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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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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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5.1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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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장 - 악몽(1)

DUMMY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있는 요소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창 밖에서 일렁이는 화염과 그 화염이 만들어낸 초대 받지 않은 그림자들.


제 집마냥 창문을 넘어온 그림자들은 방안의 나무 바닥을 무대삼아 온 몸을 들썩이며 침묵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현실처럼 너무나 뚜렷했고, 그래서 두려웠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현실은 없었기에...

결국 이것은 몇 번이나 반복 되었던 악몽이었기에.


마침내 악몽은 소리를 간직한 채 현실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썼다.


손톱으로 나무 바닥을 긁는 소리와 함께 신경이 곤두서는 신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 왔고, 그 소리가 심해질수록 화염의 일렁임과 그림자들이 더욱더 미친 듯이 방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림자 중 하나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길에 저항할 틈도 없이 무대로 이끌려간 곳에....


바로 그것이 있었다.


이 소리 없는 광란의 축제 속의 유일한 연주자.


나무 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끊어질 듯한 가는 숨소리를 내뱉는 그것은 사람이라 의심스러울 정도로 기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창 밖의 화염이 일렁였다.

그리고 완전히 드러난 그것의 모습에는 공포와 절망만이 가득했다.


카니엘은 눈을 떴다.

그리고는 천천히 숨을 들여 마시며 주위를 살폈다.

너울대는 화염도 춤추는 그림자도 없었다.


대신 보름달의 은은한 달빛과 멀리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만 있을 뿐이었다.


“카니엘 시닉스, 자냐?”


“아닙니다.”

반사적으로 나온 말에 그때서야 카니엘 시닉스는 완전히 현실로 돌아왔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장난하러 나온거 아니다.”


“예. 야트만 이십인장님.”

카니엘은 그렇게 대답하고서 자신의 반대편에 기대어 앉아있는 야트만 이십인장을 힐끔 바라보았다.

굳게 다문 입, 투구를 눌러써 생긴 그림자를 꿰뚫는 강인한 눈빛, 우람한 덩치의 그는 당장이라도 죽일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장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매복 작전이다. 실패 한다면 그대로 단장님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고. 알았냐?”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본디 성격상 한 마디 더 했어야 하지만 매복 임무이다 보니 꾹 참는 듯 했고, 그 틈에 다른 이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단장님이 직접 지휘 하시는 거라면, 그 분도 저희처럼 계실지 말입니다.”


눈이 녹아 축축한 진지와 그 속에 멋대로 감겨 있는 방한 덮개. 이런 주위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거칠어진 분위기를 달래었다.


“오직 집무실에서 펜을 든 모습만 봐서, 추위에 떨면서 매복하고 계실거라고는 상상이 안 갑니다.”


“에르뮈, 네가 이번이 첫작전이라 모르겠지만 앞으로 꽤나 단장님과 함께 하는 작전이 많을거다. 그럴 때 다른 것 보다 검을 잡은 모습을 잘 봐둬라고. 그럼 앞으로 이 수색대에서 살아 남는데 큰 도움이 될거다.”


대화를 단절하는 말투였기에 쾌활하게 말하던 에르뮈도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했다.


그렇게 야트만, 카니엘, 에르뮈 3명은 다시금 침묵에 휩싸인 채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적을 살피기 위해 전방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하얀 눈으로 덮인 자작나무 숲에는 안개까지 낮게 깔려 있어 가시거리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즉, 적의 행방을 놓치기 딱 좋은 상황이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담당하는 구역에 적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일반적인 군인의 마음이었겠지만 카니엘은 달랐다.


스치듯이 지나간 악몽을 떠올리는 것으로 자신이 검을 잡고 있는 이유와 그 검 날이 향해야 할 곳을 상기 시키기 충분했기 때문에 그는 제발 자신에게 적이 다가오길 기대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죄를 씻는 복수를 하자’


손에 쥔 칼 손잡이를 꽉 쥐며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새길 때였다.


에르뮈의 손이 카니엘의 무릎을 강하게 흔들었고, 그 행동에 카니엘은 물론 야트만 이십인장 또한 에르뮈가 주시하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개를 헤치고 한 사람이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일지 가늠 할 틈도 없이 지척에서 모습을 드러냈기에 어느새 실루엣이 드러났고, 적으로 간주하고 있던 세 사람은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체격도 그렇고, 특히 투구 뒤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의 형태가 보였기에 거수자는 여자로 판단되었고, 그 사실로 유추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장님?”

야트만 분대장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을 때였다.


“하현달.”

별안간 날아든 암구호에 카니엘과 야트만, 그리고 에르뮈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상현시.”

그 순간도 잠시, 반사적으로 야트만이 그렇게 말했고, 그 절차가 끝나고 나서야 알 수 없는 안도와 동시에 불안이 그들을 덮쳤다.


“어쩐 일이십니까, 단장님.”


