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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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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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0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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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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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4화.3 - 2

DUMMY

“언제부터 만났어?”

“동갑? 오빠야?!”

“사귀는 부분입니까?”

“하, 하나씩 물어봐……!”



눈이 초롱초롱해서 물어보는 애들. 성빈이도 민서도 시아도 하나같이 미래에게 고백한 남자애에게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미래는 빨개진 얼굴로 여전히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나는 다만 무엇인가 즐거움이 느껴져 킬킬 웃는 낯으로 그런 미래를 쳐다볼 따름이다.


골목길에서 그러고 있을 순 없으니 자리를 옮겼다. 마침 미래도 우리도 점심을 먹지 않은 상태이니, 자주 들르는 분식집으로 이동했다. 뭐, 미래는 지금 밥이고 뭐고 안 넘어가는 상태인 것 같지만. 아직도 얼굴이 상기된 채 안절부절 못 하는 상태이다.



“뭐, 심문할 건 아니지만. 어쩌다 알게 된 애야?”

“……오, 오빠 후배인데, 집 와서 놀다가 조금 친해졌거든.”

“으음. 근데?”



희세가 앞선 질문들을 모두 묵살하고 먼저 물어본다. 시아와 민서가 귀여운 뾰로통한 표정으로 희세를 쳐다본다. 귀여워라. 미래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꺼낸다. 다들 흥미로운 표정으로 미래를 쳐다보며 집중한다. 부담을 느끼는 듯 주위를 둘러보는 미래. ‘계속 해 봐.’ 하는 희세의 재촉에 망설이는 입을 다시금 움직인다.



“그, 그 때는 막 드립치고 놀았었는데…… 갑자기 개인적으로 보자고 하더니, 이런 식이 돼 버려서…….”

“좋아한다고?”

“고백한 건 오늘이 처음이지 않아?”

“막 좋아하는 티 내? 어떻게?”

“사귀는 건가요? 둘이 사귀어요?”

“시아 너도 참 꾸준하구나.”



모호하게 끝내는 미래의 말에 다들 다시금 한 마디씩 질문이 이어진다. 가히 기자회견이 따로 없구나. 이 와중에 시아는 꾸준하게 ‘사귀는 건가요?’ 하는 질문만 계속한다. 무슨 꾸준글인가. 물론 그것 또한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내 태클에 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저희는 언제 사귀어요?’ 하고 묻는다. 안 사귀어!


애들은 그 외에도 이것저것 미래에게 질문했다. 희세 말마따나 무슨 형사가 범죄자 심문하는 것처럼. 미래는 고분고분하게 모든 것을 말해준다. 남자애는, 이웃 ○○남고 2학년. 우리와 동갑.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고, 미래네 놀러 왔을 때 이런저런 드립 치며 놀던 사이란다. 많이 본 건 아니고, 두어 차례 봤는데 갑작스럽게 이런 식으로 급전개가 되었단다. 이번 방학 들어서.



“……그 애, 변태 같은 거 아닐까. 그렇지 않은 담에야 왜 나 같은 여자애를 좋아하는 거야.”

“너 같은 여자애가 뭔데. 그 애가 너 좋아하면 안 되는 거야?”

“이, 이상하잖아!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이상한 여자애를 누가 좋아해!”

“본인 보고 본인이 이상하다 말하는 건 좀 슬프지 않냐.”

“사, 사실을 직시해야지 이런 때엔!”



갑자기 잔뜩 우울한 느낌이 되어 말하는 미래. 희세가 잔뜩 힘주어 그런 미래를 쳐다보며 묻는다. 타인의 이유 없는 자신감 없는 모습은 보기 싫어하는 희세지. 잔뜩 당황해선 손을 파닥이며 말하는 미래. 그런 미래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뭔가 안쓰럽기도 해 한 마디 태클을 걸었다. 잔뜩 불만스런 얼굴로 내 어깨를 탁 치며 말하는 미래. ……그러니까 반말하면 뭔가 기분 나쁘다니까. 애초부터 컨셉을 잡지를 말던가.



“뭐가 문제인데. 미래 네가 생각하는 문제는.”

“아으, 그! 어떻게 나를 좋아할 수가 있냐는 거지?! 나 집에서는 엄청 편하게 입고 드립도 미친 듯이 치고 그랬는데?! 그 모습에 반하는 남자가 변태 아니면 뭔데?! 아니 그거에 반해?! 그냥 친구인데! 이상해, 불쾌해! 역시 이상하다구!”



