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이황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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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ya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7
최근연재일 :
2019.04.05 04:31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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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37,509

작성
19.04.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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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죽다. 그리고...

DUMMY

“정한수!!! 이제 끝났다!”

“닥쳐! 다가오지 마!!!”


한 건물의 옥상 위에서 사내 둘이 대치 중이었다. 아니, 난간 쪽에 선 사내의 품에는 겁에 질린 아이가 붙잡혀 있었다.


“비겁하게 아이 뒤에 숨지 말고 순순히 아이를 돌려줘! 아이만 무사히 돌려준다면 정상 참작될 거니까, 좋게 가자고!”


총을 겨눈 사내는 눈 속으로 들어오는 땀방울에도 유괴범의 손에 들린 칼에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이미 수차례 자상을 입은 듯, 그의 상의는 피범벅이었다.


“오, 오지마!!! 정말 죽여버릴거야!”

“큭··· 정한수, 너 그렇게 악한 놈 아니잖아? 너 똑똑한 놈이니까 잘 알 거야. 여기서 아이가 다치거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진짜 평생 감옥에서 썩을 수도 있어! 날 공격한 거는 비밀에 부칠 테니까 제발···”

“······”

“그래, 아직 젊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아이의 얼굴을 똑바로 봐! 그 아이처럼 너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일 거야. 이 아이의 부모를 생각해봐. 아이의 미래는? 아니, 너의 미래는?”

“흑···”

“좋아, 그래 내가 셋을 세면 그 칼을 내려놓는 거야. 물론, 아이도. 알았지?”


끄덕.


천천히 고개를 떨구는 유괴범의 모습을 확인한 사내는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고 다가섰다.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간 사내는 조금 전보다 더욱 긴장한 얼굴로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사내의 구령에 맞춰 아이의 두 발이 땅에 닿았다.


툭.


그 순간, 건물 아래에서 요란스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붉고 푸르게 물드는 어둠 속에서 유괴범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쳤다.


‘젠장! 이런 기본적인 매뉴얼도 모르는 어떤 한심한 놈이!’


아니나 다를까. 유괴범은 원망스러운 눈길로 사내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안돼! 그러지마!”


난간 쪽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놀란 사내는 총구를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몰라!!! 다 끝났··· 컥!”


탕!!!


총을 쏜 사내는 그대로 난간을 향해 몸을 날리며 떨어지는 아이의 몸을 붙잡았다. 총에 맞아 몸부림 치던 놈이 자신의 옆을 지나 빠르게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툭.


가슴을 적시는 따뜻하고 여린 눈물에 아이를 소중히 품에 안았다.


그리고···


.


삐뽀 –

삐뽀 –


“최 형사님!!! 선배!!! 정신차려요!”


흐린 시야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윤 형사··· 쿨럭!”


한 움큼 뱉은 피가 그녀의 하얀 얼굴 위로 튀었다. 손을 들어 닦아주고 싶은데 바닥 위로 축 늘어진 손은 야속하게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맞다··· 칼에 맞고 건물에서 떨어졌었지···


아이와 함께··· 아이?


“아, 아이는···?”

“흑··· 무사해요. 그러니까 선배도 일어나요 어서!!!”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웃고 싶었는데 폐에 구멍이 났는지 헛바람만 새어 나왔다.


“그만 움직여요, 선배. 구급차 저기 왔어요!!! 조금만 참아요! 흑···”


‘닦아줘야 하는데··· 예쁜 얼굴이 못생겨졌잖아···’


서러운 눈물과 식어가는 내 피가 뒤범벅이 된 채 그녀는 목놓아 부르며 울부짖었다.


“이런··· 또 울렸네.”

“선배!!! 흑흑··· 그럼 일어나라고요!!!”

“미안··· 해···”

“안돼요! 눈 떠요!!! 제발!!!”


힘없이 떨어지는 눈꺼풀에 억지로 힘을 주며 윤 형사를 찾았다.


내 부사수··· 그리고 내 약혼녀다. 좋은 집안에 경찰 대학교까지 졸업한 녀석이 이제 곧 있으면 나보다도 직급이 더 높아질 그녀였다.


윤지혜···


나 같은 놈이 뭐가 좋다고 바보같이. 이번 유괴 사건만 없었다면 품 안에 있는 반지를 네 손에 끼어 줬을 텐데. 울긴 왜 우냐··· 돈도 없고 맨날 현장만 뛰어다니는 나 같은 놈이··· 그나마 번 돈도 동생들 학비 대주느라 모아 놓은 것도 없는데.


피식.


이 와중에도 예쁘구나 너는···


울지마.


“이대로 죽으면 난 어떡하라구!!! 선배!!! 안돼! 눈 떠요!!! 흑흑.”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이제 나 같은 놈 말고 다른 멋진 남자 만나서 시집이나 가야지.

