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조회수 :
988,712
추천수 :
2,493
글자수 :
702,223

작성
08.01.05 15:09
조회
6,526
추천
13
글자
11쪽

베나레스의 총사(57)

DUMMY

이사벨 데 아라고른이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 다락방 안의 테이블과 의자는 살롱에 있던 것처럼 호화롭지도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마치 소녀를 위해 만들어진 다락방처럼 모든 것이 앳되었다.

이사벨이 황실인장반지를 낀 왼손으로 의자를 짚어보더니 사뿐히 앉았다. 의자 밑으로 포개어진 그녀의 보라색 드레스 때문에 그녀가 앉은 의자는 보이지 않았다.

비스듬한 천장의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벨린은 이 작은 방의 모든 것이, 어린 공주님의 작은 소꿉놀이 장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사벨이 긴장한 얼굴로 눈짓했다. 벨린은 의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찻잔 세트가 놓여있었지만 쓰지 않은지 꽤 오래된 물건이었다. 두 남녀는 차가 없는 찻잔 세트에 갈증을 느꼈다. 아니, 아무런 관찰자도 없이 단 둘이 있는 이 상황이 오랜만에 재회한 두 남녀에게 욕망의 갈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 아래로 벨린과 이사벨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황녀가 긴장한 어조로 말했다.

“이 장소는 너와 짐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곳이다. 앞으로 짐이 원하거든 이곳으로 오도록 하여라. 그렇다고 짐이 미천한 너에게 항상 상을 주지는 않을 터, 영광으로 알거라.”

이사벨이 말을 흐렸다. 벨린이 눈짓으로 그녀에게 예의를 표했다.

이사벨이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데 란테, 이제부터 짐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듣길 바란다. 이 나라에는 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적들이 여럿 있다. 지방에 잔존해 있는 신교도들은 호시탐탐 짐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심지어 정부의 여러 각료들 가운데서도 짐의 권위에 의문을 품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을 견제해야 황실의 위엄이 바로 설 터, 허나 짐의 형편상 어려운 일이다. 짐에게는 충성스러운 황실근위대와 근위총사대가 있지만 그들은 나라를 위해 훈련된 군대이지, 짐의 정적들을 감시하고 응징하고자 훈련된 자들이 아닌 것이다. 이제부터 짐은 나라간의 전쟁이 아닌, 나라 안의 전쟁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그대의 사냥 실력이 필요한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벨린은 이사벨이 처음으로 그대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을 들었다. 애써 도도하고 경멸어린 어조를 유지하려고는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어투는 눈에 띄게 완곡했다.

벨린이 대답했다.

“마마의 뜻을 잘 알겠나이다.”

“부디 그대의 능력으로 짐과 황실을 지켜주길 바란다. 앞으로 그대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사벨이 말을 끝내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보랏빛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자태가 햇살 아래에서 단번에 살아났다. 우아하게 틀어 묶은 검은 머리칼과 그 머리칼을 장식하는 은빛 머리장식이 반짝반짝 빛났다.

벨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녀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눈을 감은 채였다. 주변에는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지만, 벨린에게만 들리도록 아주 작게 말했다.

“그럼 이제...”

이사벨이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시작하도록 하여라.”

황녀는 양손을 잡고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다. 손길을 기다리듯, 잔뜩 애가 타는 얼굴이다.

벨린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는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자신을 끌어들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란츠베르크에서 목숨을 구한 이후 그는 약간 변했다. 장난기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마마?”

“네가 잘 하는 그것이 있지 않느냐!”

이사벨이 발끈했다. 그녀는 자신의 숨은 욕망이 들통난 것처럼 당황스러워했다.

“이 멍청이! 짐은 지금 네가 분발하라는 의미로 상을 내리는 것이다. 자, 그러니 어서...”

“황공하옵니다.”

벨린 데 란테가 모자를 벗었다. 그가 테이블을 돌아 이사벨 황녀의 뒤로 다가갔다. 그의 손이 이사벨의 허리를 천천히 감싸 안았다. 촉감을 느낀 이사벨이 움찔했다. 벨린이 아주 능숙하게 황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의 두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의 허리 밑으로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허리를 옥죄는 코르셋이었다. 벨린의 손길을 느낀 이사벨이 무언가를 언급하려고 했지만 아마 이미 그의 혀가 그녀의 혀를 휘감는 바람에 속절없이 빠지고 말았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벨린은 가벼이 떨리는 이사벨을 통해 그것을 상기했다. 그의 손이 히스파니아 황녀의 깊고 깊은 곳을 더듬어 나갔다. 한 손은 드레스의 깊은 곳으로, 다른 손은 그녀의 목깃을 헤치고 부드러운 젖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건너편에 있는 낡은 벽거울이 그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벨린 데 란테는 눈을 뜨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 투영된 그들의 모습이 그의 숨겨진 본능을 자각하는데 기여했다. 눈을 감은 채 키스에 빠져든 이사벨은 쾌락의 포로가 된 듯했다.

