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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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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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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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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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장 - 악몽(4)

DUMMY

/////////////////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카니엘.”

하얀 눈이 눈밭에 떨어지는 소리처럼 희미한 말이 카니엘 귀에 들려왔다. 그 말에 놀란 카니엘은 그 의미를 되묻고자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벨로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꼿꼿이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


곧 카니엘이 있던 장소는 이번 작전에 참여한 월영군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처분된 인형과 자신을 힐끔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다른 수색대원들의 목소리와 사령부에서 파견된 인원들의 명령소리,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각종 장비구 소리들이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숲을 메웠다.

그러나 그 소리 중에서도 그나마 카니엘이 반갑게 맞이 할 수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대하신 카니엘 님께서 또 일을 벌였군! 벌써 몇 번째야? ”

마르고 키가 큰, 그리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제멋대로 자라나, 언뜻 보기에 무덤에서 몇 년 묵은 송장같이 생긴 사람이 그렇게 말하며 카니엘의 어깨를 툭쳤다.


“너와 다르게 난 살아남아야 하는 수색대원이거든, 에스트.”

카니엘은 에스트의 빈정대는 말투에 대꾸하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검 날보다 얇은 팔과 갑옷에 짓누릴 것 같은 체형의 에스트 미호크는 다행스럽게도 셔츠에 방한복 차림으로 팔짱을 낀 채 카니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수색대원 뒤를 처리하는 것이 내 일이니까 문제지.”

에스트의 복장답게 그는 사령부에서 일하는 이른바 행정병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에스트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카니엘을 바라보았고, 카니엘은 자신의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린 사령부에 침입해 정보를 빼내려던 인형을 잡기 위해 작전에 투입되었어. 그러나 이 작전에서 야트만 이십인장이 전사했고, 3명이 부상당했지만, 작전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 인형이 죽었으니까. 그렇다면 야트만은 무엇을 위해 죽은 거지?”


“.....”

에스트의 말에 카니엘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한 편으로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본적이 없는 에스트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삭히기로 했다.


“알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전투 상황에서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 그렇지만... 그런 일이 십 단위 이상 반복된다면, 어떤 이들은 다르게 생각한다고.”


“다르게?”


“이렇게 멋대로 행동해도 괜찮은 이유가.... 아냐. 아니다. 잊어버려”


에스트는 차마 말을 끝내지 못하고, 안쓰러운 표정과 함께 카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년간 월 연방국(月聯邦國)의 수도인 월영시(月影市)는 무혼 인형으로부터 총 35번의 소규모 침입을 받았었고, 한 해의 마지막을 앞둔 시점에서 그들의 간헐적인 침략은 점점 더 늘어나 월영군 모두에게 부담인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 카니엘의 경우 인형과의 전투 횟수에서 다른 이들보다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 당사자 본인이 가장 심란하고 지쳐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부상 여부를 확인 해야 하는데···. 오늘 중 급사 할 수 있을 정도의 부상은 없지?”


에스트는 순식간에 주제를 바꿨고, 카니엘은 그때서야 전투 중에 자신이 마법에 당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전투 당시에는 느낌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통 수준의 통증이 지속되긴 했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하던 찰나였다.


“그래도 모든 일에는 증거를 남겨야 하니까..”


카니엘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에스트는 그렇게 말하며 누군가를 손짓으로 불렀고, 잠시 후 몇몇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인파들 가운데 한 사람이 튀어나오며 재빠르게 카니엘과 에스트가 있는 쪽으로 왔다.


갈색 단발머리에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생기 있는, 그리고 무엇이 즐거운지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미소를 지으며 한 여인이 달려왔다.


“카.니.엘.시.닉.스. 오랜만이네요.”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면서 웃어버리는 그 여자를 바라보면서 카니엘도 덩달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또 신세를 집니다. 미엔 엘리느.”


“정말이지. 제가 월영군 의약사로 들어온 이후로 몇 번이나 만나는지 모르겠네요. 아마...20번은 족히 넘었을 듯 싶은데.”


“아직 안됐습니다. 맹세코.”

카니엘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생글 생글 웃고 있는 미엔 엘리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채울 거라고 부정은 못할 걸요?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부상이죠?”


“전투 중 복부에 마법을 맞았습니다만...”


“어디 봐 봐요.”


미엔 엘리느는 웃음기를 살짝 거두고서 입술을 살짝 깨문 채로 기다렸고, 카니엘은 살짝 머쓱해 하면서 미늘 갑옷을 벗고 가죽조끼와 윗옷을 살짝 거둬 상처를 보여주었다.


