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740,141
추천수 :
16,589
글자수 :
437,739

작성
20.12.22 20:30
조회
13,101
추천
291
글자
20쪽

Act 28. 연출 - (4)

DUMMY

“자, 시청률 30%를 위하여!”

“위하여!”


촬영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김현호의 동작에 맞추어 반격과 대사를 받아치는 것만으로 감독은 싱글벙글하며 촬영의 끝을 알렸다.

물론 본래 기획했던 결말과는 다른 결말로 이어졌기에 추가 촬영은 불가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은 예상 종료 시간보다도 훨씬 빠르게 종료되었다,

조기 퇴근과 기대 이상의 결과는 하나의 시너지를 이루며 기분 좋은 회식으로 이어졌다.

비록 소고기가 아닌 삼겹살 회식인데도 스태프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완연했다.


“자자, 지혁 씨도 한잔 쭉 들이켜요. 오늘 회식은 지혁 씨가 주인공이니까.”

“그래요, 오늘은 제가 살 테니까.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셔봐요.”

“진짜? 박 작가가 사려고? 나 그럼 양주 시켜도 돼?”

“삼겹살에 무슨 양주예요!”


시트콤의 한 장면과도 같은 모습에 주변에도 미소가 퍼져나갔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알싸한 소주의 끝에서 단맛이 피어난다.


“오, 지혁 씨 좀 마시나 본데?”

“아무렴, 군인 출신인데요?”

“하긴 귀신도 때려잡는 특전사잖아!”

“그건 해병대겠죠!”


기분 좋은 분위기 때문인지, 좋은 사람들 때문인지 어쩐지 소주가 평소보다 달게 느껴진다.


“여기 분들 따라서 마시면 금방 취하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드세요.”


마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연하윤이 물잔을 건넨다.

엉겁결에 구경 왔다가 자연스레 회식에도 합류하게 된 그녀는 이미 많은 잔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하윤 씨는 술 세시네요.”

“그냥 이 바닥 생활하니까 술이 는 것뿐이에요.”


마주 앉은 연하윤의 찰랑거리는 소주잔처럼 청아한 미소가 번진다.


“그나저나 오늘 진짜 대박이었어요. 아까 마지막에 그건 언제 연출하신 거예요?”

“그러게 말이야. 언제 그런 비밀 무기를 준비했던 거야? 애드리브인 줄 알고 기겁할 뻔했잖아.”


연하윤을 따라 옆에서 술을 마시던 최성원이 고개를 가까이 가져온다.

여주인공과 감독의 시선이 모이자, 다른 이들의 시선까지 덩달아 이쪽으로 쏠렸다.

애드리브라는 말에 내심 속이 뜨끔하다.


“에이, 무슨 애드리브에요. 합이 중요한 액션 연기에서 애드리브를 어떻게 친다고. 그게 되면 사람이게요? 로봇이지.”

“에이 농담이야, 농담. 이 바닥 짬밥이 있지. 내가 설마 그걸 모르겠어?”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 그들이 연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애드리브인데···.

그걸 말했다간 정말 로봇이 될 분위기다.

김현호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김현호는 회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자신이 기껏 세워둔 계획이 도리어 내게 커다란 이점이 되었던 게 어지간히도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애써 웃으며 이를 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고소함에 술이 절로 넘어가는 것이, 완전 안주가 따로 없다.


“이게 다 지혁 씨 덕분이라니까. 아까 날아다니던 거 못 봤어?”

“제 평생 그런 건 처음 봤어요. 특히 마지막에 그 말이 대박이었다니까요.”

“남조선 특전사도 별거 아니구만 기래. 크으! 액션만 잘하는 게 아니라 대사도 어쩜 그리 기가 막힌 지. 특전사 출신이라시더니 설마 북한에도 다녀오신 거 아니에요?”

“에이 세상에 이렇게 잘생긴 특전사가 어디 있어요?”

“왜 없어? 여기 있잖아!”