이사벨이 불현듯 눈을 떴다. 망각하고 있던 것을 깨달은 것이다.

‘흔적을 남기면 안 되는데….’

그러나 순간,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뇌리 속은 완전히 지워지고 말았다.

그들은 거울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지켜보았음에도, 한치의 부끄럼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삽시간에 달아올랐고,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벨린 데 란테의 손놀림에 이사벨은 넋을 놓았다.

길고 긴 키스가 멈췄다. 그와 동시에 벨린은 봐주지 않겠다는 듯, 그녀의 드레스자락 손으로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러자 이사벨이 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잡았다.

“데, 데 란테, 짐은...”

“옷을 더럽히기 싫으시겠지요. 귀중한 것이니까요.”

그녀가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벗으려고 했다. 체통에 맞지 않는 짓이었지만, 문제는 드레스의 불필요한 화려함 때문에 가중되었다. 그 드레스는 화려함 만큼이나 벗기 불편했다.

벨린이 나섰다. 이사벨의 등 뒤에서 드레스에 달린 단추들을 풀어냈다. 황녀는 그 어릿광대 같은 총사의 배려에 그대로 따랐다. 자신의 마음을 속속들이 읽어내는 영악한 벨린 앞에 그녀는 속절없는 여인에 불과했다.

이사벨은 거울에 투영된 반라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벨린 데 란테가 그의 등 뒤에서 그녀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마.”

벨린이 그녀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남녀가 서로 합치는 것은 서로에게 상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배려해야하지요. 저는 지금껏 마마의 아름다운 옥체를 탐할 영광을 얻으면서 한 치의 거짓 없이 정성을 다했습니다. 만약 마마께서 제게 모든 것을 맡기신다면, 이제는 마마께서도 그러실 차례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영광된 상일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이사벨에게 최면처럼 들렸다.

“짐은….”

그녀가 중얼거렸다. 벨린 데 란테가 황실인장반지를 낀 그녀의 왼쪽 손목을 잡고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댔다.

이사벨이 홀린 듯이 가냘픈 손을 움직였다. 그녀는 벨린 데 란테의 옷 단추를 하나하나 끌렀다. 그의 다부진 가슴이 드러났다. 근육질은 아니었지만, 군살이 없는 것이 날렵하게 움직이기에 좋은 체격이었다. 이사벨이 그의 옆구리에 난 전상들을 발견하고 손으로 짚었다. 총상의 흔적이 깊었다.

벨린이 상처를 짚은 그녀의 손등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마마께서 얻은 영광의 대가입니다.”

“대신 짐은 네 목숨을 여러 번 살려주었지.”

이사벨이 이렇게 대답하며 그의 하체를 탐닉해나갔다. 이윽고 그 또한 나체가 되었다. 꽂꽂이 서 있는 그의 상징에 만감이 교차하는 그녀였다. 그녀는 지금껏 그 상징을 파괴해야할 적으로 간주하지 않았던가. 넌센스였다. 저것이 이렇게나 사랑스러워질 줄이야.

“짐은 그대와 달리 경험이 별로 없다. 네가 만족할지 모르겠구나.”

“황송하옵니다.”

이사벨은 벨린 데 란테를 침대 위로 몰아서 몸을 포개었다. 그녀가 벨린의 상징과도 같은 곳에 기쁨을 불어넣었다. 어색한 손놀림으로, 그것이 처음부터 잘 될 리가 없었지만, 벨린 데 란테는 만족했다. 그가 황녀에게 똑같은 보답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그들의 몸은 땀으로 젖어들었다.

자극에 감흥을 받은 이사벨이 애원하는 눈길로 벨린을 바라보았다. 젊은 총사는 황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윽고, 벨린 데 란테가 이사벨의 등을 보고 그녀와 합쳤다. 코르셋을 착용한 여인에게는 이것만큼 최선이 없었다. 비록 그와의 첫 관계에서 이 자세에 치욕을 느낀 이사벨이었지만, 이제는 그녀도 수긍이 갔다. 지난날에 뼈아프게 느꼈던 그 교훈이, 이제는 밀려드는 쾌락을 선사하는 한 가지 요령이 될 줄이야.

두 남녀의 움직임이 더욱 격렬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더욱 더 깊은 쾌락의 늪 속에 빠져들었다.


* * *


이사벨은 피곤을 느꼈다. 그녀는 벨린의 품 안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그녀가 바라는 대로 흔적 없이 관계를 끝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허무가 밀려왔다. 이윽고 현실적인 걱정거리가 히스파니아 제국 섭정이자 제1황녀인 이사벨 아라고른을 고민에 빠트렸다.

