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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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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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14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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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5화 - 3

DUMMY

“……네~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이제, 조금 이르긴 하지만 고기 구워볼까요?!”

“오빠, 그거 제건데. MC 보는 거.”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잖아, 지금 분위기!!”

“아하핫♡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준비하지요!”



아무 말도 없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나는 얼른 얼어붙은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말했다. 꼭 무○도전에서 오프닝에서 맴버들이 얼어붙어 있다 저런 멘트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미래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딴죽을 걸어준다. 음, 그래야 미래답지.


깡통차기를 하고, 한참 또 하고, 그러다 쉬고. 얘기도 꽤 많이 한 것 같은데. 중간에 자고 있던 리유와 시아도 깨서 같이 하고, 그런 식으로 긴긴 오후를 어떻게든 보냈다. 어째서 즐거이 놀러온 건데 시간을 간신히 보내야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 가지만.



“할 수 있겄어?”

“그럼요, 남자가 이 정도도 못 하면 어떡하겠습니까! 하하!”



드럼통을 반 자른 쇳덩어리를 꺼내 오신 미래네 이모. 이모님은 친히 준비를 도와주시며 말씀하신다. 사실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여자애들 앞에 서면 남자는 자연스럽게 허세를 부리게 되어 있으니까. 한둘도 아니고 일곱 명이나 있는걸. 토치를 가지고 불을 지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허헣. 부지런이 구워야 할 껴. 먹일 입이 많잖여.”

“흐흥♡ 얼른 그 고깃덩어리♡를 저희들 입에 쑤셔 넣어주세요♡”

“미쳤어 미X년아?!”

“앜!”



‘먹일 입이 많잖여’라는 이모님의 말에 조금 음란마귀가 돌려는 찰나, 그것을 참지 못하고 미래는 이모님이 계심에도 거침없이 섹드립을 날린다. 이게 진짜 미쳤나?! 나도 이모님이 계심에도 거침없이 미래의 목젖을 치며 제재했다. 어느 정도 적당히 불이 붙고, 이모님은 ‘그럼 맛있게들 먹어!’ 하고 방으로 돌아가신다. 다들 인사하고 착석.



‘치이이익─’

“음~ 좋네.”

“빨리~ 빨리 구워줘, 웅아!”

“나라고 안 굽고 싶어서 안 굽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배고파 죽겄어.”



바깥에 마련된, 책상과 의자 일체형의 벤치. 네 명씩 앉고 나는 드럼통 앞에 서서 고기를 굽고 있다. 성빈이와 희세가 도와주고 있고 나머지는 앉아 있고. 뭐, 사실 다들 도와주려 했지만─ 뻔뻔하게도 미래는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었다 ─ 전부 나와서 그러고 있으면 도리어 번잡하니까. 성빈이와 희세만 남고 나머지는 구경하고 있다.



“자, 다 구웠다.”

“와아아! 엄청 맛있어 보여! 잘 먹겠습니다!”

“합, 겁내 뜨거워 미친! 겁내 맛있어 미친!”



간신히 한 차례 고기를 구워냈다. 고기를 구운 적도 별로 없지만, 불판에 굽는 것보다 이렇게 숯불에 굽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 뜨겁고, 위험하고, 기름도 튀고. 구운 고기를 기쁘게 먹는 애들. 미래는 호들갑을 떨며 철근처럼 고기를 씹어 먹고, 리유와 시아는 작은 입을 바삐 놀리며 싱긋 웃으며 먹는다. 유진이도 민서도 성빈이도 희세도 맛있게 고기를 먹는다. 너희들이 이렇게 맛있게 고기를 먹는 걸 보니,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구나. 훈훈하네.



“자, 또.”

“와와와!”

“맛있엉!”

“더 구워줘!”



