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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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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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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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41)

DUMMY

“안젤라 노스트윈드!”

곧 어둠 속의 숙적이 반응했다.

“벨린 데 란테.”

벨린에게만 들릴 만큼 작지만 소름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벨린이 그 레드코트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그 빌랜드인 머스킷트리스의 붉은 제복이 달빛에 드러났다. 전형적인 총사의 차림으로, 검은 삼각모에 빌랜드 풍의 제복 코트 차림이었다. 한 손에는 브라운 베스 머스킷들 들었고, 탄약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팜므파탈적인 요염함을 근간으로 두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지붕 위에 선 안젤라 노스트윈드가 빌랜드 억양이 섞인 히스파니아어로 능숙히 말했다.

“오랜만이야, 자기. 용케 살아 있었네.”

“내가 한 말을 기억하는지 모르겠군.”

벨린이 외쳤다.

“다시 한 번 내 눈앞에 보이면 그때는 죽여 버리겠다고.”

“할 수 있다면 해 봐. 스페냐드 총사 나으리.”

레드코트 머스킷트리스가 코웃음 쳤다. 벨린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들고 있던 머스킷총을 더욱 굳건히 잡을 뿐이었다. 모두들 이 냉정하던 갈색머리 총사가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안젤라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자기를 위해 이렇게 나타났어. 이 스페냐드들 앞에. 자기가 나한테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면서.”

벨린은 말이 없었다. 그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운 눈으로 상대를 쏘아볼 뿐이었다. 이사벨 여제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별안간 벨린이 앞으로 다가서려는 이사벨 여제를 손으로 가로막았다.

그가 말했다.

“사사로운 복수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 안젤라. 너는 어차피 용병으로 이곳에 왔을 텐데.”

“나도 자기처럼 지옥이 될 만한 장소를 찾아다녔지. 자기가 원한다면 여기를 그렇게 만들어 줄 수도 있어.”

안젤라가 대꾸했다. 이사벨 여제가 안젤라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벨린의 귀에 대고 말했다.

“쏴 버려, 벨린.”

벨린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사벨이 그를 추궁했다.

“뭘 망설이는 거냐? 저 마녀 따위, 과거의 망령에 불과하다. 짐은 분명 네게 복수를 허했다.”

“다빈치 박사. 폐하를 모시고 가십시오. 어디든 상관없으니 모두들 이 자리를 피해요. 어서.”

벨린이 말했다. 다빈치가 이사벨의 어깨를 잡아 그녀를 끌었다. 히스파니아 총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벨린이 뒤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사벨의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이사벨 여제는 잠시 불길하면서도 숙명적인 예감을 느꼈다. 벨린이 고개 숙여 절했다.

“나중에 뵙지요. 박사, 그리고 사랑하는 황제 폐하.”

“죽어서는 아니 된다.”

이사벨이 에멜무지로 내뱉었다.

“짐은 동정을 버린 대가로 너를 샀다. 네가 목숨을 잃으면, 네 부모를 반역죄로 처단할 테다.”

“아디오스 데 콘프리체(평안하시길 빌며 안녕히)”

벨린이 인사했다. 다빈치 박사가 여제를 이끌었다. 근위총사대가 그녀를 호위하는 가운데, 그녀가 뒤로 고개를 돌린 채 그들을 따랐다. 아직도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근위총사대가 시가지 저편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안젤라는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를 제외하고 다층건물들이 밀집한 아스티아노의 거리로 어둠이 잠기자, 안젤라가 거리로 뛰어내렸다.

그녀가 벨린 데 란테를 마주보고 마찻길에 능숙히 착지했다.

“하긴.”

안젤라가 요부처럼 웃어보였다.

“너와 나 사이에는 정리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지. 너는 내 자존심을 건드렸고, 나는 네 친구들을 죽였지. 그 늑대 새끼까지 포함해서.”

삼각모를 빗겨 쓴 안젤라가 브라운베스 머스킷총으로 그를 겨누며 떠들어댔다.

벨린이 입을 열었다.

“무기는 어느 게 좋을까.”

안젤라가 조소를 보였다.

“우리 사이에 그런 제약을 둘 필요가 있겠어?”

“좋아, 그렇다면.”

벨린이 고개를 들어 삼각모 속에 가려져 있던 구리빛 얼굴을 드러냈다.

“시작하지.”

말과 동시에 벨린이 방아쇠를 당겼다.


메마른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사벨 데 아라고른이 발작적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총 소리에 충격을 받은 이사벨이 내뱉었다.

“가서 그를 도와야 하는 게 아니냐.”

“걱정 마십시오, 폐하.”

