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에 소원을 빌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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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여우
작품등록일 :
2019.11.26 04:13
최근연재일 :
2019.12.0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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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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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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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10. 마법사가 싸우는 방법

DUMMY

.


하하. 개판이네.


······집에 가고 싶다. 그런데 저 양반들이 노리는 게 바로 나잖아? 안 될 거야 아마.


그런데 엄연히 사람들 마구 돌아다니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래도 되는 건가?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난장판을 쳤는데 너무 조용한 것도 좀 많이 이상하고.


라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이건?”


주위 풍경을 보니 사람들은 지금 이 상황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제 갈 길 가고 있었다.


이거 혹시 그건가? 사람 물리기의 결계라던가, 인식저해마법 같은, 그 지나친 편리주의의 산물 같은 설정. 그러고 보니 채라가 그런 설정이 있다 그랬지. 거 참 더럽게 편리하네.


그런데 뭐랄까, 저쪽에선 누구 하나 죽어날 것 같은 분위기로 신경전 중인 걸 생각하면 좀 현실감 없는 모습이긴 하다.


“흐음, 마법협회 측에서 이쪽에 광역 은닉결계마법을 펼쳤군.”


이름만 요란한 고유명사 남발하지 마시죠. 어차피 오 분 지나면 머릿속에서 지워질 설정, 뭐 하러 저렇게 거창한 이름을 짓는지 모르겠다. 그냥 일반인들 못 보게 하는 거 가지고 생색내기는.


그런데 이 양반은 자기가 껴들기에는 수준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지 그냥 실력이 후달리는 건지-날로 먹기만 하는 지금까지의 행동을 보면 후자가 아닐까 싶다-모르겠네. 어째서 멀거니 해설이나 하고 앉아있는 거죠. 상사라면 가서 뭐라도 좀 돕는 게 정상 아닙니까.


“사장님은 가서 안도와요?”

“밥값은 해야지. 저런 건 원래 아랫것들 시키는 걸세. 월급이 땅 파서 나오는 줄 아나?”


댁 월급 값은 안하고?


완전 글러먹은 나쁜 어른을 보면서 난 커서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자니, 막 전투가 시작되려는 듯 분위기가 위험치를 향해 마구마구 치솟고 있었다.


“여유가 넘치네.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전투마법사 두 명은 상대하기 쉽지 않을 텐데?”

“······아, 그리고 누가 혼자라고 그랬죠?”


저벅저벅. 채라의 말과 함께 수많은 발자국 소리가 주위에서 들려왔다. 이건 설마, 원군이 왔는가!


기대감에 벅차 골목을 바라보고 있자니, 수많은 인영들이 주위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흰색 쫄쫄이들이었다.


“오 지져스 붓다 크라이스트.”


나는 차마 더 지켜볼 용기가 없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안 돼. 이건 아니야. 저건 검은 쫄쫄이보다 훨씬 추하잖아!


얇은 흰색 스판덱스 소재라서 희미하게 안이 비쳐 보이는 저렙용 쫄쫄이는 디자인 담당자의 멱살을 붙잡고 초크슬램을 먹여주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안쪽에 빨간 내복이 그대로 비치는 아저씨는 그나마 양반이다. 저쪽 저 아저씨 투실투실한 술 뱃살 밑으로 불룩한······오 맙소사. 순간 스스로 내 눈을 파버릴 뻔 했다. 신이시여.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마법세계 이래도 괜찮은가? 저건 명백한 공공외설이다. 마법협회 공무원이라며. 공무원인데 왜 경찰한테 잡혀갈 만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거지?


특히 채라 바로 옆에 서 있는 저기 저거. 북실북실한 사타구니 위에 삐죽 튀어나온 저거······오 쉿트 쀠땅 쵸르트 풔기 케까쪼!


지금까지 완벽하게 지켜왔던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가 없다. 시선을 주기는커녕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장육부가 뒤집어지고 표정관리가 안 되는 레벨. 와 진짜. 오오우. 맙소사. 어서 이 더렵혀진 눈동자와 시신경을 정화해야겠어.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 뿌옇게 물든 시야 사이로 나는 필사적으로 채라와 싱클레어 씨를 찾았다. 저기, 저기 있군.


