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740,091
추천수 :
16,589
글자수 :
437,739

작성
20.12.17 19:13
조회
13,450
추천
268
글자
19쪽

Act 23. 그 이름 - (3) [수정]

DUMMY

“아아······.”


눈물로 범벅이 된 어머니의 손이 내게로 향한다.

목구멍에서 막혀 버린 소리가 입안을 겨우 맴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당신의 감정을 대변한다.


나는 천천히 어머니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뻗어 나가는 손이 흘러내리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내고.

이윽고 파르르 떨리던 입술은 마침내 나의 이름을 불렀다.


“차, 찬호야!”


슬픔과 기쁨.

반가움과 애틋함.

수많은 감정이 녹아있는 목소리가 병실 가득히 울려 퍼진 순간.


“컷!”


이질적인 목소리가 파도가 되어 병실을 뒤덮었다.

파도는 뻗어 나간 손과 발, 그리고 정신까지 모조리 먹어 치웠다.

덕분에 몰입했던 세계가 부서지고, 잠겨있던 이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지혁.

나는 나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와아!”

“미친!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야, 막내야. 내 볼 좀 꼬집어봐라. 이게 꿈이냐 생시냐. 저거 정말 연기 맞아?”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처음 액션 씬을 촬영했던 그 순간처럼.

그녀와 나의 연기를 지켜본 모든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탄과 환호성을 터뜨렸다.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쏟아지는 환호성을 뒤로하고 나는 가장 먼저,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동시에 눈물로 오열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크기를 더한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한참 만에 다시 잠잠해졌다.


“······연습 정말 많이 했구나. 잠은 좀 잤니?”

“잠깐씩 눈 좀 붙였습니다.”


이번 연기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

하루 종일 대본을 들여다보며 김찬호에 대해 분석하고, 한지호로부터 배운 호흡법과 발성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노력했다.

덕분에 거의 잠들지 못했지만, 아직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한세강의 반응을 보니 더없이 뿌듯하다.


“지, 지혁 씨!”


한세강과 잠시 소담을 나누는 사이.

중앙에서 진두지휘하던 채진원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갑작스럽게 뛰어오는 그를 보니 뭔가 있는 모양인데.

솔직히 찔리는 게 있는 터라 나 역시 그에게로 향했다.


“네, 감독님.”

“아까 그거 뭐예요?”

“아까 그거라면······.”

“마지막 대사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그거요!”


덩달아 옆에 있던 한세강의 얼굴에도 점점 당혹감이 어린다.

너무 몰입했던 터라 이제 눈치챈 모양이다.


“그거 원래 있던 대사 아니잖아요!”


채진원이 말한 대로 대본에 적혀있던 본래의 대사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뱉은 대사는 철저한 애드리브.

즉흥적으로 생각해서 내뱉은 대사였다.


“제가 맡은 김찬호라면 이렇게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김찬호가요?”


채진원의 얼굴에 의구심이 차올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으로 눈을 흘겼다.


“사고로 죽었으나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매일 곁을 지켜온 아들이, 수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와 목소리가 닿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일시적인 것인지 지속적인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아들 된 도리로, 진심으로 어머니를 위한다면, 어머니의 안녕을 소원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삶은 평탄치 않다.

슬픔과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며, 그 고통을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한다.


아들이라면.

귀신이 되어 어머니의 곁을 지키며 수년 간 그 모습을 지켜본 아들이라면.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 이제 그만 당신께서 행복해지시길 소원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임의로 대사를 덧붙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채진원은 말이 없었다.

한세강도 마찬가지.

둘은 조그맣게 입을 벌린 채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지혁 씨. 그거 알아요?”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채진원이 다시금 목소리를 내었다.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원래 드라마는 거의 애드리브가 통용되지 않아요. 대사는 물론 동작 하나, 심지어는 발바닥 방향까지도 정해진 대로 연기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습니까?”

“영화가 전체적인 비주얼과 역동성을 보인다고 하면, 드라마는 주로 피사체를 통한 인물의 대사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니, 배우의 애드리브 하나에 이후 전개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애드리브, 특히 대사 애드리브 같은 경우는 거의 용납되지 않습니다.”


