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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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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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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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1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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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23)

DUMMY

자코모 다빈치는 여제와 그녀의 사냥꾼을 어느 가옥으로 데리고 갔다. 마을 광장의 외각에 자리잡은 하얀 회반죽을 칠한 이층 집이었다. 부유한 농가의 저택처럼 보였다. 붉은 기와와 굴뚝이 있는 그 저택의 앞마당에는 닭 몇 마리가 꼬꼬댁거리며 모이를 쪼고 있었다. 그 집 너머로 갓 파종한 밀의 파릇파릇한 물결이 아침햇살을 받아 강처럼 반짝거렸다.

총사대원들이 길 양옆에 일렬로 서서 보호하는 가운데 자코모 다빈치가 집의 담벼락에 멈춰 섰다.

깃털달린 총사대모자에 제복차림을 한 이사벨이 담벽에 등을 기댔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겠어. 카탈루니아의 산 마리아군.” 여제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봄기운의 아지랑이가 꽃피면서 조각같은 하얀 구름들이 푸른하늘을 수놓았다.

그녀가 탄식하듯 말했다. “아름다워, 하지만 지금 이 시기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아.”

이사벨이 고개를 돌려 벨린을 응시했다.

“톨레노 공작의 군대를 맞이하려면 아직 75리그는 더 나아가야해.”

그것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소리였다. 벨린이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다빈치 박사. 이곳에서 고작 아침식사를 하려고 폐하를 내리게 한 건 아니겠지요.”

자코모 다빈치가 유쾌하게 웃어보였다.

“폐하께서 내게 한 가지를 말씀하지 않고 보내셨더군. 급하셔서 그랬던 것 같네만.”

“그게 무슨 말이지, 박사.” 이사벨이 물었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스스로가 그 잘못을 깨달아버렸다.

“이런, 맙소사.” 이사벨이 인상을 찡그리며 재빨리 박사에게 눈빛을 던졌다.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어! 그가 눈치 채었느냐? 눈치 챘어?”

“목소리가 너무 크십니다.”

박사가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 제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추기경과 첫마디를 나누면서 알아차렸지요.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폐하. 그는 아직 폐하께서 이곳에 계신 줄 모르니까요.”

"그 말은."

벨린이 다빈치의 말을 가로막았다. "폐하께서 정체를 숨기고 추기경과 함께 이곳까지 왔다는 소리로군."

"추기경은 짐은 호화로운 황궁 마차에 앞서 간 줄 알 거야. 휴, 정말 다행이군. 비밀에 그렇게 신경을 썼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판을 깨려고 하다니."

이사벨이 이렇게 말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쓸어내렸다. 벨린이 어처구니 없다는 투로 반문했다. "요즘들어 폐하께서 폐하답지 않으시군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는데 저만 그 사실을 몰랐다니요."

"미안해, 벨린. 그때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어. 네가 짐을 너무 달아오르게 하는 바람에."

그녀가 애처로운 눈길로 벨린을 응시하며 사과했다. 벨린은 그저 팔짱만 꼈다. 자코모 다빈치가 분위기를 환기할 겸 유쾌한 어조로 작게 말했다.

“분명한 건, 추기경이 좋은 미끼를 물었다는 겁니다. 그가 아침식사에 초대해서 이제 막 가려던 참입니다. 어디 한번 그의 본심을 들어보시겠습니까, 폐하? 그를 의심하고는 계셨지만 증거를 잡지 못한 줄로 압니다만.”

“여부가 있겠느냐.” 여제가 삼각모를 푹 눌러쓰며 말했다. “이 차림이라면 들키는 일은 없을 거야. 그렇지, 벨린?”

“예. 폐하.” 벨린이 간단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희의 뒤에 계십시오, 폐하. 원하시는대로 그 자를 함정에 빠트릴 테니까요."

박사가 지팡이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데 란테 대위. 자네는 만약을 대비하여 총사대를 준비시켜야겠군."

"여부가 있겠습니까." 기분 상한 벨린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잠시 후 그들은 총사대원이 지키는 열린 현관문을 통하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응접실이보였다. 하얀 회반죽을 칠한 벽과 커튼이 달린 창문, 부엌쪽에 설치된 벽난로, 식탁과 의자가 보였다.

응접실에는 이미 세 사람이 있었다. 두 명은 테이블 뒤에 서 있었고, 한명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식탁에 앉은 이는 진홍색 사제복을 입은 프란체스코 데 리베라 추기경이었고, 뒤에 서 있는 여행자 복장의 사나이들은 추기경의 수행원들로 보였다.

백발의 추기경이 다가오는 자코모 다빈치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벨린 데 란테를 알아본 것 같기는 했다. 그가 저번에 디에네 황녀를 구출하면서 워낙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탓이다.

자코모 다빈치가 태연히 자리에 앉았다.

“커피라.” 그의 표정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좋은 기호품을 알고 계시는군요. 추기경 예하.”

“교황성하를 알현하다 란툰반도에서 이 음료를 배웠소, 박사.”

추기경이 기분좋은 어조로 말했다. “이교도들만이 이 즐거움을 누리게 할 순 없었지.”

추기경이 도자기 찻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다빈치 뒤에 서 있는 벨린에게 시선을 모았다.

“자네가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군. 벨린 데 란테 대위.”

리베라 추기경이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마차를 그만 놓쳤죠.” 하고 벨린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채 만 채 추기경이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다른 동료를 데려온 것 같군. 저 자도 자네가 데리고 다니는 그 늑대 사냥꾼 가운데 하나인가?”