“데 란테.”

그녀가 벨린에게 말했다.

“그대는 짐에게 있어 양날의 검이다. 아느냐?”

“여부가 있겠습니까.”

벨린이 대답했다. 황녀가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짐이 너 같은 남정네와 놀아난 것을 알면, 정적들이 뛸 듯이 기뻐하겠지. 교회의 수장 리베라 추기경 같은 자는 좋은 구실로 삼을 거야. 짐이 교회법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늑대처럼 달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사냥감이 생기는 셈이군요. 마마."

벨린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이사벨이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 자를 경계해야한다, 데 란테. 추기경은 짐의 하나뿐인 동생을 볼모로 잡고 있다. 내 동생 디에네는 믿음에 빠져 사실상 추기경의 보호하에 있단다. 신앙처럼 좋은 구실이 어디 있겠느냐.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그 아이를 짐의 곁에 두었으면 좋겠건만."

벨린이 생각 끝에 말했다.

"아까 전에 마마께 수상한 냄새를 풍기는 자를 보았습니다. 권력을 얻은 자가 흔히 품기 마련인 야심을 지닌 자였지요."

"그 자가 누구지?"

"돈 주스티앙입니다."

이사벨이 비웃었다.

"동방회사의 총수말이냐? 그래봤자 욕심많은 돼지에 불과하다. 그 자는 짐이 단단히 휘어잡고 있으니 너무 상심치 말라."

"잘 알겠나이다."

벨린이 대답했다. 그러나 벨린 앞에서 그 자는 너무 본심을 드러냈다. 돈 주스티앙은 그것을 평생 후회하게 되리라. 황녀에게 새로운 임무를 받은 이상 벨린은 새로운 사냥감을 쫒는데 전념을 다 할 터였다. 그것도 철저하고 집요하게.


---------


쓰기 힘들었던 부분입니다. 내용은 야하니 군대서 쓰자니 눈치도 보이고, 결국 휴가와서 마무리 짓네요.


섹슈얼리티 요소와 야설은 구분하고 싶었지요. 너무 노골적이면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거든요.. 암튼... 이 기회에 두 남녀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고 싶기도 했구요.

그럼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베나레스의총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7 베나레스의 총사(85) +23 08.04.05 4,665 11 11쪽
86 베나레스의 총사(84) +28 08.04.04 4,405 14 7쪽
85 베나레스의 총사(83) +19 08.03.29 4,780 14 10쪽
84 베나레스의 총사(82) +23 08.03.23 4,996 14 10쪽
83 베나레스의 총사(81) +30 08.03.21 4,618 14 8쪽
82 베나레스의 총사(80) +28 08.03.16 4,677 14 10쪽
81 베나레스의 총사(79) +21 08.03.13 4,587 14 7쪽
80 베나레스의 총사(78) +28 08.03.09 4,577 14 8쪽
79 베나레스의 총사(77) +21 08.03.05 4,900 14 12쪽
78 베나레스의 총사(76) +20 08.03.03 4,734 15 8쪽
77 베나레스의 총사(75) +28 08.03.01 5,188 17 10쪽
76 베나레스의 총사(74) +35 08.02.24 4,917 16 8쪽
75 베나레스의 총사(73) +24 08.02.17 5,038 14 7쪽
74 베나레스의 총사(72) +29 08.02.15 5,021 14 9쪽
73 베나레스의 총사(71) +33 08.02.08 5,656 12 9쪽
72 베나레스의 총사(70) +22 08.02.06 5,094 15 7쪽
71 베나레스의 총사(69) +14 08.02.02 5,252 14 10쪽
70 베나레스의 총사(68) +19 08.01.29 5,244 16 11쪽
69 베나레스의 총사(67) +23 08.01.27 5,209 14 8쪽
68 베나레스의 총사(66) +21 08.01.26 5,202 14 8쪽
67 베나레스의 총사(65) +20 08.01.24 5,399 13 13쪽
66 베나레스의 총사(64) +32 08.01.21 5,487 13 7쪽
65 베나레스의 총사(63) +26 08.01.19 5,553 16 9쪽
64 베나레스의 총사(62) +23 08.01.17 5,586 13 11쪽
63 베나레스의 총사(61) +22 08.01.14 5,679 14 7쪽
62 베나레스의 총사(60) +24 08.01.12 5,724 13 10쪽
61 베나레스의 총사(59) +22 08.01.09 5,882 14 7쪽
60 베나레스의 총사(58) +24 08.01.07 5,986 13 9쪽
» 베나레스의 총사(57) +27 08.01.05 6,527 13 11쪽
58 베나레스의 총사(56) +33 07.12.30 6,213 13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