두 번째로 나가는 고기. 리유와 시아와 미래는 약탈자처럼 금세 고기를 먹어 치운다. 굽기는 한참 걸려서 구웠는데 먹는 건 너무 빨리 먹는데. 정작 굽고 있는 나는 얼굴에 검정 얼룩 묻혀가며, 배 꼬르륵 거리면서 고기 한 점 먹지 못한 채 자식새끼들(?) 멕이려고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좀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어?! 무슨 지지배들이 돼지도 아니고!”

“히익! 웅이 너무해!”

“무례해요, 저랑 사귀어주면 용서해드릴게요!”

“집게 잡은 사람이 뭐 말이 그렇게 많아요! 불만이면 저한테 집게 줘요!”

“하아…… 고기나 구워야지.”



아저씨처럼 걸걸하게 말하니 리유, 시아, 미래는 나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한 마디씩 던져댄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고기를 굽는 데에 전념한다.



“자, 아~”

“어, 우웁. 고마워.”

“…….”



한탄하며 ‘내 팔자가 그렇지’하는 생각을 하며 묵묵히 고기를 굽고 있는 때, 문득 성빈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한다. 쌈을 들이미는 성빈이. 아아, 역시 성빈이는 착하구나.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고기를 굽던 손을 멈추고 입을 벌려 성빈이의 쌈을 받아먹었다. 아 깻잎. 아 생마늘. 제발 쌈은 개인의 취향에 맞게! 싸 줘도 X랄이네. 싱긋 웃으며 맛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

“어웁, 이거 다 먹고…… 아─”

“……맛있어?”

“웅, 마이어.”



쌈을 먹여주고 흡족한 미소를 짓는 성빈이를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희세. 덥썩 고기를 집어 빠르게 쌈을 싸서는 나에게 내민다. 성빈이가 하는 건 나도 질 수 없다, 그런 심보인가. 아직 성빈이가 준 쌈이 입에 남아 있는지라 머뭇거리며 말하다 서슬퍼런 희세의 눈총에 얼른 입을 벌렸다. 입 안 가득 쌈으로 가득차버렷! 희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희세는 그래도 내 타입대로 상추에 쌈장에 구운마늘로 넣어줬구나.



“와! 웅이 내 쌈도 먹어!”

“그런 거에 제가 빠질 수 없죠! 자! 제 것도 먹/어/주/세/요!”

“우워어억, 미친, 나 죽어!!”



두 번째 쌈까지 힘겹게 먹고 있는데, 리유가 즐거이 웃으며 나에게 쌈을 내민다. 미래까지 합세해선 자기 쌈을 먹어달라고 내민다. 이것들이, 배고플 땐 안 주고 이렇게 놀려 먹을 때에만!




--




“안 불편하지~?”

“네, 네 당연하죠. 하핫.”



이모님은 방문을 열고 빼꼼히 나를 보며 말씀하신다. 얼른 어색하게 대답한다. 푸근한 이모님의 미소를 보고, 다시금 바닥에 눕는다.


……그렇잖아, 여자애들하고 같이 잘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같이 놀러왔긴 했지만, 엄연히 남녀가 유별하고 말만한 처녀들인데.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훈훈한 옛 말도 있지 않은가. 작년이라면, 선생님이라는 보호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해서, 애들은 원래 빌린 두 개의 방에서 나누어 자고 나는 이모님께 말씀을 드려 빈 쪽방에서 잔다.


두 명 정도 누울 수 있으려나, 굉장히 좁은 방. 방 자체는 좁지 않은데 크고 아름다운 장롱과 이불들 덕분에 좁아 보인다. 그래도 나 혼자 자기에는 크게 좁지 않은 방이다. 그래도 내 자취방보다 좁으니 말 다 했지.



“…….”



가만히, 누워서 생각한다. 아까 오후에도 그랬고, 요즈음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미래에 대한, 앞의 일에 대한 생각. 1학년 때엔 멋도 모르고 정신없이 살아와서 시간이 금세 갔는데, 2학년 1학기 때에도, 워낙 큰 일이 있어서. 아하하. 시간이 간다는 의식을 할 사이도 없이 벌써 이렇게 되었으니.


