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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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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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1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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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5화 - 2

DUMMY

애들은 모두 정신줄을 놓고 있다. 목표점도 지향점도 전부 잃은 채, 그저 멍하니 공허의 눈빛을 허공에 쏟고 있을 따름이다. 리유는 대자로 뻗어 잠들어 있다. 그 옆에 시아도 잠들어 있고. 유진이는 무심한 눈을 하고 휴대폰을 보고 있다. 성빈이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고, 민서는 그런 성빈이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후으─ 하아─ 후으─”

“……얄미워 죽겠네.”

“그러게.”



모든 일의 장본인이자 시발점인 미래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퍼질러 자고 있다. 괜히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데.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희세. 무표정에서 약간 짜증이 나는 정도의 얼굴을 하곤 미래를 쳐다보다 시선을 나에게 옮기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희세가 저렇게 말하면 묘하게 무섭단 말이지. 나한테 말하는 건가, 얄미워 죽겠다는 거. 아니겠지. 명백하게 얄미운 미래가 있는데.



“……잠깐, 바람 좀 쐬러 갈래.”

“그래.”



그리 크지 않은 방에 여덟 명이나 널부러져 있으려니 뭔가 굉장히 답답하다. 덥기도 덥고, 멘탈까지 실시간으로 박살나는 것 같으니까. 세 명은 퍼질러 자고 있고, 세 명은 멘탈이 나간 상태로 멍 때리고 있으니. 내 제안에 희세는 잔잔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난다. 유진이는 그런 나와 희세를 힐끔 쳐다보더니 피식 웃고는 다시금 시선을 휴대폰 쪽으로 돌린다. ……묵인?




--




“아 진짜. 이런 게 어디 있어. 이게 우리 여름방학 놀러온 거야!?”

“내 말이. 어떻게든 애들 분위기 좋게좋게 해서 놀려고 했는데, 이건 좀 아니잖아.”

“아후. 근미래 저 년, 진짜 언제 한 번 호되게 당해야 하는데.”



민박집을 나와 천천히 나무그늘을 찾아 걸으며 희세와 말한다. 희세는 잔뜩 불평불만을 토로하며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나. 뭔가 공통의 까임거리(?)가 있으니 대화가 한층 수월하구나.


확실히, 불만이긴 하지. 지금쯤 분명하게 바닷가에서 놀고 있어야 할 타이밍인데. 바닷가가 아무리 멀다 해도, 오전동안 이동하고, 거기 도착해서 점심 먹고, 짐 풀고 하면 되게 늦게 도착했다 하더라도 오후 2시는 안 되었을 테고. 그럼 그 때부터 쭉, 오후 내내 바닷가에서 깔깔 까르르 놀면 되는 건데. 현실은 시궁창, 펜션은커녕 바닷가도 보이지 않는 내륙지방의 민박인지라. 바닷가까지는 걸어서 얼추 40분 이상은 걸린다고 한다. 지금 시각은 가장 뜨거울 때인 오후 2시. 걸어가다가 타죽지 않을까.



“더우니까 돌아다니지 말자.”

“무슨 아저씨 같은 소리래. 아아 알았어, 앉으면 되잖아.”



햇빛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답답한 방 안보다는 바깥이 시원하다. 얼마나 바닷가랑 멀면 바다 특유의 습하고 후텁지근한 느낌조차 없어. 혼자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저쪽 큰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삐딱하게 말한다. 마찬가지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희세를 쳐다보니 희세는 손을 내저으며 방긋 웃으며 말한다.


굉장히 오래된, 놀이터 같이 생긴 곳. 철봉 같은 것도 있고 그네 같은 것도 있다. 다만 한 20년 넘게 지나 자연의 침식을 그대로 받고 있는, 기묘한 풍경. 크고 아름다운 나무는 덤이다. 오래 되어 넝쿨에 지배되고 쇠는 뻘겋게 녹슬고 있는 벤치에 앉았다. 좀 더러워서 표정을 찡그릴 법도 하건만 희세는 별다른 반응 없이 앉는다.



“아주 어화둥둥이네, 정웅도 씨.”

“엉? 갑자기 왜 내 디스를.”

“내가 너 디스하는 게 하루이틀 일이야.”

“하긴. 일상적이긴 한데. 그래도 맥락은 있지 않았나 싶어서.”