몸매라인을 따라 쭉 빠진 검은 정장의 싱클레어 씨. 바람에 살랑거리는 검은 꽁지머리와 더불어, 묘한 퇴폐미가 느껴지는 날카로운 눈매와 연한 립스틱을 바른 촉촉한 입술은 그야말로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는 위험한 매력의 결정체다. 허나 그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보배롭기 그지없는 각선미를 그대로 드러내는 핏의 정장바지와 더불어 당장에라도 터질 듯 풍만한 자애로 가득 찬 흉부의 언밸런스. 실로 국보지정의 도입이 시급한 모습이 아닐 수 없구나.


물론 안구정화로 따지자면 채라도 만만치 않다. 눈처럼 새하얀 겨울코트를 입은 채라는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니까.


까만 미니스커트와 무릎 위로 올라오는 검정색 무광 부츠의 조합은 10점 만점에 12점을 주고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어린아이다운 깜찍함과 뭔가 배덕적인 색기마저 느껴지는 허벅지의 절대영역은 이 세상에 내려진 축복이나 다름없지. 무엇보다도,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할까 말까한 나이에 저런 코어한 복장을 소화할 수 있는 존재를 목격했다는 것부터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행운이었다.


그렇다고 얼굴이 덜 받쳐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린애들이 다 귀엽긴 하지만, 연갈색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묶어 내린 채라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귀여움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로서는 절대로 지을 수 없는 저 사회에 찌든 표정 사이의 갭이 또 뭐라 형용하기 힘든 위험한 매력을 준다고나 할까. 그런 귀여움과 나이에 맞지 않는 연륜이 느껴지는 얼굴에서 나오는 새디스틱한 독설도 중독성 있고.


······절대 내가 마조히즘에 소질이 있는 게 아니라, 채라가 예뻐서 그런 거다. 응. 정말로.


시신경에 남아있던 흉측한 광경이 아름다운 이미지로 덧씌워져 간다. 아아. 정화되는구나. 그래. 이쁘면 그만이지.


이것은······깨달음?


헛. 정신 차리자. 순간 열반에 들 뻔했다.


그런데 이 마법사라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아무도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니 마법사고 일반인이고, 저건 아무리 봐도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복장 아닌가.


“큭······. 사장님, 이렇게 되면!”


싱클레어 씨와 다른 헥사곤 멤버들은 복장보다도 수적으로 열세라는 점이 더 중요한가 보다. 아니, 솔직히 상식적으로 말해서 그게 맞는 거긴 한데, 진짜 비주얼이 저건 좀 아니잖아. 하다못해 슈퍼맨처럼 팬티라도 좀 입혀주면 안되겠냐.


“걱정 말게. 이럴 줄 알고 비밀리에 동원 가능한 직원들이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지.”


딱. 사장이 척 보기에도 싼티 나 보이는 폼을 잡으면서 손가락을 튕기자, 이번엔 형형색색의 쫄쫄이들이 거리 구석구석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수는 못해도 백 명은 넘어갈 정도.


그나마 이쪽은 사조직이라 그런지 가끔 제대로 된 옷을 입은 사람들도 보이는 게, 어느 정도 봐줄만했다.


물론 사복 입은 사람은 채라 쪽에도 없진 않다.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게, ‘사복 = 좀 급이 높은 마법사’라는 뜻인 건가?


······그런데 거기, 오줌지린 것 같은 노랑 쫄쫄이 넌 아웃이라고 생각 안 하십니까.


“결국 이렇게 됐군. 가능하면 평화롭게 해결 보려 했건만.”


지금 상황은 무지개색 쫄쫄이 군단-헥사곤-과 하얀색 쫄쫄이 군단-마법협회-이 우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백 명 이상이 넘어가는 대규모 전투. 내 일이지만 뭔가 흥미진진한걸. 팝콘. 팝콘이 필요하다.


서로 진형을 갖추고 달려들기 위해 서로의 간을 보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두근두근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낮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들이신가 봐요?”

“으잉?”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완전 걸레짝이 다 된 차에서 완전 힘들어보이게 빠져나오는 택시기사 아저씨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도 있었지.


“어, 기사님? 마법사를 아세요?”


일개 택시기사가 이 상황 속에서 너무 태연한 걸 보니, 이 사람도 뭔가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아까 택시 안에서 마법이야기 할 때도 별 반응 없었지.


