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탄환의 전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공달
작품등록일 :
2019.04.07 21:32
최근연재일 :
2021.06.05 19:51
연재수 :
137 회
조회수 :
7,924
추천수 :
183
글자수 :
1,003,713

작성
19.05.10 21:20
조회
41
추천
2
글자
20쪽

36화. 프림 로젠으로 가는 길 ①.

DUMMY

"뭘 잃어버렸는데?"


"그건 저도 잘 몰라요. 그저 역사의 일부라는 것 밖에는..."


그 이상의 정보는 나이가 좀 더 차거든 알 수 있게 하거나, 아님 그들도 잘 모르는 밝혀지지 않은 것. 혹은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도 아니면 특정한 조건을 채워야만 알 수 있는 거라던가 말이다. 이러한 탓에 실제로 미셰리 족은 어린 나이일수록 아는 것이 적었다. 도서관이나 서재 같은 곳에서 자란 우나였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이가 차야만 열람이 허가되는 기록도 다수 존재했다.


"뭘 찾는지도 모르면서 찾아다니는 거냐?"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리펠로가 물었지만, 그에 네이슨이 대답해주었다.


"미셰리 족은 원래 어릴수록 아는 게 적다고 해. 반대로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아는 게 많고."


"보통 미셰리 족들은 책을 가까이 한다며 그런데 아는 게 적다고?"


그리펠로의 되물음에는 우나가 대답했다.


"저희 일족은 일정 나이가 차거든 열람할 수 있는 기록도 있거든요."


그래? 하며 그리펠로가 고개를 주억였다. 실제로도 어리다는 이유로 접근이 금지되는 곳도 있으니까. 대표적으로 술집. 새삼 아줌마들끼리 단체로 모여서 거세게 애들이 술집 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던 모습이 떠오른 그리펠로는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줌마들의 남편부터 시작해서 이웃사촌인 어르신, 대장장이라는 직업에는 정작 안 어울리게 메말라 보이던 아저씨까지. 지금쯤 잘 계실까. 평소처럼 늘 하던 일들을 하고 계시겠지.


떠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생각하니 조금 그리워지는 것을 느낀 그리펠로가 고개를 흔들어 그리움을 떨쳐냈다. 그리곤 허겁지겁 마저 도시락 속 고기와 샐러드를 먹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해서인지 먹는 속도는 느렸지만, 1시간 뒤 즈음에는 만족스럽게 모두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맛있었어? 샤피?"


우나의 물음에 쀼- 소릴 내면서 폴짝 폴짝 그녀의 손, 팔을 타고 올라와 익숙하게 어깨에 자리 잡는 샤피. 흡사 고양이 같은 움직임에 네이슨과 함께 천막을 정리하던 그리펠로가 넌지시 물음을 꺼냈다.


"꼭 고양이 같다."


"미야아앙"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샤피가 털을 쭈뼛 세우며 그리펠로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 울음소리가 역시 고양이 같았기에 결과적으로 샤피는 그리펠로에게 역시 고양이 같다는 확신만 심어줬을 뿐이었다.


"음... 샤피 울음 소리가 고양이 울음소리랑 비슷하긴 하죠."


정작 우나 또한 그리펠로의 말에 공감하자, 샤피의 긴 귀가 축- 아래로 쳐졌다. 이후 정리를 마친 일행은 빠르게 낙타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개인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더 선호할 수도 있고, 함께 여행하는 것을 더 선호할 수도 있다.


혹은 둘 다 아무렴 어떠냐는 식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엄밀히 말해 그리펠로는 혼자 하는 것이 편하다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일행이 생기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생겨난 일행이 도움이 안 된다면 좋아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최대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고 기본적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걸 일일이 신경 쓰면서 가느니 차라리 혼자 가는 것이 편하다. 라는 주의였다.