진로에 대한 것. 성적에 대한 것. 대학에 대한 것. 미래에 대한 것. ……연애에 대한 것.

가만히, 같이 놀러온 우리 밥 패밀리 여자애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곰곰이, 자가진단을 해본다. 지금까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리유는, 여자친구였지만…… 헤어졌지. 그리고 더 이상, 본인 입으로, 재결합은 없다고, 좋아하지만 보내준다는 식으로 말했지. 아직까지 나는, 리유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고. 그래서 더 어색하고, 끈적하고, 개운하지 않은, 그런 관계.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보려 하지만.


희세는, 사귀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신혼부부 급으로 친했던 사이. 중간에 리유와의 파국 중에─ 어색하게 되었고, 그리고 관계개선, 다시 조금 어색─ 하아. 리유 못지 않게 복잡하구나. 그래도 뭐, 지금은 그럭저럭이려나.


성빈이는, 아직까지는 거의 유일하게 어떤 접점이 없는 상태. 놀랍게도. 어느 때를 기점으로 적극적이 되었지만, 딱히 고백을 했다거나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했다거나 하는 적은 없다. ……좋아하는 건 바보가 아닌 담에야 알아차릴 수 있지만.


미래는, 가장 먼저 나에게 고백한 여자애. 그리고, 장렬한 산화 후 폭주. 지금은, 밥 패밀리 애들 중 유일한 기혼자(?). 침착맨이랑 잘 놀고 있지.


유진이는 뭐, 더 말할 게 없지.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모든 계략이 들켜버리고. 분명 유진이한테 호감은 있었지만, 그런 게 없었다고 하더라도 난. ……사실, 용서했다고 하지만, 유진이로 말미암아 리유와 그런 사건들이…… 으음…… 아니, 내 잘못이니까. 유진이 탓을 할 게 아니지.


민서는, 얼마 전이지. 시골 내려갔을 때. ‘섹X 해본 적 있어?’ 라는, 치명적 매력(?)이 담긴 질문으로 시작된 고백. 정말 몰랐지만, 민서가 나 좋아한다는 건. 둔감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나.


시아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밑도끝도 없이 와서 사귀자고 하니까 도리어 당황스럽잖아. 리유에 대한 감정이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신경 쓸 여력이 없달까.




와,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나 무슨 의자왕이냐. 삼천궁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왕건한테도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어마어마하구나. 아마 여고라는 환경 탓이겠지. 미래가 드립으로 말했던 것처럼, 여고니까, 희소성이니까.



“여자 생각 하고 있죠?”

“으헉! 뭐야, 너…… 언제 왔어?!”

“어머, 아무리 밤이라지만 벌써 덮치는 건가요♡ 저, 이제 임자 있는 몸인데……♡?”

“아으, 미, 미안. 근데 왜 온 거야?!”



갑자기 들려오는 미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 눈을 뜨고 머리에 대고 있던 손을 파닥이며 일어나다 실수로 미래의 가슴에 손이 살짝 닿아 버렸다. 미래는 피식 웃으며 요염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 경우엔 아무리 드립이라지만, 아무리 미래라지만 당황하게 된다. 빠른 사과는 내 장점이지. 얼른 사과해야 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고.



“에헤─ 살살 들어왔는데 눈 감고 있길래, 자는 줄 알았는데 자는 건 아니더라구요! 히힣. 오긴 왜 와요, 놀러 왔지!”

“……뒤에 민서도. 유진이도?”

“에? 민서?”

“……헤헤헤.”

“둘이서만 뭐하게? 못 미더운데.”



미래는 싱긋 웃으며 말한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미래의 어깨 너머를 쳐다보니 미래는 의아한 표정으로 뒤돌아본다. 문 앞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민서, 미묘한 표정으로 나와 미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유진이. 두 사람까지 방으로 들어오고, 나는 얼른 일어나 앉았다.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방에 네 명이 들어 앉으려니 굉장히 좁다.