어쩐지 남자의 감에 촉이 오더라니. 솔직히 아까 방탄유리 이야기 할 때부터 알아봤다. 방탄유리가 전차포탄을 튕겨낸다는 소린 난생 처음 듣거든.


택시기사 아저씨는 막 전투가 일어나려는 곳을 흘긋 보더니, 이내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학생, 내가 예전에 동현물산 소속 마법사로 좀 뛰었던 적이 있었거든.”


동현물산이냐. 마법사 단체 주제에 네이밍 센스 참······. 그나마 초코맛무스파 같은 이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 이 아저씨도 전직 마법사였던 건가. 근데 웬 택시기사? 뭐 잠복근무 중인가?


“그런데 왜 택시를 몰고 계세요?”


택시기사 아저씨가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생각하고 있는데, 사장이 ‘이 눈치 없는 놈’이라는 표정으로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 뭐. 왜.


“하하······중소마법업체는 퇴직 이후 대우가 좀 안 좋거든. 인력난이 좀 심해야지. 젊은 애들은 다들 대형 마법업체나 공무원 하겠다고 그쪽으로 몰린다대. 거 좋은 건 알아가지고.”


요즘엔 규모 작은 업체들은 줄줄이 망했어. 쯧하고 혀를 찬 아저씨가 우울한 오오라를 풍겨냈다. 음. 뭔가 내 나이 대에는 들을 필요가 없는 현실의 잔혹한 일면을 본 듯한 느낌이 드는데. 빨리 잊어버려야겠다.


“어, 음. 택시는 괜찮아요? 저거 완전 다 부서졌는데.”


일단 이 주제를 피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근데 말 꺼낸 다음에 든 생각인데, 이거 더 큰 지뢰 아냐?


그런데 의외로, 기사 아저씨의 표정은 대단히 상쾌한 표정이었다.


“아 그거? 괜찮아 괜찮아. 마법재해는 보상이 확실하거든. 이 기회에 새 차나 장만해 봐야지. 이 정도로 끝났으면 오히려 복권 당첨된 셈이야.”


긍정왕이시네요. 잘못하면 목숨도 안녕이실 텐데.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기사 아저씨가 배에 두른 복대를 통통 두들겼다. 그러고 보니 그런 설정 있었지. 몸으로 체득한 경험이라 뼈저리게 느껴졌다. 저거 자해공갈단 손에 들어가면 활용도가 무궁무진 할 것 같은데.


“뭐 심장에 좀 좋지 않긴 한데, 그냥 미친개한테 물린 셈 쳐야지 뭐······.”


일단 히로인 비스무리한 거인-솔직히 저 녀석이 하는 짓을 보면 히로인인지 보스몹인지 확신을 못하겠다. 뭣보다 초등학생이기도 하고- 채라가 미친개 취급을 받았다. 정말이지 가차 없군. 뭐, 누구라도 하늘에서 터미네이터가 뚝 떨어진다면 재해로 취급할 테니 딱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슬슬 싸우려나보군.”


저쪽은 이제 막 싸우려는 참이다. 지금까지 뭐 한 거지. 채라야. 빨리 없애버려!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없다는 유명한 말 모르냐?


물론 입 밖으로 그 말을 내뱉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아직 내 눈앞에는 일종의 최종흑막, 그 테러리스트의 최종보스가 있었으니까······물론 그에 걸맞은 무게감 따윈 쥐똥만큼도 느껴지지 않지만.


“긴말 할 거 있나요. 한 판 거하게 떠 봐야죠?”

“······좋지!”


채라의 말에 싱클레어 씨가 동의함과 동시에, 그들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법사들의 단체전이라는 거, 생각보다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다. 일단 저래 뵈도 마법이란 초능력을 쓰는 양반들이니만큼 영화 CG하고는 상대도 안 되는 리얼리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특히나 총이나 수류탄 같은 현대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혼용하는 모습은 꽤 신선한 장면이었다.


“먹어랏! 구스타프!”

“아! 바주카!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목표를 센터에 넣고 스위치. 목표를 센터에 넣고 스위치······.”

“저리 꺼져! 힘 균형 밀침!”

“힘이······제멋대로······으아아악!”


그러니까. 대충 이런 느낌으로.