뜬금포로 갑자기 나를 디스하는 희세. 얼떨떨해서 말하니 희세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이런 식의 표정이라면 말장난을 하자는 뜻인데. 이제는 표정이나 분위기만 봐도 어느 부분에서 복종하고 들어가야 할지 적절히 드립을 쳐도 될지 알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복종은 왜 해야 하는데. 그야 희세 무서우니까, 화내면.



“여자애들 잔뜩 끼고 바닷가 왔잖아? 작년보다 더 업그레이드 돼서?”

“……뭐, 리타이어된 애들도 많이 있잖아? 미래라던가, 유진이라던가.”

“제 입으로 잘도 말하네.”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잖아. 내가 좀 옴므파탈인가봐, 여자애들이 주체를 못 하네.”

“어휴, 하여튼 말은.”



아,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거구나. 뭐, 어쩔 수 없잖아. 여고 다녀서 친구들이 여자애들밖에 없는걸. 그거 가지고 뭐라 할 거였으면 1학년 때부터 뭐라 했어야지. 아, 뭐라 하고 있구나. 지금까지도. 적절한 너스레를 떠니 희세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살며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벌써 2학년이구나.”

“2학년 된지 6개월 넘었거든.”

“아하하. 그러네. 이제 2학기니까.”

“응.”



희세가 작년 여름에 대한 얘기를 꺼내니 자연스럽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는 나, 희세, 성빈이, 리유, 미래 이렇게 다섯 명. 지금은 여덟 명. 작년의 나는 찌질한 겁쟁이, 지금은 능글맞은 병X. 어느 쪽도 정상은 없는 거냐. 희세의 태클에 고개를 끄덕이며 허허 웃는다. 이제는 2학년도 절반밖에 남지 않았구나.



“재미있군, 같이 고3을 기다리는 처지라니.”

“고3이 왜?”

“아니 뭐, 그냥. 고3 되면 지금처럼 이렇게는 못 놀 거 아니야. 공부해야 하니까.”

“그렇겠지.”



나에게 있어 고3은 고등학교 생활의 종착점,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절간과도 같은 생활, 이런 식의 이미지인데 희세는 별다른 생각이 없나보다. 하긴, 희세는 지금 생활도 충분히 모범생이니까, 고3이 된다고 어떤 타격이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시간이 참 빠르네.”

“그러게. 정↘~~↗말 그래.”

“……굳이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아아니, 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잖아.”



괜히 정색하고 나오는 희세의 무서운 표정에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냥 그렇다는 건데, 죄송합니다, 이제는 장난도 못 치겠군요. 잠시 뒤 희세는 방긋 웃는다. 정색 후 웃는 건 장난이라는 표시. 예쁘네. 나도 모르게 슬쩍 머리를 쓰다듬고 싶을 정도. 그랬다간 진심으로 정색할 테니 함부로 할 수 없지만.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 시간이 흐르니까 저절로.”

“그래서 미래 얘기 하고 있었잖아. 어떻게 이런 거지같은 곳으로 우릴 데려올 수 있나, 그러면서 어떻게 속 편하게 저렇게 퍼질러 잘 수 있나.”

“아니 그 미래 말고! 진짜 우리들의 미래!”

“그럼 저 미래는 우리들의 미래가 아니야? 남자친구 생기니까 재깍재깍 버리는 거야?”

“아니이! 버리긴 뭘 버려! 말장난이 아니잖아 지금! 하아.”



어른스러운 희세 앞에서라면, 조금은 미숙한 나의 미래에 대한 얘기를 조금은 털어놓아도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들어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말꼬투리를 잡는 희세.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저러면 태클 걸기도 뭐하잖아.



“미래가 왜.”

“그냥……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고 해야 하나. 너희하고 만나서, 금세 재미있게 놀다 보니까. 2학년 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학기 훌쩍 지나고, 그 생각 하자마자 여름방학 순식간에 지나갔고.”

“그렇지, 아무래도. 시간 지나면 지날수록,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던데.”



어쩔 줄 몰라하며 대답하니 희세는 그제야 말장난을 그만두고 심드렁하게 묻는다. 그냥, 요즈음 들어서 이런 생각과 얘기를 많이 하는 건, 어느 정도 어른이 되어 간다는 반증일까. 마냥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이나 하고, 여자애들이랑 하하 호호 깔깔 까르르 즐겁게 놀기만 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벌써 학교생활 반절이 지나가버렸잖아. 내 말에 희세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굳이, 모범생 안 모범생을 떠나서 모두에게 그렇게 느껴질 테니.