“다른 애들은?”

“우리 방은 이 셋에 시아인데 시아는 금방 잠들었구. 옆 방 동태 파악해보니까 리유는 자는 것 같고, 희세랑 성빈이랑 얘기하는 것 같던데. 놀러왔지.”

“아…… 되게 무슨 닌자 같다. 그렇게 동태도 파악하고.”

“흐흥♡ 외간남자 방에 여자애가 놀러가는데, 그 정도 동선은 파악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으…….”



유진이의 능수능란한 대답과 색기 있는 눈초리에 나는 살짝 기가 죽었다. 유진이 장난은 장난 같지가 않단 말이지. 힐끔 나와 다른 애들을 쳐다보는 미래. 방이 좁아서 애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민감하게 다 파악이 된다.



“자 그러면. 저, 오빠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있는데요!”

“……뭔데.”

“동양이 좋아요 서양이 좋아요?”

“무슨 개소리야! 동양이다!”

“아핫♡ 솔직한 대답 너무 좋아요.”



가만히 개드립을 치는 미래. 이제 이 정도 드립은 드립 같지도 않아 가벼운 핀잔과 함께 대답해준다. 두 손을 모으며 한껏 즐거운 표정을 짓는 미래. 민서늘 살짝 부끄러운지 내 눈을 피한다. 유진이는 흥미진진한 얼굴.



“그럼, 희세가 좋아요 성빈이가 좋아요?”

“그! 그건…… 뭔데!”

“아, 참고로 희세가 서양이고 성빈이가 동양이에요.”

“무슨 기준인데! 둘 다 명백하게 동양인이잖아?!”

“으흐응~ 확실한 차이가 있잖아요. 가♡슴♡이러던가~♡?”

“……크흠.”



이어지는 미래의 질문에 말문이 덜컥 막힌다. 안 그래도 그런 고민 하고 있었는데.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나에게, 미래는 잔뜩 싱글생글 웃는 얼굴로 덧붙인다. 잔뜩 반박하니 은근한 표정과 말투로 두 손으로 빵빵한 가슴 모양을 그려 보이며 미소를 짓는 미래. 괜히 부끄러워져 얼굴이 달아오른다.



“……모르겠는데.”

“아잉~ 아직까지 그러면 어떡해요! 벌써 1년 반을 끌고 있는데!? 최장기간 아니에요, 이거?! 하렘마스터 정웅도!”

“……나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니까.”

“에헤헤~”



미래의 말에 나는 일방적으로 농락당할 수밖에 없다. 연애에 관한 거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니까. 거기다, 비록 예전 일이지만 미래, 나한테 고백했었으니까. 난 그걸 차버렸고. 이런 식으로 얘기가 나오면 껄끄러워지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이 드니 민서도, 유진이도 상당히 껄끄럽다. 다 내가 차버린(?) 애들이잖아.



“유진 씨~ 우리 정웅도 씨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설마, 어장관리?!”

“음~ 그렇죠, 아무래도. 꽃 같은 여자애들을 옆에 두고는 싶은데, 누구 한 명을 사귀기에는 아깝잖아요. 그렇다고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고, 축첩제가 허용될 리 없잖아요? 그러니까 화려한 싱글로, 즐겁게 학교생활을 영위하는 거죠~ 아닌가요?”

“네~ 그렇군요. 그렇게 결론 내리는 걸로~”

“잠깐잠깐! 본인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그러는 건 뭔데!? 아니거든!!”



TV 예능에서 나오는 상황극처럼, 미래는 손으로 가공의 마이크를 만들어 유진이에게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히 나를 쳐다보며 대답하는 유진이. 말하는 것이 아주 여론조작 선동에 가깝다. 민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게 벌써 선동에 넘어간 느낌. 미래는 훌륭하다는 듯 마음에 드는 표정을 지으며 어떤 반론도 없이 결론을 내려버린다. 굉장히 훌륭한 황색언론인데 이 녀석들?!