“타박상에 의한 가벼운 자반 정도네요. 뭐 특별히 따로 치료해야 할 곳은 없기는 한데....혹시 이 부위가 지속적으로 아프면 그때 다시 말해줘요.”


“잘 알겠습니다.”


카니엘은 다시 옷차림을 정비하면서 그렇게 대답했으나, 미엔은 뭔가 못마땅한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번에도 말한 것 같은데, 서로 경어를 쓰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요? 나이도 동갑에다가 같은 소속도 아닌데..”


“아니 그래도...”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주제에 카니엘이 당황했고, 그 사이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에스트가 늘어지게 하품을 켰다.


“자! 그럼 의약사 소견상 인형 처분자의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로 판명됐고... 저도 슬슬 업무를 시작해볼까 하는데.. 그전에 어찌 두 분께서 따로 보내실 시간을 마련해 드릴까요?”


“농담도! 저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구요.”


“그럼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은 뒤로 미루는 걸로 하시죠. 카니엘도 우리들의 위대하신 여왕님께 보고를 해야 하고, 그 보고서를 관리하는 게 저의 임무인지라.”


에스트의 말에 카니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월영군의 총군단장이자 동시에 월영시 수색대의 지휘관인 벨로나 세라트너에게 자신의 일을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이었다.


“벨로나 단장한테 직접보고를 해야 돼요?”


미엔이 이해가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했고, 머리속이 복잡한 카니엘을 대신해서 에스트가 답했다.


“수색대가 월영군 단장의 직속 휘하 부대로 편성되어 있어 수색대장 다음의 직속 상관이 벨로나 세라트너님이지요. 뭐 그렇다고 해도 보통의 경우 서류상으로 결제를 받는 수준이라서 면담을 할 경우는 극히 드문데 이 놈의 행적이 화려해서 수색대장의 보고를 건너뛰고, 단장님이 직접 대면 보고를 받고 있죠. 그게... 몇 번째 인형을 처분했을 때부터 였더라?”

에스트가 물었고 카니엘은 반사적으로 대답을 했다.


“8번째.”


“그래, 맞다.”

에스트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카니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하고서는 어디론가 갈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미엔을 바라보았다.


“월영시로 갈 껀데... 같이 갈 겁니까?”


“아뇨. 현장 마무리를 해야 되서....”


“아 그럼. 여기서 작별인사를 드리도록 하지요.”

에스트가 간단한 손 인사로 미엔을 보내고는 카니엘을 이끌고 현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진료 감사합니다.”

보고서 내용을 생각하던 카니엘은 뒤늦게서야 멀어지는 미엔을 향해 인사를 했고, 미엔은 손을 흔들면서 그의 말에 답해주었다.


“가자, 불쌍한 친구야. 한낱 꿈 같은 순간을 뒤로 하고 이제 현실로 돌아와야지. 아참, 월영시로 가기 전에 에르뮈의 얼굴이라도 보고 갈래? 그 얘가 이번이 첫 실전이었나? 상태가 말이 아닌 것 같던데?”


“...... 나중에 따로 보지 뭐.”


“매정한 사람 같으니. 첫 작전에 직속 상관이 사망하고, 사수란 사람은 그 상관 사체 앞에 내버려둔채 적의 목을 따러 떠났으니 심란함이 정도가 아닐 것 같은데. 네 첫 작전 때 도움을 준 상관의 얼굴을 생각해서라도 한 마디 해 줄 수 있는 것 아냐?”


“나도 첫 작전에서 두명의 직속 상관을 먼저 보내는 바람에 전달해줄 말은 딱히 없어. 아! 그때 대리 지휘관이었던 벨로나 단장이 수색대에서는 살아 남는 것만으로 승진이 보장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위로가 되려나.”


“그런 말을 들어서 네가 이 모양이라고 하면 상관 모독 죄 일까?”


“.......”


에스트의 시덥지 않은 농담에 침묵한 카니엘은 이야기가 나온김에 자신의 첫 작전에 대해 잠시 떠올렸다.


목숨이 오가는 전투 속에서 잊을 수 없는 벨로나 단장의 모습과 그 때 나눴던 대화들... 그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눴던 사적인 대화 내용까지 기억 나려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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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장 - 악몽(2) 20.05.11 1,038 20 8쪽
2 1장 - 악몽(1) +6 20.05.11 2,405 31 8쪽
1 //프롤로그// - 과거의 상흔 +2 20.05.11 2,463 6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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