심문하듯 물어보는 희세. 미래는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것처럼 잔뜩 흥분한 태도로 희세의 손을 붙들고 말한다. 이성적으로 납득을 하지 못 하는 표정. 말도 잔뜩 빠르게 한다.



“그거에 반하지 못해?”

“……남자 고등학생의 모든 마음을 반영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지만─”

“시끄럽고 대답만.”

“넵. 반할 수 있습죠, 남자라면.”

“……!”



이어지는 희세의 질문. 내가 나서야 할 차례가 된 건가, 하고 자세를 잡으며 말하려니 자연스럽게 내 말을 끊어내는 희세. 결론만 말하라는 건가, 얼른 대답한다. 충분히 가능하지. 객관적으로 보자면 미래, 괜찮은 외모니까. 말했잖아, 귀여운 걸로 하면 3위 안에 들 정도라고. 거기에 무방비한 편한 옷차림에, 서슴없는 드립. 나한테 하는 것처럼 하면 굉장히 불쾌함을 유발했겠지만, 미래도 사람인데 초면에 그렇게까지는 안 했겠지. ……했으려나? 그 미래인데?!



“미래 너는, 그 애가 싫어? 부담스러워?”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뭐가 문제야! 사귀면 되겠네. 고백 받아 줘!”

“그, 그, 그, 그렇게 쉬, 쉬운 문제가 아니잖아!”

“쉬운 문제지, 뭣하러 어렵게 풀려고 해.”



이어지는 성빈이의 물음에 미래는 다시금 흥분한 태도를 가라앉히고 수줍은 느낌으로 대답한다. 싫거나 부담스러운 건 아니라. 그렇다면 뭐,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서 그렇다, 그런 얘기겠네. 유진이가 대뜸 말한다. 잔뜩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미래. 이렇게 당황하는 미래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흐뭇하다. 유진이의 심드렁한 대답에 나는 미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음, 훌륭한 인문계 학생이구나.’ 하고 드립을 친다. ‘뭐에요.’ 하고 내 손을 툭 까내리는 미래. 다시 존댓말이네. 멘탈이 왔다갔다 하긴 하는구나.



“좋아해? 싫어?”

“잘 생겼던데!”

“그냥 사귀어버려! 너도 싫지는 않다며?”

“정웅도보다는 훨씬 낫지.”

“아, 아우으……!”

“뭔가 굉장히 불쾌한 사족이 중간에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금 이어지는 여자애들의 한 마디 한 마디 화살촉. 미래는 허둥대며 대답하질 못한다. 이런 식의 소녀틱한 미래의 모습은 처음이라 참, 보는 것만으로 즐겁기 그지없다. 희세의 태클에 한 마디 말을 잇는 나. 그래요, 나보다는 훨씬 낫네요, 그 남자애가.



“데이트 하기로 했잖아? 우리가 도와줄게, 미래 네 일인데!”

“응응! 생에 처음 좋아하는 남자애랑 데이트인데! 데이트 처음이지?”

“……응.”



유진이의 말에 성빈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잔뜩 움츠러들어선 얼굴이 빨개져서 대답하는 미래. 귀엽네. ……작년에 분명히 나랑 데이트 했었던 것 같은데, 그건 흑역사가 된 건가. 뭐, ‘좋아하는’ 남자애랑 데이트라는 조건이 붙었다면 그게 처음이긴 하겠지만. 미래는 잔뜩 불안한 표정으로 모두를 쳐다본다.




--




“……으으.”

“정말정말 예뻐! 귀여워, 미래야!”

“……정말정말 이상하지 않아?”



결전의 날. 우리는 다시금 모였다. 무슨 품평회라도 하듯, 미래를 앞에 세워두고 쳐다보는 4명. 성빈이의 감탄대로, 미래는 환골탈태라도 한 듯 영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다. 하늘하늘한 아이보리색 민소매 원피스에, 잘 가다듬은 머리카락. 한 듯 안 한 듯 옅은 화장도 했다. 완연히 소녀스러운 옷을 잘 소화하고 있는 미래. 그렇게 차려 입고 입을 다물고 있으니 웬 엄청 귀여운 미소녀가 한 명 서 있다. 흠, 봐, 이 녀석도 잘 꾸미고 입만 다물면 괜찮은데.



“……그, 그렇다고 겨드랑이 털까지 제모하는 건…….”

“무, 무슨 소리야 웅도까지 있는데!”

