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이황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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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ya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7
최근연재일 :
2019.04.05 04:31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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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7,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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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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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DUMMY

“황후 마마 납시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들리는 환관의 외침에 소소는 조심스럽게 주유진을 깨웠다.


“이황자님, 일어나시어요. 황후 마마께서···”

“음냐··· 좀만 더 자자.”

“아, 정말··· 이러다 혼나시겠어요!”

“아··· 거참!”


벌떡.


잘 떠지지 않은 눈을 비비며 일어난 주유진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위소소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성난 암소··· 아니, 진유연을 발견했다.


“헉!”


곱디고운 미간에 어울리지 않은 주름을 잡으며 다가온 그녀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은 눈망울로 주유진을 노려보았다.


“너··· 너!!!”

“황후마마, 보는 눈이 많습니다···”

“끙···”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을 한 늙은 궁녀, 유씨가 진유연의 뒤에 대고 속삭이자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지금 그녀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느릿느릿 일어난 주유진은 느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우와. 어마마마 속눈썹이 춤을 춰요. 마치 나비가 날개 짓을 하는 것처럼 아름다워요!”

“정말? 호호.”

“그런데 미간에 주름이···”

“주름? 어마! 안돼··· 가 아니지.”


멈칫.


깜짝 놀라며 고운 손을 들어 이마를 어루만지려던 진유연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엄한 표정을 지었다.


“이황자!”

“네, 어마마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황제 폐하께서 이 천화원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시는지는 이황자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어마마마. 하지만···”


주유진의 작은 등 뒤에 시립한 위소소는 변명을 하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서릿발 같은 눈길로 자신을 노려보는 유씨의 눈빛에 찔끔하며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꽃밭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날이 무척 좋습니다, 어마마마.”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앙증맞은 입을 여는 주유진의 모습에 곁에 있던 궁녀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참았다. 황궁 내에서 감정 변화가 드물다고 소문난 유씨 마저도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들.


진유연의 눈빛이 변했다.


“이황자의 말씀대로라면 그저 이황자의 흥에 이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이렇게 힘없이 짓밟혀져도 괜찮다는 소리군요. 장차 황태자를 도와 백성들을 돌보아야 하는 이황자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사랑스러운 둘째 아들이었지만 진유연은 주유진의 철없는 말에 크게 실망하여 엄하게 꾸짖었다. 아끼는 꽃밭이 망가졌을 때보다 더 화가 났다. 그 분노는 그대로 위소소에게 이어졌다.


“소소.”

“네, 황후마마···”

“도대체 이황자의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것이길래 이처럼 철이 없을 수가 있니.”

“송구··· 합니다, 마마.”

“내 너를 신임하는 것은 지난 십 년 동안 이황자를 곁에서 보필하는 네 마음이 진심인 것을 알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유진··· 아니, 이황자가 이토록 제멋···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옆에서 말리지 못한 것을 보니 너의 진심이 의심되는 구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황후마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는 위소소의 모습에 주유진은 그제서야 표정을 굳혔다.


“어마마마.”

“가만히! ··· 계세요, 이황자.”

“엄마!!!”


순간 모두 귀를 의심하며 입이 떡 벌어진 표정으로 씩씩 거리는 주유진을 쳐다보았다. 엄마라니··· 진유연은 크게 당황하며 주위부터 살피며 말을 더듬거렸다.


“뭐, 뭐라고···?”

“아 진짜! 이건 당최 적응이 안 된다니까··· 후.”


새하얀 볼을 크게 부풀리며 앞으로 나선 주유진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황궁 예법에 투덜대며 위소소를 일으키려 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이황자?”


진유연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아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주유진은 위소소의 팔을 잡고 힘을 주어 끌어당겨 일으켜봤지만 그녀는 꿈쩍하지 않았다. 아예 이마를 땅에 댄 채 자신의 손길을 피하는 위소소를 내려보며 한숨을 쉰 주유진은 그녀를 일으키는 것을 포기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잘못은 내가 했는데 왜 소소에게 그러는 거야!”

“하! 그래 이제 아주 막 나가는 구나. 이놈의 자식이 뭐 뀐 놈이 성낸다고 내 자식이 이럴 줄은 몰랐네.”