“자자, 지방 방송들 접으시고! 지혁 씨 그러지 말고 여기서도 한잔해요. 오늘 한번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셔 봅시다!”


같이 촬영에 임했던 스턴트 배우들은 물론 다른 스태프들이 곳곳에서 나를 찾는다.

너무 비행기를 태우는데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테이블을 돌면서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다고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한번 돌기 시작하면, 이 많은 사람들하고 다 마셔야 해요. 이 많은 분들이 주는 술 다 마시면 속된 말로 ‘꽐라’ 되는 거 순식간이에요.”


옆자리에 있던 김수아가 내 팔을 잡아당긴다.

희미하게 묻어나는 살벌한 기세에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에이, 김 팀장 너무 철벽이다.”

“철벽은요. 제가 그런 케이스를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라서요. 이럴 때일수록 제 배우님 제가 챙겨드려야죠.”


김수아는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 몫의 고기를 입에 넣는다.

매니저로서 할 말을 하는 꼴이니 달리 할 말도 없다.

최성원은 아쉬운 표정으로 자신의 몫의 소주를 들이켜는 것이 전부였다.

허나 적(?)은 멀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오늘 와서 정말 다행이네요. 눈호강도 이렇게 제대로 하고 이렇게 회식도 하게 됐네요.”

“그러고 보니 하윤 씨는 오늘 어쩐 일이야? 원래 오늘 찍을 씬 없었잖아.”

“당연히 지혁 씨 보러 왔죠. 박 작가님께 지혁 씨를 추천한 게 전데, 당연히 제가 책임지고 와야지 않겠어요?”

“난 또 지혁 씨에게 관심 있는 줄 알았지.”


감독의 너스레에 연하윤의 입가에 예쁜 미소가 피어난다.

덕분에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들에게도 웃음이 번진다.

나 역시 빙긋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목을 축이는 와중에 문득 연하윤의 미소가 눈에 스친다.

길게 휘어진 그녀의 눈꼬리가 나를 향하고, 소주로 적셔진 입술이 조그맣게 달싹인다.


“관심 있어요.”

“네?”


······하마터면 소주를 뿜을 뻔했다.

가까스로 터져 나오는 소주를 삼키자, 김수아의 눈썹이 잔뜩 일그러져있다.

그와 반대로 연하윤의 입꼬리가 더욱 짙은 호선을 그린다.


“감정 연기도 잘해, 액션도 잘해, 거기에 비주얼도 좋아. 세상에 이런 배우가 어디 있겠어요?”

“···정말 그거뿐이에요?”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초승달과도 같은 미소가 나를 향한다.

내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곁에 있던 김수아가 째릿 눈을 흘긴다.


“그러지 말고 저도 같이 한잔해요. 자, 짠!”


거의 마시자마자이긴 하지만 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웃음을 보니 거절할 수도 없다.

결국 나는 연하윤이 주는 잔을 받고 그녀와 잔을 부딪친다.

연달아 진한 소주의 향이 식도를 타고 전신을 적신다.


“크으.”

“하, 좋다. 이게 얼마 만에 술인지 참.”


연하윤의 입에서 기분 좋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소주의 향과 맛을 한껏 음미하던 그녀의 모습에 김수아는 싱긋 웃으며 앞에 있던 소주병을 들었다.


“하윤 씨, 제 잔도 한 잔 받으세요.”

“어머? 저한테 술 주시면 김 팀장님도 술 드셔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연하윤의 입술이 도발적으로 달싹인다.

순간적으로 김수아의 눈썹이 들썩이지만, 그녀는 미소를 유지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윤 씨가 주시는 건데 받아야죠.”

“안 그러셔도 되는데.”

“자, 여기 한잔 받으세요.”


기어코 소주병을 들이민 김수아가 소주를 따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와우.”


지켜보던 최성원이 나직하게 감탄을 토한다.

소주병은 멈췄다.

단 멈춘 지점이 너무 지나쳤을 뿐이다.

