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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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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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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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58)

DUMMY

알레한드로 바레스와 조안 데 아스티아노가 제국의 수도에 도착한 것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이 두 총사는 총사대 부사관을 의미하는 초록색 외투에 날렵한 삼각모를 쓰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그들의 총사대 제복은 한결 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두 총사는 자신의 계급을 나타내는 견장을 자랑스레 착용하고 있었고 그들의 속했던 연대의 상징이던 아틸 총사연대의 휘장을 오른쪽 팔에 그대로 달고 있었다. 왼쪽 허리에는 전쟁터에서 그들을 무사히 지켜준 사브레를 찼고, 오른쪽 어깨로 바인베스 32년식 강선총을 매고 있었다.

그들에게 오늘은 아주 긴 하루였다. 그들은 아틸연대의 주둔지이던 홀란드와 프란쉐왕국을 거쳐 히스파니아에 지난 주에 도착했다. 그들은 나흘 동안 제국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렀고, 오늘에서야 수도에 도착했다. 말에서 내린 그들은 새로 개축된 아스티아노 성벽 앞에서 성벽의 묽게 물드는 노을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반갑다, 아스티아노. 반갑다, 제국의 수도.”

알레한드로가 바닥에 앉아 쉬면서 중얼거렸다. 키가 2미터는 넘는 이 건장한 체격의 귀족출신 총사는 까살라와 홀란드의 전장에서 1년을 보내고 귀환하는 길이었다. 그의 동료 조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작지만 날렵한 체구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을 지닌 이 금발머리 총사는 기진맥진한 알레한드로에 비해 한결 더 쾌활해보였다.

소년처럼 앳된 얼굴을 한 그가 바닥에 주저앉은 거인의 어깨를 토닥였다.

“우리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다니, 믿기지 않아, 알레한드로.”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이렇게 고될 줄 몰랐지. 빌어먹을, 헤카펠 기병과 빌랜드의 하이랜더, 울란(ulah) 기병대 앞에서 살아남은 게 기적이지.”

알레한드로가 툴툴거리며 일어났다. 골리앗을 연상케 하는 이 총사대 상사 앞에서 조안은 한없이 작아보였다.

조안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맞아, 그래도 진급도 했잖아. 돈도 많이 벌고, 이젠 누구나 나를 조안 데 아스티아노 중사라고 부른다고. 일등병이 아니라.”

조안은 총사대 제복에 달린 견장을 뽐내보였다. 목숨과 맞바꾼 대가치고는 보잘 것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조안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그는 칠남매 가운데 장남이었고 계급이 올라갈수록 그가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낼 수 있는 전투수당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더구나 전쟁터에서 노획한 물건들 덕분에 한 몫 크게 벌었으니, 조안에게 이번 전쟁은 가난을 탈출할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반면 알레한드로 바레스는 전쟁이 그에게 준 지독한 혐오감 때문에 지난 일 년간의 기억이 악몽같이 느껴졌다. 애국심과 명예욕에 전쟁에 참여한 그였지만, 전쟁의 실체는 끔찍할 뿐이었다. 특히나 까살라의 전투에서 적 기병대를 강선총으로 사냥한 이후 알레한드로와 조안이 투입된 전장은, 그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도 믿지 못할 만큼 처절했다.

조안이 웃으며 주저앉은 동료에게 손을 내밀었다. 알레한드로가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들이 타고 온 말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문이 폐쇄될 시간이었기에, 두 총사는 수도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들은 살아 돌아온 것에 감격하며 시내를 활보했다.

아스티아노 시내는 여전히 활기차보였다. 특히 저녁 무렵의 옛 정취가 그들을 반겼다. 총사후보생 시절 자주 드나들고는 했던 드라고니스 주점 근처 거리도 지나가는 행인들과 호객행위로 번성 중이었다.

알레한드로가 감흥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얘기를 꼭 녀석에게 해줘야 하는데.”

“벨린 말하는 거야?”

조안이 물었다. 알레한드로가 감격에 겨운 듯이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한 방울을 훔쳤다.

“홀란드 전장에서 우리가 어떤 적을 상대했는지 그 녀석에게 말해준다면, 녀석의 그 오만한 얼굴에 펀치를 한방 날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을 거야. 나도 좀 들은 바가 있다고.”