하지만 도움이 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우나처럼 템퓨니스트로서 가는 길을 편하게 만들어주기라도 한다든지 하는 이런 일행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필라쉬 버드 탓에 길 잃은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 외에도 우나가 템퓨니스트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만족스러웠다. 오로지 그 사람의 능력만을 보는 경향이 있는 이블린에게 물든 걸지도 몰랐다. 정작 그리펠로 자신은 물들었다고 생각 안하겠지만...


아무튼 이후의 대화는 주로 네이슨이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우나가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어차피 우나가 네이슨의 낙타에 타고 있기 때문에라도 그리펠로보단 네이슨과의 대화 빈도가 높았다.


그리펠로는 간간히 드는 궁금증에 물음을 건넸던 것뿐이었지, 정작 관심은 딱히 없었으므로 과묵하단 인상을 남길 정도로 이동하는 내내 별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한 것이라고 해봐야 그의 궁금증을 자극 시킨 것에 대해 불쑥 물음을 꺼낸 거나, 중간 중간 네이슨의 놀림에 발끈해 소리친 것 정도?.


"아... 전 혼자 다니고 있어요."


"14살인데 혼자서 다닌다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조금 놀란 얼굴로 묻는 그리펠로의 말에 우나가 고갤 끄덕이며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그런 모습에 네이슨이 그리펠로에게 대꾸했다.


"지역마다 성인으로 취급해주는 나이가 또 다르니까, 이번 경우도 그런 거 아닐까?"


"아, 아뇨. 저희는 16살부터 성인이에요. 그럼에도 밖으로 나온 것은..."


잠시 말을 끊은 우나가 자신을 빤-히 응시하고 있는 네이슨과 그리펠로를 바라보았다. 곧 빙긋- 웃으며 얘기한다.


"잃어버린 기록을 찾으러 간다고 했잖아요."


김빠진단 표정으로 그리펠로가 재차 말문을 열었다.


"그래도 혼자 가니까 그렇지. 내가 자란 마을에선 혼자 가려면 반드시 성인은 되어야 하거든."


"저도 엄연히 미셰리의 일원인데, 해야죠."


"과연... 일종의 사명 같은 거인가?"


네이슨이 고갤 주억이며 중얼거리자, 우나가 밝게 웃으며 답한다.


"네. 그런 셈이죠."


"어린데도 고생이 많네~"


"뭐, 뭘요..."


네이슨이 고생이 많다고 얘기해주자, 당황한 듯 우나가 말을 더듬었다. 그래도 슬며시 미소 짓는 것을 보니 내심 기쁜 모양이었다. 그렇게 3일간 간간히 네이슨과 우나가 말을 주고받으면서 이동이 계속되었을 즈음, 어느 덧 세 사람은 꽤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펠로는 딱히 우나에게 말을 걸거나 하진 않았고, 우나 역시 밝긴 해도 먼저 말을 걸어주진 않은 상대에게 말을 거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어색할 사이가 될 법한데도 불구하고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네이슨의 놀림이나 한심하다는 듯 보는 시선 따위가 컸다.


놀림에 놀림으로 받아치고, 발끈해 네이슨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 역시 그리펠로도 하곤 했었던 탓이다. 그 결과, 생각보다 둘이 티격태격 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 우나는 처음에는 둘을 말리다가도, 얼마 안 가 항상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이 서로 티격태격 거린다는 것을 깨닫곤 이제는 아예 내버려두는 실정이 되었다.


처음에는 네이슨의 비꼬는 말이 웃기기도 해서 같이 웃기도 하고, 숙녀분도 한 마디 해보라는 말에 그리펠로를 같이 골려주기도 한 우나였건만, 갈수록 두 사람이 티격태격 거리는 것에 정작 애꿎은 자신의 한숨만 늘어가게 되자 이게 뭔 상황인가 싶은 그녀였다. 괜히 시간을 낭비한 느낌마저 들어 허탈감마저 드는 가운데 마침내 또 한 차례 이어지던 두 사람의 투닥거림이 끝을 보였다.


"아아~ 이래서 총잡이들이란, 되려 하는 것들까지 하나같이 똑같이 예의를 아주 밥 말아먹었다니까?"