채진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군인 출신인 나로서는 전혀 몰랐던 내용이다.

내 애드리브로 촬영에 무리를 범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내 착각에 불과했다.


“그게 보통인데, 분명 그게 일반적인데. 이제부터는 그 개념이 바뀔 거 같네요.”

“···예?”

“방금 같은 애드리브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제가 지휘했던 드라마 애드리브 중에 가장 최고였어요.”


채진원의 입가에 미소가 만연했다.

지금껏 봤던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가.


***


- 긴급 임무 [스승]을 완수하셨습니다. -

- 보상으로 2500코인이 지급됩니다. -

- 긴급 임무에 성공하여 해당 작품 내에 정지혁의 비중이 더욱 늘어납니다. -


그날부로 긴급 임무는 무사히 완수되었다.

첫 등장에서의 애드리브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한 채진원 덕분에 기존 분량에서 비중도 훨씬 더 커졌고, 모든 것은 순조롭게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그러하듯,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임무가 가리키던 [스승]이라는 단어 그대로, 한세강은 곧바로 스승이 되어주진 않았다.

직접적으로 나를 가르쳐 주겠다며, 나서주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배우는 것은 많았다.


“오늘 대사 많이 좋아졌더구나. 발성은 아직 조금 어설프긴 한데, 대사 톤이나 안에 실린 감정도 많이 좋아졌다. 대사를 읊을 때 호흡에 좀 더 신경 쓰렴, 호흡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갈 테니.”

“······이런 식으로 하면 될까요?”

“옳지. 잘하는구나. 그래 그런 식으로 하면 된단다. 그렇게 대화 사이에 호흡을 잘 조절하면서 소리를 내면 발성도 금방 좋아질 게다.”


내가 맡은 김찬호 역의 특성상 어머니 역할인 한세강과 동시에 촬영하는 씬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한세강은 촬영 전후로 나의 연기를 보고서 직접 고쳐야 할 점을 이런 식으로 짚어주곤 했다.

물론 짚어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 이 대사에선 감정이 과해지게 되던데, 차라리 감정을 터뜨리는 편이 더 좋을까요?”

“물론 터뜨리는 편도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감정을 표출하는 것만이 연기의 전부가 아니야. 네가 그 감정을 억누르고 삭이는 모습까지도 하나의 연기다. 내가 만약 김찬호라면 그 부분에선 감정을 억누르고 홀로 삭이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구나.”

“억누르는 모습을 말입니까?”

“김찬호가 처한 상황과 그가 겪고 있을 감정을 떠올려라. 물론 분하고 힘든 감정이 솟구쳐 오르겠지. 하지만 어머니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를 전부 표출하고 싶을까? 그 상황에 좀 더 몰입해라. 네가 만약 김찬호라면, 네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더 고민하렴.”


한세강은 좀 더 엄격한 느낌의 스승보단 호칭 그대로 좋은 선생님도 같았다.

때로는 엄격하게 혹평을 내리다가도, 고쳐야 점을 분명하게 짚어주고 내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밝혀줬다.

궁금한 점을 질문할 때는 차분하게, 어떻게 하면 더 발전할 수 있을지 디테일하고 알기 쉽게 해답을 제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직 날이 춥다. 그러지 말고 옷 더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물도 차가운 물 말고 따뜻한 물 마시고 그래.”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한세강은 내가 맡은 배역 속의 친어머니처럼 매일 같이 나를 먼저 챙겨주고 처음보다도 훨씬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초면의 그 무거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을 정도다.

실제로 이시환은 나를 보고 이런 말까지 했다.


“지혁아, 너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거냐?”

“무슨 조화 말입니까?”

“아니! 너만 있으면 공기가 달라지잖냐. 불같이 화내시던 중에도 너만 나타나면 바로 누그러지시는데, 그게 그럼 조화지 마술이냐? 하긴 마술 같기도 하네. 아무튼 무슨 수를 부린 거야?”


딱히 조화 같은 것을 부린 적은 없다.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화가 일어난 것일지도.

중요한 것은.

덕분에 촬영장의 분위기는 온화하다는 것이다.


“안 됩니다.”


딱 5분 전까지는.