조안이 활기차게 말했다.

“하노버에서 누가 말하길 벨린이 란츠베르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나봐. 나도 이 정도인데 벨린이 해낸 일이라면 정말 대단할거야.”

그가 왼쪽 허리에 찬 사브레를 잡아보면서 즐거워했다. 가난한 평민 집안에서 태어난 이 어린 청년은 전쟁터에서 살아난 끝에 드디어 가난에서 탈출한 거였다. 이렇게 반짝거리는 새 검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조안 데 아스티아노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그가 종이를 알레한드로에게 주었다. 귀족출신인 알레한드로는 글을 쓰고 읽을 줄 알았지만, 조안은 그러지 못했다.

“산 루첸가 142번지라고 쓰여 있군. 여기가 그 녀석이 기거하는 곳인가?”

“하노버에서 어떤 장교가 준 거야. 벨린이 우리를 꼭 만나보길 바란다고 해서. 산 루첸가라면 여기서 멀지 않아. 보아하니 벨린도 근위총사연대로 전출된 거야.”

조안이 모자를 바로 쓰고 갈 채비를 했다.

“어때, 알레한드로. 벨린을 보고 갈 거야?”

알레한드로 바레스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총사 후보생시절부터 벨린 데 란테에게 경쟁의식이 있던 그였다. 허나 목숨을 함께 나눈 전우를 보지 않고 어떻게 마음 편히 살 수 있겠는가.

“물론이지.”

“괜찮겠어?”

조안이 농담처럼 물었다. 알레한드로가 성을 냈다.

“젠장, 하나도 겁 안나! 그 녀석 앞에서 이젠 떳떳하니까.”

* * *

두 총사가 옛 전우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아스티아노 토박이인 조안이 금방 주소를 찾아냈다. 산 루첸가는 중산층들이 사는 거주구역이었다. 상공인들이나 부유한 시민들이 거주하는 맨션들이 모인 곳이었다. 오랜 여행으로 더러워진 두 총사의 지저분한 제복이 산 루첸 가의 거주민들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알레한드로와 조안은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주소의 저택을 찾아냈다.

벨린이 산다는 그 집은 괜찮은 2층 가옥이었다. 벽돌로 지어졌고 아늑하고 고급스러워보였다.

사방이 어두워졌다. 저택의 창문으로 빛이 새어나왔다. 아마 임시로 기거하는 하숙집일 거라고 짐작한 두 총사는 저택의 난간으로 걸어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문 앞에 서 있던 조안이 문을 연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허리를 죄는 하얀색 보디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었다.

조안은 그녀와 얼굴울 마주치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 갈색머리 여인은 보기 드믄 미인이었다. 이목구비가 반듯했고 특히 입술이 예뻤다. 구불구불한 갈색 머리칼을 길게 늘여 트리고 있었는데 조안과 알레한드로를 번갈아보고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알레한드로는 조안 저 친구가 왜 저러나 싶었다. 쾌활하고 활달하며 붙임성 있는 조안이 고작 여인에게 말을 걸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을 탈 리가 없었다.

서둘러 알레한드로가 나섰다.

“실례합니다. 세뇨리타. 이곳이 세뇨르 벨린 데 란테가 기거하는 곳이 맞습니까?”

젊은 여인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총사님들이신가요?”

“물론이지요. 저희는 세뇨르 벨린 데 란테의 친구들입니다.”

알레한드로가 모자를 벗으며 인사했다. 조안은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때지 못하고 멍 하니 서 있었다.

“친구분들이라고요?”

두 총사는 그녀의 억양 때문에, 그녀가 히스파니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언뜻 봐도 갈등하는 모양새였다. 이 사내들을 집에 들여보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 싶었다.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두 총사에게 낯이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엘,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거지?”

“주인님.”

그녀가 뒤를 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조안이 갑자기 환상에서 깬 것처럼 정신을 차렸다. 갈색 머리를 허리까지 늘여 뜨려 리본으로 묶은 사내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벨린 데 란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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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사람인지라 휴가때는 놀게 되네요.


음. 조아라에 글을 올려볼까하고 이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영 아닙니다.. 후후..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나.


암튼 옛 전우와 다시 만나는 벨린이 무슨 일을 꾸밀지는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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