"아아~ 이래서 고상한 척하는 것들은 안 된다니까? 심지어 로망도 없어 로망도!"


두 사람의 투닥거림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이런 식으로 아아~ 혹은 하여간에. 로 시작해서 똑같거나 비슷한 말들로 끝을 맺었다. 우나는 그리펠로의 학습 능력은 아무래도 엄청난 것 같다고 재차 느끼며 풋- 웃음을 흘렸다.


말 실력은 분명 네이슨이 한 수 위이다 보니 그리펠로가 네이슨의 말을 짐짓 따라하듯이 받아치는 것도 있었는데, 가끔 그런 모습은 재미있다고 느껴져 그녀에게 웃음을 자아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작 말리려고 했을 때는 미처 몰랐고,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어째 저 두 사람이 매우 친한 친구 사이처럼 보였다.


"꼭 엄청 친한 친구 같네요."


반응은 즉각 튀어나왔다.


"이 녀석이?"


그리펠로와 네이슨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되물었다. 오,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 굉장한 걸? 우나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리 없는 그리펠로와 네이슨은 눈살을 찌푸린 채, 서로를 보며 따라하지 말라고 소리쳤다가, 이내 우나의 말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이딴 녀석은 친구가 아니라 그냥 재수없는 놈이지! 그것도 그냥 재수없는 놈이 아니라 왕 재수 없는 놈!"


"누가 총잡이 아니랄까봐 말까지 천박한 것 좀 봐, 이런 놈은 친구가 아니라 웬수지 웬수야."


각각 그리펠로와 네이슨이 한 말이었고, 우나는 어쩐지 그 모습마저도 친해 보여 웃으며 말을 꺼냈다.


"지금도 엄청 친해보이는데요?"


"크악, 말도 안 돼는 소리로 내 귀를 더럽히다니!"


"누가 할 소릴...!"


이번엔 각각 네이슨과 그리펠로 순으로 한 말이었다. 둘의 눈 사이로 파지직- 스파크가 이는 것 같은 것은 필시 착각이 아니리라. 이 날 우나는 생각했다. 서로 티격태격 싸우는 사람일수록 서로 친한 사이일지도 모른다. 고...



   ‡   ‡   ‡   ‡   ‡



무법자들의 마을 가그는 오늘 따라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특이하게도 마을은 온통 물에 적셔져 있었다. 흡사 밤새 한 차례 파도라도 덮친 듯 물에 안 적셔진 곳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압에 의해 부서진 듯한 건물도 일부 보였다.


이 중 유일하게 물의 공격을 안 받은 듯 깨끗한 집. 그곳은 고위 층 사람들만이 머무는 집이자, 슬레슈가 가그에서 머물렀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그곳 1층에는 다수의 총잡이들이 테이블에 저마다 앉아 있었다. 모두 피아노 위에 앉아있는 한 남자. 아니, 소년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말이다.


소년의 옷차림은 총잡이가 아님을 증명하듯 다리까지 내려오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흡사 약사 혹은 과학자들이나 입을 법한 옷. 소년의 주변으로는 도합 대여섯 명의 총잡이들이 기립해 있었고, 소년의 바로 옆에는 회갈색 코트를 입은 남성이 기립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가장 앞에는 두 남자가 서로 약간의 거리를 둔 채로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곧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라글리가 당했다고요?"


"그, 그렇습니다."


바짝 긴장한 채로 답하는 남자는 다름 아닌 데런이었다. 이름 보다는 '쌍갈래 콧수염'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이였다. 바로 그 옆에 똑같이 무릎 꿇고 앉아 있던 콜렌이 부연 설명하듯 덧붙인다.


"결투에서 패한 이후, 종적을 감췄습니다."


"흐음, 통일 시키면 빛 탄환을 주는 것도 고려해보겠다고 한 것 같은데, 통일은 커녕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다니 이거 실망인데요?"


