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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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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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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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떠나기 위한 준비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집돌이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큰마음을 먹고 산책을 가려하던 그의 손길을 거부했었다. 집에 틀어박혀 이를 보이며 으르렁거렸다.


시신을 맞이한 날부터 둘의 관계는 빠르게 변화했다. 여전히 집돌이는 그가 보는 곳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러나 전처럼 그가 집에서 떠난 이후 먹지 않았다. 그가 집 안에 있어도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그런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면 사료에 입을 대곤 했다.


달라진 점은 또 있다. 집돌이가 머무는 공간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더는 개집에만 있지 않고 그가 보고 있어도 마당을 어슬렁거리곤 한다. 밤이 되어 손짓해 부르면 마루로 들어와 자리 잡고 눕기도 한다.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이라는 인식을 하는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산책이다. 그는 개 줄을 잡고 집돌이를 데리고 산책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기쁜 나머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는 집돌이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입마개를 하지 않고 데리고 다니다 신고를 받고 온 경찰과 마주한 것은 산책을 시작한지 40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죄송합니다. 처음 기르는 것이고, 유기견이었는데 입양한지 얼마 안 되어서 제가 모르는 것이 많았습니다.”


“대형견인데 입마개는 하셔야지요.”


“죄송합니다. 돌아가서 바로 구매하겠습니다.”


경찰은 정중하게 사과하는 그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며 보내주었다. 경찰이 떠나고 집으로 돌아가며 그는 꼬리를 내린 채 걷는 집돌이에게 물었다.


“너 아까 긴장하더라?”


집돌이는 목소리가 들렸기에 잠시 멈춰 서서 그를 보았다.


“...큭. 너도 경찰 보면 쪼냐?”


활짝 웃는 그의 모습에 집돌이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앞으로 걸었다. 줄이 팽팽해진 후에야 그도 움직이며 실없이 웃었다.


“겁먹을 만하지.... 없이 살면 저런 사람들이 더 무섭더라. 그래도 난 너 정도는 아니야. 아까 보니 경찰보고 내 뒤에 숨더라? 다른 사람 앞에선 안 그러더니.”


집돌이에게 산책은 보호소에서 가끔 발생하는 이벤트였다. 그래서 그처럼 들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주변인들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신경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맡는 낯선 냄새들 속에 섞인 동족의 냄새를 맡고, 집돌이는 가까이 가고 싶은 충동을 누르는 중이었다. 아직 정립되지 않은 남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행동이 어디까지 용인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생애 처음인 것은 사람 쪽이다. 비록 동종생물은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무언가와 함께 아무런 목적 없이 길을 걸어본 것이 처음인 그는 매우 들뜬 상태였다. 업무상의 경험, 군대와 직장에서의 동행은 있었지만 산책이라 불릴만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여유 있는 삶을 사는 이들이라면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닌다는 선입견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그에겐 이룰 수 있을까 싶은 버킷리스트와 같은 소망의 하나였다.


돌아온 그는 입마개를 사기 위해 통장의 잔고부터 확인했다.


“...위험한데.”


그날 밤 그는 평소보다 먼 거리를 거부 없이 다녔다. 그 덕에 새벽 첫차를 타고 돌아오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충분한 돈을 벌었다며 만족했다.


“...안 잤어?”


대문을 연 순간 그는 늘 얼굴을 찌푸렸다. 집이 비어 있는 사이 쓰레기를 버리는 이들 때문이다. 몇 차례 쓰레기 무단투기자를 쫓아가 경고를 했기 때문인지, 버릴 쓰레기가 없어선지 마당은 깨끗했다. 무엇보다 그를 기쁘게 해준 것은 반겨주는 존재 때문이다. 그를 본 순간, 찰나에 불과하지만 집돌이는 꼬리도 살짝 흔들어 주었다.


집돌이의 사료 위에 캔 하나를 까서 얹어준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좋네. 반겨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피곤했기에 밥도 챙겨먹지 못하고 잠들었지만 그날 그는 어느 때보다 달콤한 잠에 취할 수 있었다. 자다 깨 다락에 시체가 있다고 자각하기 전까지는.


“...젠장.”


*


시간이 갈수록 온전한 사고를 하게 되며 걱정은 더해져갔다. 느긋한 삶을 추구하던 그는 부지런히 돈을 벌기 위해 움직였다. 오래지 않아 그런 행동에 이유가 있음을 그는 깨달았다. 집에서 멀어지기 위해서임을 그는 자각했다. 만약 집에 집돌이가 없다면 그는 떠나는 것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형이 더 늘겠지. 도주혐의로...’