“그렇게 고3도 빠르게 지나가고 나면. 이제, 다들 대학가고, 그러면 뿔뿔이 흩어지겠지. 희세 너랑도.”

“……연락 안 할거야? 대학 가면?”

“아,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군요. 그런 얘기가 아니라, 그. 그렇다구. 하하.”

“흐음.”



이어지는 내 말에 희세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며 묻는다.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저번 사건 이후로 괜히 희세 눈치를 더 보게 된다. 예전처럼은 더욱 못 대하게 되는 이상한 기류. 뭐, 어색한 건 아니니까 그러려니 넘어가자.



“……복잡한 생각이 들 순 있어. 뭐가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그냥, 우린 공부만 계속 하는 걸로 배웠으니까. 내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할지도 배우지 못했으니까. 단순히 잠깐 흥미 있는 것만으로, 내 미래에 대해, 내 진로에 대해 정할 순 없잖아. 그것도 고등학생 내내 고민해야 할 문제인데, 너무 공부만 강조하니까, 지금 우리는.”

“……이야. 역시, 클라스가 다르네. 희세는. 내 고민은 어린아이 철없는 고민인 것 같아 부끄러운데.”

“무, 무슨 소리야. 그냥 그렇다는 얘기잖아. 너는 미래에 뭐 되고 싶은데. 꿈은 뭔데. 어디 대학 갈 건데.”

“아…… 갑자기 그렇게 많이 물어보면~”



모범생인 희세가 말하니 더욱 신뢰가 가는 말. 그래, 내가 생각한 게 이런 거야. 이렇게 멋있게 정리해서 말은 못 하지만. 칭찬에 약한 희세 성격 어디 안 갔다. 얼굴을 붉히면 잔뜩 나를 흘겨보는 희세. 귀여워 죽겠네. 물론 희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 한다. 그걸 못 하겠으니까 이런 고민을 말하고 있는 거잖아.



“꿈…… 별로, 딱히 하고 싶은 거 없는데. 미래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대학…… 아직 모르겠어, 고3도 아닌데.”

“너무 대책 없잖아! 우리 이제 곧 있으면 고3이라구!”

“아하하. 그러니까 미래가 걱정이 된다는 거지.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건 둘째고, 어디를 어떻게 가고 싶은 지도 모르겠으니까.”

“으으응…… 그러면 안 되잖아.”



태평한 내 대답에 희세는 왈칵 화를 낸다. 간만에 보는 걱정스러운 희세의 표정. 진심으로 내 미래가 걱정되는 얼굴이다. 하긴, 이렇게나 무대책이니. 미래라는 건 본인이 찾고 본인이 챙겨야 하는지라, 희세도 별다른 말은 더 못 해주고 착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말했다. 당장 미래를 어떻게 바꿔보자, 그런 진지한 말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영화감독…… 같은 게 해보고 싶달까.”

“음…… 그건 또 너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아, 단칼에 불가능이야? 아하하.”

“그치만, 보통 영화감독들 얘기 들어보면, 중학교 때부터 막 캠코더 사서 영화 찍어보거나, 아니면 영화에 빠져서 몇 천 편이고 영화만 보는 영화광이라거나, 학창시절부터 그랬을 텐데. 웅도 너는, 어느 쪽도 아니지 않아?”

“그렇지. 그게 문제지. 아하하하.”



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미래 이야기.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건, 정말 막연한 이야기. 희세 말대로 나는 무슨 ‘영화가 아니면 안 돼!’ 하는 열정 같은 것도 없고, 그냥 희미하게 영화 감독이 멋있어 보이니까, 마치 지휘자처럼 영화 찍는 모든 것을 총괄하고 감독하는 게 대단하고 멋져 보이니까 그런 애매모호한 생각을 하는 것이지. 나도 잘 알고 있다. 웃음으로 말을 끝내니 희세는 여전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우리 엄마보다 더 걱정스러워 하는 것 같은데.



“희세 너는? 희세라면 미래 확실히 정해져 있으려나.”

“……나라고 딱히, 그렇게까지는. 음, 나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아? 전혀 의외인데.”