중얼거리면서 뺨을 덮은 자신의 옆머리를 검지로 꼬는 소년.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진 것이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이 때 소년과 가장 가까이 있던 회갈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손을 들며 얘기한다.


"미르 님, 잠시 한 말씀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공손히 허리까지 숙여 보이는 사내. 유일하게 허리춤에 홀스터 대신 칼을 차고 있는 남성 역시 총잡이처럼은 보이지 않았으며 소년에게 무척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소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해보세요."


"어차피 라글리 그 자는 신뢰할만한 놈이 못 되었습니다. 결투에서 패배한 것도 이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니..."


"굳이 빛 탄환을 줄 필요도 없었다? 이 말입니까?"


말을 도중에 끊고 미르가 물었다. 그러자, 말을 꺼냈던 사내가 역시 꾸벅- 고갤 숙이며 공손히 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흐음, 하며 미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릎 꿇은 콜렌과 데런을 포함하여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총잡이들이 저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조용히 미르의 말이 재차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라글리의 부하였었지만, 간간히 라글리의 부하가 되지 않고 '잔존 세력'으로 남아 있던 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불과 어제, 열차가 아닌 마차를 타고 온 저 하얀 가운을 입은 소년. 미르를 잊을 수 없었다. 조금 더 정확힌 사내들에게 명령을 한 이후 펼쳐진 참사를...


옛날이야기나 전설 속에서나 보았던 바다의 '파도'라는 것이 과연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물이 마을을 덮쳤었다. 그것이 고작 미르가 데려온 저 여섯 명의 빛 탄환 소유자들이 힘을 모아 행한 일이었다.


저마다 빛 탄환 전용 총 하나와 또 따로 일반 탄환 전용 총 하나를 가진 채, 휩쓸리면서 죽지 않은 이들은 일반 총으로 쏴 죽였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여섯 명 모두가 지니고 있던 총이 6연발이 가능한 '연발총'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미르 일행이 다짜고짜 바로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라글리를 찾는가 싶더니, 한 총잡이가 그 놈 튄 지가 언젠대 아직도 그 놈 이름을 입에 담냐며 비웃는 것이 처음 죽음의 시작이었다.


마치 수행원처럼 기립해 있던 인물 중 한 사람이 미르의 손짓에 물 속성 빛 탄환을 쐈고, 비웃었던 총잡이는 순식간에 물방울 안에 갇혀 익사해야만 했다.


빛 탄환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두려움을 주기 충분했건만, 라글리처럼 빛 탄환을 욕심내 훔치려 하는 이들이 이른바 속보이는 짓을 하거나, 대놓고 욕심을 드러냄에 따라 미르가 전체적으로 다 손봐주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 마을에 남아있던 총잡이 거의 절반이 죽어버렸다. 심지어 아직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은 일일이 일반 총으로 쏴 확실하게 죽여 버렸다. 이들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공포가 각인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흐음, 이미 이곳 재건하기는 글렀으려나요?"


생각을 잇던 미르가 이윽고 꺼낸 말이었다. 조금 전 손을 들며 발언권을 요청했던 코트의 사내가 빠르게 대충 이곳의 인원을 파악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 정도 인원이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마을 규모가 그만큼 축소될 뿐이지요."


"아아, 역시 규모 축소는 피할 수 없는 건가요? 이래서 제가 다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 말을 들은 앉아 있던 총잡이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했다.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가!' 라는 생각을. 명령을 내리고 괴롭게 죽어가는 총잡이들을 보면서도 잔혹한 미소를 지었던 미르였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정말로 죽이기 싫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심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인했던 주제에 말이다.


"아마 저희 측에서 인원을 조금 붙여주면, 완벽히 저희 수중의 마을이 되지 않을런지."


미르의 말에 사내가 그렇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미르가 빙긋 웃었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가뜩이나 수도 적은데, 빠져나가는 인원이 조금 아깝네요."


"이미 공포심도 잔뜩 심어준 마당에 거리낄 게 뭐가 있습니까?"