자신을 돌아본 그는 이대로 살 수 없다 생각했다. 최대한 먼 곳까지 운전해야하는 일을 자청하는 것에 문제가 심각하다 여겼다. 무엇보다 곧 봄이 온다. 봄은 여름을 예고한다. 기온이 높아지면 녹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얼음도 녹아버린다. 낮에 녹았다가 밤에 다시 얼어버리는 얼음은 몸의 일부를 물로 변환시켰다가 다시 얼음이 되었다. 빙하에서 꺼낸 고대인과 같은 모습으로 사체가 유지되는 원인이다.


“그땐 냉장고를 사서....? 이 미친 새끼야!”


자신의 머리를 후려친 그는 쓰러졌다. 아픔보다 큰 자신에 대한 자책 때문이다. 냉장고를 사서 시신을 보관한다는 생각은 현실과 충돌하며 이겨내 온 그의 삶과 반대되는 것이다. 그건 도피다. 이미 도피하고 있었음을 자각했는데, 또 도망갈 생각을 하냐며 그는 자신을 꾸짖었다.


“...자수를 해야 해.”


그는 양심적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유도 없이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았기에 그럴수록 떳떳해지려면 법과 질서를 준수해야 한다, 생각했었다. 길을 가다 침을 뱉지 않는다. 껌 종이 하나도 주머니에 넣고 쓰레기통을 찾아 버린다. 도로교통법을 무시하라는 손님의 지시에도 따르지 않는다. 그로 인해 자주 싸우게 되어 피곤하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는다. 사고가 나면 결과는 그의 책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손님을 맞이하면 핸드폰으로 녹음을 하거나 상황이 허락하면 녹화를 한 채 달리는 버릇도 생겼다.


제정신이 들며 그는 자수만이 자신의 양심과의 싸움에 종지부를 내릴 수 있다 여겼다. 벌을 받더라도 마음 편히 지내고 싶은 욕구가 커진 것이다.


“...걱정 마. 넌 아무 잘못이 없어. 네가 물었다고 해도 죽은 후였을 거야. 그래... 넌 놀랐던 거야. 갑자기 집 옆에 뚝 떨어졌으니 얼마나 놀라겠어. 그렇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는 집돌이의 모습에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꼬리가 살짝 들썩이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 걱정은 든다. 내가 없으면 누가 네 밥을 챙겨줄지... 이씨 아저씨는 자기 몸도 건사하지 못하니까... 아? 자동으로 먹이 주는 통이 있다던데?”


좋은 생각이라 여기며 검색을 하던 중 그는 자신이 얼마간의 구속기간을 거쳐 다시 나올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일 년 간 보충되는 기계가 있을까... 없겠지.”


더 오랜 기간 떠나 있게 될 것도 예상되었다. 고민하던 그는 이씨를 만나보기로 했다.


*


전날 일을 나가지 않았던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흰 우유 두 개를 들고 대문 앞에 섰다. 기다리자 골목 아래쪽에서 전동휠체어가 빠르게 올라왔다. 차가 거의 빠져 나간 골목입구에 전동휠체어를 세운 이씨는 대문 앞에 선 그를 보고 반가워 지팡이를 흔들었다. 한쪽 손과 다리 일부가 마비되어 휘청거리며 일어난 그는 벽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결코 다가서 이씨가 멈춰 서게 하지 않았다.


-그냥 둬. 움직이려고 왔는데 도움 받으면 낫겠어?


합당한 말이라 여겨 그 후론 부축하려 들지 않게 되었다.


“이게 얼마만이야? 응? 안 보이기에 이사 갔나 했어.”

“조금 바쁘기도 하고... 그래서 아침에는 잠을 잤습니다.”


시신을 집안에 두고 대문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지금 그는 상대에게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거리를 둔 채 말하고 있었다.


“허허... 그렇겠지. 그래, 바삐 살아야 돈을 벌지. 돈 벌어서 집도 고치고 그래. 대문 칠도 하고.... 요즘도 쓰레기 버리는 못된 것들이 있나?”

“뭐... 줄기는 했어요.”

“쯧쯧.... 내가 성했으면 쭉 돌면서 버리지 말라고 할 텐데. 새로 뽑힌 통장도 내가 모르는 사람이고.... 얼굴 들고 다니기 부끄러운 일을 했기에 나설 힘도 없지...”


자책하며 일그러진 얼굴을 가만히 보다 그가 흰 우유를 내밀었다. 노인이 집에 가서 먹으려고 사둔 우유를 몇 번 그에게 준 적이 있다. 그에겐 그런 작은 온정조차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 이후 그는 집에 우유 한두 개를 두곤 한다. 노인을 만나면 주기 위해서다. 둘은 그렇게 우유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개를 들였어?”