속된 말로 표면 장력.

겨우 넘치지 않을 정도로 소주와 잔의 끝이 거의 일치한다.

덕분에 미소로 완연하던 연하윤의 눈빛에도 이채가 스친다.


“어머, 김 팀장님이 절 이렇게 아껴주시는지 몰랐는데.”

“제가 하윤 씨를 너무 좋아해서요.”

“제 잔도 한잔 받으세요.”


이번엔 연하윤의 차례다.

소주병을 넘겨받은 연하윤은 빈 잔에 소주를 따르기 시작하는데···

차이는 없다.

김수아와 연하윤의 잔은 놀라우리만치 같은 높이를 채우고 있다.

잔을 채운 연하윤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진다.


“저도 김 팀장님을 너무 좋아해서요.”

“그럼 건배할까요?”

“자, 짠!”


묘한 분위기 속에 둘의 술 대작이 시작된다.

왠지 모르게 풍겨오는 위험한 분위기에 나는 조용히 그녀들로부터 시선을 옮기고 앞에 있던 물잔을 홀짝였다.

이럴 땐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다.


“지혁 씨, 능력 좋네.”


그러나 내 계책은 끝을 맺지 못했다.

알 듯 모를 듯한 말과 함께 최성원이 내 쪽으로 바짝 다가온 탓이다.

알싸한 소주 향을 가득 띄운 최성원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예? 그게 무슨······.”

“에이, 알면서. 이럴 때 보면 진짜 로봇 같단 말이야.”


야밤의 찬 공기를 덥히는 소주로 인해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으면서도.

초점을 잃지 않은 눈동자가 반짝인다.

이윽고 그의 입이 나를 부른다.


“지혁 씨.”

“네.”

“리태홍, 단역으로 끝나기엔 아쉽지 않아?”

“···네?”


벌써 술에 취한 걸까?

하지만 그의 눈동자도 행동도, 모두 그가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곧이어 그의 입꼬리에 짙은 반월이 그려진다.


“아까 박 작가랑 이야기해 봤는데. 이대로 끝내기는 좀 아쉬운 거 같아서.”


최성원은 들고 있던 잔의 소주를 털어 넣었다.

그의 감춰둔 속내를 털어내듯.

투명한 소주는 그로 하여금 본심을 털어놓게 만들었다.


“리태홍 관련 에피소드를 하나 더 넣을까 하는데, 지혁 씨 생각은 어때?”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내겐 그 어떤 소식보다도 달콤한 본심을.

어쩐지 술이 단 데는 다 이유가 있나 보다.


***


즐거운 회식이 끝난 며칠 뒤.


‘임무라.’


달리는 차 안.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나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빼앗겼다.

저번 촬영 때부터 좀처럼 지울 수 없는 의문 때문이다.


‘이상하게 요새 긴급 임무가 잦단 말이야.’


지금까지 발생한 긴급 임무는 총 3건.

그것도 모두 각 작품마다 하나씩 발생했다.

물론, 3건이라는 수는 그리 많게 보이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수행한 임무의 개수가 5개라는 것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내가 임무를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인데.’


지금까진 운이 좋아서 잘 해결되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운이 좋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러다 촬영 중에 임무에서 실패라도 하는 날엔······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성공에 대한 보상이 큰 만큼 실패의 대가도 크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이번 [액션 연출]이었다.


‘대성공은 처음 봤으니까.’


- 긴급 임무 [액션 연출]을 완수하셨습니다. -

- 보상으로 3000코인이 지급됩니다. -

- 긴급 임무에 대성공하여 해당 작품 내에 정지혁을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가 추가됩니다. -


그동안 성공은 숱하게 있었지만, 대성공은 처음이다.

거기에 비중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에피소드가 추가된다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무슨 생각을 그리해요?”


운전대를 잡고 있던 김수아가 웃으며 고개를 까딱인다.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요.”

