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이락(烏飛梨落)
선우은은 뒤늦게 무너진 동문과 화마의 지척에 쓰러진 유우 그리고 그저 쓰러지듯 앉아 너털웃음을 짓는 양표를 보게 되었다. 순간 선우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선우은은 빠르게 나아가 그 둘을 기절시킨 후 말 등에 올리고 한숨을 쉬었다. 겨우 나갈 동문이 무너졌다고 저리 생을 포기한 듯 한 모습을 보이다니 새삼스레 자신의 주공인 유우와 신하들 중 가장 높은 자리의 녹상서사도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어찌 밖으로 나갈 방도가 없다는 것이구나.`
천하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둘이 어디도 갈 수가 없다니 참으로 답답하였다. 누구나 우러러 보았던 그 높은 관직은 어떤 이에게도 몸을 의탁 할 수 없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차라리 저들이 일개 촌부였다면 어느 곳에 숨어 밭을 갈면 그만이었다.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고 난 다음이겠지만 말이다.
사방에서 화마가 조여 오는 상황이었다. 선우은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길을 열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동문이 마저 무너지면서 남문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선우은은 그 길로 말을 이끌고 내달렸다. 그가 간두 무너진 잔해들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마치 하늘이 그의 자취를 감추려는 듯이 말이다.
여포는 멀리서 장안이 타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군을 재촉하여 장안성에 다다랐다. 그리고 장안성의 상태를 확인한 여포군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허무와 허탈이 가슴 깊숙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과거 반동탁연합이 낙양을 보는 느낌이 그리했을까?`하고 잠시 여포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감상에 취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보국장군이자 한의 온후였다. 천자를 구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그가 명을 내리려는 순간 진궁이 여포의 곁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진선생?"
"장군 황제는 장안에 없을 것입니다. 황제가 장안을 빠져나가기 위하여 일부러 장안에 불을 질렀을 테니까요."
진궁의 말에 황제에 대한 예가 전혀 들어있지 않았지만 지금 여포가 그런 사소한 것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단지 진궁이 말한 황제가 이 모든 일의 발단이라는 것이 여포를 허무와 허탈을 분노로 바꾸었다.
여포는 진궁의 멱살을 잡아 힘껏 끌어당겼다. 얼마나 힘이 셌는지 말과 함께 여포의 지척으로 끌려왔다.
"선생,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러자 여포는 이를 부득거리며 갈더니 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그리고 적토에서 내리기 위하여 몸을 돌리자 한 청년이 뛰어나와 등으로 발판을 만들었다 갑주를 입은 여포의 무게 때문에 꽤 무거웠을 것인데도 조그만 신음조차 내뱉지 않았다.
그 모습에 진궁이 급하게 말에서 내려 여포에게 간언을 하려했지만 여포는 진궁의 말을 막았다.
"진선생께서 조언하시려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제는 한조가 진절머리가 납니다. 제가 그들을 잡는다고 해도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 할 텐데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진궁은 여포의 심정은 이해했으나 책사의 위치에서는 받아드릴 수는 없었다.
“주공, 군신의 관계가 아닌 스승의 위치로 받아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이 받아드리기 힘든 제안은 주공의 길을 위한 조언입니다.”
그러자 여포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원하는 대의는 한을 위함이 아니었다. 물론 한의 그늘 아래 청사를 밝히는 것이 좋겠지만 그것은 주요한 일이 아니었다.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저를 위해 움직이신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허나 그 길은 저의 길이 아닙니다.”
여포의 길(道) 그것은 본디 삶을 갈망하는 승냥이와 같았다. 북방은 원래 그런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의 광명이 내려왔다. 그것은 바로 진궁이었다. 여포는 살기 위한 하루하루가 아닌 미래를 살 수 있는 하루, 미래를 준비하는 하루를 꿈꾸게 한 것이 진궁인 그였다. 그로 인하여 충의를 알았고, 그로 인하여 인의를 알았으며, 그로 인하여 정의를 알았다.
그리고 여포의 충의라는 자리는 황제의 행동으로 인하여 부스러지듯 사라졌다. 충의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여포는 푸른 늑대와 같이 서있었다.
“주공, 무슨 길을 가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저는 이제 홀로 일어나 울타리가 되고자합니다.”
진궁은 안타까운 듯 여포를 바라보았다. 여포의 마지막 모습이 그를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마지막 그의 모습에 쉽게 가는 길이 있음에도 백성을 위하여 스스로 어려운 길을 자처했다. 지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쉬운 길이 있음에도 길을 돌아가시는 것입니까?”
“삶이 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도 어려운데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싫습니다.”
진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 따위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떤가? 서북을 얻은 여포였다.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여포의 세력이다. 일국을 만들고자 한다면 깃만 꼽으면 될 일이었다. 천하를 전란으로 빠트린다면 누구보다 먼저 한 지역을 일통한 여포가 가장 앞에 설 것이었다.
진궁은 그대로 장안의 불을 끄기 위하여 군을 움직였다. 군은 빠르게 장안으로 나아갔고 기마들이 나아가는 자리에 는 먼지들이 올라왔다.
여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발판이 되었던 청년을 불렀다.
“마초 이리로 오라.”
