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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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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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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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25)

DUMMY

이사벨 여제와 그 수행원들은 카탈루니아 지방의 산 마리아 마을에서 생애 가장 긴 오전을 보냈다. 여제를 호위한 1개 중대 규모의 150명에 달하는 총사대원들과 함께, 그들은 간단히 말하자면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사벨 여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반나절을 보낸 데에는 자명한 두 현실 때문이었다. 계획대로 여제가 탄 마차로 속인 본대를 따라가자니 혁명군의 함정에 걸려들 것이 뻔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스티아노로 돌아가자니 위험 부담이 너무도 컸다.

수도 지역의 총사대를 책임진 주안 스피놀라가 배신자였던데다, 추기경이 수도에 남겨둔 700여명의 헌병군들도 결코 믿을 수 있는 집단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기경의 반역 행위를 모른 채 본연에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제국 육군 총사령관 톨레도 공작을 만나 계엄령을 선포하고 그가 지휘하는 7개 머스킷 연대와 합세하는 것이었으나, 그 전에 추기경의 자백대로 혁명군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면 끝장나는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상황에서 무리하게 톨레도로 가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리베라 추기경이 들고 온 황제의 관 상자에는 관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추기경은 그 사실을 즉각 자백했다. 추기경이 저지른 반역행위에 비해 그의 신문이 비교적 예의있게 치러진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민가 안에서 심문받는 내내, 그는 구속되거나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 모두들 이 문제만큼은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했다.

다만 추기경은 더 이상 허풍을 떨거나 태연한 척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벌벌 떨고 있었고, 이사벨 데 아라고른 여제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몸둘 바를 몰라 아는 사실을 자포자기로 털어놓을 뿐이었다.

"황제의 관을 넘기는 것은 주스티안의 요구사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관을 아스티아노에 남겨놓았지만 동방회사에 직접 넘기지는 않았습니다. 진짜 관은 아스티아노의 헌병군 본부에 있지요. 제가 수도로 돌아오는대로 그 관을 가지고 디에네 데 아라고른 마마를 황제로 옹립하기로 했었습니다."

"주스티안이 관을 차지하기는 시간문제겠구나."

이사벨이 분노에 몸을 떨며 말했다.

"네가 자랑하던 그 카라비나리(carabinari 헌병군)들이 반란에 잘도 따랐겠다?"

"헌병군들은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폐하. 그들은 결백합니다. 정말입니다."

"믿을 수 없다. 헌병군의 도움 없이 그들이 어떻게 수도를 점령하겠느냐?"

그때 자코모 다빈치가 말했다.

"추기경의 말이 거짓은 아닐 겁니다, 폐하. 수도에서 그들의 행동거짐을 보았는데, 말단 병사들부터 고급지휘관들까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기색이었거든요. 그것이 만약 연극이었다면 정말 대단한 실력이라 할 수 있죠."

다빈치 박사가 생각에 잠겼다. "그 말은 즉... 녀석들이 아스티아노의 헌병군을 제압할 정도로 강한 힘을 수도에 포진해놨다는 소리가 됩니다. 아직 그 힘이 군대인지, 아니면 마법적인 힘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눈을 뜨고 있었는데 그게 가능하단 말이냐?"

이사벨이 볼멘 소리로 반문했다. 벨린이 대답했다.

"주안 스피놀라가 배신자라면 가능합니다, 폐하. 우리는 그를 너무 철석같이 믿었어요. 제가 제공받은 정보 가운데에는 주안 스피놀라에게 제공받은 것도 상당수였습니다. 그 자는 우리를 기만하고 안심시킬 수 있는 적절한 권력과 역정보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벨린 데 란테의 그 말은 방안의 모든 이들을 침묵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이사벨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였다. 인정하기 싫은 진실은 사람을 할말 없게 만든다.

여제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대어 물었다.

"총사대장에게 보낸 전령은 아직 소식이 없느냐?"

"아직입니다, 폐하."

벨린이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정오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5리그(35킬로미터) 떨어진 대열에서 가짜 여제를 호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는 더 많은 총사 호위대와 황실 용기병대까지 이끌고 있었고, 만약 그를 함정에 빠지기 전에 돌려 세운다면 더 많은 군사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돈 주스티안이 손을 쓰기 전에 그의 음모를 잠재우는 게 가능할 지도...

모두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즈음, 밖에서 모든 이들을 한순간 긴장에 빠트릴 소리가 울려퍼졌다.

바로 총소리였다. 콩볶는듯한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발산되어 집안으로 메아리쳤다.

이사벨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벨린이 재빨리 창가를 바라보았다.

"총사대원이 발포한 거야."