그러면서 씨익 웃는 사내. 그에 힐끗, 다시금 앉아 있는 총잡이들을 바라본 미르의 눈에 저마다 눈 속 깊이 두려움이 깃든 것이 들어왔다.


"흐음, 확실히..."


힘이 없는 이들을 붙여줄 수는 없는 노릇. 대부분은 그렇게 해도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명령에 따르지만, 꼭 한 명씩이라도 힘이 없다는 걸 알고 어리석은 짓을 범하는 놈이 있었다. 사실 라글리 또한 그런 어리석은 부류에 속하는 이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나 탐욕스러운데, 뒤통수 칠 준비하고 있다는 걸 그들이 눈치 못 챌 리도, 예상 못할 리도 없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었다. 처음부터 힘도 있는 빛 탄환 소유자를 안주시키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의 문제가 또 하나 있었는데, 이들은 탄환을 빼앗길 수 있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밤새 자는 사이에 몰래 빼앗겨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이들도 수두룩한 세상이었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아울러 같은 빛 탄환 없이는 대적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들기 위해 강력한 공포를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아예 딴 마음 자체를 품지 못하도록 말이다.


어제 그렇게 빛 탄환으로 죽이고 겁을 주었던 것은 톡톡히 효과를 맛봐서 지금은 확실히 이들도 감히 딴 생각을 품지 못하는 듯했다. 절대 딴 마음을 품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자, 미르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죠. 그럼 이곳 책임자는... 라온 경이 하실래요?"


라온이라 불린 회갈색 코트 차림의 사내는 주먹 쥔 한 손을 제 가슴 앞으로 대고,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답한다.


"맡겨주신다면야 실망 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라온의 말이 마음에 든 미르는 눈웃음치며 이번엔 앉아 있는 총잡이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저씨들 말이죠. 요즘 너무 날뛰고 있는 거 알아요? 당장 라글리만 해도 결국엔 배신 때리려고 준비하는 것 같았던데"


가장 앞에 유일하게 무릎 꿇고 앉아 있었던 콜렌과 데런이 눈에 띄게 얼굴이 굳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미르가 묻는다.


"호오, 그냥 말단이라 생각했는데, 조금 알고 있었나봐요?"


두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미르가 인상을 쓰며 묻는다.


"대답 안 해요?"


"...우, 우연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콜렌이 떨리는 목소리로 냉큼 대답하자, 데런이 맞다는 듯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그래요? 뭐, 어차피 어제 일을 통해 우리한테 대들면 안 된다는 것 정돈 충분히 깨달았을 거라 생각하긴 하는데..."


그러면서 눈을 반쯥 접고는, 재차 앉아 있던 총잡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본 미르가 말을 이었다.


"아저씨들이 사용하고 있는 무기도, 돈도, 모두 저희 측에서 제공하는 덕분에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네요."


앉아 있던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저마다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면 의외로 몰랐던 이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하긴, 대부분 상단이나 먼저 독차지한 이들이 조금씩 풀어주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들도 모두 위에서 명령이 있었기에 풀어주는 것뿐이었지, 없었으면 과연 풀어주기나 했을까? 지 혼자 독차지하고, 특정 단체끼리만 독차지 했었을 것이 안 봐도 훤-했다.


"아무래도 그것까진 라글리가 얘기 안했던 모양이죠? 그럼 이참에 얘기하죠. 저희가 명령 한 마디만 내면, 곧바로 무기 공급이 끊길 수 있습니다. 설마 그런 걸 바라시는 건 아니겠죠?"


"크으음..."


"으으..."


"부... 부디 자비를..."


침음성과 함께 앉아 있던 이 중 누군가 부탁 조로 말을 꺼냈다. 씨익- 웃은 미르가 대답한다.


"물론 자비를 베풀어 드려야죠. 앞으로 다들 '내 사람'이 될 이들인데."


미르의 말에 누군가의 얼굴에는 안도의 기색이, 누군가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졌다.