“선생님. 아무리 선생님 부탁이래도 이건 안 됩니다!”


지금껏 한 번도 화낸 적 없는, 채진원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한세강을 향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다.

한세강은 늘 그랬던 것처럼, 온화하고 담담하게, 조목조목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뭐가 문제니, 채 감독 네가 지시한 대로 연기하는 건데.”

“아니, 선생님 상황에 따라 대역이 할 거라고 대본에도 적어뒀지 않습니까?”

“내 배역을 내가 해야지. 누구한테 맡겨?”


한세강은 완고했다.

다른 때 같으면 채진원이 한발 뒤로 뺏겠지만, 오늘만큼은 아니다.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이번만큼은 정말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지혁아, 네가 가서 선생님께 말씀 좀 드려야 되는 것 아니냐?”

“저도 이미 말씀드려봤습니다만, 똑같습니다.”


옆에 붙어 있던 이시환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요 근래에 자식처럼 따르고 있는 내가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 이시환은 벅벅 머리를 긁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 위험한 수중 촬영 씬을 선생님이 직접 하신다는 게 말이 되냐?”


바로 이번 촬영 씬인 호수 투신 촬영 씬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다시 보이지 않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결국 아들을 따라간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위해 호수에 몸을 던지는 씬인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세강이 대역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물론 젊은 배우들의 경우 더 높은 완성도와 몰입감을 위해 본인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 맞지만, 한세강은 일흔이 넘은 고령자다.

모든 안전장치가 준비된 세트장도 아니고, 실제 호수에서 투신하는 촬영 씬을 한세강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덕분에 나는 물론 이시환과 채진원 및 다른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두 한세강을 뜯어말려 봤지만.


“괜찮대도. 내가 직접 할 테니. 걱정마렴.”


한세강의 생각은 단 1도 바뀌지 않았다.

결국 속절없이 촬영만 지체되니, 이젠 다른 이들도 모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마지막 남은 것은 채진원뿐이다.


“선생님 다시 한 번만 잘 생각해보세요. 정말 위험하다니까요. 물론 원래 계획이야 날씨가 좋을 때, 선생님이 하시는 거였지만, 지금 물살도 너무 세고, 기온도 너무 낮아요. 잘못하면 정말 큰일 납니다!”

“주변에 안전요원들 있고, 의료진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니. 그리고 원래 내가 하기로 했던 씬이다. 이 부분에서 대역을 쓰면, 편집으로 씬을 붙여야 되는데 그러면 시청자 몰입감도 훨씬 떨어지고, 감정선이 무너져 버릴 것이야. 내가 직접 하는 게 제일 낫다.”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그만!”


한세강의 입에서 결국 노성이 터져 나왔다.

덕분에 채진원은 물론 옆에 있던 다른 모두가 움찔거렸다.

한세강은 눈을 치켜뜬 채로 날카롭게 일갈했다.


“배우가 대역 없이 본인이 직접 하겠다는데, 그걸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계속 초나 칠 거니? 여기 있는 배우들 봐라. 얘네들이 대체 뭘 보고 배우겠니?”

“······”


채진원의 고개가 바닥으로 향했다.

기세가 오른 한세강은 더욱 큰 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대역? 처음이 어렵지. 이거 어렵다, 저거 위험하다. 그렇게 계속 대역만 쓸 거면 뭣 하러 배우를 캐스팅하니, 그냥 대역에게 다 맡기면 될걸!”


그녀의 목소리가.


“배우란 모름지기 자신이 맡은 역할에 책임을 지고, 자신이 맡은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되어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배우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만한 각오도 없이 배우가 되려고 하는 것이라면 관두거라. 배우라는 직업의 무게는 그리 녹록치 않을 테니.”


모두의 가슴을 날카롭게 찔렀다.

특히 마지막 말은 날 겨냥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다.

한지호로부터 연기를 배운 이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진심.

그리고 진심에서 뻗어 나오는 그녀의 각오.

그녀가 왜 [스승]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감독님.”

“지혁 씨.”


그 각오가, 멈춰있던 내 다리를 다시 일으켰다.


“선생님 원하시는 대로 대역 없이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선생님은 배우십니다. 여기 있는 그 어느 배우보다도 더 진정성 있는.”


