니, 궁인이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말거라."


옥정에게 신신당부한 윤씨는 바느질한 옷들을 옷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


홀로 집에 남은 옥정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어찌하면 좋을까...... 어머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조대감께서도 나를 입궁시켜 주시지 아니할 터......'


입궁할 방도를 궁리하던 옥정은 문득 예전에 자신에게 혼담을 넣었던 동평군의 어머니 신씨가 대왕대비의 조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동평군의 모친께서 대왕대비마마의 조카이시니, 동평군께 청해보자.'


하인으로부터 옥정이 찾아왔다는 기별을 받은 동평군은 처소에서 옥정을 맞아들였다.


길을 오가다 먼 발치에서만 옥정을 몇 차례 보았던 동평군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옥정의 자태에 놀란 듯 멍하니 바라보다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네가 어인 일로 나를 찾아왔느냐?"


"소녀, 대군께 청이 하나 있나이다."


가문이 패망한 옥정이 동냥을 하러 온 줄 안 동평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거라."


"소녀, 궁인이 되어 대왕대비마마를 모시고자 하오니, 부디, 입궁을 도와주소서."


전혀 예상치 못한 옥정의 청에 동평군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조대감께서 너의 뒷배를 봐주시고 계시거늘, 어찌 내게 부탁하는 게냐?"


"대감께서 허락치 아니하시리라 여겨 대군을 찾아온 것이옵니다."


"내 재종조이신 조대감께서 허락치 아니하는 일을 내가 허락할 성 싶더냐?"


"소녀, 궁인이 되어 임금을 뫼시고, 우리 가문의 억울한 누명을 벗고자 하니, 부디,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고개를 조아리며 애원하는 옥정의 자태가 어찌나 고혹적인지 동평군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참으로 아름다운지고! 이같은 여인의 혼담을 거절할 수 밖에 없는 내 처지가 안타깝기 그지 없구나!'


옥정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평군의 눈길에 부끄러워 두뺨이 붉게 물들었다.


오랜 침묵 끝에 동평군이 마침내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혹여 내 시녀가 될 마음은 없느냐? 비록 지금은 너를 첩실로 받아들일 수 없으나, 내가 가문의 수장이 된다면, 반드시 너를 첩실로 받아들이겠다."


옥정은 뜬금없는 동평군의 제안에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왕실의 종친이라 한들, 본래 중인이었던 자신을 시녀로 들이겠다니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대군께서 소녀를 첩실로 들이실 마음이 있으시다면, 정식으로 혼담을 넣으소서. 그게 아니라면, 소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나이다."


옥정이 거두절미하고 거절하자, 민망해진 동평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자 자리를 동생에게 양보하고, 옥정을 첩실로 받아들일까.....'


동평군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돌렸다.


'이 조선팔도에 아름다운 여인이 어찌 옥정 뿐이겠는가!'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른 끝에 동평군이 입을 열었다.


"궁인이 되겠다, 어허, 조대감께서 필시 나를 책망하실 터인데...... 참으로 곤란한 일일세."


옥정은 큰절을 올린 후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컨데, 소녀를 은밀히 입궁시켜 주소서. 소녀를 입궁시켜 주신 후, 소녀의 뒷배를 봐주신다면, 대군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아니하겠사옵니다."


순간 동평군이 눈빛을 번뜩였다.


'만약 옥정이 나의 뒷배로 주상 전하의 총애를 받는다면, 서인들의 눈치만 보는 나의 처지도 달라질 것이다!'


동평군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옥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냐, 네 뜻이 정녕 그러하다면, 너를 입궁시켜줄 뿐만 아니라 또한 너의 뒷배를 봐주마."


옥정이 일어나 큰절을 올린 후 말했다.


"소녀의 청을 들어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나이다."


동평군은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무릎을 치며 말했다.


"헌데, 궁인이 되려면 어미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 허락은 받았느냐?"


옥정이 말꼬리를 흐렸다.


"아직, 허락받지 못하였사옵니다......."


"허락을 받는대로, 내게 연통을 넣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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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천출이 되다 20.03.24 259 1 11쪽
3 3화 폐허로 변해버린 장현의 집 20.03.16 303 1 11쪽
2 2화 정해진 운명 19.10.19 505 3 11쪽
1 1화 경신대출척 +2 19.02.01 1,734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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