이미 그곳에는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던 황후와 황자 대신 그저 평범한 엄마와 아들만이 있었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는지 궁녀들은 유씨의 지시를 받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두 모자를 에워싸는 형태로 인간 장막을 치며 혹시나 누군가 이 모습을 볼까 염려하며 가렸다. 여태껏 뒤편에서 대기하고 서있던 주유진의 호위무사들도 정원 관리인들을 급히 밖으로 내보내며 주위를 경계했다.


꽁.


“아얏! 왜 때려!”


처음부터 이렇게 할 걸. 속 시원한 표정으로 아들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던 손을 허리춤에 올린 진유연은 주유진을 노려봤다.


“이게 뭘 잘 했다고!”

“헐···”

“이 꽃들이 얼마나 구하기 힘든 건데!”

“역시 아까 한 말은 그냥 하는 말이었어. 사실은 꽃이 아까웠던 거잖아!”

“맞을래?”

“아뇨!”


주유진은 저도 모르게 전생에서의 습관처럼 급히 차렷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생긴 건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사랑스러운 아들이지만, 하는 짓은 꼭 웬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절로 접히는 주름을 억지로 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 소소, 일어나보렴.”

“황후마마···”

“괜찮아, 일어나렴.”

“네···”

“가뜩이나 요즘 궁내에서 이황자에 행실에 대해서 문제 삼는 사람들이 많은데 또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면 안돼. 소소 네가 옆에서 말리란 말야. 응?”

“네, 황후마마.”

“말 안 들으면 때려서라도 말려, 알았지?”

“그건···”

“어제도 태학관에서 도망쳤다면서! 수업도 안 듣고 도망갔다고 김 관주가 노발대발하며 폐하께 알린다는 걸 간신히 말렸어. 앞으로는 정말 안돼, 알았지?”


태학관은 황실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 내에서도 황족만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의 제주인 김춘수가 관주를 겸임하고 있었다.


“네···”

“소소 네가 고생이 많다···”


툭. 툭.


위소소의 어깨를 한차례 두드려준 진유연은 다시 주유진을 노려봤다.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뭐가?”

“뭐가? 말 예쁘게 안 해?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러는 거냐고! 아니, 막말로 너 다 가졌잖아. 그냥 조용히 얌전하게 공부하면 얼마나 좋아, 응?”

“······”

“몇 년 후면 친왕이 되어 이 어미 곁을 떠날 텐데, 그 전까지 좀 조용히 살 수 없어?”

“그게 문제라고···”

“뭐?”


주유진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아냐···”

“아니 얘가···”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진유연은 아들의 아직은 작은 몸은 안아주며 물었다. 어찌 어미가 되어 자식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를까. 조금 전과는 달리 한결 부드러워진 어투였다.


“아들~ 왜 그래? 응?”

“엄마.”

“응, 아들.”

“나 그냥 조용히 얌전히 있어야 하는게 맞는 거지?”

“··· 으이구. 내 새끼.”

“흐잉···”


어미의 품에서 한껏 어리광을 피우는 주유진의 귀에 차가운 음성이 꽂혔다.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사실 진유연의 말 대로 다 가졌다. 현생의 주유진은... 하지만.


최첨단 기술로 넘치던 전생을 경험한 주유진에게 이 세계의 삶은 너무나 따분하고 지루했던 것이다. 어디를 가든 넘치는 흥겨운 음악 소리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텔레비전까지. 심지어 쉴 새없이 울리던 핸드폰이 없으니 요즘도 가끔 바지춤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주유진이었다.


여유는 없었지만 열정 넘치던 전생의 삶과 모든 것이 풍족하지만 따분한 현생의 괴리감이었다. 이번 생에서는 가늘고 길게 마음껏 살고 싶었지만 너무나 심심했다.


게다가···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하던 애새끼의 경고.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네가 그 무엇을 하려거든 두 번, 세 번··· 아니, 백 번을 생각하고 하거라. 너의 행동 하나 하나가 나에겐 화살이고 칼이다. 무엇을 잘하려고 노력하지도, 시도하지도 말거라. 그저 쉬다 가는 삶이라 생각하는 것이 편하겠지.’


이 나라 황태자라는 놈이 겁은 많아 가지고··· 욕심도 많은 건가?


그래 너 잘났다, 새꺄.


네 말 대로 잠자코 숨죽여 살아 줄게.


그런데···


나 심심하거든?


작가의말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 있을까요... 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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