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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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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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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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68)

DUMMY

아리엘은 변해도 한참은 변한 자신의 모습에 홀린 듯, 뒤늦게 주인에게 몸을 돌렸다. 그녀는 붉은색 드레스에 리본을 많이 쓴 긴 머리 장식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손봐준 드라고니스의 창녀들은 복잡하게 머리칼을 틀어 마는 장식 대신 그녀의 긴 머리칼을 그대로 이용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아리엘이 주인에게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갈색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분과 마스카라로 정성껏 화장이 되어 있었다. 입술에는 붉은 연지가 발라져 있었고, 그 붉은 연지는 특히나 벨린이 좋아하는 그녀의 예쁜 입술을 잘 장식했다.

붉은색 드레스는 특별한 것을 내어준 게 틀림없었다. 가슴이 패인 그 붉은색 드레스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긴 갈색머리칼과 잘 어울렸다.

아리엘은 처음 느끼는 허리를 옥죄는 코르셋의 불편함 때문에 다소 멍한 얼굴이었다.

벨린이 장난기어린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괜찮아, 아리엘?"

"숨을 잘 못쉬겠어요."

아리엘이 숨이 막히는 듯 간신히 대답했다. 벨린이 손을 내밀어 그녀를 가볍게 한 팔로 안고서는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몸에서 향기로운 향수냄새가 났다.

"수고 많았소. 세뇨라."

벨린이 드라고니스의 포주에게 감사를 표했다. 선머슴처럼 아무런 치장이 되어있지 않던 아리엘을 요염해보이는 창녀처럼 만들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아리엘의 차림새에는 정말이지 남자를 유혹할 속셈이 있는 여인들의 솜씨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고, 벨린은 바로 이것을 원했다.


두 남녀가 드리고니스 여관을 나섰다. 벨린은 팔을 뻗어 그녀가 자신의 팔을 안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주인의 팔에 안기는 것을 마다하던 그녀는 코르셋과 처음 신는 하이힐 때문에 도저히 혼자 걸을 수 없자 별 수 없이 안기게 되었다.

"그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했지, 아리엘?"

벨린이 짓궂게 웃으며 물었다. 그녀가 간신히 말했다.

"목욕을 시켜주고 머리칼을 손봐주고 옷을 골라줬어요. 이런 차림을 보이면 주인님께서 좋아하실 거라고 했어요."

"너한테는 별로 잘 안 어울리는 걸, 그 붉은색 드레스."

벨린이 진심으로 말했다. 가슴이 패인 그 드레스는 너무 야해서 아리엘의 성향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법햇다. 아리엘은 불편한 얼굴로 주인의 팔에 손을 붙든 채 천천히 걸었다. 조금이라도 몸의 중심이 쏠리다가는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벨린은 아리엘의 그 당혹스러운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한마디 했다.

"그래도 입술은 여전히 예쁘군."

"고... 고맙습니다. 주인님."

이윽고, 큰 길로 접어든 그들 앞에 마차가 한 대 섰다. 갈색 조끼에 삼각모를 쓴 마부가 문을 열어주었다. 마차를 탄 아리엘은 비록 느끼지 못했지만, 그 마부는 몰라보게 변한 아리엘의 모습을 은밀히 주시하고 잠시 동안 넋을 팔았다. 허나 마차에 같이 오른 벨린이 그를 쳐다보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는 마차를 몰았다.

마차가 아스티아노의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저녁이 되어가면서 붉은 노을빛이 아스티아노 거리 전체를 온통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신사 차림을 한 벨린이 옆에 붙어 앉은 아리엘을 보며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아리엘. 너는 그저 내 옆에서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절대 아무 소리도 내면 안돼. 모든 것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네."

벨린이 조용히 웃으며 물었다.

"내가 왜 다른 여자를 내버려두고 너와 이 일을 벌이려는지 알겠어?"

아리엘은 대답을 하지 못했고, 벨린이 답을 말했다.