“뭐 고민이라도 있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티저 영상만으로도 대박 쳤는데, 아직 고민이 있는 것 같아서요.”


다소 오글거리는 이름과는 달리.

여명의 후예의 반응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김현호와 나의 액션 씬이었다.


“인터넷 보셨어요? 리태홍 나오는 장면이 난리도 아니던데,”


주인공이 한수호가 북한의 도발에 맞서 초소를 점령한 북한군을 홀로 제압하는 장면인데, 이 부분이 티저 영상에서 등장하게 되면서 화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주인공인 한수호가 아닌 악역인 리태홍이었다.

특히 화제가 된 초소 씬에서의 액션 연출을 내가 직접 실행했다는 것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주인공인 한수호를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그를 압도하는 반응은 방송국 게시판을 넘어 SNS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 아니 이게 티저면 본편은 대체 어느 정도라는 이야기야? -

- 솔직히 이 장면만 10번도 더 돌려봄. -

- 주인공은 한수호인데 왜 난 리태홍만 계속 쳐다보는 건가. -

- 아ㅋㅋ 누가 북한군 주인공 시켰냐ㅋ -


아직 티저 영상에 불과했지만, 반응이 이 정도이다.

지금도 이러할 진 데, 나만의, 리태홍의 에피소드가 추가된다면.

그만큼 좋은 보상이 또 있을까?


“제겐 너무 과분한 반응이죠.”

“과분하다뇨. 다 지혁 씨가 열심히 한 결과잖아요. 이건 자부심 가져도 돼요! 단역에서 끝날 배역이 추가 에피소드도 편성이 될 정도인데요!”


김수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크게 소리쳤다.

나보다 더 뿌듯해 보이는 모습을 보니, 내 입에도 미소가 번진다.


“항상 고마워요.”

“고맙긴요. 고민 있으면 언제라도 말해주세요. 그것도 매니저의 업무 중 하나니까요.”


김수아는 웃으며 다시 운전에 집중한다.

그를 보며 슬며시 웃던 나는 다시금 고심에 잠긴다.


‘보상은 좋지만, 위험한 건 사실이야.’


세상에 대가 없는 보상은 없다.

보상이 크면 큰 만큼 실패에 대한 리스크도 클 터.

임무에 대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선, 결국 긴급 임무라는 변수를 최대한 배제해야만 하는데.


‘원리를 모르겠단 말이야.’


긴급 임무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모르겠다.

분명 어떤 인과관계에 의한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 이상에 대한 감이 오질 않는다.

그나마 제일 그럴듯한 추리는.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수록, 긴급 임무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거나, 작품을 맡을 때마다 발생하거나.’


둘 중 어느 쪽도 어떠한 물증도 없는 심증뿐이라,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다 왔어요.”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부순다.

덕분에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상념이 부서지며 수면 속에 가라앉았던 이성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런데 여긴 어디예요?”

“네?”

“촬영장은 아닌 것 같아서요.”


오늘은 추가 편성된 에피소드의 촬영이 있는 날이다.

하지만 눈을 씻고 주변을 살펴봐도 주변은 촬영장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김수아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온다.


“아, 제가 아직 말 안 했었나요?”

“네.”


당연한 대답에 정신을 차린 그녀가 안전벨트를 풀며 입을 연다.


“일단 내려 보시면 알아요. 내리시죠.”

“네? 네.”


내린 곳은 주차장 비슷한 곳이었다.

차에 대해 자세한 건 모르지만, 소형차부터 중형 대형차까지, 거기에 이름만 들어본 외제차 역시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웬 차가 이렇게 많이···


“어서 오세요.”

“AND엔터의 김수아 팀장입니다.”

“아, 김수아 팀장님! 마침 준비 다 끝났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마중 나온 직원이 어딘가로 안내한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와중에, 김수아가 말을 건다.


“어디냐고 물어보셨죠?”

“네.”

“차량 인수 받으러 왔어요.”

“차량 인수요?”