이윽고 연달아 총소리가 몇 번 더 울려퍼졌다. 누군가 히스파니아어로 긴박하게 경고를 전파하는 외침까지 들려왔다.

벨린 데 란테가 재빨리 문으로 움직였다. 이사벨이 그를 따르려 했다.

"안에 계십시오, 폐하. 위험합니다."

"위험 따윈 감수할 수 있어."

"만용을 부릴 필요는 없습니다."

벨린 데 란테가 뒤로 돌아 그녀를 제지하며 말했다. 이사벨이 흠칫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망울에 연민과 걱정의 기색이 가득했다.

다빈치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남녀를 번갈아 보았다.

"폐하를 부탁합니다. 다빈치 박사."

벨린은 이렇게 말하며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을 광장으로 뛰어가는 내내 마을 외각 지역에서 머스킷총의 발포음이 연달아 울려퍼졌다. 검은 삼각모를 쓴 총사대원들이 마차와 집에 몸을 숨긴 채 마을 바깥의 들판으로 총을 겨누어 쏘고 있었다.

벨린 데 란테가 검을 뽑아 사격을 지휘하는 중위와 마주쳤다.

"무슨 일이지, 중위?"

"아군의 깃발입니다, 카비탄(대위)! 기병대의 추격을 받고 있습니다!"

중위가 전방을 가리키며 외쳤다. "엄호하라!" 벨린은 그 광경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일련의 말 탄 총사대원들이 전속력으로 질주해오고 있었다. 족히 스무 명 정도는 되었다. 총사대를 상징하는 기수를 대동한 채 언덕 아래 벌판으로 뛰어드는 형국이었다. 허나 그들은 분명 쫓기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위험천만하게 말을 탄 일련의 경기병들이 나팔을 불며 전속력으로 따라붙었다. 군기든 기수를 앞세운 그들의 수는 총사대원들의 배나 되었고 손에는 곡선의 기병도를 들었다.

곳곳에서 총사대원들이 머스킷총을 산발적으로 쏘아댔다. 화망을 형성해 적을 공격하면 아군까지 피해를 입을 테니, 강선파인 머스킷총의 장점을 활용하여 저격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적들은 소화기의 사거리 밖에 있었다. 히스파니아 총사들이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정체불명의 적 기병대가 마상에서 일제히 권총을 쏘아 말을 탄 총사대원을 저격했다. 콩볶는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총사대원들 여럿이 낙마하여 허물어져 내렸다. 바로 그 순간, 벨린 데 란테가 적의 정체를 파악했다.

"후사르(검기병의 일종) 정찰대군, 중위. 저들의 군기가 보이나?"

"히스파니아군의 깃발인가요?" 중위가 오른손에 권총을 뽑아들며 반문했다.

"아니, 빌랜드인들이다."

중위가 뭐라구요? 하고 반문하기도 전에 벨린 데 란테가 마을 외곽의 울타리로 뛰어들어갔다. 아직도 그들이 마을로 들어서려면 최소한 300미터는 더 질주해야 했다. 마을에 주둔한 총사대원들이 정교한 사격술로 추격자들을 여럿 쓰러트렸지만 따라붙은 추격자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중위가 허겁지겁 따라와서 외쳤다.

"아직도 거리가 멉니다. 이대로 가다간 저 경기병들이 전우들을 다 죽이겠어요!"

벨린은 울타리 뒤에 숨어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가 빌랜드인들이라도 단언한 정체불명의 경기병 정찰대가 점점 마을까지 따라들어왔다. 사냥을 마친 후 무사히 도주할 자신이 있다는 소리였다.

벨린 데 란테가 사냥감을 노리는 독수리처럼 적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중위에게 말했다.

"머스킷총을 한 자루 줘.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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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린 데 란테가 애용하는 무기는 머스킷총이 확실하지만, 자신이 전용으로 쓰는 이름 붙인 무기 따위는 없습니다. 그는 여러 전투에서 총을 쏘지만 매번 망가져서 다른 총을 얻어 쓰곤 하지요. 이런 경우처럼요. 검이 망가지는 바람에 쓰지 않은지도 꽤 됐네요.


전쟁을 전사가 아닌 군인이 하는 시대가 배경인지라, 만약에 주인공이 부각되어야 한다면, 무기가 아닌 그 무기를 극복할 인성이 부각되어야하지 않나 했답니다. ('성검'이라는 개념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주인공이 탄약가방에 들고 다니는 마력이 담긴 탄약도 같은 맥락에서 특별한 이름이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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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케 이 글을 계속 쓰고 있답니다. 비인기 장르(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라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깽판치는 이상한 글보다야 이런 글이 더 낫다고 봅니다... 리플 환영, 비평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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