야트만 이십인장이 재빠르게 일어서며 경례를 올렸고, 뒤따라 카니엘과 에르뮈가 일어서서 군단장을 맞이하려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했고, 그 긴장감 속에서 경계 방향은 잘 맞는지, 작전 동선과 비상시 대처 사항들은 제대로 숙지했는지를 되새기느라 머리가 복잡해지던 찰나였다.


맞은편 어느 곳에서 파란 빛 줄기가 달을 향해 솟구쳐 올라갔다.

자연스레 카니엘과 에르뮈, 야트만의 눈길도 그 불빛을 따라 위를 향했고, 그 중에서 카니엘이 가장 먼저 그 빛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적에게 당했다’


그 의미를 파악하자마자, 순식간에 세 가지 일이 일어났다.

빛 줄기가 펑 소리와 함께 터지며 순식간에 주위가 밝아졌고, 동시에 카니엘은 칼을 뽑아 들었으며, 야트만의 목이 날아갔다.


뽑아 든 칼 덕분에 자신의 목을 지킬 수 있었던 카니엘은 밝아진 시야로 피범벅이 된 옷차림을 한 채 머리카락을 휘날리는‘적’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군에 입대한 이유, 살아가는 목적 그리고 자신이 죽여야 적이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적은 순식간에 진지를 넘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신호탄 쏴!”

카니엘은 넘어져서 멍하니 야트만 이십인장의 시신을 보고 있던 에르뮈에게 그렇게 외치고서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단 번에 손바닥 반 크기의 구슬을 꺼내든 카니엘은 손 끝으로 그것을 깨트렸다.

그러자 부서진 구슬 사이로 바람에 날려버릴 것 같은 검회색 연기가 새어 나왔고, 카니엘은 그것을 자신의 목 뒤에 갔다 대었다.


차가운 불이 목에서부터 시작해서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흐르는 듯한 느낌.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모든 근육에 힘이 한번 들어갔다가 다시 빠졌다.

잠시간 세상이 핑 돌았다가 곧 주위의 모든 움직임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이 선명해졌으며, 두근대는 심장 박동수는 더욱더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복수의 북소리.

그 북소리가 카니엘의 가슴 한가운데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카니엘은 땅에서 튀어 올랐다.

하얀 눈을 튀기며, 귓속을 가득 메우는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한 번의 도약으로 수 십 그루의 자작나무를 지나쳤다.


그렇게 카니엘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쫓기 힘든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격을 시작했고, 그와 함께 몇 가지 사실들이 뒤늦게 카니엘을 뒤따라왔다.


‘야트만 이십인장이 죽었다.’

‘적은 단장을 닮았다.’

‘그것 때문에 앞선 진지도 당했을 것이다.’

‘필시 그때 암구호를 알아냈을 것이다.’


시간 순서와 상관없는 사실들이 뒤죽박죽 엉키어 카니엘 머릿속에 들어왔고, 카니엘은 그 중 가장 쓸모 있는 정보를 추출해내었다.


‘적이 눈앞에 있다.’


나무들이 듬성듬성한 곳으로 나오자, 마침내 카니엘의 시야에 적이 들어온 것이었다.


작가의말

어느새 늙어버린 작가가 한창일 때는  드레곤 라자, 룬의 아이들, 눈마새-피마새 등 을 즐겨 읽었습죠.


언젠가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꿈꿔 오며 적었던 묵은 글들에 광을 내어 하나하나 풀어보고자 합니다.


비교 할 순 없겠지만  정통 판타지의 잔향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길 바라며,,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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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49 목재장난감
    작성일
    20.05.11 11:00
    No. 1

    오 ..기대가 됩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독고구객
    작성일
    20.05.12 18:04
    No. 2

    연참만이 살길이다!! 가즈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4 하늘고래.
    작성일
    20.06.09 16:58
    No. 3

    기대돼요!

    찬성: 1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12 철의대화
    작성일
    20.06.09 17:02
    No. 4

    댓글 하나하나가 큰 도움이 됩니다 ㅜ 1장 내용 전체를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라고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스프링쿨러
    작성일
    20.07.01 14:01
    No. 5

    재밌는데 안타깝네요.
    요새는 낭만이 오글이 되고 감성이 중2병이 되었으며 여유가 잉여가 되어버렸지요.
    이 소설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길 바라지만 요새 트랜드에는 많이 빗나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필력 좋으신데 결과가 좋지 않아 마음이 좋지 않네요.
    댓글로나마 응원의 메시지 남깁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철의대화
    작성일
    20.07.01 16:37
    No. 6

    응원 감사합니다 ㅜ

    그리고 말씀주신 사항 100% 공감합니다 ㅎㅎ 그만큼 제가 라떼 사람이 되어 버린거겠지요.

    그래도 읽는 독자분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계속 써내려가려고 합니다.

    그 독자분들께서 고전적인 판타지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를 조금이나 느낄 수 있으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만족하고 있습니다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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