“웅도는, 그런 거 아닐까.”

“아! 방청객 의견! 네, 어떤 의견이시죠?”



아직 안 끝난거냐, 그 상황극. 민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여니 미래는 얼른 가공의 마이크를 민서에게 내밀며 말한다. 민서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와 유진이, 미래를 쭉 둘러보고 입을 연다.



“얼마 전에, 웅도한테 고백했다 차였거든.”

“에엑?! 언제?! 대박대박! 이런 냉혈한! 도살자! 위선자! 아주 멋대로구만요! 빼먹을 거 다 빼먹고! 필요없어지니까 냉정하게 내치는! 이 기업사냥꾼!”

“내가 민서 뭘 다 빼먹었다고.”

“헉! 민서를 빨아먹었다구요!? 어디를! 아, 아무리 민서가 크다지만!”

“뭔 개소리야!”



운을 떼도 하필이면 그 얘기를 먼저 꺼내는 민서. 잠깐만, 그건 민서 너만의 얘기가 아니라 나도 관련된 거니까 내 허락은 맡고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니?! 미래가 벌써 이딴 드립 치고 있잖아! 미래는 오늘 드립력 포텐 터져서 아주 폭주 기관차가 따로 없다. 이 녀석, 이제는 컨트롤하기도 힘들다.



“음, 그러니까. 웅도는,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하아? 그건 또 무슨 위선자 옹호 발언이죠? 이 친일파년! 어떤 식으로든 일본을 옹호하는 건 잘못이야! 이 배박이년! 빼박이거든!?”

“내가 언제부터 일본이 됐지.”

“시끄러워요! 일본은 나빠요! 그냥 나빠요! 추축국이잖아요! KILL JAP!!”

“그러면서 일본어 드립은 자기가 제일 많이 치면서.”



민서의 조곤조곤한 말투에 미래는 불같이 화를 내며 말한다. 마치 반공세대의 어떤 할아버지가 북녘 괴뢰국가를 비판하는 맹목적인 느낌과 비슷하군. 졸지에 나는 일본놈이 돼 버렸고. 자연스런 태클에 민서는 빼애애액, 자기 주장만 관철한다. 원래 드립칠 때의 미래는 이렇게 불합리한 거니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모두를, 다 좋아하지. 좋아하는 거지. 그래서, 누구 한 명을 선택하지는 못 하겠구. 그치만, 유진이 말대로 모두하고 다 사귈 수는 없으니까. 그치만 누구 한 명을 또 택하면, 나머지에게는 상처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우유부단한 거 아닐까.”

“……어, 나 그렇게 성인군자는 아닌데. 나 쓰레기야. 맨날 가슴 보고 하악하악 그러는데.”

“……히익.”

“아 미안. 농담…… 아니, 반 정도는 진담인데. 고마워, 날 그렇게까지 착하게 봐 주다니.”



민서는 미래의 드립에도 아랑곳 않고 말한다. 잔잔한 민서의 눈빛에 나는 살짝 감동 받았다. 그런 감동을 스스로 깨부숴버리는, 나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이게 다 미래 때문이야.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니까! 유유상종(類類相從)인가. 크윽. 내 드립에 민서는 흠칫 놀라 살짝 얼굴이 상기되며 팔로 가슴을 가린다. 얼른 빠른 사과.



“헤에. 그럼 어쨌든 전부를 다 좋아하는 건 사실이야?”

“……뭐, 안 그렇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나, 생각보다 헤픈 남자라. 조금만 여자애들이 잘 해주면 다 좋아하거든. ……보통 그러지 않아?”

“아핫. 솔직하네. 나도…… 좋아했었어?”

“뭐, 그렇지. 학기 초에 먼저 말 걸어주고 얘기해줘서. 예쁘기도 하고, 말도 잘 해주고.”

“……좋네. 그건.”



