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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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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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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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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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지역대가 8

DUMMY

그 다음 날 벌어진 상황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간단한 설명으로 12지역대원 20명 모두의 상황과 행방을 설명하지 못한다.


동이 트기 전에 서대위가 생각한 목표에서 1.5km 이상 떨어진 야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동이 트고 날이 밝자 지역대원 모두는 예상치 못한 공포와 마주했다. 이것은 잦은 야전훈련에서 종종 겪는 것이지만, 특히 고도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지형과 거기 내려와서 보는 지형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현실이었다.


12지역대의 재미난 이야기 중에 하나는, 지리산의 모양들이 비슷한 능선들이 늘어선 지역에서, 한 중대가 1.5킬로미터 안쪽에서 신호탄 20발을 쏘고도 서로가 찾지 못했다는 일화다. 사실 신호탄 10발 정도 쐈을 때 결국 지역대 본진과 중대는 서로 위치를 새벽 4시 정도에 확인했으나, 그 이후로 벌어진 상황은 아무도 설명 못한다. 다만 군 생활 20년 정도 한 사람은 이해한다.


수학능력 시험으로 보면 세상이 일정한 공통된 답을 가진 것으로 보이나, 그건 그런 문제 출제자의 내용에 부응할 때만 그러며, 실제는 훨씬 복잡하고, 산은... 나라는 인간 하나 따위보다 오래 생존한 생물이며, 생물이 투정을 부리면 사람이 보기에 오묘하고 기적 같은 기분이 드나, 이는 인간이 자연을 모두 분석할 수 없는 입장에서의 기적일 뿐이다. 세상에는 모든 일이 일어나고 사라질 수 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걸 놀랍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세계와 우주는 인간이 아는 지식으로 구술할 뿐이다. 우린 죽음도 순응하여야 한다.


신호탄을 보고 그 능선을 향해 내려갔는데, 다시 신호탄을 쏘니 아예 안 보인다. 다시 가까운 능선으로 올라가 무전기로 위치를 물어 본부에서 신호탄을 쐈더니 능선 두 개 건너에서 오른다. 더 멀어졌다. 그런 곳에서는 좌표나 위치란 것이 무의미하다. 산의 수백 만 그루 나무에 넘버를 먹이기 전에는. 이는 하산길에서 아주 작은, 아주 작은 오솔길 삼거리에서 별로 차이가 없어 보여 하나를 택했다가 일어난 사건이다. 그 중대원들은 무거운 군장에 오르락내리락 미치기 직전이었다.




어둠 속에 20명이 자리를 잡았을 때는 비교적 괜찮은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당연히 보여야할 많은 것을 그 시점 어둠이 가려주고 있었다. 날이 밝으니 수목도 거의 없고 산도 너무 낮았으며, 근처에 북한군 임시 주둔지가 우글대고 있었다. 이틀 전에 정찰대가 관측할 때는 없던 부대였다. 하루 자고 남하하는 부대가 분명하다. 지역대원들은 땅에 바짝 엎드려 약간의 소리도 내기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오줌도 몸을 옆으로 돌려 쌌으며, 오줌 냄새도 막으려고 싸고 나서 흙을 손으로 그러모아 덮었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다. 산에서 내려올 때의 기세는 이미 변화했고, 교량이 목표가 되자 다시 전통적인 ‘은밀’로 돌아서 버린 것이다. 그래도 지역대장은 무전기를 개통해 목표 교량의 대공포화가 아군 진격에 큰 지장을 줄 거란 항변까지 넣어가며 강력한 폭격을 요청했다. 말이 통했는지 전폭기 편대가 오전 10시 도착해 교량을 폭격했다. 포연이 가시고 보니 교량의 피해는 미미했다. 다만, 간부들은 적 대공포와 화점의 위치를 적어도 2/3 볼 수 있었다. 미슬이 올라갈 때는 간담이 서늘했다. 지역대가 이유를 부풀려 불렀는데 격추라도 되면 이게 무슨 난감함인가. 주변의 북한군 부대들은 새벽 3시부터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지역대원 누구도 알 수 없는 가운데, 오후 4시 슬슬 박모를 기다리며 안심을 하던 순간, 야산 남쪽 방향에서 적이 올라오며 발포했다. 누군가 지역대를 목격한 거다. 교전이 시작되고, 이어 다른 방향에서도 적이 올라오고 시작했다. 교전은 마구 뒤섞였다. 본진은 전날 밤 행군 서열 비슷하게 능선을 따라 늘어져 있었고, 앞과 뒤의 서로 상황을 몰랐다. 박소령이 다시 방어를 구성할 여유도 상황도 될 수 없었다. 이때부터 먼저 본 놈이 나타난 놈을 죽이고, 죽은 놈은 병신이 되는 얼굴 보고 원터치 쪼개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매시 매분 매초 달라진다. 빈 총으로 상대 머리를 가격하면서, 제발 두개골이 깨져 한 번에 뒤져라 젖 먹던 힘까지 써 휘둘러야 하는 상황이 왔다.


4시 반, 이대위와 후위조들이 갑자기 본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총알들이 그들을 뒤따라 왔고, 이대위도 이미 두 방 맞은 상태였다. RPG가 날고 기관총이 바닥을 싸래질하고 수류탄이 외야수 공처럼 날아들었다.

그러자 누군가 급하게 끈으로 폭약 한 3파운드를 묶고 거기에 비전기식 뇌관에 도화선을 짧게 잘라 점화한 다음 후위대가 온 방향으로 투척했고, 그러자 아마도 폭파주특기로 생각되는 다른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몇 개를 더 날렸다.

박소령은 생전 처음 보는 급조폭약수류탄이 하얀 연기를 길게 늘이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폭약이고 무엇이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참 놀라운 것이기는 하나 교범에 다 있는 것이다. 교범에는 사제 급조 크레모어형 폭발물까지 나온다. 그래서 옛날부터 FM FM 했던 것이다. FM은 당연히 야전교범의 약자다. 거기 나오는 모든 것을 할 줄 알면 전장 플라톤의 초인이 된다.


기본적인 전투는 12지역대원들이 조준사격, 북한군은 돌격 지향사격이었다. 계속 쓰러트렸지만 수세에 밀렸다. 그러나 정확한 조준사격으로 모두를 죽이고 전투에서 승리한다는 건 의미가 없는 말이다.

서로 불가피한 상황까지 운이 내 쪽으로 흘러야 이긴다. 그래서 공격이든 방어든 촘촘한 본진의 대형이 결과적으로 중요하다. 람보가 다섯 명 있는 것보다. 개인 간격 정확히 지키고 자기 섹터에 오는 놈을 정확히 보낼 수 있는 착실한 보병 다섯 명이 이긴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죽을 거라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므로 죽을 때 죽더라도 옆에 있는 전우를 위해 한 새끼라도 더 골로 보내고 나도 가겠다는 마음. 더 더 더... 이런, 아직 내가 안 뒈졌나? 그럼 더 와봐. 이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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