아니 댁들 안 죽잖아. 바주카를 맨몸으로 뚫고 들어오는 시점에서 이미 인간 포기했잖아.


뭐랄까, 마법사들의 싸움은 어떻게 보면 남자들의 로망을 집대성시켜놓은 모양새였다. 양 손에 람보 기관총을 들고 난사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아저씨는 양반이고, 아크로바틱한 허공답보를 선보이며 쌍권총을 들고 렛츠롹을 외치는 아줌마도 있었는데, 심지어는 한 손에 불덩이를 들고 다른 손에는 사람 팔뚝만한 리볼버를 든 예비군까지 있었다.


······솔직히 마지막은 뭐하자는 컨셉인지도 모르겠다.


“뽀 디 엠뻬러!”


그중 압권이라면 커다란 전기톱을 들고 전장을 지배하는 할아버지로, 환갑은 가뿐히 넘기셨을 분이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며 헥사곤 사원 다섯 명을 한 큐에 보내버리는 장면-순간 ‘Penta Kill!’ 하는 환청까지 들렸다-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장면이었다.


물론 마법사들의 전투답게 판타지스러운 빛덩이나 불덩이 따위도 있긴 했다. 주로 마법협회보다는 헥사곤 쪽 멤버들의 마법이 좀 더 전통적이고 정석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군부대에서도 보기 힘든 총화기 따위를 들고 마법인지 초능력인지 알 수 없는 능력을 남발하는 마법협회 쪽보다는 훨씬 마법사다웠다.


솔직히 말해서 같은 쫄쫄이라도 저쪽이 좀 더 코디에 신경 쓰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저쪽에 보이는, 멋진 갑옷과 망토를 두르고 화염에 휩싸인 검을 휘두르는 중세시대의 기사 같은 마법사는 실시간으로 판타지 영화를 보는 것 같아서 조금 감동이었다.


번쩍이는 판금갑옷 사이로 보이는 무지개 색 쫄쫄이만 아니었다면 좀 더 감동적이었을 텐데.


진심으로 묻고 싶다. 이 세계 인간들은 왜 그렇게 쫄쫄이를 고수하는 거죠.


쫄쫄이를 제외한 양측 세력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로 무기에 있었다. 마법협회 측은 중기관총이나 수류탄, 혹은 알라의 요술봉 따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반면 헥사곤 쪽은 기껏해야 소총이나 권총 뿐, 현대무기는 거의 없었다. 가끔 산탄총도 보이기는 한데 그래봐야 기관총과 비교하기에는 영 파워가 부족하지 않나?


솔직히 이쯤 되면 무슨 상황인지 대충 촉이 온다. 보나마나 정부의 무기규제 어쩌구 하는 대답이 튀어나오겠지.


마법협회는 공무원이니까 지원 빵빵하게 잘 받고, 헥사곤은 사조직이니까 그런 거 없는 거 아니겠어? 칼 정도는 도검소지허가증만 있으면 되니까 괜찮을 거고. 내가 이 바닥에 들어온 뒤로 겪은 일을 잘 되짚어 보면 이정도 추리는 아주 쉬운 일이다. 참 쉽죠?


“그런데 저런 진짜 뭐라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솔직히 저거 보면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마법사들의 전투 외에도 생각지도 못한 볼거리가 있었다. 아니 그게, 볼거리라기엔 또 좀 뭣한 것이 마법사들의 전투에 대처하는 일반인들의 자세가 좀 많이 비범했다고나 할까.


아까 말했듯이 광역 은닉 뭐시기라는 거창한 이름의 결계 덕분에 일반인들은 마법사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다. 채라도 비슷한 소릴 했었으니 아마 대충 맞겠지.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바로 유탄과 파편이라는 문제가.


마법사들의 전투는 아까 말했다시피 불과 총알이 날아다니는 지옥이다. 솔직히 저 인간들 싸우는 꼬라지가 하도 현실을 초월해서 그렇지, 여파만 보면 아스팔트가 작살나고 가로수가 뿌리채 뽑혀나간다. 만약 복대가 없었다면 평범한 일반인 따위는 진즉에 가루가 될 정도로 위험한 데드존이 완성되는 거다.