자코모 다빈치가 엄숙히 말했다.

“이것은 그의 싸움입니다. 어느 누구도 개입할 수 없지요. 운명적으로요. 누군가 이 룰을 깬다면 엄청난 불명예를 감수해야 할 겁니다.”

이사벨이 고개를 숙였다. 마법사가 어둑한 아스티아노의 거리를 앞장서며 말했다.

“적들이 사방에 있습니다. 만약 황궁을 탈환해야 한다면 적들과의 정면대결은 삼가야겠지요. 놈들을 궁지에 몰기 위해 길을 우회하겠습니다. 폐하. 윤허하시겠습니까?”

이사벨이 마지 못 해 대답했다.

“허락한다.”

“벨린 데 란테가 빚을 갚는 동안, 폐하께서는 폐하의 빚을 갚으셔야지요.”

다빈치의 말에 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마법사가 그녀를 바라보며 웃어보였다.

“그게 바로 세상사는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때 또 한 번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탄이 그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벨린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총탄의 그의 삼각모를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생생히 났다. 안젤라에게 위치를 간파당한 듯했다.

어느 상점의 간판 뒤에 숨은 벨린 데 란테는 탄약 가방에서 탄약포를 꺼내어 입으로 물어뜯었다. 안젤라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발포했음에도 화염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마 장애물에 총구를 대고 화염을 가려 쏜 거겠지. 그것은 그녀의 특기 가운데 하나였다.

총구 속에 화약과 탄환을 부어 장전하며 벨린은 생각했다. 그녀도 총탄을 장전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보다 더 빠를 수도 있다. 빌랜드인들은 머스킷총을 재빨리 장전하니까. 허나 대열전투가 아닌 이상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플린트락 장치를 당기며 그가 중얼거렸다.

“여우 사냥이야. 폐하께서 윤허하신 여우 사냥.”

그리고는 조심스레 나무간판 위로 총구를 들어올렸다. 달빛에 총구가 반짝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때, 무언가 손살 같이 마찻길을 가로질렀다. 그가 총을 쏘았다. 붉은 제복을 입은 안젤라가 미끄러지듯 몸을 날려 건물 벽으로 숨었다.

안젤라가 숨어서 외쳤다.

“제법인걸. 늑대 소년!” 그와 동시에 안젤라가 벽을 등에 지고 총을 쏘았다. 총탄이 그의 왼쪽 어깨를 스쳤다. 모직 군복과 살이 찢어지면서 히스파니아 총사는 화끈거림을 느꼈다.

벨린이 쓴웃음을 지으며 탄약가방에서 탄약포를 입에 물었다. 그 탄약가방 안에는 어머니의 선물인 마지막 마탄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마탄이었다.

하지만 벨린은 그것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안젤라의 흑마법과 연관된 특기가 그에게 불리함을 선사한다 해도, 그는 어머니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설령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그렇게 그녀를 쉽게 보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지난 악몽에 대한 모욕이었다.

“옛날 기억이 떠오르는 걸, 자기.”

안젤라가 외쳤다. 벨린은 불쾌함을 느꼈다. 흑마법의 미세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녀가 무언가 술수를 부리는 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외침을 이었다.

“늑대를 길렀잖아. 이름이 쭈였어. 내가 그 늑대를 어떻게 죽였는지 자기한테 말한 적이 없지?”

벨린은 정신을 가다듬고 다음 탄을 장전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히스테릭하게 메아리쳤다.

“내가 자기의 그 국제여단 사람들을 전부 죽여 버렸을 때, 녀석이 나를 물려고 했어. 그 녀석 처음부터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게 틀림없어. 나만 보면 으르렁거리며 짖었잖아.”

“네 속내를 알았던 거지.”

벨린이 장전을 마치고 대꾸했다. 그리고는 신중히 안젤라가 숨은 벽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가 숨은 채로 말했다.

“그 놈의 아가리를 찢어버렸지. 찢어버린 뒤에도 한참을 낑낑거려서 결국 머리를 쏠 수밖에 없었어. 내가 그날 죽였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무언가 조심스레 총구를 내밀고 있었다. 순간 벨린 데 란테는 공황을 느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 그녀가 이렇게 총구를 내밀 리가 없다. 그렇다면...

무언가 뛰는 소리가 느껴졌다. 벨린은 재빨리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그녀는 그곳에 없었어. 그녀의 특기대로 한쪽에 영혼을 심어놓고 지껄였던 거야.

벨린이 그것을 깨닫자마자 레드코트 머스킷트리스가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갈색머리 총사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머스킷총에 달린 그녀의 총검이 그의 목을 찌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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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아직도 계신다면 선물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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