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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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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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2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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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26)

DUMMY

울타리에 있는 총사대원들 중에 막 머스킷총의 플린트락 장치에 화약을 붓고 약실을 닫은 대원이 있었다. 그는 벨린 데 란테의 말을 들은 것이 분명한 듯, 긴장이 만연한 기색으로 자신의 총을 넘겼다.

총을 넘겨준 대원이 벨린 데 란테에게 경외어린 시선을 남겼다. 총사대원들 사이에서 구릿빛 피부에 긴 갈색 머리칼을 묶고 다니는 이 총사대 대위는 이제 전설적인 존재로 군림해가던 찰나였다.

그의 신출귀몰한 사격술이 이 자리에서 구현될 터였다. 벨린은 강신이 파인 머스킷총의 가늠자로 전방의 표적을 세심히 조준하였다. 아무도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조준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모두들 저 총사대 대위가 사거리를 벗어난 표적에 대해 가늠자의 성능을 초월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타앙.

머스킷총의 날카로운 총성이 허공을 갈랐다. 중위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벨린 데 란테가 울타리에 숨어 날린 총탄은 300미터나 되는 거리를 날았다. 처음에는 그가 무엇을 겨누고 쏘았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었다. 추격은 계속되고 있었고, 더욱 더 가까워지면 다가오는 총사대원들이 도리어 시야를 가려 사격의 기회를 놓치게 될 터였다.

그러나 적 후사르 정찰대가 일순간 일제히 멈춰버러자, 총사대원 모두들 숨을 죽였다. 그것은 벨린 데 란테가 무언가를 명중시켰다는 소리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기를 든 적의 기수가 낙마하여 쓰러지자 후사르 기병대 전원이 모두 발목이 잡혔다. 그들은 추격을 멈췄고 기수와 가까이 있던 투구를 쓴 기병대원이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오래 있을 수 없는 일이었었다. 적 기병들은 이미 적의 소화기 사정권에 들어왔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혔고, 사실 그보다는 기수를 쓰러트린 그 불운의 한 방이 기병들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입힌 게 틀림 없었다.

적 기병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피로 물든 군기와 시체만을 벌판에 남긴 채. 그와 동시에 쫒기던 총사대원들은 아군이 있는 마을을 향해 말을 몰아 신속히 진입했다. 일각을 다투던 추격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총사대원들이 광장에 다달아 멈춰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벨린은 적의 시체가 있는 벌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직은 위험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적의 군기를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위험을 무릅쓰고 있었다. 중위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며 벨린을 따랐고 울타리에서 총을 쏘던 총사대원들 모두가 뒤를 이었다.

얼마 후, 벨린은 적 기병대원의 시체 앞에서 멈춰섰다. 풀숲에 쳐박힌 적 기병대 기수가 군기를 놓지 않은 채 숨이 끊어져 있었다. 총탄에 가슴이 꿰뚫린 채, 낙마하면서 목이 부러져 즉사한 거였다.

이 히스파니아 총사대 대위가 알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기병대원들의 복장과 군기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제대로 보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붉은색 돌만(후사르들이 입는 두터운 외투)에 가죽 털모자를 쓴 복장과, 가슴에 두른 하얀색 수장까지, 히스파니아 기병대가 아니었다. 기수가 품에 안고 죽은 푸른색 군기와 그 깃대 위에 달린 국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붉은 색과 푸른 색 바탕에 흰 십자가가 겹쳐진 그 국기는 빌랜드인들이 주도하여 새운 새로운 브리타나 연합왕국의 깃발이었다.

벨린은 시체에서 깃대를 강제로 잡아 당겨 빼앗았다. 중위가 말했다.

"전 이런 군기를 한번도 본 적 없습니다."

"성 조지 경기병연대의 깃발이야." 벨린이 적군의 깃발을 들어올린 채로 말했다. "이 놈들은 내전 시기에도 신교도 편에 서서 참전한 바 있어. 그들이 돌아왔군."

"맙소사, 그렇다면 브리타나인들이 제국을 침공한 거로군요!"

벨린은 대답하지 않고 깃대를 어깨에 인 채 마을로 돌아갔다. 주인에게 보여줄 새로운 증거가 있었다. 피묻은 이 깃발이 여제의 판단력과 결심을 세워줄 것이다.

마을 광장에 도착한 벨린은 총사대원들이 부상당한 동료들을 응급처치하고 보살피는 장면을 보았다. 그들 가운데 이사벨 여제와 자코모 다빈치가 있었다. 다빈치는 총사대원들이 들것에 실어온 어느 부상자를 돌보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 이사벨 여제가 벨린 데 란테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부상자에게 몸을 기울여 앉아 있었다.

이사벨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벨린을 알아보며 재빨리 말했다.

"남작이 돌아왔어!"

부상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벨린이 군기를 바닥에 꽂아놓은 채 뛰었다. 그 부상자는 다름이 아니라 총사대장 호르세 데 카사델라였다.

"각하!"

벨린이 중년의 총사대장을 내려보았다. 그는 가슴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 피가 제복과 훈장까지 적셔 어디까지가 상처이고 어디까지가 제복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머리에 쓴 삼각모와 가발이 벗겨져서 백발이 성성한 머리칼만 피에 뭍어 헝클졌다.

자코모 다빈치가 고개를 저었다.

"총사대원 하나가 그를 말 안장에 실고 왔더군, 아마 습격을 받고 중상을 입어 황급히 도망친 모양이네만... 가망이 없어. 총탄을 세 발이나 맞은 데다 출혈도 극심해."

치명상에도 불구하고 총사대장은 아직 의식이 남아 있었다.

"폐하..."

이사벨이 총사대장의 어깨를 잡았다. 호르세 데 카사델라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나더니, 그가 신음하듯 말을 토해냈다.

"기습을 받아 완전히 당했습니다... 말하기 송구하옵니다만, 그들이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누가 그대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총사대장!"

이사벨이 소리쳤다. 임종을 눈앞에 둔 총사대장이 마지막으로 말을 쥐어짰다.

"주스티안 데 모리체, 그 자의 군대가... 빌랜드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놈들은 자그마치 1개 여단이나.... 그들의 군대가 제국의 국토와 폐하의 옥체를 유린하기 전에, 어서 피하심이..."

총사대장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헐떡거릴 때마다 입에서 피가 꿀럭하고 스며나왔다. 그의 맥을 짚은 자코모 다빈치가 고개를 저었다. 총사대장이 필사적으로 벨린 데 란테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피뭍은 손으로, 그 젊은 총사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될 터였다.

"데 란테 대위, 폐하를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 톨레도 공작의 군대가 필요해... 그 병력이 없이는 저들을 막을 수 없다."

호르세 데 카사델라가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빈센초 데 란테와 키레네에게 내가 명예롭게 죽었다고 전해주게. 저주받은 반역자들과 맞서다 떳떳하게 죽었다고. 내 우정이 그들의 아들인 자네를 보호하길..."

그것이 총사대장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지더니 이윽고 움직이지 않았다.

"죽었네."

자코모 다빈치가 그렇게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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