그리고 여기서, 금구슬이라는 신묘한 장치의 효험이 빛을 발한다. 정신간섭과 현실왜곡이라는 뭔가 세보이면서도 대책 없이 편한 설정 덕분에, 놀랍게도 서울시민들은 생채기 하나 없이 이 데드존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벗어나는 과정이,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면 굉장히 아스트랄한 모습이라는 거.


자, 예를 한 가지 들어서, 길을 가던 일반인에게 총알이 날아온다고 치자.


이 상황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방어막이 총알을 튕겨낸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판타지의 전개이다.


만약 총알이 일반인을 그대로 통과해 지나친다면, 그것 역시 정상이다.


하지만, 그 일반인이 매트릭스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무빙으로 총알을 피해낸다면? 그것은 분명 의심할 여지가 없는 비정상이다.


폭음과 함께 터져나가는 아스팔트 파편을 곡예에 가까운 스텝으로 피해내며 조곤조곤하게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땅바닥에 처박힌 마법사를 사뿐히 즈려밟고 건너뛰는 유치원생. 심지어 빗발치는 총알세례 사이로 MP3를 들으며 현대판 매트릭스를 찍는 고등학생까지.


솔직히 이쯤 오면 마법사보다 일반인 쪽이 더 대단한 것 같다. 아니, 이런 현상을 만드는 금구슬이 대단한 건가? 뭐든 정상적인 내 상식관으론 받아들이기가 힘든 전개였다.


“이런. 별로 좋지 않은데.”


한창 재미있게 마법사들의 단체전을 관람하고 있는데, 옆에서 사장이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저 불쾌하기 그지없는 쫄쫄이들 이상으로 좋지 않은 게 또 뭐가 있겠나 싶어 사장이 보는 쪽을 봤더니, 저 위에 빌딩들 사이로 화려하게 공중전을 펼치고 계시는 채라와 싱클레어 누님, 최 대리가 있었다.


“젠장 뭐 저리 더럽게 단단해!?”

“입 다물고 마법이나 써!”


나름 정석적인 마법사답게 양손에서 화려하기 그지없는 마법들을 쏟아내는 최 대리와 다양한 총화기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최 대리가 화력을 쏟아 부을 수 있도록 채라를 견제하는 싱클레어 누님. 공중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니 새삼 저 둘이 마법사라는 게 실감이 났다.


반면 채라 쪽은······뭐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이씨! 진짜 안 맞네! 두 사람 다 제 손에 걸리면 가만 안 둬요!”


쾅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빌딩 사이를 뛰어다니는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한명. 빌딩 벽을 박찰 때마다 콘크리트와 유리 파편이 마구 튀어 오르는 것이 흡사 영화에 나오는 헐크 같았다.


솔직히 저 애가 귀여운 여자아이만 아니었다면 헐크가 맞지. 이펙트는 헐크인데 주체가 어린 소녀라서 위화감이 장난 아니다. 분명 처음 봤을 때를 생각하면 공중부양을 못하는 건 아닌데 왜 날지 않고 빌딩 사이를 뛰어다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런데 싱클레어 누님이 쏘아 대는 미니건-솔직히 헬기에서 쓰는 미니건을 들고 쏘는 시점에서 저 누님도 보통은 아닌 것 같다-의 탄막과 최 대리의 마법들을 방어조차 하지 않고 맨몸으로 튕겨내는 상황에서 저건 이미 인간이 아니지 않나? 아니 그 이전에 마법사도 아닌 것 같은데.


일단 구도 자체는 흔한 이대일 상황. 그것도 공중VS지상의 일방적인 구도이긴 한데, 어째 두 사람 쪽이 사정없이 밀린다는 느낌이다. 뭣보다 채라 쪽은 데미지가 하나도 없기도 하고.


솔직히 쟤한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작 그것밖에 안 돼요? 한때 강남 최강의 마법사라 불리던 왕년의 실력 어디 갔나?”

“애새끼가 입만 살아서는!”

“나이 많으셔서 좋겠네요! 그러고 보니 그쪽은 곧 계란 한판 아니었나요?”

“다, 닥치지 못해!?”

“어라? 혹시 아픈 부분? 부끄럽지 않아요? 그 나이 먹고도 사무직 안 가고 아직까지 이 바닥에서 말단 현역으로 뛰는 거, 솔직히 능력 부족이잖아요?”