"우선, 철도 앞 무기고에 여태 친히 배달해줬던 무기들은 회수하지 않을게요. 어차피 저희 측 인원도 써야 되니까 말이죠. 다들 어제 일로 힘드셨을 텐데 그만 가보셔도 됩니다. 저녁에 저희가 성대하게 진수성찬을 해드리죠. '무법자의 마을'의 무법자에 종지부를 찍는 기념 겸 해서 말이에요."


그 후로 미르는 앞으로 며칠 뒤 다른 철도가 올 거다, 거기서 인원이 보충될 거다, 함께 마을을 재건하되 싸움은 라온의 허락 없이는 하지 말 것. 등의 말을 전달하고 밖으로 나왔다.


함께 나온 남자들 중 누군가의 어깨로 파다닥- 하고 검은 박쥐가 날아와 안착했다. 자연히 밖으로 나온 모든 이의 시선이 박쥐에게로 향했다. 곧 양 날개로 제 몸을 감싼 검은 박쥐의 귀에 대고 남자가 뭐라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미르를 보며 입을 떼었다.


"라글리와 결투를 벌였다는 그 총잡이 인상착의를 조회해 본 결과, '슬레이건'일 거라는군요."


"슬레이건? 흐음, 그 아저씨가 그랬단 말이지?"


저 혼자 중얼거리면서 미르는 미소 지었다. 그것은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 아이가 짓는 듯한 미소와 매우 흡사했다.


작가의말

다음 주 부터 연재일이 불규칙해질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금탄환의 전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1 47화. 무시무시한 신고식 ①. 19.05.27 56 1 13쪽
50 [외전] 브렛과 휴니. 19.05.26 43 2 14쪽
49 46화. 속임수 탄환 ③. 19.05.24 45 2 19쪽
48 45화. 속임수 탄환 ②. 19.05.23 51 2 17쪽
47 44화. 속임수 탄환. +2 19.05.22 77 2 21쪽
46 43화. 총을 다시 잡은 이유 ②. 19.05.21 50 2 22쪽
45 42화. 총을 다시 잡은 이유. 19.05.20 42 2 14쪽
44 41화. 그리펠로의 과거. 심경의 변화 ②. 19.05.19 44 1 16쪽
43 40화. 그리펠로의 과거. 심경의 변화. 19.05.17 28 1 15쪽
42 39화. 아크루의 비극. 19.05.16 29 1 20쪽
41 38화. 프림 로젠으로 가는 길 ③. 19.05.15 25 1 21쪽
40 37화. 프림 로젠으로 가는 길 ②. 19.05.13 68 1 21쪽
» 36화. 프림 로젠으로 가는 길 ①. 19.05.10 42 2 20쪽
38 35화. 신문지 영웅 ③. 19.05.09 50 1 16쪽
37 [외전] 전갈 변태. 19.05.09 26 2 17쪽
36 34화. 신문지 영웅 ②. 19.05.08 44 2 13쪽
35 33화. 신문지 영웅. 19.05.07 42 2 21쪽
34 32화. 반격. 그리고 해방 ②. 19.05.06 36 2 20쪽
33 31화. 반격, 그리고 해방. 19.05.03 55 2 18쪽
32 30화. 달려라 제니! 19.05.02 37 2 13쪽
31 29화. 무기를 훔쳐라! ②. 19.05.01 23 2 20쪽
30 28화. 무기를 훔쳐라! 19.04.30 30 2 15쪽
29 27화. 반격을 위해 ②. 19.04.29 33 2 16쪽
28 26화. 반격을 위해. 19.04.28 37 2 17쪽
27 25화. 오드와 제니&플린&더크 3인방 ②. 19.04.26 23 2 16쪽
26 24화. 오드와 제니&플린&더크 3인방. 19.04.25 31 2 17쪽
25 23화. 억압받는 브레본 ③. 19.04.24 28 2 15쪽
24 22화. 억압받는 브레본 ②. 19.04.23 28 2 13쪽
23 21화. 억압받는 브레본. 19.04.23 52 2 14쪽
22 20화. 여행의 시작 ③. 19.04.22 29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