나는 [스승]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억만금을 주고도 못 배울 가르침을 받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랬다니 다행이구나.”


한세강은 이윽고 등을 돌려 위치로 향했다.

이미 분장까지 모두 끝난 상태였으니 이제 촬영만 시작하면 된다.

나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채진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감독님. 저 이번 씬이 선생님과 찍는 마지막 촬영입니다. 어머니와 아들로서, 다른 분에게 맡기지 않고 선생님과 직접 이 촬영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지혁 씨, 정말로 위험해 이거. 그냥 말로만 진행할 게 아닌 거 잘 알잖아?”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뭐?”


채진원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나는 [스승]에게서 받은 각오를 받아들이고, 그를 향해 전했다.


“스승님은 제가 지켜드릴 것입니다.”


***


“레디 액션!”


채진원은 불안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머릿속은 몇 번을 되물어도 안 된다고 하는데.’


결국 촬영을 선언해버리고 말았다.

이게 다 두 사람 때문이다.


‘선생님도 선생님인데, 지혁 씨는 왜.’


한세강의 말은 정론이었다.

어떠한 반박의 여지도 없는 정확한 정론이었으며, 모든 배우의 귀감이 되는 명언이었다.

같은 세계에서 머무는 한 명의 연출자로서 그녀의 각오가 포문을 연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결정타를 먹인 것은 다른 이였다.


‘스승님이라니.’


정지혁이 내뱉은 그 한 마디.

그 말을 들은 채진원은 더 이상 두 사람을 말릴 수 없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두 사람은 정식 사제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채진원은 모두 알고 있었다.

정지혁이 한세강을 그 옛날 한지호처럼 극진히 모신 것도, 한세강이 한지호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지혁을 위하는 행동을 종종 보인 것도.

그렇기에 끝내 안된다는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스승의 의지를 막은 제자는 없었으며, 스승의 위험을 방치할 제자는 없을 테니까.


‘부디 내가 한 것이 모두 괜한 걱정이기를.’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연기에 몰입하고 있는 한세강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것.

배우가 최선의 연기를 보이는 순간에 최선을 다해 최고의 연출을 할 구도를 잡아내는 것.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흑!”


호수의 다리 끝에 멈춰선 한세강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죽은 아들을 더는 마주하지 못한다는 슬픔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벼 팠고.

슬픔으로 빚어진 커다란 상처는 흉터가 되어 끊임없는 아픔을 낳았다.


슬픔과 괴로움.

두 가지 감정이 흉터를 할퀴며 전신을 덮쳤다.

하지만 그녀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슬퍼하고 있는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목이 터져라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부르짖는 아들이 있었으니까.

귀신이 된 몸은 그녀에게 닿을 수 없었고, 애처로운 탄식은 그녀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미 죽어버린 몸으로 어떻게든 그녀를 붙잡고 불러 세울 뿐.

허나 닿지 못하는 행동은 어머니의 행동에 방파제가 되지 못했다.


“기다리렴, 엄마도 금방 찾아갈 테니까.”

“어머니. 제발!”


끝내 닿지 못한 목소리는 메아리로 변하 호수 위로 흐트러졌다.

현생의 삶을 기꺼이 버리고 아들을 택한 그녀의 몸이 호수 아래로 사라졌다.

가여운 어머니를 집어삼킨 호수는 진한 트림을 파문으로서 흘려보낼 뿐이다.


“어머니!”


비통한 아들의 비명이 호수를 뒤덮었다.


“컷!”


단말마의 외침이 촬영장을 갈랐다.

채진원은 속으로 연신 감탄을 삼켰다.

한세강과 정지혁.

두 사람이 선보인 연기는 가슴 한편을 찡하게 울렸다.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던 스태프는 물론, 배우들이 하나둘씩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마치 진짜 모자(母子)와도 같은 둘의 연기는 모두의 심금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시청률은 떼 놓은 당상이야!’


두 번 세 번 촬영할 필요도 없다.

이거라면 통한다.

절대로 통한다.

드라마국에서 수년간 버틴 짬밥은 그에게 성공의 확신을 안겨 주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됐네.’