“그냥 적성에 안 맞아서 그런 거거든? 현장체질이라 그렇다! 왜!”

“그게 능력부족이죠. 안 그래요? 구공년 말띠 김.순.자.씨?”

“아아아악! 이 애새끼가 진짜아아!”

“왜요? 왜애요? 왜애애애요? 한 대 치시게? 칠 수 있으면 쳐보시던가.”


와 채라 저 꼬맹이 입 터는 솜씨 좀 보소······. 혀끝에 면도칼을 달았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온통 가슴 깊숙한 곳을 도려내는 말들뿐이다.


싱클레어 누님 울려고 그런다. 듣는 나조차도 저건 좀 심한 게 아닌가 싶은데 당하는 사람이야 오죽할까. 그보다 미녀는 화가 나도 아름답구나. 이것도 뇌내저장해야지.


“그런데 저 누님 본명이 김순자였어요?”

“음. 본인 앞에선 되도록 말하지 말게. 싫어하니까.”


끝내주게 구수한 이름일세. 솔직히 싱클레어라는 가명 쓰는 거 이해가 간다. 좀 중2병 냄새가 나긴 하지만. 구공년생이면······어디보자. 지금이 2017년이니까, 스물일곱인가? 겉으로는 많아봐야 스물셋도 안 돼 보였는데. 꽤 동안이시군.


“개명하면 되지 않나?”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고작 그런 이유로 어떻게 바꾸겠냐더군. 요즘 시대에 흔치 않은 효녀지.”


아 그러심까.


“그보다 강남 최강의 마법사? 싱클레어 누님이 그렇게 강했어요? 그런데 왜 저렇게 밀리는 것 같지. 마법공무원 5급이 그렇게 센가.”


솔직히 강남 최강의 마법사라지만 채라 앞에 있으니까 좀 센 잡몹A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 저게 5급이면 1급은 손가락질 한번으로 세계가 멸망하는 거 아닐까. 솔직히 채라 정도면 혼자 도시 하나는 말아먹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데.


“마법공무원 5급이면 현역에서는 최고의 실력자로 각 기관의 주력 레벨이지. 하지만 김 부장도 왕년에 최연소로 마법외시 5급 최종면접까지 갔던 슈퍼 루키였어. 거의 동급이니 계급 상으론 비슷할 걸세.”


외시도 있었구나. 그럼 행시도 있겠지 아마? 이젠 태클 거는 거 포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왜 저렇게 밀리죠? 데미지가 하나도 안 박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나로서는 좋긴 한데, 저거 너무 밸런스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그러는 거다. 이 세계관을 만든 놈이 있다면 명치부터 때리고 물어보고 싶다. 밸런스 조정이 왜 이렇게 개판이냐고. 더불어 왜 나는 마법고자냐고.


“자네······. 그녀가 마법을 쓰는 걸 본 적이 있나?”

“뭐, 라고······!”


지금 저게 마법이 아니라는 건가?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면서 헬기에나 붙어있는 미니건으로 탄막을 흩뿌리는 저게?


“그건 마법사로서 당연히 써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법이지. 저기 저 미니 몬스터나 김 부장급 마법사들 쯤 되면 보통 자신만의 고유마법을 가지고 있다네.”


“네? 채라도요?”

“음? 알고 싶은가?”

“······아뇨. 대충 알 것 같네요.”


Power Overwhelming이나 뭐, 그런 거겠지.


“후우. 이대로라면 마법협회의 추가 지원이 올 때까지 결판이 안 나겠군. 어쩔 수 없지. 김 부장! 마법을 쓰게!”


사장이 큰 소리로 외치자 싱클레어 누님이 움찔 하고 몸을 떠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 다음에 누님이 보인 반응은, 별 생각 없던 나도 깜짝 놀랄 만큼 격한 모습이었다.


“싫어요! 마법만큼은, 절대 쓰지 않겠어!”


저 멀리서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격렬한 반응. 뭐지, 그냥 마법 쓰는 거 가지고 왜 저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는 걸까. 무슨 트라우마 같은 거라도 있나? 아니면 부작용 같은 게 있다거나.


“으음······역시 아직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건가.”


사장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린다. 역시 뭔가가 있긴 있나보군.


“‘그것’?”

