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 총사(84)
그 후부터 벨린의 공격양상이 완전 180도 변했다.
최대한 몸을 움직여 까트린의 검을 피해왔던 벨린이 이제는 황녀가 하사한 검이 상하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듯 까트린 데 세비아노의 기병도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곧 그는 데 세비아노에게 날카로운 공격을 연속으로 퍼붓기 시작했다.
그가 베기보다는 찌르기를 위주로 실전적인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찌르기는 말에서 내려 싸우고 있는 까트린 데 세비아노 같은 기병에게는 막기 어려운 공격이었다. 그가 까트린의 기병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연달아 날카로운 찌르기 공격을 가하는 바람에, 그녀는 그 공격을 쳐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공격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야 했다.
공격의 주도권이 벨린에게 넘어가는 순간, 욱신거리는 총상을 참으며 싸워왔던 까트린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자, 사브레를 마치 바이요넷(총검)처럼 다루는군.'
그녀가 속으로 되내며 벨린 데 란테의 검을 받아쳤다. 그의 검을 물리치면서 받은 충격이 그녀가 입은 상처를 계속 자극했다. 그녀조차도 너무 불리한 여건에서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여러 번 공격을 막으며 물러선 끝에, 마침내 방파제를 쌓아 만든 부두의 돌턱에 뒤꿈치가 닿았다. 그녀는 재빨리 오래 된 선착장 위로 펄쩍 뛰었다. 벨린 데 란테가 사브레를 휘두르며 그녀를 뒤따라 왔다. 두 사람이 갑자기 선착장에 오르는 바람에 오랫동안 보수되지 않아 군데군데 구멍이 난 낡은 판대기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까트린으로서는 배수의 진을 친 격이었다. 이곳에서도 밀려난다면 기다리는 것은 선착장 끝에 넘실거리는 깊은 바닷물 뿐이었다. 대형 원양선박들이 정박할 수 있도록 이곳의 수심은 깊었다.
이곳까지 다다르자, 두 남녀는 결투중 암묵적인 합의를 하게 되었다.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눈빛으로 제의를 교환하고 전투행위를 중단한 채 잠시 숨을 골랐다. 해가 지면서 주홍빛무리가 그들의 몸과 주변 풍경을 완전히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두 사람의 머리칼이 미친듯이 흩날렸다.
숨을 헐떡이던 까트린은 분노가 가라앉아 한결 냉정해진 눈빛으로
벨린 데 란테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왼손으로 검을 든 채 오른손으로 총상을 부여잡았다. 고통을 참아내야했다. 명예와 복수를 위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 자를 쓰러뜨려야 했다.
두 남녀가 서 있는 선착장이 삐그덕거렸다.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선착장의 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널판지가 부러져 물에 빠질지도 모르는 아찔함이 발밑에 감돌았다.
그녀를 궁지에 몬 젊은 총사가 제의했다.
"원한다면 안전한 곳으로 내려가서 싸울 수도 있어."
"아니, 싫어!"
그녀가 힘차게 고개를 저였다. 그와 함께 그녀의 휴식시간은 끝이 나갔다. 여 기병대원이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돌격자세를 취했다. 앞다리를 궆여 상대를 일격에 제압하는 자세. 적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리는데 익숙한 기병에게 잘 어울리는 태세였다. 마치 말을 타고 돌격을 준비하는 흉갑기병처럼 벨린 데 란테의 빈틈이 보이자마자 그녀가 튀어들어왔다.
까트린이 선착장 발판을 힘차게 딛고 뛰어서는 젊은 총사를 뒤로 밀어냈다. 짧은 순간 검광이 두 세차례 번쩍거렸다.
그러나 벨린 데 란테는 검이 상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그녀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물론 그가 입은 타격은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까트린으로써는 공격을 실패했다는 게 비아냥이 나올 일이었다.
"말을 타고 있었다면 단숨에 베어버렸을 텐데!"
그녀가 으르렁거렸다. 벨린이 응수했다.
"머스킷이 있다면 이렇게 땀흘릴 일도 없지."
그가 숨을 돌린 후 물었다.
"아직도 네 약속은 유효한가?"
"기병은 한번 약속한 것을 어기지 않아."
벨린이 땀을 쓸어내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완전히 여유를 되찾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표정으로 치기를 드러내는 순간, 벨린 데 란테가 그녀에게 헛점을 보였다. 하체의 빈 공간이 드러났던 것이다.
이 결투를 끝낼 절호의 찬스로 보였다.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녀가 기합을 지르며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서 하체를 있는 힘껏 찌르고 들어갔다.
그러나 까트린이 검을 내지르는 순간 그녀는 벨린 데 란테가 준비한 회심의 도발에 걸려든 셈이 됐다. 그는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검으로 재빨리 하체를 방어하고 교묘하게 그녀의 검을 비틀어 막아 교차시켜서는 그녀의 기병도와 자신의 검을 풀지 못하도록 제대로 맞물렸다. 마치 곡선 형태의 두 검이 제대로 갈고리를 형성한 모양새였다.
"이런!"
깜짝 놀란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검에 힘을주고 그를 억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벨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한 힘 때문에 벨린 데 란테의 사브레에 금이 갈 지경이었지만, 그는 검을 빼지 않았다. 이곳에서 힘겨루기로 그녀를 제압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두 남녀의 얼굴이 불과 십센티 떨어진 거리로 서로를 보았다. 까트린의 얼굴은 완전 사색이 되었고, 벨린 데 란테는 한결 여유가 있었다.
그가 한마디 했다.
"기병이 보병의 방진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 지 알지?"
까트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벨린 데 란테의 검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황녀가 하사한 검이 부러지려고 하는데도 벨린 데 란테는 그녀의 검을 엮어 풀지 않은 것이다.
까트린이 소리쳤다.
"이, 바보! 너 지금..."
"바이요넷(bayonet)에 낙마당해 보시지, 세뇨리타."
벨린이 있는 힘껏 다하여 사브레를 힘껏 내리 꽂아 비틀었다. 그 동작에 손목이 꺾인 까트린은 자기도 모르게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이윽고 쇳소리와 함께 강한 타격이 가해지더니 그녀의 검이 하늘로 튕겨 손아귀에서 튕겨져버렸다.
"앗!"
까트린이 탄성을 질렀다. 그녀의 시선이 곧 하늘로 튕겨올라간 아름다운 곡선의 기병도로 향했다. 그 기병도가 석양의 햇빛에 반짝거리더니 선착장 위를 벗어나 바다로 내리 꽃혔다.
그 다음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펼친 행동은 심지어 벨린 데 란테마저도 당황하게 할 것이었다.
기병도는 푸른 바다로 빠져버렸고, 그녀는 아무런 주저없이 검을 건지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벨린 데 란테로서는 결코 바라지도 않았던 일이었고, 예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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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은 군생활에 있어 행복이랍니다..;; 허허.. 그래야 휴가나가서 한 5연참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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