“왜, 뭐. 나는 아기들 좋아하면 안 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 치켜세움에 희세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을 잇는다. 이어지는 희세의 얘기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치원 선생님이라니,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평소 희세 이미지를 보자면, 공부도 잘하고 뭐든 완벽하니까, 당연히 의사나, 변호사나 판검사, 뭐 그런 사자 돌림 고소득 직업을 지망할 줄 알았는데. 희세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고. 아 뭐, 공부 잘 한다고 무조건 그런 직업을 희망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 음, 유아교육과?”

“응, 그렇지.”

“좋네!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또 입바른 소리만.”

“아니, 진짜! 희세 너, 알뜰살뜰 다른 애들 잘 챙기잖아? 어른스럽고, 요리도 잘 하고. 아, 애들 이런저런 요리 해주면 되게 좋아하겠다. 잘 먹겠지?”

“……흥.”



어울리자면 또 충분히 잘 어울리는 것도 같다. 희세, 요리도 잘 하고 가정적이니까. 본인 성향이나 사상은 페미니즘에 앞장설 것 같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성적인 면은 차고 넘치니. 병아리처럼 귀여운 애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희세에게 ‘선생님─’ 하면서 매달리고, 뽀뽀하고.


음, 뭔가 상상하는 것만으로 훈훈한 조합인데. 미녀와 아이는 광고의 필승전략이라잖아. ……앞치마를 둘렀음에도 압도적 존재감을 자랑하는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꼬마 남자애들. 와, 부, 부럽잖아?! 나 때는 그런 거 생각도 못 했는데! 요즘 애들은 너무 빨라! 인터넷이 애들 버렸어! 희세야, 걔네 순수한 마음 아니다잉!? 조심해라! 아, 망상이 너무 멀리까지 간 것 같은데.



“아아─ 모르겠다. 바닷가 놀러와서 왜 갑자기 이렇게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건지.”

“네가 먼저 말 꺼냈잖아.”

“이게 다 미래 때문이야─! 원래 놀러 온 거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지내려고 한 건데. 미래 때문에 미래 걱정을 하네.”

“……하나도 재미없거든.”

“아하핫. 아저씨가 돼 가나. 아재개그가 땡기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얘기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네. 그나마 희세가 들어줘서 좀 개운한 기분은 들지만. 희세는 툴툴거리며 말한다. 계속되는 희세 칭찬에 부끄러운지 살짝 상기된 얼굴.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누구보다 귀여운 희세인데. 이렇게 땍땍거리는 것도 귀엽고.



“근데, 진짜 우리 이렇게 시간낭비 하고 있어야 하나. 그래도 피서 나온 건데!”

“뭣하면 애들 깨워서 놀던지. 피곤해서 곤히 자고 있는 애들 깨워서.”

“아이, 뭔가 비꼬는 거 같잖아, 그 말은.”

“하아, 나도 모르겠어. 이러고 시간낭비 하고 있기는 싫은데.”



꽤나 많은 시간 얘기했고, 더 얘기할 거리도 없어 이만 민박집으로 돌아가자고 희세에게 말했다. 희세는 툴툴거리며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눈치. 대뜸 ‘가서 뭐 할 건데.’ 하는 말부터 나온다. 그렇긴 하다. 딱히 나라고 그 칠흑같은 민박집의 분위기에선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아지니까. 그래도 내려가자고, 발로 돌을 뻥 찬다.



“……깡통차기나 할래?”

“이렇게 더운 날?”

“하기 싫다면 안 하면 되구. 희세 너는 하기 싫어?”

“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깡통차기, 한 지 너무 오래됐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나 했었으니까.”

“아핳! 그러면 해 보자! 오랜만에 추억보정도 되고 좋잖아?”



문득 생각이 나 말을 꺼냈다. 살짝 당혹스러워하는 희세. 불쾌하다거나 그런 표정은 아니고, 순수하게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괜히 과장된 태도와 즐거운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는 말했다. 어쩌겠어, 이렇게라도 해야지! 기껏 온 피서인데, 이렇게 잉여롭게 지내는 건 있을 수 없어!




--




“깡통차기! 아…….”

“……둘이 하고 왔어?”

“자자자자 잠깐 하긴 뭘 해?! 너무 과한 드립 아닙니까!”

“으흥? 주어 안 말했는데, 알아서 유추하는 부분?”

“아, 아, 아니이~ 맥락상 그거는!”