“민소매 원피스인데, 겨드랑이 털 있으면 남자애가 되게 깬다고 느끼지 않겠어.”



구태여 자기 겨드랑이를 들어 보이며 불편한 듯 맨들맨들한 겨드랑이를 보여주며 말하는 미래. 흠칫 놀란 성빈이는 얼른 미래의 팔을 내리며 부끄러워하며 말한다. 뭐 우리 사이(?)에 그런 걸 따진데.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그, 그거야말로 잘못된 거 아닌가요?! 털이 있는 건, 있으라고 있는 거에요! 여자라고 밀어버려야 한다니, 보이지 않는 코르셋에요! 억압과 폭력이라구요! 페미니즘은 승리한다! 저열한 남성들의 억업 따위,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

“그런 드립, 그 남자애 앞에서는 하지 마라. 나니까 그냥 넘어가주지.”

“시, 시끄러워요!!”



잔뜩 흥분해서 울부짖는 미래. 드립력 폭발이냐. 그래, 나한테는 쳐도 되니까, 남자애한테 가기 전에 마음껏 치고 가라. 아무리 그게 매력이라지만 솔직히 첫 데이트에서 막 개드립 치고 그런 건 좀 그렇잖아.



”자, 원활한 미행을 위해서, 아니 미행이 아니라 작전. 이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돼?”

“아 그럼! 너는 아바타야, 우리가 비상상황엔 다 지시해줄게. 전화 끊지 마!”



유진이는 미래에게 초소형 이어폰을 건내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찌푸리는 미래. 유진이는 강제로 미래의 왼쪽 귀에 이어폰을 채우고 머리카락으로 가린다. 오, 여자애라 머리카락이 있어서 완벽하게 가려지는구나. 의심받을 일은 전혀 없겠다. 한쪽 귀에만 찼으니 다른 말을 못 들을 이유도 없고.



“그럼, 가 봐! 약속시간 얼마 안 남았잖아!”

“응…….”



유진이의 재촉에 미래는 조금 긴장한 듯 대답하곤 불편한 걸음을 옮긴다. 신발도 무슨 구두 같은 걸 신어서 불편하기 그지없는 걸음걸이의 미래. 멋을 내는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그런 모습을 잔뜩 즐거운 듯 쳐다보는 유진이. 뭐랄까, 이 포지션은 정확히 미래의 위치였는데. 일 벌리고 진두지휘하면서 즐거워하는 거.



“그런 건 또 어디서 구했데.”

“샀어. 블루투스라 좀 비싸긴 한데. 아, 단점이, 10m 이하로 떨어지면 안 돼. 전파가 약해서 안 들려.”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네. 10m 이상 떨어지면 뭐, 우리도 잘 안 보이겠지만.”



심드렁하게 물으니 유진이는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준비가 철저하잖아. 그냥 미행하면 잘 안 들리겠지만, 저런 문명의 이기가 있으면 한결 편하지. 방금 미래가 대답했던 것처럼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통화비는. 데이트 하는 내내 통화 켜놓으려고?”

“나 무제한이야! 엄마가 휴대폰 무제한 요금제로 사 줘서. ……칫. 호갱이야 호갱.”



아줌마처럼 꼼꼼하게 통화비 걱정을 하는 희세.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펴고 대답하는 유진이. 이야, 완벽하구나. 거칠 게 전혀 없어. 유진이의 휴대폰 할부금만 빼면. 듣는 내가 다 힘이 빠지는구나. 내 휴대폰은 뭐, 앞으로 3년은 더 버텨야지. 빌어먹을 법 끝날 때까지.




『아, 안녕!』

『응, 안녕.』

“오, 들린다 들려!”



크게 들리는 미래의 목소리. 작게나마 남자애의 목소리도 들린다. 오, 이 블루투스 이어폰 성능 좋은데? 선도 없는데다 한 번 충전에 7시간 다이렉트 사용에 고급 이어폰 못지않은 음질과 성능, 최신 블루투스 4.1기술 적용으로 끊기지 않는 스트리밍까지! ……나는 왜 이 이어폰 광고를 하고 있지. 실제 성능도 모르는데.


유진이의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하고 나, 유진이, 성빈이, 희세 넷이 옹기종기 모여 라디오 듣는 옛 사람들처럼 듣고 있다. 민서랑 리유는 각각 사정이 있다고 해서, 시아는 귀찮다고 안 나왔다. 뭐, 미행에 사람이 많으면 저번처럼 신속하게 못 숨고 들키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도리어 덩치가 줄어서 다행일 수도 있다.