그런데··· 왜 이렇게 졸릴까···

참··· 숨가쁘게 달려온 인생이었어.

다시 태어난다면···

조금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조금 이기적이라도···

나만의 생을 살고 싶다.


다다다닥.


“여기예요!!! 선배 좀 살려주세요!!!”


다급하게 뛰어오는 구둣발들 사이로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파랗게 질린 얼굴 위로 흐르는 안도의 눈물. 유괴되었던 아이는 엄마 품에 안긴 채 뚝뚝 눈물을 닦더니 커다란 눈망울로 나와 눈을 마쳤다.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저 눈빛 때문에 물러설 수가 없었지.’


작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지만 너무 멀어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고맙다고 하는 거냐? 자식··· 내가 더 고맙다. 무사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경찰로 처음 발령 받은 날, 첫 사수였던 김 형사님과의 만남이 떠올랐다.


“그래, 최호준이라고?”

“충성! 네, 그렇습니다!”

“긴장 풀고, 임마.”


툭.


기가 팍 들어있어 뻣뻣하게 굳은 내 어깨를 툭 치던 김 형사님은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고 하셨다. 레전드라고 불릴 만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가 바로 눈 앞에 있었으니··· 그것도 사수로 말이다. 당연히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김 형사님은 내 존경심 가득한 눈빛을 가볍게 넘기며 물었다.


“뭣하러 경찰이 된 거냐? 인사기록 보니까 어린 동생들도 있고··· 집안에 유일한 가장이던데···”

“당연히 사명감 때문입니다!”

“까는 소리하네. 솔직하게 말해, 임마.”


속을 다 들여다보는 눈빛에 나는 할 수 없이 대답했다.


“저··· 사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공부도 못했던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찾다 보니···”

“하하! 솔직하네. 왜? 다른 길도 있을 텐데, 돈도 쉽게 벌고.”

“깡패···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는 절대로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어도 당당하게 살고 싶습니다!!!”

“훗··· 그래, 나도 처음엔 그랬지. 레전드? 사람들이 나보고 레전드라고 하지만 사실 이 레전드라는 말은 내가 비겁했기 때문에 생긴 거라고···”

“네?”

“호준아, 때론 비겁한 것도 좋다. 정의도, 경찰의 사명감도 다 너가 살아야 생기는 거다.”

“······”


나는 그때 퇴직을 앞둔 말년 형사의 감성에 젖은 그저 그런 회의감 같은 말이라고 흘러 들었다.


“선배님 말씀이··· 맞네요.”

“뭐라고요? 선배!!! 뭐라고 했어요? 정신 차려봐요!”


죽기 싫다.


그냥··· 조금 비겁해질 걸···


내 손을 놓지 못하는 이 여자를 놓고 어떻게···


“백 줄 차지!!! 비켜! 샷!”


쿵.


살고 싶다···


“백 오십 줄 차지! 비켜! 샷!!!”


쿵.


지혜야··· 잘 살아···


삐이 –


.


컴컴한 어둠.


아오 머리야.


죽은 건가···?


그런데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픈거야? 하긴 그 높은 데서 떨어졌으니 아플 수 밖에.

그래도 아이는 살렸잖아. 그럼 된 거지 뭐···

그런데 눈은 왜 이렇게 안 떠지는 거야?


힘겹게 눈을 뜬 나는 눈을 찔러오는 빛무리에 정신을 못 차렸다. 그 와중에 귓가를 울리는 여러 사람들의 말 소리가 들렸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들어온 것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금색 옷의 중년인도 아니었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인들도 아니었다. 피 묻은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는 노파는 더더욱 아니었다.


한 편에 선 채 나를 내려다보는 어린 아이였다. 너무 이쁘장하게 생겨서 순간 여자 아이인가 착각할 정도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진 아이였다.


조금 전, 내가 살렸던 아이가 생각이 난 걸까?


머리에 전해지는 아픔을 참으며 그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니 시선을 돌리기에는 힘이 없었다. 잠시 상황을 파악하느라 그저 그 아이를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눈빛은 내가 살렸던 아이와는 전혀 다른 눈이었다.


적개심?


‘뭐지···? 왜 그런 눈을···’


한참을 나와 눈을 맞추던 아이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 짜증나.”


나중에 알았지만, 다시 태어난 내가 처음 들은 말은 형이란 새끼의 짜증난다는 말이었다.


“응애애앵!”


작가의말

단비ya 입니다. ㅎㅎ 

이번 글의 배경은 천마신교가 아닌 황궁이네요. 

잘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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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수저? 아니, 다이아수저! 19.04.01 282 0 10쪽
» 죽다. 그리고... 19.04.01 286 0 9쪽
1 프롤로그 19.04.01 314 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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