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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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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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0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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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22)

DUMMY

"그녀와 저는 이제 원수지간이니까요."

머리를 어깨에 기대고 있던 이사벨은 벨린이 가벼이 떨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냉정을 유지할 줄만 알았던 벨린의 반응에 충격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모를 아픔이 그녀의 가슴을 찔렀고, 그 덕택에 더욱 더 그의 말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여자는..." 벨린이 웃음을 거두고 정면을 바라본 채 말했다.

"자기 목적을 위해 제 사랑과 열정을 이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사랑하던 많은 이들이 죽었죠. 저는 그녀를 갈가리 쩢어죽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했죠."

벨린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사벨이 그러한 벨린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것은 사냥꾼을 달래기 위한 그녀만의 어루만짐이었다.

벨린이 말을 이었다.

"저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여자가 다시 히스파니아로 돌아왔다는 것을요. 그녀는 이번에도 많은 것을 앗아가려 할 겁니다. 유감스러운 말입니다만, 폐하."

벨린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보았다. 이사벨은 어둠이 드리워진 그 표정에서 그의 깊은 상처를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사벨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꾹 참았다.

벨린이 말했다.

"이번에 그녀는 폐하를 노릴 겁니다. 아마 폐하의 옥좌와, 옥체 둘 다 노리려고 하겠지요."

"그 여자, 마녀라도 되는 것이냐?"

이사벨이 침착하게 물었다. 벨린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빌랜드인입니다. 제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안젤라 노스트윈드라는 그녀의 이름과, 그녀가 저와 같은 총사라는 것 뿐입니다. 최근에는 별명까지 생겼더군요. '머스킷트리스'라고요."

"머스킷트리스."

이사벨이 차가운 어조로 따라 말했다. 여자 총사를 뜻하는 그 빌랜드어가 모두의 뇌리에서 잠시 동안 맴돌았다.

이사벨은 벨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국정을 다스려온 그녀는 진지한 상황에서는 한없이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 진지한 표정이 벨린 데 란테에게 때로는 귀엽게 느껴지고는 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사벨은 그 침묵을 단번에 깨트릴 법한 위풍당당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이렇게 단정지었다.

"그런 천한 여자. 짐이 알 바 아니야."

이사벨이 벨린 데 란테에 무릎에 누웠다. 그녀의 표정과 행동거짐에서, 제왕다운 풍모가, 황제의 피를 이어받은 황실 후계자 다운 풍모가 가득 서렸다.

이사벨이 벨린을 올려보고 눈을 감은 채 한마디 했다.

"짐에게는 그런 악녀 따위는 한방에 날려보낼 사냥꾼이 있는걸."

그제야 벨린 데 란테 또한 그녀에게 웃어보였다. 여제가 눈을 감은 채 황실의 예법이 어우러진 어조로 대답했다.

"짐은 그대에게 그 악녀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겠노라. 하지만 참 다행이로구나. 데 란테. 그녀와의 사랑이 배신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니까."

벨린은 그녀의 몸 위에 총사대 코트를 덮어주었다. 이사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이 들려는 모양이었다. 벨린은 그녀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쓸어만져주었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그녀의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한 다음, 이사벨 데 아라고른이 황제로 등극한 이래 생애 최고의 선물을 해주었다.

"사랑합니다. 황제 폐하. 영원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 마음이 변치 않을 때까지."


* * *


총사대의 호위하에 밤새도록 달린 마차는 새벽이 지나 아침해가 드리워지자, 그 위치를 아침햇살 아래 만천하에 알리게 되었다. 그들은 아스티아노를 한참 벗어나, 카스티아 지방의 어느 농경지에 자리잡은 모양이었다. 넓디 넓은 밀 경작지와 풍차가 간간히 보이는 시골임에 분명했다.

아침햇살이 새 황제가 탑승한 마차로 쏟아져내렸다. 마차는 진작에 멈춰 있었고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여제를 무릎에 뉘인 채 자고 있는 총사대 대위의 귓가에 들려왔다. 이윽고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그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아침부터 대단히 실례합니다만, 폐하."

자코모 다빈치의 걸걸한 목소리였다.

"이제 그만 일어나셔야 하겠습니다. 아마 데 란테 대위도 그것을 바라지 않을까요?"

다빈치 박사의 목소리에 두 남녀는 삽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알몸에 코트만 덮고 자고 있던 이사벨은 서둘러 셔츠를 껴입었고, 벨린은 재빨리 커튼이 쳐진 창가 너머로 밖을 엿봤다.

밖에는 검은 여행용 가방과 지팡이를 든 자코모 다빈치가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이사벨이 서둘러 산발이 된 흑단머리를 가지런히 모으고서는 리본으로 고정했다. 그녀가 총사대 제복 코트를 입으며 말했다.

"문을 열어라. 짐은 준비가 다 되었느니라."

벨린이 그 말에 문을 활짝 열었다. 옷매무새를 갖춘 이사벨이 재빨리 벨린과 좌석에 마주보고 앉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녀가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문가를 바라보았다.

안경을 쓴 자코모 다빈치가 절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폐하. 마차에서 주무시는데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참을 만 했느니라."

자코모 다빈치가 손을 내밀었다. 이사벨이 그 노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벨린 데 란테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차는 어느 마을의 광장에 자리잡은 모양이었다. 곳곳에 말을 탄 총사대원들과 마차에 탄 총사대원들이 총을 어깨에 맨 채 돌아다녔다. 어떤 이들은 아침의 싸늘한 기운에 대비해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자코모 다빈치가 광장을 가로질러 그들을 인도하며 유쾌하게 말했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폐하. 그 어떤 성찬보다도 만족하실 겁니다."


---------


짧아서 죄송합니다. 이 글 쓰는데 컴퓨터가 다운되는 바람에 무려 세번이나 다시 써야 했거든요. 정말 우여곡절끝에 쓴 글이에요.

-_-; 주말에 쓸데없는 작업때문에 고생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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