“예? 그걸 어찌 아시고...?”


집돌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하려던 참이었다. 혹시 노인에게는 집돌이가 짖는 것이 아닐까 걱정할 때, 노인이 불편한 손으로 우유를 받으며 턱짓했다. 슬쩍 돌아본 그는 재차 돌아섰다. 어느새 집돌이가 대문에 두 발을 걸치고 서 있었다.


“그놈 참 똘똘하게 생겼네.”

“암놈입니다.”

“....어쩐지. 그렇게 보이더라.”


덧붙이는 말이 없어 남자는 집돌이를 슬쩍 보았다. 사람의 말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을 알지만 괜히 미안해졌다.


“예쁘죠?”

“응? 아, 이쁘구만. 이...이거 오늘따라 어렵군.”

“이리주세요.”


혼자 해보려다 포기하고 건네주는 것도 둘 간의 암묵적인 룰이다. 가끔 운 좋게 손끝에 걸려 우유팩이 열릴 때도 있기에 포기하지 않고 우유팩을 열려 시도하는 것이다. 멀쩡한 손으로 남자가 열어준 우유를 들고 급히 마신 노인은 반쯤 남은 우유를 그에게 건넸다.


“개 줘. 개도 우유 마시지?”

“....그런가요. 전 키워본 적이 이번이 처음이라서...”

“그랬나? 응, 먹어. 먹지. 잘 먹을 거야. 잘 먹지... 전에 기성이... 자네 아버지가 개를 키웠었어. 이름이 뭐랬더라...”

“봉구요.”

“그래! 봉구였지.... 알고 있나?”


사정을 알기에 이씨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저 녀석 데리고 오고, 마당에 있던 개집을 수리했거든요. 개집에 봉구네 집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오아. 그랬군. 그렇게 알게 되었군... 봉구였지. 봉구도 저 녀석처럼 큰 개였어. 큰데 순해서 아무에게나 꼬리 흔들고 쫓아다녔지. 골드리트리버슨가 뭔가였는데, 누리끼리해서 누렁이라 더 자주 불렸어. 사람을 참 잘 따랐지.... 애들은 개가 크니 기겁하고 도망갔지만...크허허허!”

“아... 흐흐.”


혼자 한참을 웃다 민망해하며 이씨는 건네려던 우유를 마셔버렸다. 그런 후 자신이 뭘 했는지 깨닫고 볼을 붉혔다.


“이... 건방증이 심해졌어.”

“집에 또 있습니다. 먹는지도 몰랐는데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 오늘 한번 먹여 볼게요.”

“오아. 그거 다행이야.... 주려다 먹어서 미안타. 내일 사다 줄게.”


집돌이를 보며 말하곤 이씨는 그를 보았다.


“얼굴이 상한 것 같네.”

“예? 아... 일을 많이 나가서 그런가...”


다른 이유가 있지만 말 할 수 없다. 가까이 와 살펴보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관심도 사랑도 받아보지 못했기에 남자는 어색해 몸을 틀었다.


“걱정이 있나.”


노인의 날카로운 지적에 속으로 혀를 차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제가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를 일이 생길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오...아?”


“그러니까... 아직은 미정인데...”


“아! 장기 출장 같은 건가?”


“예? 그, 그런 것이죠. 그래서 저 녀석이 마음에 걸려서요. 데리고 갈 수 없는 곳이라.”


함께 교도소에 수감되는 상상도 몇 번은 했었다. 흉악한 범죄자들이 집돌이를 솥에 넣고 자신은 울부짖는 악몽을 꿨다. 그 후론 그런 상상을 하지 않는다.


“먼 나라가면 그렇지.”

“그래서....”

“뭐 어려운 일이라고. 나도 혼자 살고 집에 마당도 있고. 키우던 녀석도 오래전 보내서 적적했는데 나야 반갑지.... 그렇지 않아도 한 마리 얻어와 키울까 생각했는데.”


이씨는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그걸 잊을 만큼 건망증이 심한 것은 아니다. 부탁을 들어주려다 건강한 부인을 없는 사람 취급해버린 것뿐이다.


“그럼....”


남자의 표정을 보고 이씨는 웃었다.


“왜? 나한테 뺐길까봐?”

“아니요. 그건 아니라...”

“걱정 말게. 기성이 아들이 하는 부탁이 아니라 해도, 이웃의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나도 몸이 성치 않아 계속 돌보기는 어렵지.”


이 순간 이씨는 부인이 개를 좋아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돌봐줄 사람은 충분하다 여기자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사료랑 필요한 것은 다 사두고 갈 생각입니다.”