마초 서량의 금마초가 여포의 노비가 되어 말에서 내리는 것을 돕는 발판된 것이다. 물론 여포는 딱히 말에서 내리는 것을 돕는 사람이 필요 없지만 역적의 가문의 일원인 마초의 무를 높이 평가하여 살리기 위하여 일부러 노비로 만들었다. 장안으로 들어가면 이름도 바꿀 생각이었지만 이제 황제도 사라졌으니 숨길 필요도 없었다.
“가문의 죄를 징치(懲治)할 사람이 사라졌다. 어찌할 테냐?”
마초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여포는 군을 이끌고 자신의 가문을 멸가의 상태로 만든 인물이었다. 그러나 마초가 여포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노 같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경외의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편에는 어떤 열망을 담고 있었다.
“저희 가문을 살려주시겠습니까?”
“살려주지 않을 까닭은 무엇이냐?”
“뒤가 찜찜하지 않겠습니까?”
“뒤를 찜찜하게 할 터이냐?”
“제가 그렇지 않는다 하여도 그를 느끼는 것은 온후께서 느끼는 것이니 어찌 하겠습니까?”
여포는 크클 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열쇠꾸러미를 마초에게 건네었다. 마초가 그의 손을 통하여 열쇠 꾸러미를 받자 여포가 마초의 손을 잡으며 그를 보고 말을 꺼냈다.
“내 우리 안에 들면 나의 손가락을 통하여만 태양을 봐야 할 것이다.”
그러자 마초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소인은 주공의 손가락만 보겠나이다. 태양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마초의 말은 의를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여포의 명만을 바라보겠다는 말이었다. 여포는 마초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누가 서북을 가리켜 무식한 이들만 있다고 하던가? 여포는 불타는 장안을 바라보며 쓰게 웃음을 지었다. 새로운 시대의 발단이 된 황제를 떠올리며 안타까움과 자신을 내버린 그의 유약함에 은은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황제의 파천 그 사실 하나로도 천하가 들썩이기는 충분했다. 그러나 이미 천하는 황제를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양수는 쉬이 낙양으로 향할 수 있을 듯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게 쉽게 돌아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특히 욕망은 누구도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양수는 분노로 부들거리는 손으로 쥐고 있던 죽간을 바닥에 내팽겨 버렸다. 투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죽간이 박살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환관들은 양수의 입으로 향했다. 그러나 양수는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금 있는 군세를 최대한 이용한다고 하여도 도망이나 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암주(暗主), 유대만 문제가 아닙니다. 북쪽의 백파적이 남하하고 있다고 하니. 어찌하렵니까?”
유대, 백파적 하나를 상대하기도 어려운데 두 세력이 황제를 노리고 있었다. 유대는 역적 원외와 손을 잡았고 백파적은 갑작스럽게 남하하고 있었다. 양수는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백파적을 이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이공이(以夷功夷)를 이용하자는 것입니까? 그러나 문제는 대신들과 장수들 아니겠습니까?”
환관들은 확실히 열려있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위하여 어떤 것도 이용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말이다.
“황제의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데, 그들이 어찌 명예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자들은 모두 역적이지요.”
그러자 환관들이 맞는다는 듯이 입을 가리며 호호 웃음을 흘렸다. 양수는 그 모습에 꺼림칙하였으나 이들과 손잡고 밝은 세상에 나온 이상 익숙해지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웅장하고 거대한 대전 그리고 가장 밝은 자리, 그들의 가장 상석에 무료한 듯 지루한 듯 반쯤 눈이 감긴 원술이 권좌에 깊숙이 눌러앉아 그의 신하들의 많은 민심, 정책, 예산 등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의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는 없었다. 어차피 들어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예산이야 염상이 알아서 할 일이고 그것을 정책으로 만드는 일은 한호에게 일임 하였으니 그가 들어도 크게 말할 것은 없었다. 간혹 칭찬이나 포상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 말들 가운데 자신의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 지나갔다.
황제의 파천(播遷)
하늘의 권위가 또다시 추락한 것이었다. 추락한 하늘이 원술의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원술은 웃음이 절로 흘러 나왔다. 과거 원술에게서 보이지 않았던 여유로움이었다. 여유가 넘쳐 권태로 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전농위는 오보 앞으로 오라”
한호가 무릎을 꿇고 원술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그러자 원술은 손을 휘휘 저어 예가 귀찮은 듯이 빠르게 물었다.
“폐하께서 장안을 버리고 낙양으로 향하고 있다고?”
“예 중공”
그러자 원술은 무엇이 그리 웃긴 것인지 배를 잡고 깔깔 거렸다.
“천하의 명사란 명사가 다모인 폐하의 곁에서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나다니 한의 하늘이 끝으로 달려가는 구나!”
원술의 말에 대신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원술이 다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껏 원소와의 결투에서 승리하여 조용하던 원술이었지만 그것도 이제 끝나는 듯 보였다.
“높은 곳에 올라보고 싶구나! 인간으로써 가장 높은 곳에 서고 싶어!”
원술의 말에 신료들은 눈을 크게 뜨고 원술을 바라보았다. 원술의 말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였다.
흥평2년 195년 황제가 장안에서 탈출하자 눈을 감고 있던 원술이 눈을 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하늘에 오르고자 하였다.
- 작가의말
꿀물이 지루해 합니다.
꿀물이 답답해 합니다.
꿀물이 장난감을 찾았습니다.
꿀물을 막을 수 없습니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