방으로 들어온 나는 활달한 목소리로 말하다 멈칫, 목소리를 낮췄다. 전멸. 유진이 빼고 전부 자고 있다. 유진이는 세상 누구보다 초췌한 표정으로, 심심함이 극에 달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뚫어져라 보다 문득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눈이 불쑥 튀어나올만큼 엄청난 섹드립에 얼른 변명. 이어지는 유진이의 말에 괜히 나만 음란마귀 씌인 사람이 되어 더욱 당황스럽다.



“너무 오랫동안 안 오길래. 얼마나 하고 왔길래. 어지간히 해도 이렇게 길게는 않았을 텐데.”

“아, 아니야! 미래얘기 했어! 아니 그보다 어째서 그렇게 잘 아는데?!”

“흐흥, 하긴. 잔뜩 욕하고 싶겠지. 이런 데에서 시간 허비하게 하고 있으니.”

“그 미래 말고!”



유진이는 너무나 능수능란하게 섹드립을 잇는다. 어떻게든 그 쪽 주제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이어지는 유진이의 미래 드립에 두 손 두 발 다 놨다. 같은 패턴인데도 이렇게 당하다니, 정웅도 실격이다…….



“그래서, 뭐 한다고?”

“깡통차기 할까 했는데. 세 명이면 좀 그렇네.”

“일어나, 성빈아. 야, 미래 일어나.”

“야아아, 발로 깨우는 건 좀.”

“응헝!”



유진이는 그런 와중에 처음에 내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을 때의 말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 다들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뒷머리를 긁으며 대답하니 유진이는 별다른 대답 없이 성빈이를 흔들어 깨우고 동시에 퍼질러 자는 미래를 발로 밀치며 깨운다. 그렇게 깨워서까지 할 만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에? 뭐에요.”

“아니, 그.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깡통차기 하자고.”

“……하아?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이 몸의 잠을 깨웠느냐? 썩 물러가거라. 엣헴.”

“누구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는데! 어그로 쩌네 너?!”

“아항♡ 그렇게 발로 차시면 전♡”

“뭐!”



막 잠에서 깨서 잔뜩 신경질적인 미래. 불쾌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어쨌든 자던 애를 억지로 깨웠으니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미래는 대뜸 무슨 양반이라도 되는 듯 잔뜩 멋진 목소리로 말하곤 돌아 눕는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홧김에 살짝 발로 미래를 툭 치며 말하니 미래는 금세 섹드립 모드가 되어 말한다.





‘깡!’

“아하하하!”

“깔깔 까르르!”



맑고 경쾌한 깡통 차는 소리. 어째서인지 내가 먼저 술래. 그래도 쾌활하게, 웃으며 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라도 해야지. 뙤양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굳이 이렇게까지 뛰어야 하는가 싶지만 뭐. 재미있으면 됐지!


그보다, 이게 지금 여름 휴가 맞아?! 바닷가로 놀러온 거잖아! 그냥 동네에서 놀아도 이것만큼은 할 수 있잖아! 으앙!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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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연필유령
    작성일
    15.12.12 21:54
    No. 1

    참 일러님이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제 손은 그림 쪽에서는 발이라 어떻게 도와 드릴 수도 없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2.14 23:15
    No. 2

    저는 봐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물론 일러스트가 잇으면 정말 행복하겠지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5.12.22 18:45
    No. 3

    바닷가... 파도가 넘실넘실... 풍만한 비키니 몸매의 여학생들... 불꽃놀이... 캠프파이어...
    현실은 시궁창... OTL... 지못미...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2.24 20:20
    No. 4

    ......사실 저도 한 번도 그런 황홀경은 본 적이 없어요. 죄다 남자애들하고 갔지. 젠장.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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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13화 - 4 +8 15.11.23 829 14 22쪽
199 13화 - 3 +2 15.11.21 724 21 21쪽
198 13화 - 2 +2 15.11.20 793 17 20쪽
197 13화. 기말고사 치고는 너무 밝은 거 아닙니까?! +9 15.11.19 873 19 20쪽
196 촬영은 다시. +8 15.11.17 707 13 15쪽
195 촬영이 끝나고 난 뒤 ----- 휴재 +10 15.10.17 920 17 19쪽
194 -동결- +8 15.10.15 855 12 1쪽
193 12화 - 4 +10 15.10.14 988 18 25쪽
192 12화 - 3 +8 15.10.13 868 17 18쪽
191 12화 - 2 +10 15.10.12 846 17 20쪽
190 12화. 먹어 줘! +12 15.10.10 1,003 2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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