"내가 아는 여자 중에서 이 일을 할 정도로 용감한 여자는 너 밖에 없거든."

벨린은 아리엘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녀는 영문을 잘 몰랐지만 주인님이 막 중대한 일을 시작했다는 예감에 직면해 있었다. 벨린 데 란테는 전쟁터에서 주로 보여왔던 날카로운 눈빛으로 창가 너머의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이 주인의 새로운 전쟁터가 될 것이 자명했다.


잠시후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멈췄다. 사위가 어둑어둑했다. 허나 그들이 당도한 산 마르틴가는 불야성을 이루는 번화가였다. 곳곳에 자리잡은 가로증의 푸른 불빛 아래에서 활보하는 신사 숙녀들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벨린 데 란테는 번화가 한 가운데 자리잡은 어느 건물을 응시했다. 고전적인 히스파니아풍으로 지어진 이층 저택이었다. 정원이 딸려 있었고, 정원 안에서는 교양곡과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입구 근처에서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내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고, 입구 근처의 표지판에는 필기체로 '뮤지엄 데 이스타나'라고 쓰여 있었다.

벨린이 마차를 끌고 온 마부를 올려보았다. 마부는 삼각모를 푹 눌러쓴 채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지금이 몇시지 조안?"

"오후 일곱 시."

마부가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 벨린이 대꾸했다.

"시간이 다 됐군."

마차를 몰고 온 금발머리 조안이 마차의 문을 열었다. 마부로 변장한 그 총사는 좌석 뒤에 가 강선이 파인 머스킷총을 숨겨놓고 있었다.

그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애써 쾌활하게 말했다.

"자네 말 따라 그들이 저곳에서 일을 벌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함정이 항상 통하는 건 아니지. 하지만 나라면 저곳으로 갈 거야."

"부디 자네의 생각이 맞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우리는 큰 공을 세우는 거니까."

조안이 웃어보이며 말했다. 벨린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되면 내가 자네에게 선물을 하나 주지. 자네 지금 잿밥에만 관심있는 거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거든."

귀족 신사로 변장한 총사가 아리엘에게 한번 눈을 흘기고서는 그렇게 말했다. 벨린과 아리엘을 번갈아 쳐다보던 조안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그럼에도 아리엘은 여전히 영문을 몰랐고, 그녀가 무언가를 눈치채기도 전에 벨린은 몸을 움직였다.

"그럼 시작하지."

이윽고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살롱 문화가 처음 히스파니아 제국에 생겨난 유래는 귀족과 지식인들의 사교모임이 발달하여 그들의 모임을 정기적으로 수용할 장소가 필요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어느 순간부터 돈이 많은 귀족들이나 평민 상공업자들, 저명한 학자들이 하나 둘, 사교모임을 극대화하고 자신들의 학술적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살롱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뮤지엄 데 이스타나의 정기 살롱 모임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곳은 사실상 제국의 온갖 고급정보와 소문이 밀집하는 잡탕 파티장 같은 곳이었다. 이스타나의 사교모임은 매주 금요일 저녁에 열렸는데, 그곳은 초대장 따위로 손님을 제한하는 모임은 아니었다. 허나 그 사교모임에 참석하면서 최소한 한 두 가지 이상의 흥밋거리 없이는 아무리 공작이고 백작이라고 해도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 연유 때문에 경비원들은 귀족처럼 잘 차려입은 벨린 데 란테를 아무런 제지없이 들여보냈다. 다만 무언가 정상적인 청년 귀족으로 보기에는 퇴폐적이었던 벨린의 행동이 두 경비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는 했다. 잘 차려입은 그 젊은 귀족은 오른 팔에 고급창녀로 보이는 갈색머리 여인을 끼고 나타났고, 살롱을 지키는 경비원들에게 란툰반도의 피렌체 금화 1두카트 씩을 튕겨줬던 것이었다. 경비원들에게 그는 별난 신사임에는 분명했고, 심지어 옷차림과 꾸민듯한 행동거짐이 외국인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정원을 지나가서 저택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리엘은 그저 주인의 품에 꼭 안겨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살롱 모임에 참석하려는 다른 방문객들에게 그를 더욱 퇴폐적으로 보이게 했다. 마치 걸어서까지 창녀에게 애무를 받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헌데 그 모습에 무언가 별난 것을 매우 대단한 것으로 생각해왔던 아스티아노의 상류계급 손님들은 서서히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런 고로 그의 위장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뮤지엄 데 이스타나는 아스티아노의 유명한 귀족 겸 탐험가 이스타나 후작의 저택을 박물관으로 활용한 곳이엇다. 그는 마법사이자 박물학자, 역사학자였으며 신대륙을 개척한 모험가였다. 황제 페란테2세에게 후작 작위를 받고서는 은퇴하여 자신의 세운 박물관에서 여러 명사들과 활발한 이야기를 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아스티아노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살롱은 제국 전체의 정세를 아우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여러 명사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학문적, 정치적, 역사적 발견과 주장을 설파하면서 감쪽같은 논리로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벨린 데 란테가 퇴폐적인 외국 귀족 흉내를 내어 이곳에 잠입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만약 아스티아노까지 성전기사단의 불온서적을 퍼트릴 자들이 침투한다면, 이곳만큼 좋은 자리가 없었다.