결국 대역 없이 가긴 했지만, 덕분에 정말 엄청난 그림을 얻었다.

대역으로서는 절대로 뽑아낼 수 없는 그림.

오늘 촬영이 끝나면 회식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던 찰나.


“어어?”


호수 근처에서 시작된 웅성거림이 산불처럼 번져나갔다.

채진원은 가슴 한편에서 떠오르는 걱정을 애써 무시하며 황급히 호숫가로 향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그, 그게 아직 안 나오셨습니다.”

“뭐?”


호수에 들어가신 지 벌써 1분이 지났다.

일부러 정지혁의 포효와 동시에 ‘컷’을 선언했는데, 아직까지 못 나오다니.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인명 구조팀!”

“선생님 찾아!”


비명과도 같은 일갈이 그녀를 채 찾기도 전에.

시커먼 그림자가 머리 너머로 스치듯 지나간다.

갑작스러운 그림자에 채진원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위로 향한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 지혁 씨!”


불현듯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스승님은 제가 지켜드릴 것입니다.”


스승을 구하기 위해서.

제자는 기꺼이 스승을 삼킨 호수의 주둥이를 찢었다.

두 모자를 집어삼킨 호수는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인명 구조팀 뭐해! 빨리 서둘러.”


뒤이어 준비를 끝낸 인명 구조팀이 황급히 호수로 뛰어들려던 찰나.


“푸아!”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의 주둥이를 가르고.

호수로부터 스승을 되찾아, 품에 안은 제자가.


작가의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사랑이 언제나 제겐 큰 힘이 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8 Act 28. 연출 - (4) +12 20.12.22 13,100 291 20쪽
27 Act 27. 연출 - (3) +12 20.12.21 12,818 295 19쪽
26 Act 26. 연출 - (2) +12 20.12.20 13,049 302 17쪽
25 Act 25. 연출 - (1) +14 20.12.19 13,421 297 19쪽
24 Act 24. 그 이름 - (4) [수정] +24 20.12.18 13,484 284 18쪽
» Act 23. 그 이름 - (3) [수정] +16 20.12.17 13,451 268 19쪽
22 Act 22. 그 이름 - (2) [수정] +21 20.12.16 13,706 268 12쪽
21 Act 21. 그 이름 - (1) [수정] +21 20.12.15 14,292 258 19쪽
20 Act 20. 룰렛 +15 20.12.14 14,488 286 17쪽
19 Act 19. 프로필 - (2) +17 20.12.13 14,181 303 13쪽
18 Act 18. 프로필 - (1) +15 20.12.12 14,606 305 19쪽
17 Act 17. AND +14 20.12.11 14,588 309 15쪽
16 Act 16. 제의 - (3) +18 20.12.10 14,859 294 15쪽
15 Act 15. 제의 - (2) +13 20.12.09 15,431 298 18쪽
14 Act 14. 제의 - (1) +18 20.12.08 15,653 299 14쪽
13 Act 13. 불청객 - (3) +16 20.12.07 15,708 291 15쪽
12 Act 12. 불청객 - (2) +20 20.12.06 15,728 302 12쪽
11 Act 11. 불청객 - (1) +18 20.12.05 15,991 299 12쪽
10 Act 10. 첫 촬영 - (2) +20 20.12.04 16,635 323 17쪽
9 Act 9. 첫 촬영 - (1) +20 20.12.03 17,139 318 17쪽
8 Act 8. 오디션 - (3) +12 20.12.02 17,116 320 11쪽
7 Act 7. 오디션 - (2) +19 20.12.01 17,349 332 14쪽
6 Act 6. 오디션 - (1) +13 20.11.30 17,839 330 11쪽
5 Act 5. 뉴스 - (2) +12 20.11.29 18,224 328 12쪽
4 Act 4. 뉴스 - (1) +21 20.11.28 19,280 345 15쪽
3 Act 3. 튜토리얼 - (3) +21 20.11.27 19,551 379 15쪽
2 Act 2. 튜토리얼 - (2) +26 20.11.27 21,580 351 16쪽
1 Act 1. 튜토리얼 - (1) +25 20.11.27 26,036 38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