내 대답에 유진이도 민서처럼 잔잔한 표정으로 정말 기분 좋은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뭐야 이 오묘한 분위기.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잖아. 괜히, 뭔가 내가 이러는 게 합리화되는 것 같고. 그냥 내가 인간 쓰레기인 거 아니었어!? 그런 포지션이 이제는 더 익숙한데. 워낙 희세한테 잔뜩 매도당해서.



“그치만, 확실하게 정해야 할 건 확실하게 해야 하는 법. 지금은 리타이어 된 패배자들은 빼버리고. 어디보자, 여기 세 명에, 리유까지 더하고. 낙오자들 빼고 나머지! 희세하고 성빈이, 어느 쪽이에요!?”

“……왜 시아는 빼놓냐.”

“끕이 있죠 끕이! 그딴 애송이는! 축에도 못 껴요! 어디서 뉴비가. 뉴비는 늅늅하고 울지요 데헷☆”

“하핳.”



미래는 박수를 탁탁 치며 다시금 분위기를 혼돈의 카오스로 몰고간다. 비록 드립이 난무하긴 하지만 미래야말로 확실하게 현실을 자각하고 깨닫게 해 주는 녀석이니까. 그래, 둘 중에 한 명이라. ……진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둘 다 좋은데.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둘 다 좋은데.”

“아 좋아요! 그럼 2처 5첩 제도로 가는 건 어때요? 아니면, 스쿨럼X처럼 거지같은 결말내서 끝장나볼까요?!”

“뭐, 뭐가 끝장나는데.”

“데헷☆ 그냥 그럴 것 같아서요. 오빠의 학교생활이.”



내 애매한 대답에 미래는 잔뜩 비꼬는 목소리로, 약간 화난 것처럼 말한다. 더듬거리며 말하니 미래는 다시금 피식 웃는다. 아, 나도 잘 모르겠다니까. 진짜 내 마음을.



“좀 더, 생각해보구. 진심으로, 이 애가 아닐 것 같다 하는 애랑 사귀는 게 좋지 않을까. 진짜로, 웅도 마음이 끌리는 애로.”

“그게 우리가 아닌 건 확실하구나…… 웅도, 정말 갖고 싶었는데.”

“……본인 앞에다 두고 가지고 싶네 어쩌네 하면 무섭다니까, 유진아.”



민서의 조곤조곤한 말은 마음에 상당한 위로가 된다. 미래가 부숴버리고, 민서가 힐링해주는 건가. 유진이는 착찹한 듯 인생 다 산 할머니의 회한에 가득 찬 표정 비슷한 얼굴을 하곤 말한다. 내 앞에서 그런 말 하면 되게, 껄끄러운 기분인데.



“……가질 거야. 설령 어떤 년이 널 손에 넣는다고 해도.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모두 부숴버릴 거야.”

“진짜 같다니까 유진아?! 무서워, 무섭다고!”



순식간에 드라마 악역 같은 느낌으로 눈을 희번덕하게 뜨고 말하는 유진이. 뒤이어 표정을 풀고 ‘우후후, 장난이야.’ 하고 말하지만 유진이가 이러면 진짜 무섭다. 실제로 이런 계략을 짜서 애들 전체를 농락했던 유진이니까.




얘기하며 밤은 깊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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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13화 - 2 +2 15.11.20 795 17 20쪽
197 13화. 기말고사 치고는 너무 밝은 거 아닙니까?! +9 15.11.19 873 19 20쪽
196 촬영은 다시. +8 15.11.17 708 13 15쪽
195 촬영이 끝나고 난 뒤 ----- 휴재 +10 15.10.17 921 17 19쪽
194 -동결- +8 15.10.15 856 12 1쪽
193 12화 - 4 +10 15.10.14 988 18 25쪽
192 12화 - 3 +8 15.10.13 869 17 18쪽
191 12화 - 2 +10 15.10.12 848 17 20쪽
190 12화. 먹어 줘! +12 15.10.10 1,004 2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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