『너무 일찍 나와버렸네. 영화 시간표를 잘못 착각해서. 시간 꽤 남았는데, 카페라도 갈래?』

『어! 응! 카페 좋지, 나도 좋아해!』

“너무 긴장한 것 같은데. 긴장 풀어, 미래야!”

『응!』

“거기에 대답하면 어떡해! 어휴.”



좀 듣기 불편하지만, 어쨌든 남자애 목소리가 명확히 들린다. 정중하고 차분하구나. 어떻게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저렇게 침착할 수가 있지. 정했어, 앞으로 난 저 녀석을 ‘침착맨’이라고 부르겠다. 전쟁이 나도 침착하게 ‘음, 적을 조준사격해서 총을 쏘면 되겠네’ 하고 총을 쏠 수 있을 것 같애, 저 녀석이라면.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우군. ……음? 뭘 맡겨?!


잔뜩 긴장한 상태로 대답하는 미래.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명백하게 떠오를 것만 같다. 유진이는 무슨 체육선생님 코치처럼 지도하듯 말한다. 발랄하게 대답하는 미래. 아아, 침착맨 어리둥절해할 거 아냐. 갑자기 ‘응!’ 하고 허공에 대답하니.




『……응.』

“아 참, 뭐라도 좀 말해봐! 자꾸 대답만 하면 남자애 무안해 할 거 아냐!”



카페. 미래와 침착맨이 들어가고 조금 있다가 들어갔다. 밖에서 우물쭈물 감청하고 있는 건 뭔가 모양이 이상할뿐더러 전파도 잘 안 잡히니. 뭐, 침착맨이 우리들을 전혀 모르니 우리는 그냥 우리끼리 카페 온 것처럼 행동하면 된다. 스피커폰은 최대한 작게, 주위에 들리지 않게. 뭐, 미래와 침착맨 테이블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잡았지만.


유진이는 대답만 하는 미래를 자꾸 다그친다. 아닌 게 아니라 미래, 잔뜩 긴장했는지 침착맨이 하는 말에 대답만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 그 심정, 내가 충분히 잘 안다. 여자애들 앞에 서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던 게 나니까. 지금도 뭐, 비슷하지만 간신히 경험으로 버티고 있는 거지만.



『저기…… 나 같은 거, 왜 좋아하는 거야……?』

“너무 돌직구잖아?!”

“쉬이이잇!”

“아하하, 그렇네. 너무 돌직구였어.”

“어어, 응. 그렇지.”



굉장히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미래. 나도 모르게 미래가 옆에 있는 것처럼 큰 소리로 태클을 걸어 버렸다. 유진이는 정색하곤 나를 보고 ‘쉬잇!’ 하고 소리친다. 우아, 엄청난 위기다! 침착맨 있는 자리까지 들렸으려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희세가 자연스럽게 내 팔을 툭 치며 말한다. 눈을 찡긋 하는 희세. 아, 우리끼리 얘기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후으. 나이스 희세. 임기응변 최고.



『음. 솔직하고 털털한 모습이 좋아서? 형 따라 놀러갔을 때, 아무 꾸밈 없이 수수하고 귀여운 모습이 늘 눈에 밟혀서. 오늘, 데이트라 이렇게 꾸미고 온 거 보니까 더 좋아지는데. 할 때는 하는 여자애구나, 하고 주장하는 것 같아서.』

『아, 아으우…….』

『후흣. 부끄러워하는 것도 귀엽고. 지금 엄청 귀여워.』

“으으─! 미친 거 아냐!?”

“……부럽당.”



침착맨은 침착하게 대답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말을 내뱉는구나. 파렴치한 아닌가 싶을 정도. 뭐? 오늘 꾸미고 오니까 더 귀여워?! 이 결혼, 나는 반댈세! 아니 그냥 그러고 싶어서. 저 녀석, 침착맨은 컨셉이고 사실 느끼남이나 제비 같은 거 아니야? 여자 후리는(?) 솜씨가 일품인데? 미래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보이는 것 같잖아.


유진이는 잔뜩 손을 오그리며 어쩔 줄 몰라하고, 희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묵묵히 듣고 있다. 성빈이는 정말 부러운 소녀의 모습으로 멀거니 침착맨과 미래의 자리를 쳐다본다. ……성빈이, 저런 거 좋아하는구나. 본받아야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저런 거, 본받기 힘들지.