질문이 끝나기 채 전에, 직원이 진한 미소와 함께 한쪽 팔을 쭉 내밀었다.


“예약하신 차량입니다.”

“와.”


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데도 불구하고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온다.

반짝반짝 광택이 흐르는 고급스러운 외관에 크기도 지금 타고 있는 경차와는 사이즈가 다르다.


“여기 안쪽을 보시면······.”


감탄을 금치 못하는 내 반응에 직원이 직접 차 문을 열며 추가 설명까지 이어가지만,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머리에 들어오는 것은 시각적인 풍경이다.

부티가 좔좔 흐르는 외견에 뒤지지 않을 깔끔한 베이지색의 내부가 동공에 가득 찼다.

의자도 큼지막하고 공간도 넓은 것이, 아무리 봐도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다.


“이, 이게 다 뭡니까?”


답지 않게 목소리마저 떨렸다.

떨리는 목소리에 김수아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다 지혁 씨가 열심히 한 덕분이죠. 이번에 대표님 지시로 지혁 씨가 연기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차량을 바꿔주셨어요. 앞으로 지혁 씨는 이 차량으로 이동하시게 될 겁니다.”

“···둘이서 타기엔 너무 크지 않습니까?”

“지금은 둘이지만, 지혁 씨 전속 스타일리스트도 배정될 거예요. 그러니 크기는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의 차도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눈앞의 차와 비교하면···

아니,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다.


“아!”


돌연 김수아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다시금 고개가 그녀를 향한다.


“깜빡하고 말씀 안 드렸네요. 대표님이 꼭 전해달라고 말씀하신 것이 있어요.”

“대표님께서요?”


김수아의 눈꼬리가 길게 휘어진다.

그녀는 마치 강석호를 흉내 내듯 그의 말투로 말을 덧붙였다.


“항상 성실하게 노력하고, 그에 맞는 결과를 보여주는 지혁 씨를 위한 선물입니다. 편하게 이용하시고, 지혁 씨는 연기에만 집중해주세요. 나머진 저희 AND가 전부 하겠습니다.”


순간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연기에만 집중하라, 나머진 다 AND가 하겠다.

그 말 한마디가 더 없이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다 더 뛰어난 연기로 보답할게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END가 아닌 AND.

그 말이 그 어떠한 때보다도 와 닿는 날이었다.


“아, 그리고 가다가 들릴 곳이 하나 더 있는데.”

“들릴 곳이요?”

“가보면 알아요.”


김수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진다.

그와 동시에 희미한 오한이 등골을 스친다.

왠지 모르게 굉장히 불안한 감각이지만, 나는 차마 재차 질문을 건넬 수 없었다.


“······”


그녀의 입가엔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거기 카메라 세팅 끝났어?”

“걸리적거리는 것들 전부 치우고 빨리빨리 준비합시다!”


촬영장은 늘 그렇듯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스태프들은 이전 회식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한시바삐 촬영 준비에 매진했다.


“막내야!”

“네 선배님!”

“도착한 배우 있냐?”


하늘 같은 선배의 목소리에 막내는 황급히 주차장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지만.


“아직 입니다.”


배우들은 아직 전부 도착하지 않았다.

하긴 예정된 촬영 시간까진 3시간도 넘게 남았다.

오늘 촬영 중에 액션 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오는 배우가 있을 리가.

그 순간.


“와.”


굉장히 고급스러운 외견의 벤 한 대가 이쪽으로 들어온다.

그동안 이곳저곳 촬영장을 돌아다니면서 벤은 여러 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광택이 좔좔 흐르는 벤의 모습에 그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빼앗겼다.

시선을 빼앗긴 것은 그 하나뿐이 아니었다.


“야, 저거 누구 차야?”

“저렇게 고급 차를 타는 배우가 있었던가?”

“하윤 씨 아니야?”


연하윤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녀가 쌓아 올린 커리어를 생각하면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하윤 씨 오늘 조금 늦는다고 하지 않았어?”