“으음....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겠지.”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좋은 마음으로 돌보려하지만 삶이 힘들어지면 부담을 느끼게 된다. 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이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런데 언제 갈 건가?”

“아, 아직 예정이 없습니다. 갑자기 생길지도 몰라서요. 그래서 말인데 이거...”


그가 내민 것은 대문열쇠의 복사본이다.


“열쇠군.”

“대문 열쇠에요. 혹시 제가 갑자기 떠나게 되면... 아, 어르신 전화번호 주시겠습니까. 급히 가도 전화는 걸 수 있을 겁니다.”


영화에서 보석요청을 한다며 전화하는 장면을 종종 보았다. 긴급체포를 당해도 전화한통은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그는 이씨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공일공....”

“외우려고?”


외우지 않게 된지 오래된 세상이다. 그래서 서로의 번호를, 심지어 자신의 번호도 모른 체 사는 이들이 많음을 이씨는 알고 있다. 남자는 체포될 경우 핸드폰도 압수될 것이라 예상했기에 외워두려는 것이었다.


“제...제가 조금 옛날 방식이라서요.”


그의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핸드폰은 그가 제대 후 숙식제공해주는 일을 하며 처음 소유하게 된 물건이다. 후임병들에게 어떻게 쓰는지는 배워 알고 있었다. 가지고 싶어 산 것은 아니다. 현장이 넓어 찾기 힘들 때가 많은 곳이라, 팀원들이 꼭 사라고 부추겼기 때문에 산 것이다. 그전까지 필요한 전화번호는 외우며 다녔다. 모두가 길을 걸으며 통화할 때, 그는 공중전화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곤 했다. 발신자 표시가 되는 세상이라 취업을 위해 전화했을 때에도 이상한 번호라며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거듭 전화를 해 취업문의를 하자 그런 오해를 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앞서 수신거부를 당한 곳과는 통화할 수 없었다.


“나도 잊고 사는 것을... 번호 외우면 건망증에 좋다고 하던데... 나도 지금부터 외워야겠군.”


이씨와 그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대화를 하고 헤어졌다. 대문 안으로 그가 들어간 후에야 이씨는 벽을 잡고 걸었다.


“...잘 컸어. 아우보다 났구만.”


타닥. 타닥.


지팡이와 성한 다리, 그리고 그가 만든 벽에 의지해 걷는 이씨는 추억으로 깊이 잠겨 들었다.


“마누라를 둘이나 쫓아버리고 저런 착한 아들 얻은 것이 그마나 자네의 복이련가... 그래도 자네가 나보다 났구만. 난 멀리 산다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놈들만 줄줄이 낳았지. 아니지, 만들었지. 기성이 자네가 자주 그랬지. 애는 여자가 낳는다고. 크흐흐....”


이씨는 부인을 떠올리며 벽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평생 고생시킨 마누라 호강시켜준다고 고집부리다 집도 못 팔고 애들에게 원망만 듣고.... 어서 나아서 이 죄스런 마음 어떻게든 갚고 살아야 하는데 말이네... 자꾸 힘들어서 놓고 싶어져. 마누라가 없으면 진작 자네 따라 갔을 거야.... 이젠 그러지도 못하겠어... 자네 아들, 정남이가 더 버틸 이유를 주는구만. 잘생긴 암놈 한 마리 보살펴 달라는데 어쩌겠나... 없는 동안 잘 돌봐야지....”


몇 걸음 걷다 멈춰선 이씨는 또 중얼거렸다.


“살겠네.... 살 테니 그만 나오게. 나와서 내 아들 보살펴 달라 부탁 좀 그만하게. 자네 얼굴 보면 자꾸 따라가고 싶어지니... 크으...”


담장 뒤 계단을 내려가지 않고 그는 이씨의 넋두리를 듣고 있었다. 괜한 부담을 준 것이 아닌가 싶어 자신의 말을 철회하려다 기회를 놓치고 엿듣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만 나오게...


‘꿈을 꾸시는구나... 아버지의 꿈을...


그는 영정사진 속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살며 처음 대면했다. 집으로 들어온 후 찾은 액자에 있는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도 아버지를 보았지만 어디건 낯설었다. 여전히 모르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자신은 꿈에서도 만나지 못한 이를 이씨는 여전히 만나는구나 싶어 그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원망일까, 아니면 그리움일까. 멀어지는 노인의 목소리에 그는 붉어진 눈시울을 닦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저 정남이 아닌데요.’


하지 못한 말도 입안에 담고서.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작가의말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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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죄는 무엇인가. +1 20.05.11 189 21 24쪽
1 그 집에는 아무도 안 산다. +2 20.05.11 495 101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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