『어땠어, 오늘.』

『……응, 굉장히, 재미있었어.』



무슨 영화 대사냐. 느끼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침착맨과, 마찬가지로 80년대 영화처럼 교과서 같은 대답을 하는 미래. 골목길 모퉁이에 숨어 그런 침착맨과 미래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카페 이후로는 뭐, 자연스러운 평범한 데이트. 영화를 보러 간 두 사람. 우리도 강제로 영화를 봤다. 영화 보는 동안은 딱히 미행할 게 없으니 완연하게 영화감상모드. 끝나고 난 이후로는 점심 먹으러. 우리도 같이 점심을 먹는다. 두 번이나 같은 가게에 들어오니 침착맨이 의심하지 않을까 싶지만 침착맨의 시선과 신경은 오로지 미래에게만 가 있어서. 허허, 임자 만났네, 미래.


식사까지 마치고는 못내 아쉬운지 공원 같은 데 거니는 두 사람. 덩달아 우리 네 명까지 같이 걷는다. 숨어 다니면서. ……근데 자연스럽게 알찬 주말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나. 미래 데이트 코스 따라 미행하면서 절로 데이트 비슷하게 하고 있어. 여자애 세 명하고. 좋은데?!



『크흠, 흠. 다시 말해도 될까.』

『어……?』



미래는 이제 침착맨하고 꽤 친해졌다. 아까 점심 먹으면서, 공원 거닐면서 어느 정도 말을 텄거든. 의외로 게임이라던가, 두 사람 취향이 맞는 게 많더라고. 그러니까 좋아한다고 하겠지. 그런 것보다는 미래가 좀 독특한 여자애라 그렇지만. 남자애 취향인 게임이나 만화 같은 거 좋아하는 녀석이니.


어색함을 털고 침착맨에게 먼저 재잘재잘 말할 정도가 된 미래. 침착맨은 잠자코 말을 꺼낸다. 고개를 돌려 침착맨을 보며 멈칫 하는 미래. 오, 분위기 다시 잡히는 것 같은데.



『미래야, 나 너 좋아해. 오늘 데이트 하니까 더 절실하게 좋아하게 됐어. 나랑 사귀자.』

『……너무 창피한데?! 어떻게 그딴 말 아무렇지도 않게 해!? 안 창피해!? 미쳤어!? 변태야?!』

『창피하지! 꾹 참고 말하는 거잖아! 얼굴 빨개졌는데! 왜 꼭 분위기 깨야 해? 이런 때엔 너도 분위기 좋게 ‘응!’ 하고 말하면 되잖아!』

『왜 꼭 고백은 남자가 하고 여자가 받는 건데!? 그런 전통적이고 수동적인 건 받아들일 수 없어! 페미니즘은 승리한다! 우린 노예가 되지 않는다! 우워어어어!』

“하아…….”

“드립은 놓고 가라니까 저 양반…….”



침착맨의 고백에 덜컥 소리 지르며 빨리 말하는 미래. 그 정도로 친해졌다. 이제는 거의 나한테 드립 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인데. 침착맨 또한 지지 않고 맞선다. 맞설 수 있을 정도니까 미래를 좋아하는 거겠지. 미래는 기어이 분위기를 깨고 드립으로 맞선다. 아까 나한테 드립 다 치고 가라니까, 저 녀석. 한숨 쉬는 유진이와, 한 마디 낭패라는 것처럼 말하는 나.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다시다시! 그…… 내가 고백할 거야! 나, 나, 나 같은 애 좋아해줘서…… 정말 고마워, 나도, 너무너무 좋아 그러니까! ……모텔은 다음 주에! 오늘은 너무 일러!』

『무슨 모텔!? 너무 빠르잖아! 그건 고3 끝나고!』

『남자 주제에 뭐가 그렇게 정직한데?! 남자면 그런 거 따지지 말고 돌진하라고 멍충아!』

『얼굴 엄청 빨개져서 그렇게까지 드립치고 싶어!? 읏…… 하하하.』

『아하하하하하!』



미래는 잔뜩 생떼 부리는 아이처럼 허둥지둥 말하다가 기어이 고백하고 만다. 솔직하게 말했구나. 다 좋은데 뒤에 이어지는 엄청난 섹드립. 미래 이 녀석은 좀 정상적인 길로 좀 가지. 침착맨이 침착을 잃고 당황맨이 됐잖아. 아무리 침착맨이어도 대놓고 치는 저런 섹드립엔 어떻게 대응할 길이 없나보다. 게다가 굉장히 건실한 대답. 성인 이후로 미루겠다는 건가, 착하기그지없는 녀석이군. ……뭘 미루는데?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