“촬영 일정이 겹쳐진 게 있어서 오늘 좀 늦는다고 했잖아. 그래서 하윤 씨가 안 나오는 씬을 먼저 땡겨서 찍는 거고.”

“그럼 저건 누구 차야?”


갑작스러운 의문이 발 없는 말처럼 스태프 사이를 누비고 지나간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대부분 스태프들의 시선이 벤으로 집중되었다.


철컥!


사이드브레이크 소리.

이윽고 고급스러운 외견의 벤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와!”


곳곳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온다.

벤에서 내린 것은 정지혁이었다.

화제의 인물 리태홍 역을 맡은 그였지만, 지난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햇빛을 받아 윤기 나는 머리칼, 그리고 오늘 촬영에 등장하는 말끔한 검은색 슈트와 구두,

댄디한 도시 남자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문득 그의 시선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의 손으로 향한다.

오른손에 들려있는 대본, 그리고 멀리서나마 그 사이로 언뜻 보이는 형광펜 자국

덕분에 지켜보던 여자 스태프들은 물론 남자 스태프들이 헛바람을 들이킨다.


“뭐야, 누구 왔어?”


한창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던 선배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막내는 화들짝 놀라며 하늘 같은 선배를 향해 큰소리로 외친다.


“저, 정지혁 배우님 도착하셨습니다!”


작가의말

와 2회차 같은 1회차!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Act 28. 연출 - (4) +12 20.12.22 13,102 291 20쪽
27 Act 27. 연출 - (3) +12 20.12.21 12,818 295 19쪽
26 Act 26. 연출 - (2) +12 20.12.20 13,049 302 17쪽
25 Act 25. 연출 - (1) +14 20.12.19 13,422 297 19쪽
24 Act 24. 그 이름 - (4) [수정] +24 20.12.18 13,487 284 18쪽
23 Act 23. 그 이름 - (3) [수정] +16 20.12.17 13,453 268 19쪽
22 Act 22. 그 이름 - (2) [수정] +21 20.12.16 13,706 268 12쪽
21 Act 21. 그 이름 - (1) [수정] +21 20.12.15 14,293 258 19쪽
20 Act 20. 룰렛 +15 20.12.14 14,490 286 17쪽
19 Act 19. 프로필 - (2) +17 20.12.13 14,181 303 13쪽
18 Act 18. 프로필 - (1) +15 20.12.12 14,609 305 19쪽
17 Act 17. AND +14 20.12.11 14,590 309 15쪽
16 Act 16. 제의 - (3) +18 20.12.10 14,862 294 15쪽
15 Act 15. 제의 - (2) +13 20.12.09 15,432 298 18쪽
14 Act 14. 제의 - (1) +18 20.12.08 15,654 299 14쪽
13 Act 13. 불청객 - (3) +16 20.12.07 15,710 291 15쪽
12 Act 12. 불청객 - (2) +20 20.12.06 15,728 302 12쪽
11 Act 11. 불청객 - (1) +18 20.12.05 15,993 299 12쪽
10 Act 10. 첫 촬영 - (2) +20 20.12.04 16,636 323 17쪽
9 Act 9. 첫 촬영 - (1) +20 20.12.03 17,140 318 17쪽
8 Act 8. 오디션 - (3) +12 20.12.02 17,117 320 11쪽
7 Act 7. 오디션 - (2) +19 20.12.01 17,351 332 14쪽
6 Act 6. 오디션 - (1) +13 20.11.30 17,841 330 11쪽
5 Act 5. 뉴스 - (2) +12 20.11.29 18,224 328 12쪽
4 Act 4. 뉴스 - (1) +21 20.11.28 19,282 345 15쪽
3 Act 3. 튜토리얼 - (3) +21 20.11.27 19,553 379 15쪽
2 Act 2. 튜토리얼 - (2) +26 20.11.27 21,580 351 16쪽
1 Act 1. 튜토리얼 - (1) +25 20.11.27 26,037 38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