벨린은 아리엘과 함께 메인 홀의 쇼파에 앉아 박물관을 살펴보았다. 천장에는 여러 새들의 박제가 걸려 있었고 벽을 따라 진귀한 골동품들과 동물 박제들이 가득했다. 고대 제국의 유물과, 조각상들, 신대륙 문명의 여러 금은보화들이 장식을 이뤘다.


"실례합니다. 세뇨르."


한 늙은 신사가 다가와서 말했다.


"나는 이 박물관의 주인인 데 이스타나 후작입니다."


그는 라투니스어로 말하고 있었다. 벨린을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여 국제적인 공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가 대답했다.


"로베르토 델 라 로베라 백작이요. 피렌체 공화국의 시민으로 유랑차 왔지요."


"저희 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로베라 백작."


이스타나 후작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려고 했다. 허나 벨린은 그 순간 기지를 발휘했다. 그는 이스타나 후작에게 그의 이미지를 완전히 교란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아리엘을 이용했다.


"아, 잠깐만요, 후작. 정말 축복같은 일이오. 당신네 나라 여인은 정말 맛이 좋아 잠시도 참을 수 없다니까."


벨린이 후작의 악수를 받는 대신 아리엘을 더욱 바짝 붙여 껴 안았다. 당황한 아리엘은 신음소리라도 지를뻔 했으나, 아무 소리도 내서는 안된다는 주인의 말을 상기하고 꾹 참았다. 이윽고 벨린은 아리엘의 가슴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애무하며 깊은 키스에 들어갔다. 히스파니아의 명사들이 모두들 보는 앞에서, 적나라한 애정행각이 펼쳐진 거였다.

후작이 당혹감에 얼굴을 붉혔다.

그들은 후작이 사라질 때까지 키스에 열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뒤에서 불쾌감에 히스파니아어로 욕을 하며 사라지는 후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봉꾼 같으니, 이래서 란툰반도치들은 별 수 없다니까."


이윽고, 시간이 흘러 란툰반도에서 온 청년 귀족에게 명사들의 관심이 차츰 멀어질 무렵, 이스타나 후작의 사회와 함께 본격적인 발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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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uvia.egloos.com이라는 제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남기는 넋두리 따위를 올리곤 해요. 뭔 글인지 궁금하면 오시던가요. 뭐 스토리에 따른 고민과 이 캐릭터가 어쩌고저쩌고 이랬으면 좋겠는데 하는 뭐 그런 잡담이지요. 때로는 제 험난한(?)군생활의 단편도 볼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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