미래의 도발에 침착맨은 어쩔 줄 몰라하며 대답하다 미래를 보고 웃기 시작한다. 미래는 창피함을 잊으려 하는지 더욱 크게 웃는다. 마주보고 미친 듯이 웃는 두 사람. 무슨 애니 엔딩 장면이냐. 실제로 저렇게 하는 거 보니까, 정신 나간 것 같구나. 하긴, 드립의 도가니 속에서 두 사람, 정신 나갈 만도 하지.



미래는 굉장히 창피한지 ‘그럼 나 갈 게! 배웅은 사절! 다음에 봐! 전화해! 문자해! 톡해!’ 하고 말하며 뒤돌아 뛰어간다. 당황할 법도 한데 침착맨은 과연 침착맨답게 침착하게 ‘응! 다음에 또 데이트 하자!’ 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미래는 전력질주로 이쪽 모퉁이를 지난다.



“우우우우~ 미래 대박!”

“모텔 가는 건가요, 벌써?”

“……부럽네. 안 그럴 것 같은 애가 제일 먼저 사귀고.”

“으으으으아아! 하앗, 흐읏, 미친 X나 멋있어!! 어떡해 나!!”

“하하하.”



우리가 이쪽 골목에 숨어 있는 걸 알았나. 미래는 우리 앞으로 와선 숨을 헐떡인다. 성빈이의 축하, 유진이의 섹드립. 희세의 부러운 발언. 미래는 눈에 하트가 담겨져 있는 것 같은 기세로, 흠뻑 빠진 풀린 눈으로 잔뜩 빨개진 얼굴로 말한다. ‘X나 멋있다’는 건 아마, 침착맨 얘기겠지. 흠뻑 빠져버렸구나. 허허 웃음이 나온다. 잘 됐네요 잘 됐어요. 서로 좋아하는데 사귀면 그게 사랑 아니겠습니까.


성빈이가 흥분한 미래를 진정시켜준다. 잔뜩 격앙된 감정으로 재잘대는 미래는 누가 봐도 완연하게 사랑에 빠진 소녀다. 정말, 헛웃음밖에 안 나오네. 그 미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그래, 이 결혼은 반대지만…… 보내주마. 아니 보내긴 뭘 보내.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딸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랄까. 오빠의 마음인가.



“……좀 본받아라. 응?”

“네네, 나도 부러워 죽겠네요, 침착맨.”



희세는 눈을 흘기며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앞서 걸어가는 세 사람과 뒤에 이어 걸어가는 나와 희세. 그런 식으로 말하면 굉장히 부담스러운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이며 대강 대답한다. 실제로는 되게 부담스럽지만.





아─ 부럽네, 침착맨.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게, 노력해야지. 할 수 있을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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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14화.4 - 2 +4 15.12.07 1,040 19 20쪽
207 14화.4 그런 일은 없어요. +4 15.12.05 958 21 20쪽
» 14화.3 - 2 +2 15.12.04 965 13 21쪽
205 14화.3 깜짝 멘붕이야 +6 15.12.01 790 25 20쪽
204 14화.2 - 2 +8 15.11.29 979 15 19쪽
203 14화.2 여제의 귀환 +9 15.11.27 860 17 21쪽
202 14화.1 - 2 +4 15.11.25 936 18 22쪽
201 14화.1 저랑, 사귀어요! +8 15.11.24 1,000 14 20쪽
200 13화 - 4 +8 15.11.23 829 14 22쪽
199 13화 - 3 +2 15.11.21 724 21 21쪽
198 13화 - 2 +2 15.11.20 794 17 20쪽
197 13화. 기말고사 치고는 너무 밝은 거 아닙니까?! +9 15.11.19 873 19 20쪽
196 촬영은 다시. +8 15.11.17 707 13 15쪽
195 촬영이 끝나고 난 뒤 ----- 휴재 +10 15.10.17 921 17 19쪽
194 -동결- +8 15.10.15 856 12 1쪽
193 12화 - 4 +10 15.10.14 988 18 25쪽
192 12화 - 3 +8 15.10.13 868 17 18쪽
191 12화 - 2 +10 15.10.12 847 17 20쪽
190 12화. 먹어 줘! +12 15.10.10 1,003 2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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