“사실 그녀는 몇 년째 타인 앞에서 마법을 쓰지 않고 있지. 모두 그것을 극복하지 못해서라네.”


무시하지 말고 무슨 소리인지 설명이나 좀 해주면 좋겠다. 나 이 마법세계에 접촉한 지 이제 겨우 반나절밖에 안 됐다고요. 그렇다고 인질 된 입장에서 왜 서비스가 이 모양이냐고 따질 수도 없고.


“이번처럼 한몫 크게 잡을 기회는 흔치 않아! 고집부리지 말게!”

“싫어어어어!”


새삼스럽지만, 여기서 한몫이란 나를 말한다. 암만 그런 의미가 아니래도 저렇게까지 나를 거부하면 좀 가슴이 아파지는데.


그런데 싱클레어 누님이 저렇게 싫어하는데 굳이 그렇게 싸우라고 강요를 해야 하나. 암만 직장상사래도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저기······그, 좀 너무하······“~♪”엥?”


싱클레어 누님을 향해 소리지르는 사장의 팔을 잡고 좀 말려보려는데, 문득 위에서 트로트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말이다.


“이 컬러링은······?”


누님이셨습니까. 실제상황인데 저 긴장감 없는 트로트 벨소리 때문에 분위기가 풀어지고 말았다. 아니 뭐 그전에도 분위기가 빠릿빠릿했었다는 건 아니지만.


“최 대리, 미안! 잠시만 저 꼬맹이 좀 막아줘!”

“아, 네? 자, 잘 못 들었지 말입니다?”

“일 분만! 일 분이면 되니까!”

“이봐 김 부장! 지금 일하는 중에 뭐 하는 건가!?”


어어,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누님의 말을 듣고 실시간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사장과 최 대리. 갑자기 전화를 부여잡고 신속히 자리를 이탈하는 싱클레어 누님의 돌발행동에 나까지 당황스러워질 정도였다.


“빈틈빈틈빈틈빈틈빈틈!”

“으허어어어억!?”


아, 채라는 예외. 깜찍하기 그지없는 어린 소녀의 주먹에는 자비가 없었다.


누님이 빠져나가자 순식간에 밀리기 시작하는 최 대리. 아니 솔직히 그렇지. 암만 싱클레어 누님이 본격적으로 마법을 쓰지 않았다곤 해도 이대일 상황에서 간신히 버티던 걸 무슨 수로 혼자 감당해. 그러게 사람은 터미네이터를 이길 수 없다니까?


싱클레어 누님이 핸드폰을 들고 재빨리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일단 우리 쪽으로 오고 있긴 한데······.


“김 부장!? 대체 갑자기 왜 이러나! 업무 중에 이러면 곤란해!”


사장이 창백한 표정으로 막 이쪽으로 날아오는 누님을 향해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솔직히 이 상황 되면 사장이 이해가 가긴 하지. 한참 잘 싸우던 중에 전화 받으러 이탈이라니. 솔직히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죄송해요 사장님. 친정에서 온 전화라서······이거 안 받으면 큰일 나요.”


듣는 나도 어이가 없다. 아니 누님이 친정을 생각하는 효녀인 건 알겠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친정 전화 받으려고 하던 싸움 때려치우고 나오면 안 되죠.


이건 상식 이전에 사회인으로서 기본적인 책임의식이 없는 거 아닌가? 아직 미성년자인 내가 봐도 황당한 소리인데 사회생활 하는 성인인 사장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겠어. 저 봐. 얼굴 완전 딱딱하게 굳었잖아.


“음······그런가. 어쩔 수 없군. 내가 가능한 한 막고 있을 테니 최대한 빨리 끝내게.”


······뭐임마?


아니아니 잠깐잠깐. 댁이 여기서 이렇게 나오면 안 되죠. 댁 사장이잖아? 눈앞에서 기본적인 조직의 시스템을 깡그리 무시하는 부하직원이 있는데 교정은커녕 도와준다고요? 미친 거 아닌가? 아니 분명 이 조직 좀 제정신이 아닌 게 맞긴 맞는데, 암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진짜로 나설 모양인지 양복 재킷을 거칠게 벗어던진 사장이 한창 밀리고 있는 최 대리 쪽으로 날아올랐다. 진짜냐 이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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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9. 터미네이터 그녀 +1 19.12.03 81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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