“조안 데 아스티아노라고 훌륭한 총사대원입니다. 예하.”

벨린이 능청스럽게 넘어갔다. 이사벨은 고개를 숙인 채 벽에 기대어 그럴듯하게 서 있었다. 다행히 프란체스코 데 리베라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데 란테 대위를 데리고 온 것을 봐서는 박사와 대위가 꽤나 절친한 사이인 모양이군.”

“비밀을 공유해도 될 정도지요.” 자코모가 너스레를 떨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대위도 이번 일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앞으로 다가올 폭풍에 대비하여 승자의 편에 서고 싶을 뿐이오.”

“신을 믿지 않는 불경한 난봉꾼에게 잘 어울리는 선택이군.” 추기경이 날카롭게 한마디 했다. “나는 자네가 이사벨 데 아라고른과 몸을 섞었다고 들었어, 벨린 데 란테. 자네는 뻔뻔스럽게도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지. 아무리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네만?”

“몸을 섞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죠.” 벨린이 웃음을 잃지 않으며 대답했다. “나는 설령 원수라 해도 그 원수가 절세미인이라면 본능대로 하고 말테니까요."

추기경은 불쾌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코모가 말을 걸었다.

"어젯밤에 하던 이야기를 마저하지요. 데 란테 대위에게도 그 이야기를 해 주었소. 우리는 돈 주스티안이 우리들과 당신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궁금하다오."

"당신들은 강을 건넜으니 숨길 필요가 없겠지."

리베라 추기경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교회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을 제공하기로 약속했소. 히스파니아 교회가 전 세계를 영향력에 두도록 하겠다고 약조했지."

"허풍처럼 들리는군요." 벨린이 비웃으며 한마디 했다.

"무슨 근거로 그의 말을 믿지요, 예하?"

추기경이 설명했다.

"에우로파에서 동방의 신세계를 차지할 국가는 오직 빌랜드와 히스파니아뿐. 돈 주스티안은 단지 빌랜드에게 약간의 신세계를 양보하는 댓가로 큰 이득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네."

"적국의 협조를 얻는 대가로 우리가 벌여야할 일은 뭡니까?" 벨린이 물었다. 그러자 추기경이 커피잔에 다시 입을 대며 간단히 말했다.

"그들은 혁명을 원해."

그 말을 들은 자코모 다빈치의 안경이 마치 흥미로움 때문에 그렇기라도 한듯 반짝반짝 빛이 났다. 추기경은 태연히 바구니에 담긴 빵을 한 조각 입에 물어 씹었다. 마치 이 자리에서 식욕이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인 것처럼.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있소?" 자코모가 속삭이듯 물었다.

"이미 실행됐지. 병중인 황제가 서거한 것만 봐도 모르겠소?"

추기경이 도리어 반문했다.

"동방회사군이 움직일 거요. 육군 총사령관인 톨레도 공작이 국외의 전쟁터에서 더 많은 연대를 복귀시키기 전에 기습적으로 끝낼 예정이지요."

벨린이 날카롭게 질문했다.

"동방회사군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데 어떻게 제국 정규군과 대항할 수 있지?"

"2개 함대가 얼마 전에 은밀히 회항했지, 대위. 그들은 이번 혁명을 지원하기로 한 빌랜드의 총사연대와 합류하여 세력을 불렸어."

벨린 데 란테의 얼굴이 굳어졌다. 추기경은 그의 변화를 즐기는 투였다.

"지금 이사벨 데 아라고른은 아무 것도 모르고 톨레도로 향하고 있네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 혁명군 뿐일 거야. 그들은 2개 연대가 넘는 병력인 데다 포병과 기병대까지 포함되어 있으니까."

"반란군 치고는 강력한 전력이군." 벨린이 의심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자네도 이제 그 반란군의 일원이 되려하지 않나? 벨린 데 란테 대위."

추기경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이야기를 경청한 자코모 다빈치는 어깨를 으쓱하며 꾸민듯한 몸짓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총사로 변복한 이사벨 데 아라고른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 어떠한 표정변화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필시 인내심을 발휘하며 참고 있을 태세였다. 그리고 추기경이 완전히 자백할 때가지 마음 속으로 칼을 갈고 있을 터였다.

자코모 다빈치가 차분히 말했다.

"나는 당신이 추기경으로 임명한 이례로 20년 동안 이 나라를 보살폈다 들었소. 그런데 어째서 혁명을 지원하려고 하는 거요? 외국인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군요."

"이게 다 그녀가 분수를 모르고 까불어 그렇게 된 거지."

추기경이 대꾸했다. 그것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했다.

제국을 승계받으려는 당찬 여인이 움직인 것이 바로 그때였다. 그녀는 대뜸 앞으로 걸어갔고, 벨린 데 란테가 저지하려고 하기도 전에 직소곳이 자코모 다빈치의 오른쪽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는 총사대 삼각모를 벗어 벨린 데 란테에게 휙 던졌다.

프란체스코 데 리베라 추기경의 얼굴에 교활한 느낌의 그 미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차기 여제가 노려보기 시작하자 그의 표정 변화는 더욱 더 극명해졌다.

자코모가 꾸민 듯한 놀림으로 커피가 담긴 잔을 그녀에게 권했다.

"커피 한잔 드시겠습니까,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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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을 써주시는 용감한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런의미에서 이글이 더 떠야 할텐데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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